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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3장 1-17절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 김영하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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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태복음 3장 1-17절
설교제목 :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설교자 : 김영하 목사님


서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가지만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이지 상품이 아닙니다. 상품은 대량생산을 하지만 작품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창조된 사명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2억 분의 1의 경쟁을 물리치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면 자신의 생각이나 말이 자존감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 후손들이 얼마나 많이 태어나서 어떠한 일을 할지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오늘 세례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하여 위대한 목적이 있음을 깨닫는 중요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존감이 높아 지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

스가랴가 대 제사장으로 임무를 수행 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는 크게 기뻐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며 태어나기 전부터 성령이 충만할 것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는 주의 길을 평탄케 하며 불순종한 사람들로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를 받아 드리게 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합니다. 우리는 요한의 부모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요한아, 하나님은 너에 대하여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 이 목적을 위해서 너를 예비하신 것이다. 우리의 대 선지자 엘리야가 그랬듯이 너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준비 시킬 것이다’. 라고 교육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계시를 받은 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예수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생각하며 자신의 사명에 점점 자신을 던지며 살았을 것입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주의 길을 준비하라 광야에 주님이 오실 고속도로를 세워라(사40:3) 하는 말씀에 점점 심취되어 갔을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당시 한 분파였던 근본주의 자인 에센스 파에 들어가서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사해 부근 동굴 속에서 살았던 그들의 삶의 유적지가 발견되고 있습니다(Quamran Community). 우리는 현장에서 그들이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에서 얼마나 고행을 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400년간 선지자가 없었던 유대인들에게 성령의 빛을 비춰 줌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길로 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도 이러한 사명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어려서부터 특별한 사명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광야의 강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유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설교하는 요한은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그들에게 자신은 주의 길을 평탄케 하고 그의 첩경을 예비하라고 말하는 광야의 소리라고 답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러면서 에스겔이나 요엘이나 예레미아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는 회개의 설교를 강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 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사방에서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더니(마3:5-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계속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7-8)고 외칩니다. 왜 요한은 이렇게 강력하게 정죄의 설교를 했을까요? 정죄하는 설교, 정확한 율법의 적용, 다가오는 심판, 이는 모두 올바른 설교입니다. 요한의 설교는 우리가 어려서 들었던 설교와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은 설교는 복음을 몰랐을 때 들을 말씀입니다. 구약의 법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우리는 두려워서 숨을 곳을 찾아야 합니다. 율법의 정죄는 이렇게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거울을 보면 사람들은 두려워서 못삽니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하라고 하면 누구나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하는 등 약간의 노력을 해놓고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다 할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강요로는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소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X-ray는 아무리 많이 찍어도 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질병에 맞는 약의 처방이 필요한 것이지 X-ray로는 진단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 몸에 해롭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율법의 정죄만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 맘에 기쁨이 없습니다. 열매도 없습니다. 죄와 죄책감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이 분이 우리를 영원한 형벌과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3. 메시아를 만난 요한

