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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편

시편 73편 27-28절 하나님을 가까이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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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시 73편 27-28절
설교제목 : 하나님을 가까이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지난해 2005년 3월 중순경에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새벽 2시경 아틀란타 동북쪽 조용한 주택가 주차장에서 아파트로 들어서던 애슐리 스미스(Ashley Smith)라는 이름의 한 여인에게 갑자기 무장괴한이 총을 들고 다가서서 집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괴한은 브라이언 니콜스(Brian Nichols)라는 이름의 남자로 아틀란타 풀턴 카운티 법정에 출두하여 재판을 받던 중 그를 지키던 감시자의 총을 빼앗아 법정 판사를 비롯한 4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죄수였습니다. 그리고 무려 7시간 동안을 이 여인은 자기 집에서 이 괴한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손발이 묶였지만 그리스도인이었던 이 여인은 침착하게 기도한 후 그와 더불어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말에 감동을 느낀 그가 이 여인의 묶인 것을 풀어 주자 이 여인은 책을 읽어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그녀가 읽은 것은 성경과 함께 우리가 잘 아는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 30일째 내용이었습니다. 뜻 밖에 범인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물었고 그녀는 그와 더불어 인생의 목적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아침이 밝아오며 애슐리는 그를 위해 팬 케이크를 구어 주었고 눈물을 글썽이는 그에게 애슐리는 자수를 권하며 오늘 당신과의 만남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얼마 후 다른 곳에 가있던 딸을 만나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그녀는 집을 나서게 되고, 이어서 그녀의 신고로 이 집에 도착한 경찰에게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항복하여 체포됩니다.나중에 사람들이 애슐리 스미스라는 여인에게 어떻게 그런 와중에서 책을 읽을 용기가 생겼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매일 아침과 성경과 경건 서적을 읽는 것은 자신의 삶의 우선 순위였고, 그 위험을 느끼던 순간이야 말로 그녀가 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한 지붕아래 살고 있지만 마치 타인이 된 듯 그 관계가 멀어진 부부처럼 오늘 우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런 사이는 아닙니까? 시편기자는 본문인 시편 73편에서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와 불평이 일어나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성공도 출세도 아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이 시의 저자인 아삽은 다윗왕의 사랑받는 궁중 음악인으로 왕과 권력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왕의 남자였지만 그것이 인생의 문제의 해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한 어느 날 주님 앞에 엎드려 이 시의 고백을 주께 드리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러면 이 유명한 시편 73편을 통해서 인생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그것이 왜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생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왜 중요한 일일까요?

 

1.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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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7절을 보십시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주를 멀리하는 자를 다른 말로 주를 떠난자 혹은 음녀라고 일컫습니다. 음녀는 영어로 말하면 성실하지 못한(unfaithful)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보다도 더 중요한 다른 무엇에 그의 가치와 사랑을 두고 사는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는 자입니다. 이런 이들은 심지어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결국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채 오히려 주님을 떠나 사는 이들이 소위 성공의 자리에 앉아서 권력과 재물을 누리며 큰 소리치고 살아가는 배 아픈 모습들을 더 많이 우리 주변에서 목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로 이런 불공평한 인생의 모습으로 인하여 성실하게 믿음의 삶을 추구하려 애쓰던 나 자신도 오히려 시편기자 처럼 실족의 위기를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는 신앙 생활하면서 결국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해 보시지 않았나요? 이것이 바로 시편기자의 믿음의 위기였던 것입니다.시73:12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불어나도다.” 이어지는 다음 절에서 그러면 깨끗하게 살고자한 나의 모든 노력은 결국 다 헛된 것이 아니었는가고 그는 자문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사실 시편 73편 전체의 주제는 ‘악인의 번영’입니다. 그는 악인이 번영하는 역설적인 세상을 보며 거의 실족할 뻔 했다고 고백합니다. 시73:2을 보십시오. “나는 거의 넘어질 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실족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17절에서 우리는 그가 얻은 해답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예배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종말의 모습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순간 이후 그는 더 이상 이 불공평한 세상을 인해 고통 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설교자 말틴 로이드 존스의 글에 보면 교회 나왔다가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불편하게 느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비웃고 교회 출석을 중단한 농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교회를 그만두고 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전보다 더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 가을 추수때 다시 교회 예배에 나와 큰 소리로 떠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축복을 받지 않았느냐고--당신들이 설교한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근거없는 말인줄 아느냐고 소리칩니다. 그때 그 교회 목사님이 조용히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매 가을마다 결산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 한번의 결산으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곧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 그 결산의 때-곧 심판의 날이 하나님을 멀리한 사람들이 망하는 날인 것입니다.

