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2장 13-23절
설교제목 : 예언의 말씀대로 오신 예수님
설교자 : 김영하 목사님
1. 예수를 만나면
마태는 예수를 만나서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바뀐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유대민족에게 예수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규명하려는 의도가 마태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의 족보라고 마태복음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히브리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과 중간 시조이면서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나라를 이룩하였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동방박사들이 경배함으로 온 민족들이 찬양과 경배할 분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레위인으로서 자신의 민족에게 구약에서 예언한 예수가 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구약의 네 곳의 예언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예수는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미5:2)
2) 예수가 어렸을 때에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거기서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호11:1)
3) 예수 때문에 베들레헴에 많은 어린이들이 죽임당할 것을 라마의 통곡으로 연결하였다.(렘 31:15)
4) 나사렛으로 가서 자랄 것을 이사야 선지자 예언하였다.(사 11:1)
구약은 예수의 탄생 성장 고난 죽음 부활 등에 대하여 200여 번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이기에 확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통하여 실제의 모습을 보니 말씀이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눈 코 입 등을 분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TV에서 가끔 그림자를 비춰주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프로그램을 보았을 것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고전 13: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렇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바라볼 때 희미하였습니다. 신약의 사람들은 장차 올 영광이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모든 제자들이 확실하게 변하여 목숨을 걸고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친히 만나서 복음을 확실하게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미래의 뚜렷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확실하게 예수님의 얼굴을 대하여 볼 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인생도 자신의 모습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이 죄악의 어두움에 처해 있으니 빛이신 예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요 영적으로 장님이기에 예수님의 빛을 받아야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녀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등 물질의 의미 인생의 의미 모든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됩니다. 예수님을 정확하게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도 인생을 어두움 가운데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많은 예언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림자를 붙들고 있었기에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하게 모르고 종교의식에 매어있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고 종교적인 전통에 사로잡혀 살다가 어두움 가운데서 예수를 결국 죽여 버리고 맙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삶이 너무나 즐겁고 바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끼기에 예수를 영접하려 하지 않고 예수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정확히 알고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자가 되었고 예수가 들어가는 나라는 일등 가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모든 예술 음악 문학 등이 예수를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였을 때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 얼마든지 우리는 열거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이 역사의 선교의 역사요 예수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의 복음이 가는 곳에는 문명이 깨이고 선진국이 되었고 세계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말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고 아우성입니다. 기후의 변화 지진 홍수 토네이도 등 어느 것 하나 종말을 고하지 않는 것들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도 사도바울을 통해서 너무나 잘 묘사하였습니다. 딤후 3:1-5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People will be lovers of themselves, lovers of money, boastful, proud, abusive, disobedient to their parents, ungrateful, unholy without love, unforgiving slanderous, without self-control, brutal not lovers of the good, treacherous, rash, conceited, lovers of pleasure rather than lovers of God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have nothing to do with them.(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하며 낭비하며 부모에게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고 사랑치 않고 속되며 용서치 않고 비방하고 절제를 못하고 사나우며 선을 사랑치 않고 배반하고 조급하고 속이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좋아하고 경건의 모양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얼마나 현대사회를 정확하고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어두움이 짙은 곳에 예수의 빛을 비춰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어두움에 거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어두움을 벗어나서 찬란한 진리의 빛 앞으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면 이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은 우리 인생길에서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나야 합니다. 이때에 삶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신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무능하던 사람이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를 체험합니다. 긍정적이고 소망에 불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참으로 신나는 유럽여행 을 했습니다. 많은 유적을 보아서도 아니요 새로운 나라를 구경해서도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예수님을 전하였고 다음에는 누구한테 예수님을 전할까하는 기대감에서 이동하고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일을 해도 공부를 해도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한다는 확실한 인생의 목표만 있다면 삶의 의미는 확실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2. 복음서의 기록목적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는데 예수님의 생애 중 30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인도에 가서 불교를 배웠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누가복음에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약간 나옵니다. 즉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눅 2:21).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 12세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잃어버렸던 사건(눅 2:41-51)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그러나 요한은 확실하게 복음서의 기록 목적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예수님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동안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였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예수만이 우리의 복음 전하는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없는 설교는 헛것입니다. 도덕, 철학적인 사고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가르치고 설교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모든 성경공부의 목적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긴다고 했고 예수 이외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변론하다가 하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고린도에 와서는 예수만 전하겠다고 결심하는 모습을 봅니다. 죽으나 사나 예수만 우리 삶 속에서 존귀케 되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둘째, 얼마나 세상에서 오래 살았느냐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위해서 무엇을 하였느냐가 인생의 결산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그 흔적이 잘 먹고 잘 살다 가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짧은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병도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귀신도 쫓아내고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를 위하여 한 일이 없다면 이것은 공치는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주일이면 168시간을 보냅니다. 이 시간 중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간이 얼마였으며 여러분의 수입 중에 얼마를 예수님을 위해서 썼느냐 예수님 때문에 남을 위하여 얼마 썼는가도 계산해 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명의 30년의 생애보다는 3년의 공적 생애가 중요하기에 모든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만을 기록하였습니다.
