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3장 1-12절; 눅3장 1-17절
설교제목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설교자 : 윤석준 목사님
지난 주간 동안에 설교본문에 대해 약간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민의 내용은 주님의 탄생과 관련된 본문들을 다시 설교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였는데, 사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본문들은 우리 교회가 시작한 이후 성탄절 설교를 하면서 이미 한 번씩은 다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같은 본문으로 다른 주제를 잡아 여러 번 설교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기로는...어쨌건 많은 본문(할 수 있다면 성경 전 본문)을 설교해야 한다는 생각과 성탄절기 때 또 이 본문들을 다룰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에...해당 부분들을 좀 뛰어 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서 론
오늘 우리가 듣고자 하는 말씀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될 때 성경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요한의 탄생이 먼저 등장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의 사역’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확실히 주님의 사역 앞에, 주님의 사역을 예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 앞에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면서 외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역의 메시지를 ‘회개’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요한은 많은 주제들 중 ‘회개’라는 주제를 말하고 있을까요? ‘회개’와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그리고 ‘회개’와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또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나중에 예수님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요한과 똑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셨는데, 그럼 요한이 외친 말과 예수님께서 외친 말씀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신자들’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나라 백성들인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하나님 나라(천국)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요한과 예수님 사역의 긴밀성은 어떤 것인지....간략하겠지만 이 설교의 내용을 통해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귀한 실체와 우리의 실천과제들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빈들에서 임한 하나님의 말씀
일단 우리가 본문의 첫 부분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한 가지 요소는 세례 요한이 1)유대 광야에서, 2)약대 털옷을 입고 이 메시지를 외쳤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는 다른 성경공부 시간에 살핀 적이 있으므로 길게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간략하게 내용 정리만 하도록 합시다.
1. 광야
요한이 ‘회개’를 외치면서 사람들이 많은 저잣거리나 도시 한 복판이 아닌 광야에서 외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가 1)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배도한 장소’이면서, 2)동시에 광야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그들이 받게 될 심판을 보여주는 장소였고, 3)그래서 동시에 회복이 일어나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이 주제에 관하여는 수요스터디 때의 자료를 참조할 것). 광야는 ‘죽음의 땅’입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배신했고, 따라서 선지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땅을 황폐화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선포되는 장소는 ‘광야’입니다.
즉,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을 때 그 장면 안에는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는 은연의 메시지가 배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이 나오는 본문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에 이사야 40장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본문이 인용구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은 ‘포로 회복’을 보여주는 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처해 있던 배도의 자리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게 하실 회복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기 시작한 것은 그 메시지와 긴밀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광야는 ‘배도한 장소’이기 때문에 ‘회개’와 관계된 곳입니다. 메시야께서 오시는 상황에서 회개를 외치기에 성경적으로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광야입니다.
2. 약대 털옷과 메뚜기와 석청
그리고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것 역시 이러한 선지 사역의 일환입니다. 성경은 요한의 패션취향이나 식단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약대 털옷’을 입었다는 것이 구약성경에 의하면 ‘선지자의 복식’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그가 입은 옷만으로도 그가 광야에서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실례로 구약성경에 보면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을 불러올릴 때, 그 여인이 사무엘의 나타난 모습을 보고 “겉옷을 입었나이다”라고 했을 뿐인데, 사울이 곧바로 그가 사무엘인줄 알았습니다. 스가랴 13장에도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일을 “사람들을 속이려고 털옷을 입지도 않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털옷이 선지자의 표식이라는 뜻입니다.
(메뚜기와 석청은 의미가 분명치 않습니다. 설교에서 지나친 상징적 해석은 삼갑니다.)
즉 요한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지낸 것은 자신이 지금 사적인 용무를 보고 있거나 캠핑을 온 것이 아니라는 표식입니다. 그는 지금 선지사역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정리
정리하자면 세례요한의 사역은 ‘선지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선지사역의 핵심은 광야가 보여 주는바 ‘배도한 이스라엘’에 ‘회복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곳이 아닌 ‘광야에서’ 외쳤고,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외형적 모습과 그가 외친 메시지가 일치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그러면 이 사실 위에서 ‘회개’와 ‘천국’이 어떤 관계성을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앞에서 간단하게 살핀 바, 요한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배교한 이스라엘,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와 ‘천국’이 분명히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통해 바로 이 점! 회개와 천국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합시다.
