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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장 8-11절 웰빙교회 비전(2) 서머나 교회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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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계 2장 8-11절

설교제목 : 웰빙교회 비전(2) 서머나 교회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여러분 가운데는 "여자의 일생"을 쓴 프랑스 작가 모파상(1850-1893)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는 본래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퇴학당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신앙과 결별하기로 하고 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후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 10년만에 유명작가가 되고 돈을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1800년대 말) 노르망디에 대 저택을,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를 갖고 쉴새없이 애인을 바꾸며 살았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군중들은 그를 흠모했고 그의 은행에는 쓸수 있는 여유로운 돈이 항상 넉넉했지만 그는 안질병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189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잃은 그는 종이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이 파탄난 그는 정신 병동에서 몇 달을 알수 없는 소리로 허공을 향해 절규하다가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무덤 묘비명에는 그가 말년에 자주 외친 삶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으나 실상은 가장 처절하게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1세기 소아시아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시면서 "너희들은 가난한 것 같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파상과 정 반대의 인생을 산 사람들이 서머나 성도들이었고 그런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서머나 교회였던 것입니다.

 

1.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세기 당시의 서머나 교회는 한마디로 고난받는 교회였습니다. 고난받는 교회 성도들에게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의 모습보다 더 위로가 되고 더 용기를 주는 이미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중에 최악의 고난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음에서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을 승리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분, 죽음의 승리자이시고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 곧 역사의 주인되신 분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서머나는 예나 지금이나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현재의 지명은 이즈밀(Izmir)이라고 불리우는데 터키에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과거 사도시대에도 에베소에 맘먹는 큰 도시여서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불리우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교회의 소망은 로마제국의 부요가 아닌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2.서머나 교회를 향한 칭찬서머나 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중 책망이 없었던 두 교회중(다른 한 교회는 빌라델피아교회)의 하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고 순교까지 하는 성도들에게 무슨 책망을 하시겠습니까? 다만 칭찬과 격려를 주실 뿐이었습니다. 칭찬은 "네가 복음 때문에 환난당하고 물질적으로 궁핍함을 견디는 것을 내가 안다"(9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궁핍은 상대적 가난 정도가 아닌 거의 헐벗고 굶주린 수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알아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 인생이 아무리 환난의 연속이어도 그 환난이 환난 당할만한 가치만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내 인생의 주인이신 주께서 알아주신다면 견딜수 있지 않겠습니까? 원수 사단이 우리를 아무리 배고프게 할지라도 하늘의 만나로 우리 영혼이 부요할수 있다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양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3.서머나 교회를 향한 권면서머나 교회를 향해 책망할 것은 없었지만 여전히 권면은 필요했습니다. 다가오는 얼마동안의 고난(10일은 길지 않은 일정한 기간을 나타냄)을 예언하시며 주어진 유명한 권면이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10절) 이 예언은 적중했고 주후156년 2월 2일 사도요한의 제자로서 이 서머나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된 폴리캅이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신상을 참배하기를 거절했던 폴리캅과 인근지역 성도들 11명이 유대인들의 밀고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폴리캅의 인격과 덕망을 흠모하던 총독은 "예수를 욕하고 황제의 신상에 절하면. 당장에 풀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86년동안 내가 섬겨온 주님, 그분은 언제나 나를 인자로 대하셨오. 내가 어찌 그분을 모독할수 있단 말이오" 총독이 다시 "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너를 야수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말하자 폴리캅은 조용히 "어서 맹수를 부르시오"합니다. 총독은 다시 "네가 맹수를 두려워 않으니 너를 불태우겠다"고 위협합니다. "총독이여, 잠시 있다가 꺼질 이 불보다 장차 심판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을 두려워하시오" 그의 육신이 불로 얼른 태워지지 않자 그는 칼에 찔리워 순교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서머나인 도시 이즈밀을 방문하는 분들은 어김없이 폴리캅 기념 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 교회당 벽에는 유명한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폴리캅 순교화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의 구석에는 손이 포승줄에 묶인채로 폴리캅의 순교장면을 지켜보며 다음 자신의 순교차례를 기다리는 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화가 자신의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순교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누구에게도 경험될수 있는 사건임을 그리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을수 있을 정도로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다 순교할 필요는 없지만 순교적 신앙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4.서머나 교회에서 배워야 할 웰빙 교회의 비전그것은 영적인 부요를 추구하는 교회상입니다. 웰빙 교회, 건강한 교회는 영적인 부요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 우리를 영적인 부요한자가 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오늘의 교회와 성도에게 던지는 도전을 우리는 다시 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폴리캅 감독처럼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수 없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힌다면 사업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의 승진에서 배제되고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해도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주님이심을 선언하며 살아갈 용의가 있으신가요? 이런 그리스도인이 많은 교회야말로 영적으로 부요한 웰빙교회라 할만합니다. 우리 교회에 아무리 많은 숫자의 성도들이 출입해도 예수가 나의 주님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고, 그 주님을 위해 손해볼 각오도 희생할 의지도 없는 성도들만으로 채워지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닌 매우 불건강한 공동체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된 자존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1세기의 서머나 교회가 특히 그 도시에서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당한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으로 고백한 까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이땅에서의 유일한 선민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 자기들이 진정한 선민이요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선언했을 때 도저히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 노릇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주께서도 본문 9절에서 "유대인들의 비방"을 언급하시고 그들의 모임을 가르쳐 "사단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선민의식을 꺽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누구를 부러워하겠습니까? 천문학적인 물질을 가지고도 아직도 탐욕에 목말라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요, 아무리 세상이 그를 가난하게 보아도 그에게 부족함이 없다면 그는 부요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존심이어야 합니다.

 

3) 죽음 건너편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받은후 1세기의 서머나 교회는 문자 그대로 고난을 잘 견디고 승리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의 순교를 치른 후에도 교회는 고난을 잘 견디고 계속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이 교회에 약속된 소망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 무슨 약속이 있었습니까?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는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11절에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할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첫째 사망)이 아니라 죽음 다음에 오는 죽음(둘째 사망)곧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신실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현실의 고난을 이기는 최선의 준비는 천국 신앙입니다. 한국의 지식인 그리스도인가운데는 천국신앙을 타계신앙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 쉽게 타협하고 연약해지는 원인이 천국신앙의 상실 내지는 약화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천국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의 돈과 권력에 집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 사람들이 이 땅의 보물에 목말라 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제가 아는 믿는 형제중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가끔 이 분 회사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여러해 전 갑자기 믿음이 좋아지더니 회사에서 세금을 정직하게 보고하고 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회사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로차 만났더니 놀랍게도 담담해요.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올바르게 살려고 하다가 망했으니 후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안되어 제가 "주님, 이런 분은 어떻게 도와주셔야 하지 않습니까?"기도가 되더라구요. 그런데 얼마후 그 회사에 나가던 간부 직원 한분이 우리 교회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예수 잘 안 믿던 분인 것이 생각나 "어떻게 나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예수님 뜻대로 하다가 회사가 망했으니 사장님이 이제부터는 예수 안 믿을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예수 믿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회사 정리하여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우리 회사 사장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고 진짜 예수님이라고 생각되어 자기도 그리고 여러 직원들이 예수 믿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이 분이 망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회사는 넘어졌지만 그 결과로 이 소중한 영혼들을 구원한 것을 알았습니다. 비로소 이분이야말로 영적인 부요를 추구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분이 훌륭하게 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는 웰빙교회는 이런 영적인 부요를 추구하는 성도들로 넘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 한분 한분이 먼저 이렇게 영적인 부요를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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