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다서 1장 20~21절
설교제목: 자기를 세워 나간다는 것
설교자 : 성완석 목사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서 1장 20~21절 말씀
911 뉴욕 무역센타 테러가 일어난지 1주년이 되어갑니다. 전 세계가 놀랐지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무너진 잔해를 치우는 일이 계속되었는데, 한 6개월쯤 지나서의 일입니다. 잘라진 손이 하나 있더랍니다. 몸의 한 부분이 잘라진 것은 너무나 많이 보았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잘라진 손이 무엇인가를 꼭 쥐고 있더라는 거예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을 이렇게 쥐고 있었을까? 궁금해서 그 손을 펴 보았는데, 굳어져 잘 안 펴지는 거예요. 억지로 펴 본 사람들이 놀라고 맙니다. 그 손안에는 아주 작은 또 하나의 손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이 잘라지는 그 순간에도 놓을 수 없었던 손, 어린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나를 붙잡은 주님의 손길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놓을 수가 없어요. 나를 포기할 수 없기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신 거예요. 젖 먹이는 어미가 혹 자식을 잊을지라도 주님은 나를 놓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붙들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어려운 인생살이 가운데에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오늘 본문 20절에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단순히 알고 듣는 것에 머물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의 뿌리가 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직 말씀의 기초위에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영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 정욕대로 살았더라는 거예요. 경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들을 본 받지 말고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권고를 하고 있는 거예요.
건축을 하려면 3가지가 필요한데, 좋은 설계가 있어야 하고, 설게대로 잘 지어야 하고, 짓고 나면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설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 설계가 잘되어야 좋은 건축이 가능하게 됩니다. 100층 빌딩을 지으려면 100층 건물이 올라갈 수 있는 기초가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 기초는 평소에는 잘 표가 나지 않아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르면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일본의 동경에는 임페리얼 호텔이 있는데, 미국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건물입니다. 기초 공사에 2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나머지를 짓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비난을 했습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52년이 지난 후에 동경에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때 이 호텔의 진가가 드러나게 된 거예요. 다른 건물들이 많이 무너졌을 때 이 호텔은 금 하나 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후에 일본 건축계에 라이트라는 이름은 신화처럼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련스러워 보여도 기초가 든든하면 오래갑니다. 흔들리지 않아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든든한 믿음의 반석위에, 말씀의 반석위에 인생을 건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산하지 아니하고, 따지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의지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믿음, 깨끗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장 큰 열매가 안 나타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 앞날을 열어 주시고, 크게, 능력있게, 요긴하게 사용하실 때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런 복된 인생을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너무 믿다보면 하나님없이도 살 것처럼 교만해지고, 자신을 비하하다 보면 열등감에 빠져 패배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거예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 20회 올림픽때 처음 출전한 미국의 마라톤 무명선수 쇼터(Shorter)가 우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수가 출전한 것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이름 없는 선수였는데, 우승을 한 후 인터뷰에서 "저는 남과 겨루기 위해 훈련을 하거나 남을 의식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남과 겨루지 않고 철저하게 저 자신과 싸우고 훈련했습니다. 우승도, 미국의 명예도, 제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나와 싸우고 훈련했을 뿐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나입니다. 돈 벌고도 무너지는 경우 많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했는데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나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중국 동부의 한 농부가 농장에 대나무를 심고 기다립니다. 첫해에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해에도 마찬가지였어요. 3년을 기다리고, 4년을 기다려도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5년째 되었을 때 수백평방미터되는 땅밑에서 대나무 뿌리가 빽빽이 퍼져있고, 헤아릴수 없는 수많은 대나무 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자라는데, 쑥쑥자라서 6주만에 15미터 이상 커지더라는 거에요. 대나무를 잘라서 큰 부자가 됩니다. 어찌보면 마술 같지만, "모소"라는 이 대나무는 싹을 내기 전에 뿌리가 사방 수십미터까지 뻗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싹을 내면 뿌리에서 보내주는 거대한 양의 자양분 때문에 순식간에 자란다고 합니다. 5년이라는 기간은 뿌리를 내리는 준비기간이에요. 