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시 103 : 1 - 5
설교제목 : 감사의 능력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감사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서 드리는 추수 감사절 예배의 기원은 대략 이와 같습니다. 1620년 9월에 영국의 보수적인 친교도 102명이 영국 국교의 극심한 박해를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라는 조그마한 범선을 타고 힘든 항해 끝에 험한 대서양을 구사일생으로 건너서 아메리카 선 대륙 북쪽 플리머스의 12월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풍토병 이였습니다. 결국 그 해에 함께 온 사람들이 태반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사람들이 불굴의 의지와 하나님의 대한 신앙을 가지고 끝없는 노력부터 시련을 극복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이듬해 봄 교회를 짓고 또 우호적인 원주민 인디언들로부터 씨앗을 얻어 황무지를 개간하여 1621년에 값진 가을 추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3일 동안 추수감사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기원이 되어 해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건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 중에 죽어 선교도 들이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신한 바는 그들의 신앙이 충만한 감사가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되어서 오늘날 번영하고 부유한 미국을 낳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감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향기로운 제사가 된 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하게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원망과 불편과 탄식에 대해서는 진노로 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광야로 향하여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역경에 부딪히자마자 하나님께 원망, 불평, 탄식을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로 대하셨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광야에서 멸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얼마나 미워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가 사람들을 충동해서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것은 어떠한 역경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환경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염려 근심을 주께 맡기고 감사와 찬송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사를 함양하시고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러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겠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사건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과 신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관원에게 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굶주린 채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양손과 양발이 철 고랑에 채었습니다. 그들은 맞은 데가 쓰리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배가 굶주렸습니다. 여러 가지 빈대 벼룩이 온 몸에 올라와서 물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밤중에 감사와 찬송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그 감사와 찬송의 예배의 박자를 맞춰서 주님께서 빌립보 감옥을 주님의 힘으로 뒤흔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감옥문도 열리고 철고랑도 다 끌려지고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그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과 그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빌립보 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감사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게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편과 탄식만큼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께 고통을 가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항상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감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 조건들이 많은데 어떻게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벌레나 짐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여러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유독 여러분만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굼벵이로 태어날 수도 있고, 개구리나 뱀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좇아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 이 사실을 평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가 깊이 감사를 드릴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 사람으로 볼 때는 한국 5천년 역사 중에 우리 가장 좋은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바로 짧은 역사를 볼지라도 일정 36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나라를 잃어버리고 성씨조차 다 잃어버리고 헐벗고 굶주리고 일본사람의 학대를 받고 살았지 않습니까? 사는 것이 짐승만도 못했습니다. 또한 6.25사변을 통해서 살은 사람들은 고향 산천 등지고 피난복짐 짊어지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그 추운 겨울에 피난의 길을 떠났던 그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번영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때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마음속에 깊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밝은 태양을 우리는 감사해야 되겠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마시는 물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는 오곡백과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우리가 함께 사는 이웃을 위해서 감사하면서 우리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불치의 병이 들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년의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그는 퇴원했습니다. 