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1장장 1-17절
설교제목 : 구속사의 주역이 되자
설교자 : 차용철 목사
<서언>
1~17절까지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1절은 총론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초 조상은 아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리스도(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자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창3:15).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창12,13,15,17,22장, 갈3:16). 그리고 그 약속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하7:12). 이사야선지자는 이새의 줄기 곧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11:1). 그런 예언들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메시야)를 기다렸고 그 그리스도는 자윗의 자손 가운데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이 그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리라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실제로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본론>
1. 구조가 14대씩 3번 반복되었습니다.
2~6절에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6~11절까지는 다윗에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대, 12~16절까지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때부터 예수님까지 14대를 기록했습니다. 17절에서는 그것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족보는 정확하게 14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자를 통해 의도적으로 14대씩 맞추어 3번 반복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밝히는 데 있어서 그것을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숫자를 표시할 때에 히브리어 알파벳에 숫자의 의미를 넣어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알렙, 벧, 기믈, 달렛...' 은 1, 2, 3, 4...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번째인 '요드...' 부터는 10, 20, 30, 40...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아홉번째인 '코프...' 부터는 100, 200, 300, 400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다윗'은 알파벳 자음이 '달렛, 와우, 달렛'로 되어 있는데 숫자로 풀면 4, 6, 4로서 합하면 14가 됩니다. 거꾸로 표현하면 14는 다윗을 말하는 숫자로서 유대인들은 14라는 숫자를 들으면 다윗이라는 글자를 연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14대씩 구성하여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더욱 강조하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3번 반복된 것은 확실성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선포할 때도, 이혼을 선언할 때도 3번을 합니다. 14대씩 3번 반복한 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이 확실하다는 상징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악을 행한 6왕이 빠졌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온 내용과 본 족보를 비교해 보면 악을 행한 6왕이 빠졌습니다. 8~9절에 나오는 요람(요담)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가 빠졌고, 11~12절에 나오는 요시야와 여고냐(여호야긴) 사이에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이 빠졌고, 12절에 나오는 여고냐(여호야긴) 다음에는 시드기야가 빠졌습니다. 실제 유다 왕들 가운데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가 빠진 것입니다 (그달랴는 제사장 사반의 손자로서 다윗의 왕손이 아님).
그들은 대부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각종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한 자들입니다. 아하시야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를 장려했습니다 (왕하8:24-29, 대하23:1~대하22:1-9). 요아스는 우상숭배를 하고 제사장 스가랴를 죽이고 아람왕에게 성전의 곳간의 금들을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왕하11:21~12:21, 대하23:1~24:27). 아마샤는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멸시했습니다 (왕하 14:1-22, 대하25:1-28). 여호아하스는 우상을 숭배하고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왕하23:31-33, 대하36:1-4, 겔19:3-4). 여호야김은 우상을 숭배했고 애굽까지 망명한 우리야 선지자를 연행하여 죽였고 예레미야선지자를 구금하고 그의 앞에서 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베어 불태웠습니다 (왕하23:36-37, 24:1-5, 대하36:5-8, 렘22:13-31, 26:20-23, 36:20-26). 시드기야는 우상을 숭배하고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왕하24:18-20, 대하36:11-16, 렘52:3). 우상숭배자와 성전을 더럽힌 자와 선지자와 제사장을 핍박한자 등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의도적으로 뺀 것입니다.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구원역사를 방해하므로 예수님의 계대를 수치스럽게 만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3. 신앙의 열정을 가진 4여인이 추가되었습니다.
3~6절에 보면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우리야의 아내)가 나왔습니다. 이 4사람은 여자들입니다. 밧세바를 제외한 세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룻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도덕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을 한 죄인들입니다.
유대인의 관념상 여자, 이방인, 죄인은 족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적 축복을 믿고 아브라함의 계대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의 계대에 참여하려는 신앙적 열정을 가진 자들입니다. 다말은 아브라함의 자손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유다의 큰 아들 엘과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이 아들 없이 죽자 계대혼인법에 의해 남편의 동생 오난과 결혼했지만 그도 아들없이 죽었습니다. 남편의 남은 동생 엘라와 결혼하려 했지만 시아버지 유다가 그도 죽을 것을 염려하여 결혼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어떻게든지 유다의 혈통에 참여하려고 창녀로 가장해서 유다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창38:1-30). 라합은 여리고성에 살던 기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리고성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탐하기 위해 두 사람이 잠입했는데 두 사람에게 여리고 상황을 보고해 주고 수색대가 들이닥치자 두 사람을 지붕 삼대에 숨겼다가 창문으로 도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수2:1-24, 6:17).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보호한 것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하시는 구원역사를 믿었고 어떻게든지 자기도 그 은혜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이주해온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을 했지만 시아버지와 남편과 시동생이 죽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면서 룻을 떼어놓고 가려 했습니다. 룻은 어머니 가는 곳에 자기도 가고 어머니 유숙하는 곳에 자기도 유숙하고 어머니 죽는 곳에 자기도 죽겠다고 하면서 베들레헴까지 따라왔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먹을 것이 없었지만 추수 밭의 이삭을 주어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가 자기 나라와 민족과 고향과 부모친척과 결혼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그렇게 한 것은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룻1:4~22, 4:21-22). 밧세바는 다윗왕의 신하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에 다윗왕과 동침을 했습니다. 다윗왕은 요압 장군을 통해 우리야를 전진 배치 시키게 하여 우리야를 적군에 의해 죽게 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다윗왕의 부름을 받고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치를 무릅쓰고 아브라함의 언약적 축복이 다윗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4여인은 여자이고 이방인이고 죄인들입니다. 성경이 그들의 죄를 합리화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그런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을 통해 다윗에게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적 계대에 참여하려는 구원사적 신앙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언>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언약적 계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인들로 이어지는 구원사적 계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종말에도 그들의 믿음을 이어받은 자들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 계대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복음사역에 대한 열정을 가지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지키는 열정을 가지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기 바랍니다. 전도와 선교에 동참하는 열정을 가지기 바랍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생애인지 생각하고 구속사적인 시각으로 한 해를 계획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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