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2장 1-23절
설교제목 :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시절
설교자 : 차용철 목사님
1장은 예수님의 족보와 잉태의 과정이 기록되었습니다. 2장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그 반응이 기록되었습니다.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긴 하지만 2장 전체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나타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반응 (1-8절), 동방 박사들의 경배 (9-12절), 예수님의 피난과 헤롯의 유아 학살 (13-18절), 예수님의 나사렛 정착 (19-2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반응 (1-8절)
① 예수님의 탄생 시기
본문은 예수님은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1절). 예수님의 태어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역사적으로 헤롯왕이 B.C.73년 경에 태어나 B.C.4년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B.C.4년 전에 태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유대 사학자 요세프스(Josephus)가 헤롯이 죽기 전에 월식(月蝕)이 있었다고 한 점을 감안한다면 B.C.4년 3월 12~13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이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B.C.4년 4월 11일 경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 탄생은 B.C.4년 3~4월 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시력은 예수님 탄생 년도 보다 4년 뒤를 기준하고 있습니다 (Before Christ와 Anno Domini의 기점). 그것은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현재 연도 보다 4년 뒤 연도로 잘못 계산하여 시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대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시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聖誕節,Christmas)을 12월 25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주교가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동지절(冬至節; 12월 24일~다음해 1월 6일)로 지키던 명절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하여 이교에 대한 정복의 의미를 부여했고, 로마교회에서 4세기 후반 (335년설과 354년설이 있음)부터 그 날을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했고, 그 후 성탄절은 동방 교회로 퍼져 나가 '콘스탄티노롤리스' (379년), '카파도기아' (382년) 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현재에는 세계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성탄절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과 12월 15일이 로마 이교도들의 동지절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것을 부정합니다. 심지어 사단의 계략으로 여기기 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채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성탄절 날짜를 정확히 모르는 마당에 날짜를 정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당시 일반인들이 이교적 명절로 지키고 있었던 날을 성탄절로 대치시킨 것은 문화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잘한 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지키는 설(구정)이나 추석(한가위)를 기독교 절기로 대치한다면 교리적으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선교적 차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반응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리라 예언된 왕이었습니다.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별칭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첫째, 헤롯왕은 죽이려 했습니다.
헤롯왕은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Idumean) 안티파터(Antipater)의 아들입니다. B.C.73년 경에 태어나 B.C.4년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는 25세에 갈릴리 총독을 역임했고 후에 로마의 유대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말년에는 과대망상증에 걸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10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첫번째 아내 도리스(Doris)에게서 낳은 아들을 죽였고 두번째 아내인 마리암네(Mariamne)와 그에게서 낳은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뿐 만 아니라 마카비 용사 5명을 죽였습니다. 백성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학정을 했습니다. 예수님 탄생시기에는 70여세 되어 망상증이 있을 때로 추측됩니다. 그는 백성들의 항쟁과 적대자들의 정변 등을 염려하여 극도로 두려워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의 왕'에 대한 탄생 이야기를 듣고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세기관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날 것인지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동방박사들을 은밀히 불러 보내며 아기를 찾으면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경배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말은 동방 박사들을 속이기 위함이고 사실은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꿈에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헤롯은 속은 줄 알고 동방박사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기준하여 베들레헴에 있는 2살 이하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둘째,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방관했습니다.
헤롯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을 말하고 그 근거로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미가5:2 말씀에 사무엘하5:2(대상11:2)의 말씀을 첨가한 말입니다. 그들은 구약 예언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날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종교적 사역의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과 명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종교적 기득권과 종교적 지식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망만 채우려는 자들이었습니다.
셋째, 동방박사들은 경배하려 했습니다.
'동방'(ανατολων)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의 동쪽에 위치했던 바벨론(바빌로니아) 이후에 일어나 바사(페르시아)를 가리킵니다. '박사'(μαγοι)는 당시 바벨론(바사)의 점술가들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점성학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6세기 경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멜키오르(Melchior), 발사살(Balthasar), 가스퍼(Gasper)라고 합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바벨론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박사들은 포로 잡혀 온 유대인들에게 약 600여년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곧 민수기24:17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별이 나타나자 그리스도가 난 줄 알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 합당한 예물들을 가지고 별의 인도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까지 오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③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그를 만나 경배와 찬양을 한 자들은 동방박사들 외에도 누가복음 2:8-39에 보면 양치기들과 시므온과 안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시간적 순서는 첫번째가 양치기들이고 두번째가 시므온이고 세번째가 안나이고 네번째가 동방박사들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왔다가 사람들이 많은 연고로 사관(여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관의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는데 그 때 베들레헴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헌신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올라갑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태어난지 40일이 지났을 것입니다. 레위기12:1-4에 보면 산모가 남자를 낳을 경우 40일이 지난 다음에 깨끗해지고 그 깨끗해짐을 인하여 하나님께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비둘기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게 되는데 그 때 시므온과 안나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탄생한지 2~3개월이 지났을 것입니다. 그 때는 호적이 끝난 이후이기 때문에 묵을 집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집은 물론 처음에 예수님을 낳은 마굿간이 있는 집일 수도 있고 다른 집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첫번째로 만난 사람들은 양치기들입니다 (눅2:8-20).
