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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편

시편 23편 4절 꺾어진 사람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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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시 23편 4절
설교제목 : 꺾어진 사람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말 씀 :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꺾어진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은 꺾어 놓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그 줄기에서 꺾어 버리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이 만든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철로 여러 가지 기계와 기구를 만들지만 이것도 꺾어 놓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동물이나 인간은 꺾어져야 쓸모가 있지 꺾이지 않은 야생의 상태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소를 보십시오. 소는 송아지 그대로 두면은 천방지축으로 뛰고 쓸모가 없습니다. 코를 꿰어 가지고서 그 고집을 꺾어야 농사일에 쓸 수가 있고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그대로 두면 아무도 말을 탈 수가 없습니다. 말도 그 고집을 꺾어야 사람들이 탈수도 있고 물건을 실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꺾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끊임없이 그 생활을 통해서 교육을 받고 꺾임을 받고 그래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함께 대화하고 사회생활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꺾이지 않은 인간은 결코 사용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누구를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맹렬하게 달라 들어서 꺾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꺾을 때 사람이 아무리 그것을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꺾인 사람만이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독립을 선포하고 떠나 가버린 인간은 꺾이지 않고는 절대로 그 인본주의, 자기중심주의를 저버리고 자기 주체적인 사상을 저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꺾어서 사용하시는지 우리 잠시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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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크게 인생에 꺾이고 좌절한 아브라함을 우리가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는 언제나 하나의 모범이 되고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75세에 놀라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 1~ 3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마어마하고 찬란한 꿈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지극히 인본주의적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입니다. 창세기 12: 5에 보면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여기에 보면 너희 본토를 떠나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모두다 수레에 싣고 갔으니 본토를 싣고 간 것입니다.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사람들을 다 이끌고 갔으니 아비집 식구를 하나도 없이 다 이끌고 갔습니다.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 조카를 옆에 달고 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은 했으되 자기 생각대로 순종했지 하나님 생각대로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꺾어야 설수가 있지 꺾지 않고는 아브라함은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지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하는 하나님께 사용을 당하는 그런 인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써 아브라함에게 좌절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창세기 12:10에 보면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깊이 좌절 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가나안 땅에 가면 젖과 꿀이 흐를 줄 알았는데 그 많은 식구를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집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천지에 기근이 다가와서 새빨갛게 다 탔으니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크게 좌절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왔는데 왜 이 땅에 오니까 이렇게 기근이 들어서 먹고 살길이 없는가? 이제 우리는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야 된다.” 끌고 온 짐승은 다 죽고 종들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일가친척은 다 도로 보따리 싸고 떠나가고 남은 것은 자기와 자기 처와 롯 밖에 남지 않아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내려가서 아브라함은 꺾여 버렸습니다. 완전히 아브라함은 꺾인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 내려갈 동안에 애굽 사람이 겁이 나니까 자기 아내를 자기보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를 보고 스스로 동생이라고 칭하라고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애굽에 내려가니 아브라함의 아내의 외모를 보고 그 소문이 난지라 바로가 데리고 오라 하매 바로의 궁전에 들어갔는데 아브라함이 이는 내 여동생이라 하므로 바로가 기쁘게 그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바로에게 시집을 보내고 난 다음 아내를 시집보낸 대가로써 밥을 먹고 살게 되었으니 그 좌절함이 어떻겠습니까? 성경에 보니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세상에 아내를 바로에게 팔아먹고 그 대가로써 그는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어서 살고 있으니 그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보통이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좌절했습니다. 자기가 미웠고 절망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깨어지자 하나님은 또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의 아내를 도로 찾게 해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사람은 꺾지 않고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삭을 보십시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이지만 그를 모리아 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아버지가 그를 붙잡아 묶었습니다.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이 너를 잡아 재물로 드리라고 하니…” 그때에 이삭의 좌절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일시에 이제는 죽임을 당하는구나. 그는 크게 꺾였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를 재물로 받으소서. 꺾인 사람이 되고 난 다음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의 얍복강 나루터의 좌절을 보십시오. 얍복강 나루터에서 그는 완전히 인생이 좌절되고 꺾일 데로 꺾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 수많은 좌절의 길을 걸었습니다. 17살에 형들에게 팔려서 종으로 가고 또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고 기나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에서 그는 좌절되고 그는 꺾일 데로 꺾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나이 3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서 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40에 조국을 건지려고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붙들어서 좌절케 했습니다. 