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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편

시편 23편 1-6절 여호와 로이 (하나님의 이름)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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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시 23장 1-6절
설교제목 : 여호와 로이 (하나님의 이름)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예수를 잘 믿는 고등학교 학생 하나가 자기 친구들에게 전도하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른 아침 친구들이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자기가 수업하는 교실에 들어가 교실 앞에 부착된 칠판에다 정성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는 해답이시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친구들이 그 글을 읽고 예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씩 친구들이 교실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칠판에 쓰여진 글에 무관심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 자리에 앉은지 얼마 안 되어 뚫어지게 칠판을 응시하더니 앞으로 걸어 나가 백묵을 잡고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이시다”고 써 놓은 바로 아래에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해답이시라면 도대체 문제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아마도 성경 전체에서 요한복음3:16 다음으로 유명한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을 개업할 때 읽어줍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군인을 나갈 때 우리는 이 시편을 선물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결혼할 때 우리는 이 말씀이 들어가 있는 선물을 골라 전해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생할 때 우리는 그들의 병상 곁에서 이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특별한 인연을 남긴 우리의 어르신네들이나 가족들이 세상을 작별하는 그 소중한 순간에도 이 시편을 읽습니다. 이 시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꾸어 본다면 “여호와는 내 인생의 해답이시다”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말씀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해답이 되시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간단히 “여호와 로이”(Jehovah Roi)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고 ‘로이’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신 여러 이름중의 하나이십니다. 구약 성경에 약 60회에 걸쳐 하나님은 이런 이름으로 등장하십니다. 하나님이 목자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인생을 양에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는 다 양과 같아서--”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문제를 가장 함축성있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양의 문제이며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목자로서의 하나님(여호와 로이)이 완벽한 해답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고등학생이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물었던 질문처럼 하나님이 과연 해답이시라면 도대체 인생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 인생의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양은 여러 둥물중 가장 겁이 많은 동물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양은 별로 자구책을 갖지 못한 동물입니다. 어떤 동물은 주변 자연의 색깔과 유사한 보호색으로 어떤 동물은 자기 신체의 한 부분을 무기로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양은 이런 자구책이나 자기 보호의 뚜렷한 방편을 갖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두려워하고 초초해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 양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런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아가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는 사망에 대한 실존적인 두려움을 안고 인생을 살아 갑니다. 그러나 인생의 길에는 사망 그 자체만 아니라 다가올 사망을 알리는 사망의 그림자(shadow of death)들이 있습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재난, 그리고 신체적인 질병들이 그것들입니다. 본래 원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깊은 어두움의 골짜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이 처음 기록된 팔레스틴에 가보면 특히 예루살렘에서 사해로 내려가는 유대 광야 같은 곳엔 앞이 보이지 않고 가파른 골짜기들이 도처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지역 한 계곡의 길이는 무려 약 7km에 달하며 양쪽 협곡의 높이는 450m이상의 높이가 되고 바닥의 폭은 3-4m나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바닥은 많은 경우 비로 침식되어 수령을 이루기도 합니다. (Joel R. Beeke, Jehovah Shepherding His Sheep) 만일 어떤 양이 발을 잘못 디디어 미끄러지면 이런 무서운 협곡에 떨어져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그림이 아닙니까? 인생 도처에 이런 골짜기, 이런 협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골짜기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발달한 현대적인 산업이 바로 보험업이 아닙니까? 건강을 상실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의료보험이나 건강 보험에 들지요. 집을 잃을 두려움 때문에 주택 보험이나 화재보험에, 생명을 잃을 두려움 때문에 생명보험에, 자동차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동차 종합보험에 드시지요. 비행기 타기 전에 항공보험에 배타기 전에 선박보험에 듭니다. 유명한 축구선수들은 발 보험에,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손가락 보험에 든다고 합니다. 저는 아마 주둥이 보험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편을 기록한 시인은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여호와 로이)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4절)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그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고백합니다. 목자는 협곡에 빠진 양들을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로 건져 올립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양들을 위협하는 들개나 들 짐승들을 쫓아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여호와 그가 저와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여호와 로이)-그가 인생의 두려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십니다. 

 

2. 인생의 문제는 더럽혀짐입니다.