예수님이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할 때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있었는데 천사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그리스도 탄생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아기 예수를 찾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양치기들은 사회적으로 소외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양치기는 유대 사회에서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전혀 신임을 받지 못하는 소외 당하는 그룹입니다. 양을 치던 목동들은 예수님이 태어나던 날 밤 들판에서 밤새도록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4~11월까지는 들판에서 방목을 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을 때는 방목을 합니다. 그런데 방목을 할 때는 양을 약탈해 가는 사람들과 짐승으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해 방목지에서 밤을 지세워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생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일은 가장 천한 직업입니다. 한마디로 양치기는 배경도 없고 학식도 없고 돈도 없어서 남의 집 종으로 가서 남의 집 짐승을 길러 주는 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남의 양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그들이 가난하여 먹을 것을 염려해야 하는 형편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가난으로 인해 남의 집에서 밤에도 일을 해야 하는 그들을 천사를 보내어 위로하셨습니다.
또한 양치기들은 종교적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구약 레위기에는 부정한 동물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낙타, 돼지, 족제비, 쥐, 뱀, 독수리, 까마귀, 올빼미, 박쥐, 낙지, 오징어, 장어, 미꾸라지 등이 그것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한 사람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소경, 절뚝발이, 곱사, 난쟁이, 손 부러진 자, 눈에 백막 있는 자, 피부병이나 문둥병이나 유출병이 있는 자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그렇게 규정한 것은 보건상의 이유와 그것들이 갖는 특성들을 통해 영적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유대인들은 그런 동물과 그런 사람들을 실제로 부정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념 속에서 사회의 저변에 있는 부류들을 모두 천하게 생각했습니다. 돈과 관련된 직업, 장사와 관련된 직업, 물건 만드는 일과 관련된 직업, 짐승을 기르는 일과 관련된 직업은 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서 제외된 자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관념은 유대인들이 하루 세 번씩 드리는 '쉬모네 에스레'라는 기도에 잘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노예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양을 치는 양치기는 그 안에 포함된 부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절기를 지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적 관심에서 완전히 소외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치기들은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둔 자들이었습니다. 양을 치던 목동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사회 구조와 상황들 속에서 자신들의 맡은 일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고대했습니다. 그것은 천사가 그리스도 탄생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행동이 증명합니다 (15-20절). 그들은 밤새 양을 지키면서 당시 사회의 구조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전승을 생각하며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한 그리스도가 속히 와서 위로와 풍요를 가져다 주기를 심히 고대했을 것입니다 (민24:17, 사7:14, 미5:2). 그 고대함은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천사들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아기 예수를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행동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5-20절). 거기에서 '찾아서'에 해당하는 '아뉴란'(ανευραν)은 끊임없이 탐색하여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천사가 전해준 말을 듣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찾으러 다녔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돌아올 때는 찬송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고대했는지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두번째로 만난 사람은 시므온입니다 (눅2:22-35).
예수님 탄생 당시에 예루살렘에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지 40일이 다 되어 가자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아기 예수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레12:1-4). 그 때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고 성전에 들어가 예수님를 만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영감받은 선지자가 없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도래에 대해 확신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자였습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오길 간절히 고대했습니다. 당시에 자기들의 이권만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소외 당하면서도 홀로 외롭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율법을 준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기 전에 구약에서 약속한 그리스도를 꼭 한번 만나 보려고 결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세번째로 만난 사람은 안나입니다 (눅2:36-39).
예수님이 결례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왔을 때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을 돌린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안나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가한지 7년만에 남편을 잃고 84년 동안 홀로 지내던 자였습니다. 안나는 당시 조혼 풍습을 생각해 볼 때 14세 정도에 결혼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때로부터 7년 후에 남편을 잃고 84년을 지냈으니 105세 정도 된 것입니다.
안나는 홀로 많은 소외감을 느끼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남자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홀로 살면서 얼마나 억울한, 가슴에 맺힌 한과 서러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는 홀로 갖은 서러움을 다 당하면서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한을 풀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84년 동안 105세가 넘도록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네번째 만난 사람은 동방박사들입니다 (마2:1-12).
