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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1-3절 믿음의 도리 - 최장환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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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3절
설교제목 : 믿음의 도리
설교자 : 최장환 목사님

유1:1-3까지의 말씀으로 ‘믿음의 도리’ 라고하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감리교 교회의 어떤 목사님이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좌절을 했습니다.
근데 꿈을 꿨는데 자기가 바위를 깼다고 합니다. 근데 아무리 깨도 바위가 안 깨지거든요.
그러니까 실망해서 안 해야 되겠다고 , 아무리 노력해도 안 깨진다고 그래서 좌절하고 앉아있었는데 바로 옆에 어떤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더니 왜 안 하시냐고 그러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돌이 안 쪼개진다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았으면 해야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돌을 쪼개라고 했으면 쪼개면 되지 쪼개지고 안 쪼개지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쪼개라고 했으면 쪼개면 된다.
그 말에 그분이 깜짝 놀랬습니다. 자기는 돌을 쪼개려고만 했지 쪼개는 일을 힘들다고,
안 쪼개진다고 안 하는데 나그네의 말은 쪼개지고 안 쪼개지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쪼개는 일만 해라.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쪼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딱 때리니까 짝 쪼개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을 여기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는 결과만을 놓고 됐냐 안됐냐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 일이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 소관입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할 때 뭐 해야합니까?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며느리는 이쁨 받습니다. 그런데 결과까지 며느리가 하려고 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 권한을 자기가 월권하는 행위가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하면 되는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뭔일이 안되거나 결론이 좋지 않으면 그것부터 생각을 하고 하느니 마느니,
그것이 되느니 안되느니 우리가 그러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앞의 도리는, 하나님이 앉으라고 하면 앉으면 되는거에요.
앉은 다음에 물이 있던 없던, 그것이 힘들던 안 힘들던 그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고
거기서 밥이 나오던 안나오던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자, 하나님이 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추운데 왜 서라고 했냐고 하지 말고 우리는 뭐해야 합니까?
그냥 서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전도하라고 하면 전도하면 되는 겁니다.
성경공부하라고 하면 성경공부하면됩니다.
그런데 왜 모르냐. 모르니깐 모르지요. 어떤 일이던지 결과를 내가 하려고 해요.
믿음의 도리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거에요.

오늘 유다서에서 유다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이 유다가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다닌 사람들 중에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자기 형인데, 육신의 형인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고 유다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제일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유다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또 야고보의 형제유다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을 했던 그 야고보입니다.
형제 유다다. 그러면서 편지를 할 때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뭐가 있기를 원하냐면.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많기를 원합니다.
부름심을 입은거,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있어야 될 것 .
이것은 성도들에게 꼭 있어야 될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라.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제일먼저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니고, 믿음의 도를 위해서 거짓된 자들이 많이 영향을 끼치니까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하다가 그걸 바꿔가지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라 라고 믿음의 도리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믿는 다고 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올바른 도리를 다 할 때 인정을 받습니다.
가정주부가 남편보고 “아, 힘들어. 당신 거기 김치 찌개 있고, 냉장고 열어보면 깍두기 있고 밥은 밥통에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밥 차려먹어. 밥은 렌지에 넣으면 되.”근데 거기에 한번도 가보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은 사람은, 해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안 해본 사람은 차리려면 못합니다.
사모님이 다 넣어논거 제가 찾으려면 저는 빨리 찾죠? 아닙니다. 못 찾습니다. 얼른 못합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 다워야 도리를 다한겁니다. 그런데 저녁내 일하고 온 남편에게 기지개를 피면서 된장국 데워먹으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 주부는 주부로써 빵점일 것입니다.
도리를 다한다. 이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유다가  거짓에 속아서 자기도 주님을 잘 못봐서 그렇게 됐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유다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믿음의 도리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제일먼저 믿음의 도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내가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얘기했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편지를 한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냐면 부르심을 입은 자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자다 .이렇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많고 많은 사람중에 예수 믿는다는 것 이것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정말 귀한것입니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돈이 많이 있느냐, 얼마나 똑똑하고 잘났냐,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졌느냐, 얼마나 명예를 가졌느냐, 또 얼굴이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만 따집니다.
그런데 실상 그것은 잠시 잠깐이에요.
아무리 예쁜 얼굴도 20, 30년 지나면 처지잖아요.
저도 제 주름있는거 생각안나가다도 거울보면 생각나요.
이렇게 육신의 조건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뭘 알아야 되냐면 나같은 사람을 안불러도 괜찮거든요.
하나님은. 그런데 나같은 사람을 뭐 볼거 있다고 불러서, 사랑해서 불렀다니깐요.
이걸 아는 것이 바로 도리입니다.
자식들이 시집가고 장가가서 크면 엄마 나 왜 낳았냐고 그러고 대들잖아요.
왜, 자기마음대로 안해준다는 거에요. 자기마음대로 혼수도 안해준다는 거에요.
그러려면 뭐하러 낳았냐고. 낳고싶어 낳았나요. 아니잖아요.
그 자식의 도리는 엄마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겁니다.