의사는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눈물로서 수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기에 보니까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난 다음에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밖에 나가 태양의 햇빛을 보니 햇빛이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무심코 바라본 태양과 그 햇빛이 그의 생애 속에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숨을 쉬는데 공기 하나라도 더 깊이 쉬어봐야 되겠고 죽기 전에 더 깊이 공기의 맛을 봐야 되겠고 폐 속에 깊이 공기를 호흡하는데 그 공기가 그렇게 달고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실 때에도 그냥 마시지 않고 좀 더 깊이 맛보려고 입 속에 물을 넣어서 깊이 물을 음미하는 감사하며 한 모금씩 마신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는데 이제 이것이 마지막 밥이 될 수도 있는데 그 낱알 하나 하나가 그렇게 그는 고마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 친구들의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는 이런 것을 몰랐는데 이제 인생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모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그 특권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그런 글을 남겨두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모르는 행동보다 더 무정하고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도 은혜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은혜는 물의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원한은 돌에 새겨서 오래오래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은혜 받은 것은 무관심하고 잊어버립니다. 혹은 은혜 받은 것을 은혜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려고 원수로 갚는 비열한 동물적인 인간들이 많습니다. 은혜 받은 만큼 무시무시한 원한으로 복수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속담에도 머리 검은 동물은 도와주지 말라는 그런 말도 있고,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찾아내라고 하더라고 그런 말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보다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이고 동물적인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에서 살면서 모든 우리 주위 환경에 대해서 깊이 음미하고 깊이 감사하는 우리들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더 깊이 품어 주실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이야기를 읽고 저가 깊이 감동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책을 내어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만든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사무실에 있는데 어떠한 사람이 꼭 자기와 신앙상담을 해야 되겠다고 간청을 하기에 허락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중년의 남자가 왔는데 머리는 다 헝클어지고, 넥타이도 다 삐뚤게 메고, 옷도 다 허리무리하고 바지는 완전히 헐렁 바지를 입고 신도 뒤축을 눌러서 신고서 들어 왔습니다. 수염도 깍지 아니하고 눈은 퉁퉁 부어서 있었습니다. 그는 힘없이 걸상에 털썩 주저앉더니 "목사님 나는 버림받은 인생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빈 털털이 입니다. 내가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직장을 구해서 방황을 하지만 아무도 나를 고용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에게 직장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그러므로 이제 더 살 용기와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하고 오늘 상담을 하지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내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노만 빈센트 필 박사님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책상 서랍을 열고서 흰 종이 하나를 내어 주고 연필을 건네서 주었습니다. "당신 지금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십시오. 당신이 대답을 하고 긍정적인 대답마다 거기에 글을 적으십시오. 당신 아내가 있습니까?" "네. 아내가 있습니다. 돈벌이도 못하는 이 못난 남편을 버리지 않고 그래도 같이 살아주는 착하고 좋은 여자입니다." "오, 그것을 적으세요. 착하고 좋은 여자가 있다고, 자식이 있습니까?" "네. 자식이 있지요, 자식이 다섯 명입니다. 공부를 잘 못시키고 잘 못 먹이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반발하지 아니하고 착실히 교회도 나가고 열심히 기도도 하는 좋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자식 다섯 명이 있다고 적으십시오. 당신 밥 잘 먹습니까?" 허허 웃더니만 "없어서 못 먹지요." "아, 그래요? 있어도 못 먹는 사람 많습니다. 위장병이 걸려서 좋은 음식이 있고도 못 먹는 사람 많은데 당신 없어서 못 먹을 위를 가졌으니 감사하지요. 없어서 못 먹는다고 적으세요." 그러고 난 다음 "당신 잠 잘 자요?" 그러니깐 "잠이요? 잘 자죠. 그저 드러누우면 잡니다." "그래요? 그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잠 못 자고, 침대에서 들썩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잠 잘 잔다고 적어 놓으십시오. 그 다음 당신 친구가 있습니까?" "대개 친구들이 다 날 떠났지만 그러나 나하고 다정한 친구 몇몇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나와 친구지요.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어, 친구가 있다고 적으십시오. 그 다음 전반적으로 당신은 건강합니까?" "예, 별로 크게 아픈데 가없습니다. 건강합니다." "건강하다고 적으십시오. 당신 지금 적은 것을 한번 소리내어 읽어보겠습니까?" "읽어보지요. 착한 아내가 있다. 좋은 어린아이들이 있다. 밥 잘 먹는다. 잠 잘 잔다. 그리고 친구도 있다. 건강하다." 그래서 빈센트 필 박사가 말했습니다. "당신 들어올 때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데, 무엇이 당신이 아무 것도 없단 말이요. 이 만한 것을 가졌으면 부자요, 감사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인데, 뭘 없다고 불평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머리를 긁적긁적 긁더니만 "허, 이렇게 많이 가진 줄은 나 몰랐어요.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당신 없는 것을 찾아가면서 불평하지 말고 당신에게 주어 것을 가지고서 감사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큰 부자란 것을 알게 되고, 당신의 이미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직장을 찾아 나가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도 직장을 주지 당신이 아무리 곧 없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도 직장을 주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자에게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은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어나서 고맙다고 절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 자꾸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좋은 아내가 있다. 자식들이 있다. 나는 잘 먹는다. 나는 잘 잔다. 건강하다. 친구들이 있다. 굉장히 많다.' 그리고 거울을 쳐다보니깐 '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꼬락서니가 되어서 어떻게 살겠나. 제법 있는 사람이면,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지.' 그래서 머리를 잘 빗고 기름을 칠했습니다. 그리고 면도를 깨끗이 했습니다. '그래 이 꼬락서니가 뭐야." 그래서 넥타이를 꾸겨진 것 벗어버리고 좋은 넥타이를 가지고 깨끗이 맸습니다. 옷을 잘 입고 바지를 다려서 줄을 좍 세웠습니다. 그리고 구두도 착착착 닦아 가지고서 뒤축을 누르지 않고 바로 신었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니 야 굉장한 젠틀맨이거든요. 