그 쿠데타에 실패하게 하고 광야에 나가서 4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에 그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아무도 그를 인정하고 환영하지도 않고 목동이 되어서 80이 될 때까지 그는 눈물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좌절하고 꺾이고 꺾여서 나중에는 전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럴 때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한 사람은 꺾습니다. 꺾이지 않고 하나님께 사용함을 받을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생의 인생 그대로는 결코 사용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적게 사용할 사람은 적게 꺾을 것이고 많이 사용할 사람은 하나님은 많이 꺾으시는 것입니다. 꺾이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꺾임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두 번째 생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꺾어져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 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갈 때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기 전에는 자기가 살아 있습니다. 내가! 내가! 나 자신이 살아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면 깨어지고,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기가 형편없이 무능력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비로소 찾는 것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가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크고 작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꺾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는 이론적인 하나님은 알뿐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좋은 환경에서 신학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가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찡하게 하고 내 영혼을 잡고 뒤흔드는 그 깊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만남이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야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치고 깊은 시련을 통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깊은 시련을 통한 사람이야 깊은 시련 속에서 깊은 신앙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면 자기 교만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13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교만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웅덩이를 팠는데 파고 파도 물을 저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터진 웅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떠나가면 그 인간의 교만이 깨어지고 인간은 두 손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간교한 지혜와 계략에서 해방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간교한 지혜와 계략을 가지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인생을 살려고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날아가면 인간의 모든 수단과 방법이 다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는 순수하게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간교한 지혜를 보십시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형의 배고픈 틈을 타서 간교한 지혜로 팥죽 한 그릇 주고 장자의 명분을 내놓으라고 하니 형이 장자의 명분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운 것을 기회로 해서 형의 옷을 입고 형의 흉내를 내어서 들어가서 장자에게 주는 모든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는 언제나 장자를 통해서 상속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에 장자에게 언제나 복을 주고 온 가문을 맡깁니다. 그러나 에서가 받아야 될 것을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고에서 인 척해서 아버지께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얼마나 간교한 사람이고 책략적인 사람인 것입니까? 그러다가 형이 죽이려고 하매 형에게 쫓겨서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머슴살이 할 동안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하고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고 그는 그 간교와 책략을 버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향땅으로 들어가라고 하매 그는 돌아오는 중에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서 간교한 인간의 지혜를 깨뜨렸습니다. 그는 진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왜, 얍복 나루터에 왔는데 뒤에는 외삼촌이 군대를 거느리고 네가 다시 돌아오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지요. 사람을 보내어 형님에게 내가 돌아온다니 형이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질풍같이 뛰어 옵니다. 동생을 박살을 내어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20년 동안 마음에 칼을 간 그 원한을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이제는 형의 칼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모든 짐승과 처자들을 다 얍복강을 넘어가게 하고 자기 혼자 얍복강 이 건너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형이 정말 와서 온 짐승 떼를 다 빼앗고 가족들을 도륙하면 자기는 달아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중에 갑자기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야곱하고 씨름을 합니다. 그 씨름은 다른 씨름이 아닙니다. 야곱보고 강을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죽든지 살든지 처자와 함께 하라. 강을 건너가라.” 야곱은 말합니다. “나는 안 건너가겠습니다. 처자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안 건너갑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떠올 때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들어주어 환도 뼈를 처 버리매 절름발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절뚝발이가 되어서는 이제 형이 아무리 그를 살려 놓으려고 해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왜, 그는 도망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고, 사망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천사를 잡고서 나에게 복을 내려 주지 아니하면 내가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이제는 네 이름을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과 겨뤄서 이긴 자구나.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네가 나의 이름을 묻는가? 거기에서 야곱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를 그는 브니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보았지만은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는 말로써 그 장소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브니엘을 떠나서 올 때 태양이 떠올랐었습니다. 그가 완전히 좌절에서 깨어졌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 항복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출발하니까 밤은 지나가고 광명한 태양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교만과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포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깨어지고 항복해서 하나님을 만나면 여러분 그 자리가 바로 브니엘이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만났으나 죽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다음에 얍복 나루터를 건너가는 야곱에게는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그는 절름발이가 되어서 절뚝절뚝하고 빈 손들고 400인의 군대를 거느린 형을 마주쳐 나가지만은 이제는 야곱은 자기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이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다 가지고 그 사람의 상급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므로 아무도 이 사람을 멸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질풍같이 뛰어왔지만은 형은 야곱이 절뚝거리고 오는데 그만 그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그 형의 마음을 녹여 버린 것입니다. 