예수님 탄생 당시에 바벨론(바사)에 전성학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6세기 경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멜키오르(Melchior), 발사살(Balthasar), 가스퍼(Gasper)라고 합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바사(페르시아)에는 유대인들이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박사들은 포로 잡혀 온 유대인들에게 약 600여년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곧 민수기24:17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별이 나타나자 그리스도가 난 줄 알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 합당한 예물들을 가지고 별의 인도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까지 오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합당한 예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경배합니다. 불고가사(不顧家事)하고 불사노고(不思勞苦)하고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그리스도를 찾아온 자들입니다.
2. 동방 박사들의 경배 (9-12절)
① 동방에서부터 왔습니다.
'동방'(ανατολων)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의 동쪽에 위치했던 바벨론(바사)을 가리킵니다. '박사'(μαγοι)는 당시 바벨론(바사)의 점술가들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점성학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정착하고 있었던 유대인들로부터 민수기24:17에 근거한 그리스도에 대한 전승을 듣고 그리스도가 실제로 유대에서 태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불고가사(不顧家事)하고 불사노고(不思勞苦)하고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그리스도를 찾아온 자들입니다.
② 별을 따라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부터 평소에 있지 않았던 한 별이 나타나자 그 별을 따라 유대 땅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유대 땅에 이르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으면 당연히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생각하여 헤롯 왕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이 헤롯 왕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할 때 그 별이 다시 나타나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마리와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을 자연계의 현상과 상관없이 나타난 이적적인 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혜성(彗星)이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가시적인 별이 역사적으로 박사들을 인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별이 나타난 목적은 발람의 신탁으로 주어진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위한 것이며 (민24:17), 박사들을 아기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별처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이는 성령님입니다. 시므온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온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고 영광 돌리게 한 분도 성령님이었습니다 (눅2:26-27).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믿는 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요14:16-17). 요한복음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고 했습니다. 요한일서2:27에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1:19에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이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3:15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목적과 표준과 기준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면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행해야 합니다 (계1:3).
③ 예물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에 이르러 아기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져온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들은 예수님께 합당한 예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물들을 애굽 피난 시절에 유용하게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황금(黃金)은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매우 값진 귀중품으로 여겨 왔고 가장 값진 금속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부와 권세의 상징으로서 왕들이 많이 사용하였고 고대 동방에서는 왕을 알현할 때 예물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왕적 사역을 상징하기에 합당한 예물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들에게 들은 전승을 믿고(민24;17, 삼하7:12-16, 사9:6-7), 별이 나타나자 유대인의 왕 구주가 나신 줄 알고 왕에게 합당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애에서 자신이 왕적 권세를 지닌 자라는 사실을 나타냈습니다 (마1:1, 2:2, 3:17, 27:11, 눅4:18-19, 행13:22-23). 그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이 그에게 합당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16:22, 31, 21:9). 그리스도인은 주를 본받아 왕적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미 왕적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권세는 연단된 믿음에서 강화됩니다 (벧전1:7, 욥23:10). 환난 가운데 단련된 믿음에서 영력이 생깁니다.
유향(乳香)은 음식에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값비싼 향료로서, 관목껍질에 자국을 내어 채취한 흰색 향유입니다. 유향은 구약시대에는 제사에 많이 사용했습니다. 특히 진설병(떡)에 사용하였습니다 (레2:1). 이는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사역을 상징하기에 합당한 예물입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의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요1:1-3, 빌2:6, 요14:9). 특히 십자가 사건은 최절정에 이른 계시였습니다 (요17:4-5). 그의 선지자적 사명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26:6). 그것이 주께 합당한 예물이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고후2:14-15, 11:1, 요13:5, 살전1: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인격이 잘 만들어져 착한 행실이 나오면 그 행실로 인하여 사방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가득해집니다. 그리스도처럼 희생으로 향기를 날려야 합니다.
몰약(沒藥)은 나무에서 추출하는 향기가 좋은 고가의 향품입니다 (아3:6). 몰약은 주로 썩은 냄새를 제거하고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체에 바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을 상징하기에 합당한 예물입니다. 그의 희생적 죽음에 합당한 예물입니다. 예수님이 죽었을 때 몰약을 발랐습니다 (요19:39-40). 예수님은 우리의 부패한 죄를 없이하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히9:11-12, 마20:28, 빌2:6-8, 사53:5-6, 엡2:1-13).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 우리의 죄를 없이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그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합당한 예물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께서 하나님의 맡긴 구속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희생적 죽음을 죽으심 같이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제사장적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빌3:10-11, 행1:8, 요21:17, 롬12:1).