3. 예언의 성취
1) 애급으로 피난(마 2: 13-15)----호세아 11:1의 응답
13절에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위기에서 보호하십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고생을 시키면서 피신시키는가 묻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은 고난은 큰 고난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미 호세아에서 예언하였듯이 애급으로 피신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고 돌아왔던 사건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피할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여기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즉각 순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도 외국엘 가려면 돈을 바꾸고 비자를 받아야 하고 안전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하물며 그 당시는 국제법도 없으니 누가 죽여 버리면 끝나는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있는 백호주의자들이 선교사의 아들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겁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하고 낳았으니 하나님의 어떠한 음성에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하여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은 자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2) 베들레헴의 통곡(16-18)---예레미아 31: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드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 이 구절을 마태는 인용합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후손들이 살던 곳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갑니다. 한창 자라는 자녀들이 외국에 포로로 잡혀갈 때 어머니들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라헬의 통곡은 계속 이어집니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2살 이하 모든 아이들을 죽였을 때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실신한 엄마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살아있는 아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부모 앞에서 죽이는 일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 어머니들의 심정입니다. 이 순진무구한 자신의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요 지옥의 모형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는 사단은 이렇게 잔인하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생명들이 사단의 전략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낙태(abortion)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무고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주는 태어나는 생명보다는 낙태로 죽어가는 생명이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오늘도 죽어가는 생명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고 열심히 전도하여야 합니다. 사단의 전략으로 인본주의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이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춰야 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복음을 전하려는 개인이나 국가를 들어 쓰시고 복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나사렛 사람 예수(19-23)-----이사야 11:1절의 성취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여 함 이러라.
22절에 나온 아켈라오라고 하는 왕은 아주 잔인한 왕입니다. 헤롯대왕이 죽으면서 자신의 세 아들에게 영토를 분할하여 유산으로 주었습니다(갈릴리---헤롯 안티파스, 바다네아----필립). 헤롯대왕은 주전 37년에서 주전 4년까지 통치하면서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서 자신의 자식도 죽이고 부인도 장모도 죽이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그 아들 아켈라오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왕이었습니다. 왕이 된 후 3천명 이상을 숙청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이라는 무명의 동네로 갔습니다.
이사야 11장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이새의 한 싹으로서 나사렛에서 조용하게 공생애를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맛보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면서 자라나십니다. 악을 없이하시는 예수님의 통치가 어떠한 세상을 가져 올 것인지 보여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이 얼마나 평화스럽고 순진무구한 사회를 말합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천국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의 왕이 될 때 이러한 세계가 옵니다. 이 땅에서 말씀이 우리를 지배할 때 죄와는 거리가 먼 세계를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란 바로 죄가 없고 해함이 없는 세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천국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소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천국의 건설을 예수님이 이미 이뤄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러한 천국을 이루고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 죄 용서와 죄 값을 치러 주신 일 때문에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러 오실 것이 예언 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예언 성취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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