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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20-21절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 서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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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유다서 1장 20-21절
설교제목 :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설교자 : 서철 목사님

    <유다서 1장 20절-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입니다. 성경본문은 유다서 1:20~21입니다.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기록했습니다. 주제는 지킴입니다. 주님의 교회와 성도를 지키기 위해 기록했습니다. 유다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 온 몇 사람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를 혼란케 하는 것을 보고 교회와 성도를 지키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다서 1:3~4)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꾼 자들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초대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단입니다. 자신들의 이성과 철학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해석하여 그릇된 교리를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다서에 나오는 자유방임주의적인 이단들은 영지주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Wolfgang Schrage, 유다서, 번역실 역, 한국신학연구소, 174~176)

   볼프강은 이레네우스의 말을 인용하며 영지주의자들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이원론은 구원론의 생래적인 한계성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영지주의자가 천상적인 빛의 세계로부터 가져와서 상실하지 않은 선재적이고 신적인 핵심본질은 그가 어떻게 사느냐에 관계 없이 그륵 의 본래 고향인 빛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는 것이다."(Wolfgang Schrage, 유다서, 175쪽)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적인 자유방임주의는 경건하지 않고 (유다서1:4), 건강한 성도들을 조롱하며(유다서1:18), 분열을 일으키며(유다1:19) 육에 속한 자들이며(유다1:19), 의심하는 자들이입니다. (유다1:22) 유다는 이들과 힘써 싸우라고 권면합니다.(유다1:3)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다1:4)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내린 결론 부분입니다. 자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다서는 교회를 지키려는 유다의 마음이 간절하고, 성도를 지키려는 유다의 권면이 진지한 성경입니다. 우리 모두 유다서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성도를 세우고 성도를 지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서1:20`21)

1.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지킵니다.

   유다는 성령으로 기도하며 자신을 지키라고 합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핵심입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숨을 쉬는 믿음의 숨입니다. 숨이 끊어지면 사람은 죽습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성도는 죽습니다. 믿음이 끊어집니다. 기도가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힘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유익을 마음껏 누리는 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유다는 몇 가지 강조를 합니다.

1) 거룩한 믿음 위에서 자신을 세우라
2) 성령으로 기도하라!
3)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키라!
4)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서의 결론은 성도가 자신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가져야 할 믿음의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서 자신을 세우는 것은 사도적 전승위에 선 믿음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17절의 말씀과 함께 사도적 전승을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1:17)

    유다는 사도적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이단과 싸워 자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 온 몇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만들어 성도들을 혼란케 할 때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적 전승 위에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오늘 우리가 강조하는 기도의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는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지키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성도의 능력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주 중요한 이유가 19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다1:17~19)

   사도들은 이미 알았습니다(17), 이들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19)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고 교회를 혼란시키며 성도를 낙심케 합니다. 16절은 이 사람들을 원망하는 자며 불평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다1:17)

    이들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었습니다(4절) 그러나 그들은 교회를 혼란케 하고 성도를 유혹하는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만을 토하며 분열을 일삼고 조롱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성령이 그 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

    "이 사람들은 육한 속에 자며 성령이 없는 자라"(유다1:19)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없는 육의 사람들로 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교회를 혼란케 하고 성도의 믿음을 흔들어 대는 성령이 없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유다는 선포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

     저는 신학교 시절에 복음주의 신학을 하자는 생각을 일관되게 가졌습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가서 깜짝 놀라는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의 첫 번째가 신학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었습니다. 신학교에 근무하는 수위부터 시작해서 신학교 행정실에 있는 직원들 중에 저는 당연히 신학교에 있는 직원들이니까 교회를 잘 다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위부터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신학교에 근무하는 직원이 교회에 다니지 않을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목사를 만들어내는 신학교의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저씨 예수 믿으셔야죠.” 하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신학교에 근무했지만 날보고 예수 믿고 교회 나가라고 전도한 사람은 당신이 첨이야”라는 말이 저에게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교회의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저는 정말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데, 정말 하나님하고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내 삶에 가장 큰 기쁨인데, 이 기쁨을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그리고 전하는 자도 없다고 하면,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저는 이후로 목회를 시작한지 31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31년 동안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구로중앙교회가 성장하니까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가게가 교회와 연관을 맺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내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도 큰 교회들과 성장에 대한 비교를 해서 보고를 하라는 담임 목사님의 얘기를 듣고, 한참 성장하는 금란교회, 광림교회, 임마누엘교회, 숭의교회를 조사하러 갔습니다. 어린 신학생에게 왜 그 교회는 성장하는지 조사해 와라고 해서 조사를 하러 갔는데, 조사를 하는 과정 속에 그 큰 교회의 주변에는 꽃집도 빵집도 분식집도 교회 이름을 따서 지은 가게의 이름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교패를 붙이고 믿음이 좋은 신실한 성도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철저하게 그 교회를 통해서 물질을 얻기 위해 교회의 상호를 차용한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2. 성령으로 기도하라