그는 20년 동안 간 칼을 뽑아 던져 버리고 뛰어와서 동생과 목을 얼싸안고 통곡을 하고 울고 화해하고 죽이러온 군대를 동생을 호위하는 군대로 변화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깨어져서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지 마십시오. 깨어지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여러분은 전에 도저히 만나보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옛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주님의 참된 지혜가 우리의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인도하시는 지팡이는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인 것입니다. 지팡이를 짚고 우리가 길을 인도하듯이 지혜가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잠언 3: 5~ 8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 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깨어진 사람, 꺾어진 사람은 인간의 꾀로 인생을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성경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3:13~26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 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 되도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지혜 속에 장수도 있고 부귀도 있습니다. 평안도 있습니다. 영광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 앞에 깨어져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지혜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성령충만과 말씀충만 속에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엔 하나님께서 이제는 막대기로써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목자가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막대기는 짐승들이 오면 치고 그리고 가시밭이 있으면 가시밭을 쳐서 길을 열어서 양으로 평안히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지혜의 지팡이만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는 기적의 막대기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은 삶의 문제의 해답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깨어진 인생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믿을 때 우리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기적은 바로 여러분의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할 수 있지만 믿는 자는 절망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적이 있으면 문제의 해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눈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귀에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져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우리 일생을 위해서 예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해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 7~10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러므로 꺾어진 사람은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삽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질그릇 속에 담겨 있으므로 이 능력이 우리와 같이 하기 때문에 사람들 생각하기는 이 사람 둘러싸이면 죽을 것 같으나 쌓이지 아니하며 이 사람 거꾸러뜨리면 멸망할 것 같으나 멸망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하면 버림받을 것 같으나 버림 바 되지 않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인생의 해답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사람은 모든 일에 승리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야생의 동물들을 보십시오. 야생의 동물들은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기 뛰놀고 싶은 대로 놀지만 그러나 야생의 동물은 언제나 지켜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험한 산 바위 틈사위에 삽니다. 그러나 양이나 염소나 소나 가축들을 보십시오. 이는 사나운 이빨이 없고 사나운 발톱이 없지만 사나운 뿔이 없지만 그러나 목자가 있어서 가축은 목자가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목자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평지에서 삽니다. 푸른 풀밭에 눕고 쉴만한 물가에 가서 물을 마시고 편안히 삽니다. 가축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습니다. 길들임을 받아서 목자가 원하는 그 시간에 일어나고 목자가 원하는 그 시간에 잠자고 목자가 원하는 그 길로 갑니다. 가축은 주체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목자에 종속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축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다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가축은 목자가 지켜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과 저는 목자 없는 야생의 인생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자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께로 돌아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책임져 주시며 우리를 사나운 짐승에게서 보호해 주는 책임을 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가 있는 양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지만 우리는 꺾어지고 이제는 교훈을 받아서 온유한 가축 같은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목자를 우리는 믿고 신뢰하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이와 같은 사람이 되었을 때 목자는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 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꺾어진 인생은 완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옛날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행했고 우리 마음대로 처신 했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노력해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를 꺾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크고 적은 시련을 통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꺾어졌었습니다. 우리는 깨어졌었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했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온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앞에 깨어졌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가 되어 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적이 되어 주시옵시고 하나님 우리 문제의 해답이 되어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이땅에 살면서 버림받은 인생으로 살지 아니하고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붙잡고 이끌어 주는 삶을 살게 됨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문제가 생기면 뜨겁기 기도하여 해답 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인본주의를 완전히 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신본주의로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자기 주체로 살지 않고 하나님 주체로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사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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