1. 천국의 본의
먼저 성경에서 ‘천국’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천국’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나라’라는 말(히, 말쿠트 샤마임)을 한자식 표현으로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말과 ‘하늘나라’ 곧 ‘천국’이라는 말은 거의 의미상의 차이가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이라는 단어들을 교환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자...그러면 세례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외쳤는데, 천국이 무엇이기 때문에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을까요? 천국의 성경적 의미, 그 본의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라는 이 주제를 짧게 요약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라도 이 ‘천국’을 정의하자면 ‘하나님께서 계신 나라’,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나타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전에 교리문답 설교를 하면서 간단히 살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라는 개념입니다. ‘천국’에서 이 개념을 절대 빼놓으면 안 됩니다.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개념은 ‘하나님’입니다.
이 점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시는데, 주기도문의 내용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즉....우리가 ‘천국’이라고 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것이 천국의 개념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천국이란 표현 속에는 인격적인 암시가 있다는 말은 옳은 진술이다...(천국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왕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의 오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2)
그리고 이러한 나라에 대한 언급과 소망이 구약시대 안에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앞에서 말한 이러한 하나님의 임하심, 곧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그런 나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오시는 그런 나라가 언제나 오기를 소망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 혹은 ‘그 날’, 즉 ‘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실 메시야의 오시는 날’을 기대하는 수많은 구절들을 발견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그들이 사는 날 동안 이 결정적인 구원의 날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친밀한 다스리심을 가져오실 그 메시야를 시대가 어두워져 갈수록 신실한 신자들은 더욱 더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구약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으며, 그 날은 바로 ‘메시야께서 오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구약의 내용들을 이해할 때, 신약의 내용까지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때가 바로 언제인가를 압니다. 구약 성도들이 기다렸던 날은 다름 아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께서 오신 날이신 것입니다. 이 모든 구약의 내용들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천국’이 제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 그 분이야말로 바로 ‘천국 구현의 실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관하여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정의된 그 천국의 ‘실체’셨다는 점입니다.
3)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무어냐?”, “천국이란 하나님께서 왕으로 임하셔서 다스리시는 곳이다.”, “그러면 이 천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왔느냐?”,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세상에 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천국의 여러 가지 속성들을 한꺼번에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현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성’도 있고, 천국을 말할 때는 거기에 속한 백성들의 능동적 참여도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오늘 말씀에서는 이런 세밀한 주제들보다도 이 큰 두 가지 사실만 기억하도록 합시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함이요, 따라서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
2.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한 요한의 메시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씀과 더불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을 나름 읽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들 질문해 보셨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메시지가 한글 성경으로는 요한의 메시지에서와 예수님의 메시지에서 ‘똑같이’ 발견됩니다. 세례 요한도 사역을 시작하고 첫 메시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했고, 예수님도 첫 메시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헬라어로 보아도 두 구문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래서....아마 성경을 열심히 읽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이 점에서 ‘이 두 말이 똑같은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인가?’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천국’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 내용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천국이 가까웠다’ 할 때의 시제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가까웠다’는 말은 우리 말로는 ‘다 와간다’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근접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까왔다’는 것은 ‘아직 안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 읽으면 그런 뉘앙스입니다. 하지만 헬라어 시제에서 이 말씀은 ‘완료형’입니다. 즉 사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은 ‘아직 안 왔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왔다’라는 뜻에 중점이 두어져 말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한의 말도 예수님의 말씀도 모두 똑같습니다. 이 천국이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이 말하는 ‘천국이 왔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 왔다’는 것은 모양은 똑같이 되어 있지만 약간 의미가 다릅니다. 일단.....우리가 방금 말한 대로 요한이든 예수님이든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했을 때 그 말의 뜻은 ‘가까이 왔다’ 정도의 뜻은 아닙니다. 