   유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썼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그릇된 교리에서 우리를 지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지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썼습니다. 그것이 유다서입니다. 그 유다서 1장에 나오는 20-21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고 영생에 이르도록 잘 보존해야 되겠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을 지키기 원하십니까? 거룩한 믿음 위에서 자신을 지키시기 원하십니까?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시길 원하십니까?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시기 원하십니까?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대는 사람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영지주의자 같은 거짓 교사들-은 성령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들로 부터 우리를 지키려면 성령으로 기도하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저는 얼마전 R. A. Torrey의 '성령세례 받는 법'에 대하여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위하여 토레이의 또 다른 책 '기도의 영을 받는 법'을 읽었습니다. 원제는 'How To Pray'입니다. 토레이는 예일 대학 출신이 지성인이었지만, 무디와 함께 성령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토레이는 냉랭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이 죽은 정통만을 고집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현재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재발견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규장 출판사는 'Torrey Fire Series'를 펴냈습니다. '성령세례 받는 법', '기도의 영을 받는 법', '말씀의 영을 받는 법' 입니다. 저는 이 세 권의 책을 이전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를 위해 두 번째 시리즈인 기도의 영을 받는 법을 다시 찬찬히 읽었습니다.

  토레이는 기도의 유익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1)현재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를 나누게 한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기쁨을 누린다
3)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시킨다
4) 성령을 받는다
5) 재림의 날을 예비할 수 있게 한다
6) 영적 성장에 도움을 준다

<참조, 토레이, 기도의 영을 받는 법, 36쪽>

또 토레이는 기도의 능력 열 한가지를 말합니다.

1) 우리 자신을 알게 한다
2) 우리의 죄를 씻어 준다
3) 유혹을 이기게 한다
4) 혀를 절제하게 한다
5) 지혜롭게 만든다
6)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7) 성령 충만하게 한다
8) 그리스도를 닮게 한다
9) 충만한 능력을 받게 한다
10) 구원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게 한다
11) 부흥의 통로가 되게 한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내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유다서의 '지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레이의 '기도의 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실상 한 가지입니다. 교회와 성도를 지키는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라고 정한 것입니다. 사실 설교의 결론은 아주 분명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하여 준비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기도하면서, 준비한 설교의 결론은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네 가지의 기도의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1) 순종으로 기도의 문을 열고 기도하라
2)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기도하라
3) 감사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
4) 성령님을 모시고 기도하라

    순종으로 기도의 문을 열고 기도하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기도의 문을 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기도의 대문을 엽니다.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릴 때 우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가득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강력한 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할 때에 그 순종이 우리의 기도문을 활짝 열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145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기도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을 행하든지 자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에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앞세우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의를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좌지우지 할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은 내 맘대로 하지 못합니다. 어떤 조사에서 보면, 여성이 쓰는 가장 많은 말이 모른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맘을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지를 뜻하거나 형편없는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터치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 내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들어오셔서 내 마음을 주장할 때만이 우리가 내 마음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을 성경은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사단이라고 하고 하나는 마귀라고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대적하는 자란 뜻입니다. 마귀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미혹하는 자란 뜻입니다. 이 악한 영은 하나님 앞에서는 대적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이 사단은 우리를 미혹하는 자로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끊임없는 죄책감을 향해서 하나님은 너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하십쇼.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는 자는 무너질 것입니다. 교만하거나 열등감과 좌절감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공로를 앞세우는 자는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할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미혹할지라도, 우리는 외칠 수 있습니다. “사단아, 내게서 떠나갈 지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거룩한 믿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독일의 성서공회에서 발간한 해설 성경을 보면,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읽어보니까, 거룩한 믿음은 사도적 전승에 서있는 믿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적 전승의 믿음은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 사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고백했던 그 신앙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유다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1장 서두에서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형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형제 가운데는 또 한명의 형제 야고보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감독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한 가지 짤막한 성경을 남겼지만, 그것은 예수는 나의 형이기 이전에 그는 하나님이고 나는 그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지키고 예수의 십자가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유다는 짧은 편지 한 장을 썼지만, 구원에 관해서 썼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무력화 시켰습니다. 유다는 이것에 대해서 자신은 예수의 동생이 아니고 예수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나의 형제이기 이전에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에 관해서 편지를 쓰는 간절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다서입니다. 25절밖에 안되는 짧은 성경 속에 구원의 복음을 지키려하고, 교회를 지키려하고 그리고 성도들의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 유다의 마음이 간절히 담겨져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빼놓지 말아야할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가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 여러분, 기도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도할 때 끝까지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비유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기도하러 왔습니다. 구하러 왔습니다.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았지만,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강청함을 인하여서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비유입니다. 계속해서 강청하니까 친구이기 때문에 들어준 것이 아니라, 그 강청함 때문에 들어줬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귀찮게 하십쇼.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지도자일수록 고독합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너희는 내게로 와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을 창조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유일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번거롭게 한다거나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 지 마십시오. 토레이가 말하듯이 '거룩한 뻔뻔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은 거룩한 뻔뻔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송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에게 힘을 주시기를 구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뻔뻔할지라도 나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지라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실 줄을 믿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토레이는 끝장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거룩한 뻔뻔스러움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감사는 거룩한 뻔뻔스러움과 끝장기도를 이루는 첩경입니다. 골로새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4:2)

