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창14장17-20절
설교제목 : 엘 엘리온(하나님의 이름)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크리스챤 유머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준비되지 않은 즉석 전도 설교를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니고데모의 이야기와 삭개오의 이야기가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어떤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할까 주저하다가 시간이 되어 생각을 미쳐 정리해지 못한 채로 마이크앞에 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느날 예수님이 그가 살고 있는 여리고 동네로 오시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그분의 모습을 잘 보고자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교회당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목사님은 비로소 자기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이렇게 말을 이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삭개오가 거리에 나타나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니고데모야, 거기는 네가 올라갈 자리가 아니고 내가 있을 자리야, 속히 내려오너라” 여러분, 이런 실수는 애교 있는 실수에 속하고 니고데모와 삭개오가 자리를 바꾸어도 별 큰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하나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종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심리학자들은 소위 인간안에 내재하는 신격화(deification)의 본능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성공을 갑자기 얻을 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종교적 유혹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전쟁의 승리를 얻고 개선장군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300명(14:14,318명) 조금 넘는 사병으로 적을 기습 공격하여 눈부신 승리를 얻고 포로되었던 조카 롯을 구출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귀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절에는 소돔의 왕이 나아와 그를 영접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얼마나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겠습니까? 그는 이런 뜻밖의 신분상승을 경험하며 자기를 신으로 높이고 자신을 찬양하고 싶은 충동마져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아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며 20절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제사장 멜기세덱이 사용한 하나님의 이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히브리어로는 “엘 엘리온”(El Elyon)인 것입니다.(엘은 하나님, 앨리온은 ‘가장 높은’ 영어로 highest입니다.) 엘 엘리온이라는 표현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창14:22에 보면 이제 아브람도 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그날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진정한 성공은 엘 엘리온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새해를 맞아 진정한 성공, 진정한 행복을 소원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엘 엘리온 하나님으로 아셔야 합니다. *엘 엘리온의 이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참되고 높으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종교학자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신론적이다(polytheistic)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유일신을 처음부터 믿어온 유대인들 조차도 기회만 있으면 우상을 만들고 많은 신을 만들어 섬기고자 합니다.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도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금송아지 우상 신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민족은 인도와 일본일 것입니다. 인도에 힌두 신전에만 공식적으로 3억 3천만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8만 7천 신사가 존재합니다. 비 공식적 신사들을 합하면 10만 이상의 신들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많은 신들이 행복을 가져다 줄까요? 인도는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인구 비율로 가장 많은 우울증 환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이렇게 쉽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많은 남편이나 아내를 모시고 사는 배우자가 행복할까요? 아니면 한 여인 혹은 한 남자와 평생을 오순 도순 살아가는 배우자가 행복할까요? 역사상 어떤 소위 playboy, 어떤 playgirl도 인생의 진지한 행복을 고백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을 종교적으로 말하면 유일신과의 관계가 인간의 행복 지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는 이미 많은 우상 신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났을때 그는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신 분 그리고 방금 있었던 전쟁에서 아브람을 도우셨던 신 그의 이름은 엘 엘리온 다시 말하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the most high God'입니다. 그냥 높으신 신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신, 이 개념은 성경의 하나님을 다른 다신론의 신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살아계신 신이시며 그는 영역을 나누어 가지는 상대적 신이 아닌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땅을 초월하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시며(천주교의 강조점)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개신교의 강조점)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소위 포스트 모던의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이 시대의 특성은 모든 가치를 상대화해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절대적인 신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영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방황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무나 신이 되고 아무것이나 진리로 행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성경은 성경의 하나님만이 참되고 높으신 유일하신 신이라고 가르칩니다. 그의 이름이 엘 엘리온이십니다. 그는 누구이십니까?