예수님과 요한은 사촌간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예수님도 죄인들 속에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오히려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사실에 혼동이 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 주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 세례는 중요하다. 내가 죄인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인 것이다. 네가 율법으로 정죄하고 죄인들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그러나 아무리 죄를 정확하게 들어내도 절대로 치유책은 될 수 없어. 의롭게 되려면 누군가 죄값을 치러야 해. 바로 내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온 것이야. 아무도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할 수가 없어.죄가 없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무죄선포를 하여야 해 바로 내가 한 일때문에 하나님은 온 세상이 죄없다고 선포할 것이야’ 요한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가 망가지고 타락한 한 사람의 죄인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처음에 세례 요한은 실망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메시아 상은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죄인들을 처벌하고 커다란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군림하는 메시아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심판주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재자로서 오신 예수로 점점 인식이 바뀌어져 갔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라는 자라는 음성이 명확하게 들려오는 것을 듣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에게 비둘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희생제물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송아지나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비둘기를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하나님과 동일시 되는 사건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만나는 요한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사단에게 승리하시고 요단 강에서 다시 요한을 만납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 1:29절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이것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 이미지는 창49:9절에 예언한 대로 사자의 이미지 입니다. The lion who pounce on His prey (낚아챈 먹이를 놓치지 않는 사자). 즉 죄인을 심판하는 심판자의 예수님을 봅니다. 그러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함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경이적인 변화를 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재 인식합니다. 이사야 24장은 장차 심판주로서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사야 32장은 의의로 세상을 통치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53장에서는 양털 깎는 자 앞에서 순종하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희생양으로서 모습이 표현되었습니다. 요한이 심판주 예수님과 구원자 예수님의 모습을 영적인 눈으로 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양면성을 보아야 예수님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5. 요한이 예수를 만난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일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단지 그분에 대하여 듣고 공부하고 머리로만 이해를 하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과연 여러분의 생애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선입견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만나면 우리의 선입견은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나지 못하면 내 사업이나 지켜주고 건강이나 책임지고 자녀를 잘되게 하여주는 수호신 정도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오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심판주 예수님만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진면목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당신을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은 통치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심판주로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위선자들에게는 책망을 심하게 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에 대하여는 전혀 무관심 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 대상은 불쌍한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인생의 힘을 얻게 하는 사랑의 전도사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으면 영생이요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만큼 여러분의 생애는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합니다. 내 죄를 몽땅 없애기 위해서 자신이 죽은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어서 주로 모시지 않고 종이나 내 삶의 협력자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당신을 변화시킵니다…….요한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같은 줄에 서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시려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버리시고 희생하시는 죽음의 경지를 체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동기로,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는 원인 제공자로서의 예수님으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개념으로 이론으로 아는 예수님이 아니고 온 몸으로 예수님화 되는 경지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삶 속에서 나는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내 생을 지배하는 내 인생을 주도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산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이니라(갈 2:20). 세례 요한의 변화를 봅니다.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를 발견하고 경험한 만큼 초라하고 죄인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권을 예수님께 양도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 예수를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이정표(signpost)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2천년 사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6. 예수님은 당신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왜 당신은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 당신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인생 방향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은 탄생 전부터 그 인생의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고 메시아의 길을 평탄케 하고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위대한 사명의 사람으로 태어났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천사의 음성을 듣고 태어난 것도 아니요 뚜렷한 사명도 없고 지시를 받은 것도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요한이 가지지 아니한 성경이 있고 성령의 인도함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사명을 말씀 속으로 몰입시켜 갔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 몇 년 간 best seller 위치를 차지한 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Life Driven purpose by Rick Warren). 현대인에 맞는 성서적인 교회 예배를 개발함으로 세계최대의 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목적을 가지면 인생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방법을 제시한 책입니다. 인생의 목적만 잘 설정되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으나 사나 주님만을 영화롭게 하려는 목적만 정확하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를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능력을 구비하여 때가 오면 본인의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잘 이루도록 무장 시켜줍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완성해야 하는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린랜드 부근 해협에는 수많은 빙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곳은 바람이 엄청 세게 몰아치는 곳입니다. 작은 빙하들은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떠 다니지만 큰 빙하는 물결을 따라서 유유히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지 세상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1888년 어느 날 아침 Alfred Nobel 은 아침신문을 무심코 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왕 Alfred Nobel 이 세상을 떠나다’ 라는 기사를 읽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 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애쓴 보람도 없이 단지 한 장사꾼의 죽음으로 간주되는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 만족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신문은 노벨 형의 죽음을 부주의한 기자가 잘못 쓴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이 이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7. 어떻게 해야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봐야 합니다. 십계명을 보면 그 중 범하지 않는 계명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율법을 하나라도 범하면 지옥 행입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니 소망이 없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존재 입니다. 완전히 타락한 내 모습을 보니 절망입니다. 형벌만이 기다립니다. 진노한 하나님의 모습만이 나에게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나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가치 없는 나를 위해서 대신 율법을 지켜주시고 죄 값을 완전히 청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보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내 죄 문제를 완전하게 공짜로 없애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예수님과 동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해놓은 일만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받을만한 가치가 하나도 없는데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을 즐기는 것은 바로 주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결론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한 목표만을 향하여 일직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 자라고 예수님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친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는 영광스런 호칭은 세례 요한이 차지한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직책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수행하고 살아간다는 이 거룩한 직책 앞에서 순간순간의 삶을 엄숙하게 살아야 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용감한 결단을 내려야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고 매사에 올바른 판단력이 섭니다. 힘의 배분에 지혜로워지고 삶의 유머도 풍부해지는 은혜가 풍성한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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