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 1장 1절
설교제목 : 유다서 서론
설교자 : 차용철 목사
<유다서 서론>
본 서신은 대부분의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당시 최대의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이 주로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단의 경계를 파헤친 바면, 본서는 주로 현실에 나타난 이단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본의 저자 유다는 본래 성도들이 얻은 구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기술하려고 했으나,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이단 사상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믿음의 도를 지키라는 신앙 교훈을 기록한 것입니다. 특히 영지주의자들의 육체적 정욕에 따른 생활, 영적 권위의 무시, 원망, 불평 등 비경건한 삶을 지적하며 성도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저자
본 서신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는 진술과 같이 예수님의 동생 유다입니다 (1:1). 예수님의 동생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있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형제로서 예수님의 혈통을 가진 자임을 밝힌 것입니다.
2. 수신자
본 서신의 수신 대상지는 소아시아와 수리아 지방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의 내용이 그 지역에서 만연한 영지주의 및 도덕폐기론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하는 영육의 이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다는 가르침을 전적으로 배척하고 그리스도의 신인양성(神人兩性)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에게 있어서 육신의 행위는 인간의 고등한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하면서 도덕적으로 방종한 생활을 영위했고 다른 사람들을 그러한 오류로 끌어 들였습니다.
3. 기록 연대
본서는 A.D.70-8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1:14은 위경에 속하는 에녹서1:9을 인용했는데 에녹서는 A.D. 30-50년 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서는 에녹서의 기록 연대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본 서신은 1세기 후반에 일어난 영지주의 사상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A.D. 70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본서의 저자인 유다는 A.D.70-80년 경에 순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본 서신은 A.D.70-8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기록 목적
본 서신 수신자들 내에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판관이 귀를 기울이도록 교묘히 호소하는 유혹적인 변설, 조상의 법을 무시하고 성도의 생활을 붕괴시키는 교활한 행위 등을 통해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혼란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14).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었습니다. 거룩한 것을 매우 속된 곳으로 변질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죄라도 사할 수 있을 만큼 크므로 인간이 어떠한 죄를 지어도 무방하며 죄가 크면 은혜도 크다면서 육체적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켰습니다. 특히 경건한 삶보다는 쾌락주의적 생활을 추구할 뿐 아니라 육체적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을 교리적으로 합리화 시켰습니다. 그들은 염치도 체면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부도덕한 자들이었고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는 뻔뻔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범죄에 빠뜨리는 자들로서 교회의 영적 성장에 심각한 도전이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둘째, 홀로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는 그런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에 대해 전해 듣고 수신자들에게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울 것을 강력히 권고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5. 본서에서 인용한 위경(pseudepigrapha)
본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정경(正經)과 위경(僞經)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때입니다. 유다가 모세의 승천기(The Assumption of Moses)와 에녹서(Enoch)의 내용을 인용한 것은(1:9, 1:14-15) 당시 이 위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던 독자들이 자신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러한 예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헬라인들이 사용하는 로고스(λογοs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요1:1,14).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설교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헬라 사람들의 시에 많이 나오는
시구(詩句)를 인용했고 (행17:28), 때론 외경과 위경에 나타난 일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딤후3:8). 유다도 계시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위경을 인용한 같은 독자에 대한 배려로 보아야 한다. 한편 초대교회에서 외경과 위경의 일부를 성경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교회는 외경과 위경을 무절제하게 사용하게 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깨닫게 됩니다. 외경과 위경 중에는 경건의 교훈과 상반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동떨어진 왜곡된 진술이 많으므로 성도의 신앙에 반드시 유익이 되기 보다는 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유사 정경인 외경과 위경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경과 위경은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의 보조 자료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신앙생활의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정경 66권은 하나님의 뜻과 신앙생활의 원리를 완벽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외경과 위경을 이용하여 신앙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6. 정경성
본 서신은 위경의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많은 논란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유세비우스(Eusebius), 크리소스톰(Chrysostom), 루터(Luther) 등은 본 서신이 정경의 권위를 가졌는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터툴리안(Tertullian) 등은 본 서신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본 서신이 정경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유다가 본서에서 인용한 에녹서가 초대교회에 커다란 감화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둘째, 당시 초대교회는 영지주의의 세속적인 도전에 큰 위험을 느꼈기 때문에 본 서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본 서신은 그러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A.D.397년 3차 카르타고 회의(Council of Carthago)에서 최종적으로 정경의 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7. 내용 분해
본서의 내용은 인사말(1-2절), 기록의 동기와 목적(3-4절), 심판에 대한 실례들(5-7절), 거짓교사들의 특성과 결국(8-16절), 마지막 권면(17-23절), 축복(24-25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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