 

2.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누군가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사회에서는 윗선에 줄을 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인생들이 가장 힘있는 분,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왜 줄을 대려고 안하는지가 ‘이것이 궁금하다’입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그분을 가까이 하는 방법을 모르는 때문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우리에게 먼저 그분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약4:8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그분을 가까이 하기를 소원하였음에도 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들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십니까?그렇다면 다시 약4:8 말씀의 하반부를 주목하십시오.“----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현저한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고자 하는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아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하여 정직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교회에는 출석하고 있어도 참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실이 없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 그분, 거룩한 피를 흘리신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의 피에 당신의 존재를 적시십시오. 그리고 그의 용서와 자비를 받아드리십시오. 그리고 거저 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수용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경험인 것입니다.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 무엇이 주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는가를 투명하게 성찰하십시오. 신약 성경의 요한 일서 전체는 바로 이런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잘 아시는 요일1:9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죄를 자백해야 할까요? 요한 일서가 무슨 말씀으로 끝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요일5:21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우상이야 말로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를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장애물인 것입니다. 우상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일체의 것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 사랑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그것들을 포기하십시오.그리하시면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경험되실 것입니다. 그분과의 친밀함이 다시 회복되실 것입니다. 이제 영광의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의 영광이 당신의 인생의 전에 가득할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의 능력으로 역경을 견디고 시련을 이기는 인생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파도를 일으킬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의 거룩함이 당신의 인생의 고귀함과 당당함이 될 것입니다. 지혜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의 지혜가 당신의 인생길을 인도해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곧 승리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인생의 해답입니다. 

 

3.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이유-본문 28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그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 위해 행하신 희생의 행적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를 살리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의 행적을 보다 많은 이웃들에게 분명하게 전파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분의 사랑을 가까이서 더 깊게 더 친밀하게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사랑이신 주 여호와를 당신의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그 앞에 나아와 그가 베푸신 용서, 그가 예비하신 안식, 그가 제공하시는 조건 없는 사랑의 은총에 푹 빠져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그 황홀한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잠잠할 수 없거든 나아가 전하십시오. 외치십시오. 예수가 구원이라고, 예수가 소망이라고, 예수가 생명이라고--그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인 것입니다.저는 오늘의 설교의 화두에서 릭 워렌 목사님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의 비밀을 온 세상 모든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며 바로 이 목적이 주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사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가 LA 근교에 개척했던 새들백 침례교회는 오늘 우리 시대 불신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그가 이렇게 전도에 모든 것을 건 인생을 살게 된 중요한 동기가 그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고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목사는 아니었지만 평생을 국내외 복음이 미치지 못한 미전도 지역들을 순회하며 작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작은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가 지은 교회당이 무려 150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수년전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을 때 릭의 아내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보셔요”했더니 아버지는 “주님을 위해 한명이라도 더 구원해야 해. 한 명이라도 더” 라는 말을 무려 백번 이나 반복하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의 가족들이 그의 유언을 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다시 기억하십시다. 이 복음 증거는 릭 워렌의 부친의 유언이기 전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언이었음을. 우리 주님도 반복적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이 유언을 되풀이하며 부탁하시고 또 부탁하셨습니다. 왜 일까요? 복음만이 오직 복음만이 인류의 마지막 소망이기 때문입니다.어제 주일 설교 원고를 마무리 할 무렵 이메일 하나가 우리 교회 한 자매로부터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혀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이 자매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제 소식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너무나 극심한 고통속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말도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고난속에서 치료를 중단했습니다.”그런데 이 자매의 편지는 뜻 밖에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어찌나 선교를 떠나고 싶었던지--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살려 주실 때 까지 살기로 하고 주일 학교 여름 축제에 봉사 신청을 했습니다. 하다 못해 어린이들 코라도 닦아주는 일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치료를 중단하고 나니 연약했던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 나처럼 암으로 고생하는 환우들 집회에 나아가 전도하는 찬양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더욱 더욱 마구 마구 느껴집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이 자매의 노래야 말로 한밤에 부르는 증거의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이 여름 고통 중에도 투병 중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섬김과 전도에 걸어버린 이 고귀한 믿음의 자매처럼 우리 모두 주의 위대한 소망의 행적을 드러내는 영광의 여름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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