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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창세기

창세기 32장 28절 남자의 성공 - 하용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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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창 32:28
설교제목 : 남자의 성공
설교자 : 하용조 목사 (브라보 메세지-둘째날)  

하나님을 만나는 것 보다 더 큰 성공은 없습니다. 어떤 보석도, 세상의 어떤 영광스러운 자리도 이것보다 못합니다. 성공이라는 단어의 뜻은 ‘공을 들여 어떤 업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계획하고 목적한 바를 천신만고 끝에 이루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성공도 있지만 자고 깼더니 벼락부자가 된 것 같이 우연한 성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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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뒤의 고독

일반적으로 성공은 다른 사람을 누르고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 우월감, 승리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나는 너를 이겼다. 나는 최고다. 이 분야에서 나 이상 존재는 없다.’ 이런 동물적인 본능이 성공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습니다. 특히 남성들이 성공이라는 우상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하기 위해 인생을 불살라보지만 성공에 대한 집착, 야망, 열정은 어느덧 우리 인간성을 파괴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뒤늦게야발견하게 됩니다.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위치,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뒤안길에는 고독이 있습니다. 성공할수록, 원하는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외롭다고 느낍니다. 왜 일까요? 성공은 피라미드 같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올라갈수록 내 동료, 친구들은 점점 다 사라집니다. 내 친구는 경쟁자가 되고 공격자가 됩니다. 정상, 성공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쫓기는 자리입니다.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고통의 자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공의 반대를 실패라고 말합니다. 실패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같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희망을 접어버렸습니다. 실망이 깊은 사람은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까지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성공하고 실패도 합니다. 그런데 성공할 때 우쭐하고 실패할 때 움츠러드는 것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해도 외롭고 실패해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올바른 기준

우리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너무 외형적인데 두었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든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와 명성을 얻는다든지,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농구를 즐기면 되는데 마이클 조던이 안 된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명예, 부, 건강, 영향력 이런 외형적인 것으로 자꾸 나를 평가하기 때문에 나 자신은 정직하고 의미있게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이 왜곡됩니다. 진정한 가치기준은 외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데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느냐’가 성공과 실패의 진정한 기준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살아간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했어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소유하고 누렸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밤을 새서 일을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거기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 것, 이것이 진짜 일입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나, 사장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올바른 두 번째 기준은 ‘나 혼자만의 성공인가, 공동체의 성공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나 혼자 성공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 성공은 아내의 성공이고 자녀의 성공입니다. 우리라고 하는 성공입니다. 개인적인 성공은 이기적인 성공입니다. 굉장히 외롭습니다. 내 행복만으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못됐는데 여러분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될 때 내가 행복합니다. 비록 내가 불행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개인적인 것으로 추구하려 합니다. 행복을 외적인 것으로 가지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얻고도 잃어버리고 행복하다말하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자

진정한 행복은 인간이 누리는 영광이 아닙니다. 영상 녹음을 한 후 이어령 교수님 가족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나는 예수의 십자가는 이해합니다. 부활이 이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부활을 이해하려면 성령충만 해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기도해주십시오”라며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이어령 교수도, 가족도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분은 정말 하나님을 알고 그 앞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부활을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을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것 보다 더 큰 성공은 없습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위대한 복입니다. 어떤 보석도, 세상의 어떤 영광스러운 자리도 이것보다 못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신경쇠약과 우울증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잠을 못 자던 50대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였는데 저는 그때 하나님을 못 만나고 이제야 돌아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브라보 집회에 모인 여러분께 너무 늦게 예수님 믿지 말고 지금 믿으라고 말해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날 참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정점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결혼해 자식을 만납니다. 선후배, 친구를 만납니다. 그러나 가장 복된 만남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열망, 갈망, 이것이 시작입니다. ‘이 나이까지 혼자 살아왔지만 내 인생의 후반전을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친구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함께 얘기도 하고 말씀도 나누고 싶습니다. 어제 ‘남자의 용기’를 주제로 가장 위대한 용기는 하나님을 믿는 용기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남자의 가장 위대한 성공은 그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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