와, 내가 봐도 보통 훌륭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탁 가슴을 펴고 그래서 신문에 사람을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는 곳에 탁 그렇게 들어가서 인터뷰를 하는 거예요. 당장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노만 빈센트 필 박사에게 전화를 해서 "박사님 박사님하고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에 내 인생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내가 있는 줄 알고 난 다음에는 거지같은 치장을 다 바꾸고 있는 사람처럼 몸을 꾸미고, 그 다음에는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하니깐, 자신이 넘쳐나고, 활기가 넘쳐나고, 긍정적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직장을 구하려니까 나하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좋은 월급으로 나를 고용해 주었습니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대로, '나는 절망입니다. 나는 아무 데도 직장을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말을 하고 다니는 이상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쓰레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것을 헤아려 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그 감사의 제사를 받으시고 기뻐하셔서 있는 자에게 더 주고 또,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신 마태복음 13장 12절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됩니다. 있어야 하나님이 더 보태어서 넉넉하게 해주시죠.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보태주지 않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을 때, 오 천 명을 먹이고 열 두 바구니 남게 하는 기적을 남겨 주시죠. 빈 손들고 나가서 아무리 기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우리 환경에 없는 것을 찾아서 원망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고, 입으로 시인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되면 참으로 주님 안에서 가진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성경 말씀 시편 103편 1절 ~ 5절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것을 마음속에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이런 좋은 하나님이 계신데 우리 사람들은 이 좋은 하나님을 송축하고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일일이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할 때 그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 된 것을 늘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로마서 3장 23절 ~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음으로 값없이 죄가 다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가지고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찬송해야 됩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없는 자가 아닙니다. 있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 되고 성령의 사랑과 거룩함을 받은 것을 늘 마음속에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1절에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또,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고 했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부어주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을 가진 사람이요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진 사람이니 얼마나 놀라운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린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걸 가지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치료의 복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치료하는 광선을 사람들이 발명해서 치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치료하는 성령의 광선을 비추어서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을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에게는 치료의 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억하고 감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준 것을 늘 기억해야 되요. 우리는 더 이상 가시와 엉겅퀴에서 뒹굴며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 공명을 가졌다 해고 가시와 엉겅퀴의 방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심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의 가시 방석에서 놓여남을 받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마음속에 알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천국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야훼께서 주신 이 모든 은총을 우리 마음속에 기억하고 송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되요.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감사 할 조건이 그리스도 십자기 안에서 넘치도록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오 중 복음과 삼중축복을 언약을 가지고도 우리는 하루 종일 감사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하고 같이 길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안에서 살면 나쁜 것조차도 좋게 만드시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것만 가지고 감사하지 말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쁜 것도 가지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 협력하게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 보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7살에 형들 목축하는데 양식을 가지고 왔다가 오히려 형들에게 배반당했습니다. 옷이 다 벗김을 받고 얻어맞고 그리고 아라비안 대상에게 팔려서 종으로 끌려갔습니다. 얼마나 비극입니까? 얼마나 나쁜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울며 끌려갔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디발 집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그는 잔뼈가 다 굵도록 종살이했습니다. 