이 구문은 완료형이기 때문에 훨씬 더 ‘온 것’에 강조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벌써 온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경우는 ‘왔다’라고 말했지만, 천국이 자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요한도 역시 ‘천국이 왔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세밀하게 따져서....예수님이냐, 자기냐...중에서 자기의 때에 이 ‘천국이 왔다’고 말했느냐....이런 차원이 아니고, 구속계시의 전역사적으로 볼 때, 그러니까 구약성도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그 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이 “드디어 왔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요한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바록 그 날’이 왔다는 것을 말하는데 목적이 있지, 나한테서 그게 왔느냐, 예수님에게서 그게 왔느냐....이걸 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닦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이미 왔다”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리고.....예수님의 경우는 정말 말 그대로 ‘온 것’입니다. 요한이 ‘왔다’고 한 그 실체가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왔다’라고 실제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진짜 오심’의 실체라는 점은 마가복음에서 잘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말씀과 내용은 같은데 표현이 약간 다르게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마가복음이 의미가 선명한 이유는 여기에서는 ‘때가 찼다’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서 이 ‘때’ 혹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은 아주 중요하고도 유명한 말인데, 우리 말에서는 ‘시간’ 하면 한 표현밖에 없지만, 헬라어에서는 ‘카이로스’라는 말도 있고 ‘크로노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요즘 시계 중에 ‘크로노그래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요즈음 쓰는 ‘시간’이라는 말과 유사한 뜻입니다. 하지만 ‘카이로스’라는 말은 단순한 ‘시간’과는 좀 다릅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의 결정적 성취가 되는 때’를 말합니다. 구속사에서 말하자면 구속사적 성취가 이루어지는 그 시간을 말할 때 ‘크로노스’를 쓰지 않고 ‘카이로스’를 씁니다.
그래서 여기 ‘때가 찼다’라고 할 때 그 의미가 확실히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때가 찼다’고 할 때....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경륜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찼다’는 것은 ‘가득찼다’, ‘성취되었다’ 이런 뜻이니까, ‘때가 찼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되었다’라는 의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무르익어 성취의 때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의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과 예수님이 똑같이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문형상 똑같으면서도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요한이 말한 의미는 구약의 그 성취가 여기에 도달했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게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이제 곧 오시니까...“바로 그 때가 도래했다”라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진짜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진짜 메시야의 때가 찼고, 그래서 그 때가 왔으며, 주님께서 바로 그 결정체이십니다.
즉! 이 부분에서 포인트는...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지가 약간의 의미차이는 있지만....본질적으로 천국이 ‘가까왔다’ 정도가 아니라 ‘이미 왔다’고 말씀하시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바로 이 천국의 주인, 하나님의 다스림의 참된 실체이심을....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이 왔다’는 말을 들을 때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라는 말의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3. 회개와 천국의 상관관계
그러면 이제 마지막 부분으로 그 천국이 왔는데, 왜 메시지가 “회개하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마지막 주제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앞서 말씀을 통해서 요한과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외쳤을 때, 그 도래한 천국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나라’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동반된, 다시 말하자면 그 천국이 도래할 때 백성들의 태도에 해당되는 ‘회개하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왜 요한과 예수님은 천국이 도래했는데 ‘회개하라’고 외칩니까? 천국과 회개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이 부분은 사실상 제가 여러 모로 설명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칼빈 선생님만큼 잘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물론 책도 보고 주석도 참고하지만, 같은 이해를 가지고 설명해 보려 했는데....아무리 해도 칼빈 선생님의 설명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제가 가끔 칼빈 선생님 말씀 인용을 설교 때 하기는 하지만 간단히 주로 했는데....오늘은 좀 긴 인용문을 그대로 읽을까 합니다. 설명은 뒤에 좀 붙이도록 하고 우리 믿음의 선배 칼빈 선생님께서 이 ‘천국과 회개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한 번 차분히 들어보도록 합시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란 다름 아닌 축복의 삶, 곧 참되고 영원한 행복의 삶에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유배된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와 그분의 지배 아래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한 마디로 하늘나라는 곧 새로운 삶이요,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담이 잃어버렸던) 복된 영생의 소망을 되돌려 주신다. 곧 우리를 죄와 사망의 종살이에서 빼앗아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부터 믿음으로 하늘의 삶을 소유하시게 허락하시는 것이다(엡1:4)....이래서 요한의 설교는 그 근원인 회개로부터 시작한다. 요한은 ‘회개하라 그러면 이 회개를 통해 하늘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올 것이다’라고 전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고(천국이 왔다...회개하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라고 사람들을 권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가 회개의 바탕이요, 여기에 입각해서 하나님은 버림받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신다....회개가 사죄의 원인이거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나온다는 식으로 회개가 우선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은 제공된 화해를 이해하게끔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회개를 요청하신다.”