 

양은 어떻게 보면 아주 깨끗한 동물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양을 가까이 해보면 양이란 동물은 쉽게 더럽힘을 타고 의외로 가까이 가게 되면 어떤 양은 지독한 냄새를 발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다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쉽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질되고 오염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요? 멀리서 보면 다 선량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별수 없이 인간스런 냄새가 때로는 악취가 나지 않던 가요? 팔레스틴의 양들은 특히 뜨거운 여름의 계절에 이런 지독한 오염을 걱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름은 파리와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름은 피부병의 계절이요, 상처의 계절입니다. 산과 계곡을 통과하면서 양들은 거친 여행에서 상처를 얻게 되고, 피부염의 감염으로 온 몸이 더럽혀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피부질환이나 상처에 유일한 당시의 치료제는 기름이었다고 합니다. 코 파리(파리중 가장 지독한 파리-코속을 파고 들어와 온 몸에 질병을 일으킨다)를 쫓고 피부병으로 이미 상처 입은 양을 낫게 하고자 목자는 양에게 기름을 발라주고 상처가 심한 양들은 아예 양의 몸통 전체를 기름통에 넣어 잠기게 합니다. 시23:5에서 시편기자는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가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는 기름으로 어느 정도 치유되겠지만 영혼의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되겠습니까? 성경의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은 육체이상으로 우리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시편기자는 본문 3절에서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온전한 소생은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우리의 영혼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이 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요한 일서 1:7에서“--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선언합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사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대신 피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흘리신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죄는 기름이 아닌 피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시기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한10:11-표준 새번역) 그렇습니다. 인생의 더럽혀짐-죄 문제에 대한 유일의 완벽한 해답은 바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사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신 여호와 로이-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인생의 문제는 방향감각의 상실입니다.

 

양의 문제는 결코 게으름이 아닙니다. 양은 상당히 부지런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양의 치명적인 결함은 방향 감각의 상실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개도 소도 고양이도 집을 떠났다가 반드시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양은 향방을 알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양과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속도가 빨라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클릭 한번으로 세계의 모든 정보를 획득하고 세상 어디도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현대인들은 여전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빨리 빨리 움직이는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뉴욕으로 출장간 한국 회사원이 공항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처음 한 말이 무엇일까요? “빨리 가십시다”(Let's go. Hurry, Hurry-up.) 택시가 빨리 달립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가야 할 목적지 방향이 아닌 듯 하여다시 묻습니다. “기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기사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요? “손님은 빨리 가자고 했지 어디로 가자고 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요? 그런데 여러분, 방황하는 양의 문제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목자입니다. 목자만 잘 만나면 됩니다. 그가 양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의 주어는 “그가” 입니다. 선한 목자인 여호와 하나님 그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2절에 “그가(He)-- 인도하시는도다.” 영어성경에는 계속해서 ‘그가’ 라는 인칭 대명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우리를 푸른 풀밭,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그가 우리를 의의 길(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그는 마침내 인생 여정의 궁극에서 우리를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어떤 길도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집 곧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한 대학 정문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After that, what?) 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간판의 유래가 있었습니다. 한 가난한 대학생이 많은 장학 사업을 하는 그리스도인 귀족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만일 장학금을 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반문합니다.-“그 다음에는?” 졸업하여 법률가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며 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업도 하여 돈을 모아 할머니처럼 많은 사람을 돕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장가들어 결혼하여 가정도 이루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도 낳고 그들을 선량한 로마의 시민으로 키우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늙으면 대학도 세워 좋은 인재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가 대답합니다.-죽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유구무언인 그 학생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나는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없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오면 자네를 돕겠네” 어디서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겠습니까? 할머니는 조용히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크리스티아누스(크리스챤)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청해보게나“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죽으신다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미국에서 어린 소년이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병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며 시간이 날때마다 성경을 읽어 주었고 특히 시편 23편을 암송하게 하였습니다. 병세가 악화되던 어느 날 엄마는 다시 시23:1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목자가 되었기에 그분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인도하심을 잊지 말아야 해. 비록 네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게 되어도 목자이신 하나님이 너를 데리고 하나님의 집인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아들의 왼손 다섯 손가락을 펴게 한 다음 영어의 다섯 단어를 한 단어씩 따라서 하게 했다고 합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그러면서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며 “이 손가락은 ‘my’야. 하나님이 나의 목자, 너의 목자가 되셨으면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거란다”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두어 시간이 지난후 아들이 아무 기척이 없어 보니까 어린 소년이 조용히 잠자듯 숨을 거두었는데 엄마가 보니 아들의 오른 쪽 두 손가락으로 네째 손가락 반지를 잡은 채로 그는 미소 지으며 숨을 거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천국으로 떠난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이 천국의 소망이 계신가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셨나요? 두려움에 잡힌 나, 더럽혀진 나, 방황하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목자로 받아드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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