3. 예수님의 피난과 헤롯의 유아 학살 (13-18절)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헤롯왕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는지 물었습니다.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는지 묻고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보고를 듣고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보내면서 유대인의 왕을 만나거든 자기도 경배할 수 있도록 자기에게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속셈은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시 별의 인도를 받아서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꿈에 헤롯왕에게로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헤롯왕에게 가지 않고 곧장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12절).
동방박사들이 떠난 다음에 주의 사자(使者)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아기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지시해 줄 때까지 그 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밤에 일어나 천사의 지시대로 마리아와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망명하여 헤롯왕이 죽기까지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자신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군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에 있는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습니다.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때를 표준하여 2세 이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한 것입니다 (13-18절).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아이들을 죽인 것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전 인류를 구원할 영적인 왕으로 보지 못하고 유대 나라를 다스릴 육적인 왕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의 무지가 예수님을 피난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이적을 일으켰을 때도 예수님을 정치와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육적인 왕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자리를 떴습니다 (요6:15).
한편 아기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한 사실에 대해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5절). 호세아11:1의 인용입니다. 선지자 호세아가 한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낸 사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마태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그 말씀이 오실 그리스도를 향한 예언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께서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가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또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지경의 두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모두 학살한 사건에 대해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고 했습니다 (17절). 이 말씀은 예레미야31:15의 인용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말씀을 한 때는 여호야긴왕 때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잡혀 간 때에 말 말씀입니다. 족장시대에 야곱에게 라헬이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라헬의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로 상징된 것처럼, 라헬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어머니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당시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 자식이 없어 슬퍼했었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産苦)로 죽었습니다 (창35:19-20). 그 라헬의 무덤은 라마(Ramah) 근처 셀사(Zelzah)에 있었습니다 (삼하10:2). 그런데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가는 모습을 보고 시(詩)적으로 라헬이 무덤에서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마태는 베들레헴에서 에돔 족속의 후손인 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사건에 대해 예레미야가 했던 예언적 말씀이 재현되고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마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건이 암시적으로 예언하는 바 목적을 예수님이 이룰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대표자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피난한 사실을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재현하고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사건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의 학살당함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터 귀환한 사건을 재현하고 궁극적으로 성취하는 배경으로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상징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백성의 대표자로서 모든 택한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낼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성령께 감동된 자는 모든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4. 예수님의 나사렛 정착 (19-23절)
헤롯왕은 7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에 따르면 그는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악취와 경련이 끊어지질 않아 백약이 무효하여 죽으니 그 모습이 잔인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 로마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Caesar Augustus)는 헤롯이 관할하던 영토를 셋으로 분할하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 지역을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Archelaus)에게 주었습니다. 아켈라오도 헤롯처럼 잔인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즉위하기 전 유대인들이 헤롯에게 죽임 당한 유다와 맛디아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성전에 모였는데 아켈라오가 군인들을 보내어 에워 싸고 3,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학살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켈라오는 가이사 아우구스도로부터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임명받았으나 무능한 통치자로 평가받아 A.D.6년에 폐위당했습니다. 그런 이후 유대 지방은 로마에서 직접 파견한 총독에 의해 다스려지게 됩니다.
한편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이 애굽에서 있는 동안은 약 3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외경 '예수 유년기의 복음'-Gospel of the Infancy). 애굽에 있던 요셉은 주의 사자로부터 꿈에서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지시대로 마리아와 예수님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아켈라오의 관할지역이 아닌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나사렛이라는 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19-22절). 나사렛을 선택한 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눅1:26, 2:4,39).
예수님이 나사렛에 정착하여 30여년 동안 살게 된 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23절). 특정한 선지자가 '그리스도는 나사렛 사람이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90km 떨어진 곳입니다. 그 곳은 모래 땅이며 주위의 산들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빈약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나사렛'(Ναζαρ)은 히브리어 '나체르'에서 유래한 말로서 '싹' '어린 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사렛은 경멸받던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요7:41, 52). 심지어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조차도 경멸받던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할 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요1:46).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한 것은 멸시하는 뉘앙스가 있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이 오실 그리스도가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시22:6-8,13, 69:8,20-21, 사11:1, 49:7, 53:2-3,8, 단9:6). 특히 이사야53:2-3에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마태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수님이 애굽에서 나와 나사렛에서 살게 된 것을 그와 같은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結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야(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에 합당한 경배를 동방박사들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유대의 왕으로 오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박해를 받아 애굽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자음에도 베들레헴에 거하지 못하고 나사렛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공생애가 시작되는 30세가 되기까지 지냈습니다. 예수님의 유년 시절은 실로 연한 순 같고 고운 풍채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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