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다서 1장 3-4절
설교제목 : 진리를 위해 힘써 싸우라!
설교자 : 이삼규 목사님
찬송 : 358장 주제 : 진리/싸움
유다서 1:3-4
유 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베드로 사도도 거짓 선생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미혹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그렇기 때문에 거짓 교훈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짓 교훈에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신자들이 거짓 교훈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습니다. 그의 서신들 중 많은 것이 그가 세운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훈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쓰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예수님의 형제인 사도 유다도 격려의 편지를 쓰기로 계획하였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친구에게 격려의 편지를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에 의해 전혀 다른 주제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반갑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어 그는 부득이 그가 계획했던 격려의 편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반갑지 않은 상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 안에 은밀하게 침투한 몇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읍에도 신천지라는 이단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 안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활동했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거침없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명동의류 앞에 가면 가슴 띠를 두르고 차를 나누어주며 신천지 전도지를 돌리는 이단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진리에 어긋나는 교훈을 가르칩니다. 유다는 이런 이단들의 침투에 대비해서 그들에게 속지 말고 진리를 위해 힘써 싸울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거짓 교훈이란?
거짓 교훈은 무엇입니까? 사실과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거짓 교훈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이 확인되면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어떤 사실이 밝혀졌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에 부합하는 교훈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입니다.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다른 모든 것을 떠 받쳐주는 기초와 같은 것입니다. 사실이 우리 마음에 들든지 아니 들든지 간에 사실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물을 만드셨고, 사물은 존재합니다. 물질적인 사실도 있고, 영적인 사실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실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사실에 부합하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된 교훈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가르치려면 우선 사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실에 부합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진리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성경에 어떤 진리가 담겨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부합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편집하거나 바꾸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선포된 하나님의 진리이므로 그것을 바꾸면 안 됩니다. 거짓 교훈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죄와 우리 자신에 대해 거짓된 정보를 제공합니다.
1)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
무릇, 거짓 교훈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밖의 다른 것들에서 큰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큰 실수와 근원적 오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건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들은 하나님을 바꾸어 놓으려고 애씁니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버리고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다른 어떤 존재로 바꾸어 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장로들과 성도들과 천상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어떤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서 어떤 다른 존재로 변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신 그분을 그대로 인정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기초가 비뚤어진 구조물은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런 구조물은 침하하거나 붕괴되거나 옆으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면 이탈리아에 있는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초와도 비할 수 없고 견고한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지금도 다스리는 섭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수학적 정확성을 가진 분이시지만, 또한 어린 아기들을 품에 안고 미소 지으며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용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런 깨달음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잘못된 개념의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2)우리 자신에 대한 잘못된 개념
사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도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베드로도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의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까?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욥 10: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면 우리 자신에 대한 개념도 잘못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가에 대해 잘못 알면, 그가 그린 그름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에 대해 오해하면 그가 만든 질그릇도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 알면 피조물에 대해 잘못 알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널린 과학적 사실들을 자꾸 거론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을 배제하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수학과 법칙의 하나님이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그분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 더 나쁜 결과에 이르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복을 받아 더 좋은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멀리 떠나 있다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죄에 대한 잘못된 개념
많은 사람들은 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믿기 전까지는 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죄는 초청하지 않았는데도 불쑥 찾아오는 손님이요, 언제 어디서나 인간을 따라다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세상에는 증오, 거짓말, 부정직, 살인, 간음, 방탕함 등등 많은 죄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죄라고 하지 않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현실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죄를 질병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과 자비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불법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만일 의사가 환자에게 투여할 약물의 양을 잘못 계산해 결국 환자를 죽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몸을 죽게 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 죄에 대해 잘못해석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멸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영적 멸망은 육신의 죽음보다 무한히 비극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에 대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타락한 존재라고 믿어야 하며,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 많이 회복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4)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
사람들은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왜곡되고 불완전한 개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흔히 유행하는 그리스도가 ‘성경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유행하는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리스도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리스도요, 천박한 시에서 끌어온 그리스도요, 자기 뜻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의 그리스도요, 물렁하고 심약한 사람들의 그리스도입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사랑과 은혜와 자비뿐만 아니라 엄격함과 진노가 없는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면 죄에 대한 나의 개념도 위험한 개념입니다. 죄에 대한 나의 개념이 위험하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개념도 부패한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위해 힘써 싸우는 자는?
우리는 유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유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1)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 우리의 진정한 기초가 됩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2)성령으로 기도하라!
여러분의 기도는 성령으로 기도 하고 계십니까?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정욕을 위하여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기도가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단 5분을 기도 드려도 성령으로 드리는 기도는 1년 동안 성령 밖에서 기도하는 잘못된 기도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3)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
신앙에 충실하십시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오류에 빠진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아무도 경멸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경멸의 감정을 품으면 안 됩니다. 경멸은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중에도 늘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4)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그분의 긍휼이 나타날 것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진정한 긍휼이 나타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에 그들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신을 ‘불에서 끄집어낸 타다 남은 나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요한 웨슬레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에서 끄집어낸 타나 남은 나무’ 같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립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진리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싸움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서 충실하다 죽을지라도 진리에 대해 충실 합시다. 좀 더 멀리 내다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시선을 고정시킵시다. 그곳에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편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앉아 계십니다. 영광과 찬송의 날이 올 때까지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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