2.인생의 축복의 주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제사장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엘 엘리온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여기 제사장 멜기세덱이 엘 엘리온을 언급하기 전에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라고 부른 것을 주목하십시오. 주재라는 말은 소유자(possessor)로 번역되기도 하고, 창조자(creator)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소유하시고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곧 하늘과 땅의 주인, 만물의 주인으로 정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할 수 있는 축복의 주인이십니다. 신관중에는 이신론(deis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창조이후 하나님은 더 이상 우주의 운행에 간섭하지 않으시고 우주는 법칙에 따라 운행될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신론자의 하나님은 아기를 낳고 아기의 행운을 빌며 그 곁을 떠나간 어머니 같은 신인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의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일까요? 히브리서1:2-3을 보십시오. 2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곧 만물의 창조자요 상속자라고 증언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는 만물을 지으신 자(창조자)요, 이 만물을 궁극적으로 다시 새롭게 할 자(상속자)이십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히1:3을 보십시오.“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 분명히 그는 지금 현재도 만물을 말씀으로 붙들고 섭리하시는 이로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만물의 주인이요 관리자되신 그 분,엘 엘리온 오늘도 우리의 축복의 주인이요, 축복의 근원되신 바로 그분에게 모든 필요를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빌4:19에서 이렇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가 우리의 욕심까지 채우시겠다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우리의 필요(need)를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우리 인생의 축복의 주인이신 것을 믿고 그분과의 교통안에 사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3.찬송과 감사의 대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20절에서 멜기세덱의 메시지는 계속됩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고. 무슨 말입니까? 승전의 기쁨을 누리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제사장 멜기세덱을 통해 너의 승리의 원인이 너 자신이 아닌 나 엘 엘리온였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그런 군사 전략을 짜도록 아이디어를 주었고, 네가 싸울 힘도 내가 공급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20절 하반절을 계속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쉽게 말하면 전리품의 십일조를 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처음으로 십일조 사상이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나중에 모세 시대에 이르러 십일조는 법제화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율법이 되었습니다만. 이때 이미 율법 시대전에도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실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율법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폐기된 실천일수 없습니다. 십일조 헌신은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헌신의 기본적인 실천으로 격려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 헌신이 어렵게 느껴집니까? 결국 돈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닙니까? 이것이 어떻게 번 돈인데--하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십시오. 일할수 있는 건강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일할수 있는 지혜, 아이디어의 근원은 어디였습니까? 일할수 있는 상황, 환경의 가능성은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일하게 하셨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확실하다면 그분에게 찬송을 드리고 그분에게 십의 일을 드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지난 해 말 청지기 세미나에 강사로 오셨던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님의 간증을 기억하십니까?(기회가 없었던 분들은 홈 페이지 특별 세미나에 들어가 경청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신앙생활의 초기부터 주변에 있던 두 분에게서 십일조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분은 적자 투성이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보건 범죄 단속법 위반으로 벌금 8억 3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터였습니다. 자연히 이제 갓 교회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으로 이익이 남아야 십일조지 적자 투성이의 회사 운영을 하는 사람에게 십일조는 가당치 않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의 권면이어서 슬며시 한번 해 볼까하는 충동을 느끼던 차에 또 한명의 지인을 통해 도전을 받습니다. “김 사장님, 이제 크리스챤이 되셨으면 십일조를 하셔야 지요. 사업하는 사람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는 쉽지 않으시겠지만 한번 십일조를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지요” 그리고 그에게 말3:10의 말씀을 드려 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유난히 도전의식이 강하고 승부사의 기질이 강한 그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당장 그 다음주부터 매주 십일조를 드리기로 하고 십일조가 아닌 십이조를 드리면서 그의 간증집 “주가 쓰시겠다 하라”에 보면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다음 주부터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제 사업이 어렵다는 것 주님이 더 잘 아시지요. 빚 갚고 직원 급여 주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것 하나님이 더 잘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십의 이조를 드리는 대신 다음 달부터 메출액의 두배를 늘려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성격이 급합니다. 1년후가 아니라 당장 다음 달에 증거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세 주까지 아무 소식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삼주를 넘기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전국의 대리점을 비롯하여 외국에서부터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 빅 히트를 했고 공장은 24시간 가동하게 되었고 매출은 두배가 아닌 8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이제 전국 교회를 다니며 십일조 헌신을 가르치는 사역자가 되신 것입니다. 1989년 12월 31일 이분은 모든 벌금을 다 내고 부채에서 자유해진 그날을 가르쳐 이제 그의 인생은 BC와 AD처럼 새로운 분기점을 맞아 새처럼 날아오르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십일조 헌신과 함께 두가지 약속을 더 하게 됩니다. 새벽기도와 함께 나머지 일생을 도덕적으로 성결하게 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도 이런 분을 축복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 분에 삶에 간섭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아브람의 하나님, 멜기세덱의 하나님, 엘 엘리온이셨던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의 찬송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과 이 한해를 동행하시고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약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6장 13-18절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십시오 - 이동원 목사 (2) | 2023.03.23 |
---|---|
창세기 8장 6-12절 40일을 지난 후 - 이동원 목사 (0) | 2023.03.21 |
창세기 7장 1-12절 방주로 들어가라 - 하용조 목사 설교 (1) | 2023.03.19 |
창세기 32장 28절 남자의 성공 - 하용조 목사 (0) | 2023.03.19 |
창세기 2장 1-17절 하고 (0) | 2023.03.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