엄마 나 같은거 낳을 때 얼마나 고생했어. 이제 그렇게 말한 여자분은 아마 자기 새끼가 나올 때 아주 복잡하게 만들거에요. 그래서 엄마한테 했던 얘기를 이 입이 말을 잘못했다고 하나님이 아주아주 시간을 끌어서 한 이틀정도 끌어놓으면 엄마한테 가서 펑펑 울겁니다.

“엄마 나 낳을 때 이렇게 힘들었어?” “ 너 낳을때는 내가 더힘들었다.
너 말하지 마라. 내가 너 얼마나 힘들게 키운줄 아냐.”
그다음부터는 엄마한테 아무말도 안해요. 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깐.
도리를 다한다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해서 나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다음보세요.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지금 내가 있는 것.
하나님이 나를 지켜줘서 내가 지금 있는 겁니다. 지키심을 입었다고 하는 것. 참 중요합니다.
마귀가 나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내가 지금 여기 서있는 것 건강도 여러 가지 가정도
사업도 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그게 지금 있는 겁니다.
그래서 늘 그것을 감사하며, 받은 것을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생각하며 ‘고마워요, 감사해요’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도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에수를 깊이 생각하라

늘 우리주님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살아라. 그분 때문에 사랑받고 그분 때문에 죄가 사해졌고,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의 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상 섬기는 속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쫓아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 아브라함을 특별히 찍어서 가나안 땅으로 집어 넣으려고 아브라함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특별히 사랑해서 하나님이 부른겁니다.

우리도 세상가운데 마귀가 왕 되는데 내 욕심이 판치는 가운데 있는데 있는 나를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핀셋으로 집어서 교회안에 갖다 놓은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것이고 고마운것인지를 아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될 믿음의 도리라고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서 도리를 다할 때 다른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도리를 못 다하면 자꾸 싸우게 되고 옆에 사람이 힘들고 항상 같이 있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같은 것을 불러주셨다는 것을 알아서 믿음의 도리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보겠습니다. 2절입니다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두 번째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을 늘 느껴야 도리를 다한다는 것입니다.
긍휼과 평강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당해야될 우리인데도 심판을 유보하시고 긍휼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긍휼이라는 것은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긍휼, 또 평강. 평강이라는 말은 내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 그것이 있기를 원하고 사랑이 더 많아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보시고, 나에게 평안을 주신 것. 이런것들을 내 삶속에서 많이 느끼는 거.

이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으로서의
믿음의 도리를 다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도 긍휼도 평강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산다고 하면
믿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그러잖아요. 부모에게. 다커서. 제일처음에 월급이 적던 많던 받아서 아버지에게도 선물하고 할머니에게도 선물하고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그러잖아요, 속옷같은 것.
그럴 때 “고마워. 나 키워줘서”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지금까지 고생했던 모든 것들이 다 풀어지잖아요. 도리를 다한거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하면 이것도 주님의 은혜요, 저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그래야 되요. 김치를 먹을때도 고마워요. 그러면 하나님이 춤춰요.

 

근데 “왜이래, 왜이렇게 싱거워, 왜이렇게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거야. ”똑같은 거라도 말하고 느끼는 것들이 전혀 다를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주셨다고 믿고 조금 크면 아 크구나 하고 먹으면 되잖아요.

여러분들 집에서 짜고 맵다고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런말 될 수 있음 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까지 사모님에게 짜다고 한다던가 맵다고 한다던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한다던가.
그런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딱 하나 있습니다.
월요일날 화요일날 밥이 나오면 떡밥이 됩니다. 나는 그것은 좀 힘들다. 그랬습니다.
다른 것은 다 되는데 그것은 좀 그렇다고.
제가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마음을 안 상하게 하는 겁니다. 평안하게 해주려고.