말씀이 잘 이해가 되셨습니까? 이 설명 안에 ‘회개’와 ‘천국’의 관계가 모두 다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1) ‘회개’가 ‘천국’과 연관되어 있는 이유는 칼빈 선생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란 다름 아닌 하나님 안에서의 참되고 영원한 행복”인데,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거기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천국’이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고, 따라서 ‘천국’은 ‘회개’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했을 때, ‘회개’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럽습니다. 쉽게 말하면 ‘회개’ 없이는 결단코 천국을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상실한 이들에게 천국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곧 오십니다. 그렇다면 그 천국을 맞을 자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3) 하지만 칼빈 설명의 훌륭한 점은, 여기에서 다시! 이 ‘완료형’을 살리는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도 예수님도....‘완료형’으로 말씀하시면서, 천국은 ‘이미 와버렸음’을 말씀하고 있고, 칼빈은 그 점을 캐치하면서 ‘회개’와 ‘천국’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회개와 천국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지만, 절대로! ‘회개 때문에’ 천국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설명에서 이 순서를 대단히 강조합니다. 항상! 순서는 ‘완료된 천국의 옴’이 먼저이고! ‘회개’는 온 것에 대하여!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분명히 기억합시다. 항상 은혜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회개가 옵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천국과 불가분리로 관련되었다’는 말은 ‘회개하면 천국을 받을 것이다’는 아닙니다. 이는.....‘천국이 주어졌다....너희는 빨리 회개하라’ 이런 뜻입니다. 주어진 것이 먼저이고, 반응이 나중입니다.
정 리
왜 회개가 천국과 관련하여 말씀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까? 왜 요한이, 예수님이, 천국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온다...했을 때 회개를 요청했는지 알게 되었습니까? 오늘 설교를 통해서 분명히 기억토록 합시다.
첫째! 천국을 말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것은 가짜입니다. 우리는 ‘복락’을 말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고, 그 천국을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즉 우리 주님이야말로 천국의 극치이시고, 우리에게 천국을 가져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신자는 간접적인 의미에서는 ‘이미 천국에 살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천국’은 항상! ‘회개’와 관련되어 있음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신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본토인 하늘로부터 이탈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이고, 따라서 그 하늘로 돌아가려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불의와 죄가 우리를 본연의 천국으로부터 떨어뜨렸으므로.....우리는 항상 그 본연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할 때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려해도 볼 수 없게 만드는 죄! 하나님께 다가가려 해도 갈 수 없게 만드는 죄! 천국이 가까웠을 뿐 아니라, 이미 주어졌고, 계시되었고, 그 주님의 오심으로부터 무려 2천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완성될 천국이 우리 눈앞에 남아 있습니다마는! 언제나 우리는 이 땅에 이미 온 천국을 바라보면서 ‘회개’를 생각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버리고, 죄로부터 돌아서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국으로의 입성이 있습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은혜’를 생각합시다. 칼빈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위를 먼저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리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물’을 먼저 받았고, 후에 그 은혜로서 사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외치되, 그 ‘회개’가 우리의 의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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