그 종살이의 고달픔 속에서 그는 얼마나 원망하고 탄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이가 28살쯤 되었을 때 그는 보디발의 아내에 모함을 당해서 보디발에게 안 죽을 만큼 얻어맞고 짓밟히고 상처를 입고 시위대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나쁜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날수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끝까지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시위대 감방에서 2년 있은 후에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그러한 모든 나쁜 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고속도로를 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창세기 50장 20절에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선으로 바꾸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쁜 일도 주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합동하여 선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가는 곳마다 얻어맞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렇게 까지 고난 당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했는데 바울 선생은 늘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너무나 나쁜 일이 이었었습니다. 지금도 뛰어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해야 되는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년이고 기약 없이 감옥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너무 너무나 그 당시에 생각된 나쁜 일로 생각했으면 감옥에서 그가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교회들에게 편지를 쳤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이 인도하신 대로 편지를 친 것이 오늘날 신약성경이 거의 3분지 2가 다 바울 선생이 쓰신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단지 2천대지만 2천년 생활동안에 그 편지가 온 세상에 다니면서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바울의 편지가 온 천하에서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고 신앙을 주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볼 때 바울 선생이 감옥에 더욱 들어 가 있었으면 좋을 뻔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성경을 썼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사람의 생각에 좋다고 해서 끝까지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각에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끝까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하나님의 교훈이 이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딸을 가진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동딸인데 자동차 사고로 뇌를 다쳐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인사불성입니다. 밤낮으로 고함을 치고 자기 머리카락을 뜯고 부모가 와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딸이 너무 불쌍해서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정신병원으로 심방을 하지만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가슴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밤낮으로 하나님께 우리 딸을 고쳐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하는 말이 '이 딸은 뇌가 손상을 받았기 때문에 복구할 수 없다. 치료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하는데 그 날도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정신병원을 찾아가면서 그는 핸들을 두들기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 외동딸이 왜 저렇게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죽어야 합니까?' 가슴에 끓어오르는 기도가 있어서 자동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핸들을 잡고 엎드려서 막 우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왔습니다. "너 딸 미친것을 감사해 본적이 있느냐?" "하나님 미친것을 왜 감사해야 합니까? 건강해야 감사하지요." "아니다. 너는 여태까지 늘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왜 내 딸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원망을 했지. 하나님께 한번도 감사해 본 적이 없다. 네가 오늘 내 딸이 자동차 사고로 뇌가 다쳐서 정신 이상이 된 것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번 감사기도를 해봐라.' 그런 강한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만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딸이 교통사고가 나서 뇌를 손상을 입어 정신병자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속에 아주 겸연쩍어 했습니다. 아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미친 딸이 감사하다니 이런 법이 있느냐 그러나 내적이 강한 음성이 있어서 '하나님 내 딸이 미쳐서 감사합니다. 내 딸이 정신병원에 들어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차를 운전하면서 '내 딸 때문에 내 신앙도 우습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이제 돌았다.' 그러면서 들어가니까 아 의사들이 뛰어나오더니 '당신의 딸이 지금 갑자기 추호의 기미를 보입니다. 아빠를 찾고 있습니다. 빨리 들어가 보십시오.' 그래서 뛰어가니까 조그마한 음성으로 "아빠" 뛰어가서 "내 딸아" 그러니까 아버지의 목을 얼싸안고 "아빠 내가 왜 여기 와있어 아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때부터 치료받기 시작해서 그 딸은 완전히 고침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기록한 간증을 제가 읽어보았었습니다. 그는 몇 년을 늘 원망하고 늘 불평하고 '왜 내 딸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고쳐 주옵소서.' 원망조의 기도만 했지만 그 날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강력하게 '내 딸 정신병들은 것을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 하나님의 음성에 역경에도 불구하고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감사를 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치료가 임했다고 그는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마음의 기쁨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썩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 미움, 탄식 등은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육체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중병에 걸리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엔도르핀이 넘치게 나와서 마음도 기뻐지고 육체도 건강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살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둘째는, 우리의 마음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 됨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독 일년에 한번씩 추수감사절기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일년 내내 365일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인생을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거룩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너무나 감사가 없는 메마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둔하여지고 무디어진 심령을 다시 한번 말씀으로 갈아엎게 하여 주시옵시고, 감사와 찬송을 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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