    성령님을 모시고 하는 기도는 성경의 기도이며 토레이의 강조점이며 우리 감리교회의 본질입니다. 저는 지난 삼위일체 주일에 삼위일체 교리를 신앙고백적으로 설교했습니다. 웨슬리는 분명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 십자가를 지신 대속자 하나님(예수님), 그리고 내 안에 오신 보혜사 하나님(성령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거침돌을 제거해줍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시어 기도를 돕습니다.

R.A. Torrey는 기도를 방해하는 일곱 가지 거침돌을 말합니다. 1) 이기심, 2) 죄악, 3) 마음속의 우상, 4) 인색한 마음, 5) 용서하지 않은 마음, 6) 잘못된 인간관계, 7) 불신앙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심령에 오시면 이 모든 거침돌을 제거해주십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믿음을 지킵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돕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영지주의자들이 지식과 철학으로 교회를 혼란케 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유다서는 이들을 ‘가만히 들어온 몇’(유1:4)이라고 말합니다. 유다는 이들에 대하여 ‘힘써 싸울 것’을 요청합니다.(유다1:3). 우리는 힘써 싸워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지키기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합니다. 기도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령으로 하는 기도가 제일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강력한 두 가지의 이단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주의자들이었고, 하나는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대속을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지식을 가지고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논리에 갇혀서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믿음의 고백이고 체험의 간증입니다. 이것은 논리의 지식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영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혼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도 믿을 수 없고, 성령이 내제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바로 이렇게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하는 메시지를 썼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도

그는 자신의 편지를 다 쓰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사도적 전승인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를 세워갑시다. 우리가 영지주의자들과 같은 그릇된 사고를 가진 생각위에 우리를 세워가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도의 신앙 고백위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논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파워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 오셔서 지식의 논리에 갇히시면, 언어의 유희에 빠져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늪 속에 빠진 사람처럼 언어 유희에 빠지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에 다가와서 나를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를 지켜가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켜갑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이 신앙의 전통과 역사가 쌓여지면, 그것이 아주 견고한 믿음이 되는 장점도 있지만, 또 하나는 지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교회를 다녔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천기독병원에 있는 의사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야고보서를 보며 진지하게 자신이 큐티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기 위함입니다. 자신은 기독교가 왜 힘이 있는 종교인 줄 몰랐는데, 그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성경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어떨 때는 기도가 응답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기도가 응답이 안 되는가 하고 체험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는 응답이 잘 되었는데, 정욕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정욕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입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욕심의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체험이고 기도는 간증입니다. 기도는 그것이 쌓여질수록 마치 수련자의 내공이 증대되듯이 자기 안에 축적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하시면서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은 예배를 통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다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고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을 체험한 간증의 축적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말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하늘의 계신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십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죄를 짊어 지셨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셨다는 대속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예수를 믿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은 논리의 체계가 아니고 체험의 간증입니다. 하늘의 계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나를 구원했다고 하면, 내 안에 들어온 하나님께서 나를 주관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빈집의 비유가 있습니다. 귀신을 내 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이 비어있으니까, 더 흉악한 귀신이 들어와서 그 집을 장악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왕실 같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아니하면, 반드시 그 집은 거미줄이 쳐지고 벌레가 나오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가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름하고 우스꽝스러운 집이라도 사람이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 먼지를 털어냅니다. 벌레를 내 쫓습니다. 수리를 합니다. 사람이 살만한 집이 됩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성령님이 찾아오시지 않고 빈 집이 돼버리면, 귀신이 찾아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성령님이 찾아오시게 되면, 살만한 심령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거미줄이 쳐져 있습니까? 너무나 속상해서 미칠 지경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허무감과 무기력함이 여러분을 지배합니까? 여러분이 처한 현실이 견딜 수 없습니까? 오늘 성령을 모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다른 생각 내려놓으시고 오직 한 가지 하나님에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하십시오. 성령님 내 안에 임재하여 주십시오. 성령이여 나에게 찾아와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 안에 찾아와 오셔서 먼지를 털어내게 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내 안에 귀신을 내어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좌절감과 죄악과 수치감과 그리고 무기력감과 허무감과 그리고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하는 우울한 감정들을 몰아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살만한 집이 될 것입니다. 다시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유다는 영지주의자들이 교회에 와서 성도들의 믿음을 흔드는 것을 보고 성도와 교회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거룩한 믿음 안에서 자기를 지키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십시오.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꼭 해야 할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음을 지키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령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가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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