우리도 이번 주간에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로 옆에 사람에게 평안을 주세요.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믿음의 도리이며 믿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긍휼은요, 불쌍하게 여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 잘못을 먼저 인정해야 긍휼이 나옵니다.
불쌍하게 보이는 것, ‘나는 괜찮은데’ 하면 절대 긍휼로 못 봅니다.
‘나도 엉터리야’ 그래서 엉터리짓을 했어요. 그럼 괜찮아 괜찮아 하면 되요.
우리 전부 따라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번주에 꼭 해보세요.

이번주간 안에는 긍휼, 평강을 느끼는 것 다른사람에게 느끼게도 해주고, 나도 느끼는 것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 그것을 느끼는 것이 신앙의 도리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것도 안해주고 저것도 안해주냐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평강을 얻게 해주시는 것은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4절 5절을 보겠습니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가이샤라에서 로마의 군사인데 환상을 봤어요. 그래서 베드로를 부르라는 환상을 봤어요. 근데 그 시간 똑같이 베드로는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고 그 안에 짐승들이 들어있고 묶어져 있었는데 ‘잡아먹으라’ 그러니깐 ‘부정한 것은 못잡아먹습니다.’ 그러니까 ‘아니다 내가 정하다고 했다.’ 잡아먹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냈어요.

그때 마치 그런 환상을 본데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사람이 왔어요.

그 때 베드로가 ‘하나님이 역사하셨구나’ 베드로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고넬료 그 사람들을 따라갔어요. 그래서 고넬료 집안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불쌍히 여겼고,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서 ‘이러시려고’그랬습니다.

고넬료 가슴에 무엇이 들어왔어요? 평강이. 긍휼을 입은 것을 알았어요. 평강이 느껴졌다고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이러시려고’ 하는 것이 자꾸 느껴져야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보겠습니다.

세 번째는 3절 보겠습니다.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세 번째, 거짓을 대적하여 믿음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싸우는 거에요. 이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속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냥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에 속은겁니다.

그래서 유다가 지금 여기서 하는 말이, 구원을 먼저 얘기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아니라

거짓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것들과 힘써 싸우라고 먼저 말한다고 지금 3절에 나와있습니다.

유다의 마음이 어떨까요? 자기가 속아봐서 다 알잖아요.

그래서 먼저 말해야 할것이 뭔지를 알고 먼저 말하고 있는데 그 먼저 말하는 것이 뭐냐면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겁니다.

유다서의 결론이 바로 이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으로써 믿음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면 바로 믿음을 지키려고

우리는 거짓것들과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자꾸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옳다고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앉아서

거기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겁니다.

거짓것들은 아주 교묘합니다.

유다 자신이 거기에 넘어가서 잘못된걸 다 해봤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 얘기하려다가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우라고 여기다가 얘기하는 그 마음, 그 심정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은, 거짓것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을 위해서 내가 내 삶에 현장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우리것입니다.

왜? 주님이 다 이겨놨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런데 거짓것을 따라가게 되면 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거짓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믿음의 도리를 다하려고 그들과 늘 힘써 싸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셔야 될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이렇게 날마다 영적 싸움을 하라고 얘기를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라고 얘기하고있습니다.

베드로도 자꾸 자기에게 속았고, 예수님 생전에 거짓말하고 도망가고 했잖아요.

그것이 뒤에 가서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믿음의 도리를 다하라고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쫓아다닌다고 저를 대적하라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우리는 믿음의 도리를 다하려면

내 신앙을 지키려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할 때 나중에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공부도 많이 했지만,

이사람은 다른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했지만

다른사람이 당하지 못한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냥 안해도 되는데 바로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를 몇번 간사람이 바울입니다.

얼마나 힘든 속에 살았는지 바울은 고린도 후서 11장에 보면 여러 절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 바울은 믿음을 지키려고 죽음을 무릎쓰고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이  했던 것을 다 보셨을텐데 얼마나 칭찬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정말로 믿음을 지키려고 힘써 싸우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은 다 보신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믿음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거짓것들과

내 안에 욕심과 세상에 잘못된 세력들과 분명히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래서 유다가 간절한 말로 이렇게 믿음의 도리를 다하려고 부탁을 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울과 같이 아무리 힘들어도 거짓을 대적해서 믿음을 지키라고,

믿음의 도리를 다하라고 말하고 있는 그 사실을 이번 주간에도 꼭 기억을 하시고

믿음의 도리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람도 사람으로써 도리를 다해야 하듯이
신앙도 믿음의 사람으로써 믿음의 도리를 다해야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것을 아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을 삶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거짓을 대적해서 믿음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세가지를 꼭 다해서 믿음의 도리를 다한다고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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