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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20-23절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키라 - 박영석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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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유다서 1장 20절-23절
설교제목 :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키라!
설교자 : 박영석 목사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기나 땅이나 물의 오염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더럽고 악하게 오염되어지고 있습니다. 개천에는 기형 물고기가 생기고, 사람들은 불임이 되고 기형아가 심각하게 생겨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하게 오염되고 더러워지면 인간과 모든 생물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자연이나 육신생활 뿐 아니라 영적인 생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받고 영생 얻은 백성이 되었지만 어느 사이에,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신앙생활이 약해지고 희미해지고 하나님과 멀리 떠나버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여름 휴가철이 되고 힘든 계절이 되면 기도생활, 믿음생활, 복음 전도,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자신을 진단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는 죄에 오염되고 거짓 교훈에 오염되어 구원과 영생을 잃어버리지 말고 받은 은혜를, 결심을, 믿음의 도를 바로 잘 지키라는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기까지 어떻게 자신을 믿음에서 지켜야 합니까?

 첫째, 항상 믿음 위에 자신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20절).

 ‘자신을 세우라’는 말을 옛 성경에는 ‘건축하여’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의 인격과 삶의 생활이 건축물처럼 지어져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과 생활이 복음위에서 성장해 가고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지어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나 인격,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건축물이 지어지고 빌딩이 지어지는 것처럼 점점 지어져가고 식물이 자라고 육체가 자라는 것처럼 조금씩 지어져가고 자라는 것입니다.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과 인격과 신앙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실 성전으로 우리가 날마다 성장하고 지어져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인격 속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데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점점 더 넓고 크게 지어져가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단장되고 좋은 성전화 되면 성령님께서 늘 임재 하셔서 복을 주시지만, 지어져가는 것이 멈추고 죄와 악으로 점점 오염되고 완악해지고 강퍅해지고 교만으로 오염되어지면 종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고전3:16-17).

 또 믿음위에 자신을 세워나간다는 말은 성장해가고 지향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 딤후2:22 “또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주를 보지 못한다는 말은 영생과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켜야 하는데 건축물이 지어지는 것처럼 신앙과 인격이 지어져가고,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점점 성장해 가고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성전으로 꾸며져 가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와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고 지향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하여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20하-21절).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말씀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결심이나 내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실 때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주리셨다고 했습니다(마4:1-2).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인간의 의지나 욕심으로 기도하면 불평, 불만, 원망, 근심, 절망, 불신앙적인 넋두리 기도가 됩니다.

 그러나 1)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면 믿음의 확신이 오게 됩니다. 불평불만으로 시작했다가도 회개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지혜가 떠오르고 기도에 대한 확신, 응답에 대한 확신이 오고 소망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2)성령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요15:9-10). 성령으로 기도하므로 하나님 사랑을 느끼고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해 느껴지고 깨달아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하게 여겨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계명으로 알고 순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성령으로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받게 됩니다. 영생은 인간의 공로와 인간의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한 대로 인간이 적선고행을 많이 해서, 좋은 업보를 많이 쌓았다고 해서 그것이 영생 얻는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과 영생을 위한 공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입니다(히9:28).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를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나타나신다(오신다)는 말입니다.

 셋째, 믿음에서 탈선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되 경계하면서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22-23절).

 어떤 자들은 누구입니까? 의심하는 자입니다. 의심하는 자들은 불신앙과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어서 복음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흔들리고 거부하고 불신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불신하는데 강하게 적극적으로 철천지원수처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으로는 호감을 가지고 긍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긴 가민가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진리를 바로 가르쳐서 이해하고 깨닫게 하므로 주님 앞으로 결단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자신의 영생을 굳게 지키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과 영생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과 영생에도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자는 불에서 끌어내야 할 사람입니다. 불에서 끌어내야 할 자는 불속에 던져져 버린 사람이 아니라 지옥 불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들, 그냥 내버려 두면 지옥 불에 떨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끌어내어 구원하라는 말은 붙잡아 끌고 와서 강제적으로 끌고 와서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부도덕하고 악하고 거짓되고 잘못된 사람입니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입니다. 강포하고 강퍅한 사람입니다. 시73:6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하고 강퍅하고 포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도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기까지 자신을 지키는 것은 믿음위에 자신을 세워나가는 사람이며, 성령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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