무엇이든지 빨리 이룬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뿌리깊은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위에 나를 세워 나가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나 교회나 세월이 흐르면 변하게 되어있는데, 어떻게 변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점점 추하게 변해 간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에요. 우리의 믿음이, 생활이 변질되지 아니하고, 참된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안 된다고 한탄하지 마세요. 조건이나 환경을 핑계하면 실패의 사람 됩니다. 스파르타의 한 장군이 아들에게 칼을 물려줍니다. 그런데 칼이 조금 짧았어요. "아버지 칼이 짧아서 싸울 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짧은 칼을 주셨습니까?" 아버지 대답이 "칼이 짧으면 한발 더 나가 싸워라" 사람들은 환경을 많이 탓합니다. "나는 학문이 짧습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났습니다" "나는 불행합니다" 그렇다면 한 발 더 앞서 나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조건이나 환경을 핑계하지 마세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변화를 이루어 나가되 행여라도 마귀를 닮아가지 아니하고, 날마다 예수 닮아가는 복된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518 1.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2.사랑하기 원합니다 4.예수닮기 원합니다
20절 후반절에 보면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런 의미입니다. 로마서 8:26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나를 보면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기도 안 하는 것 아니에요. 기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를 의지할때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늘 변하는 거예요. 사람의 생각도 늘 변하는 것입니다. 모질게 마음먹었다가도, 쉽게 돌아서는 것이 사람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잘 가다가도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에요.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주님 바라보고, 주님 붙드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로 벅찬 환경속에서 힘이듭니다.
사도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당장 고난이 있지마는 장차 받을 큰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현재 편안하면 좋은 것 같지마는 그 편안함은 장차받을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면, 주님은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힘들어도 좁은 길로 가면 주님께서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 주실때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무거운 것 같아도 주님의 멍에는 우리의 걸어가는 인생 길을 가볍게 하고, 즐거운 길이 되게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으로 살면 죽지 않고 삽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게 됩니다. 아멘! 믿음없이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 면류관을 쓰려고만 하면 결국은 십자가를 지게 되고, 당장 넓고 좋은 것 같아서 그 길을 가면 넓은 길이 갈수록 좁아지게 되고, 나중에는 막힌 담이 됩니다. 주님의 멍에를 지는 대신 편하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종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멍에를 메고 쓰러지게 되더라는 거예요. 성령께서 신령한 깨달음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거예요.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도 살기 어려워요. 어머니의 손이 아이를 기르는 거예요.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재워주고, 그냥 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우리의 어린 심령을 붙들어 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키워 주시고, 인도해 주시더라는 것이지요. 때를따라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생수와 같은 은혜를 주시더라! 아멘! 능력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손이 막을 것 막아 주시고, 물리칠 것 물리쳐 주시더라! 아멘!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감당하기에 벅찬 거친 문제나 장애물만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에는 태양이 언제나 빛나고 있지마는 어떤 때는 시커먼 구름이 가리워서 태양이 보이지 않고 세상이 어둡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구름 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안 보이지만 있다는 것을 알아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 눈에 주님이 직접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을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질 때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라는 말을 해석하는 것에는 학자들 간에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건데, 첫 번째 해석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고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설계로 건물을 잘 지었습니다. 관리하지 않는 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쉽게 망가져요. 잘 세울뿐 아니라 지켜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가난이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에요. 악한 영이 역사하고, 죄가 우리가운데 들어오면 행복을 빼앗아 가 버리는 거예요. 어두운 마음이, 어두운 생활이, 주님 들어 가시면 바꾸어집니다. 무지와 어두움의 세력이 예수 앞에서는 다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14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예수 없는 사람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나 다 어두움입니다. 죄 가운데 살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많이 가져도 그 속에 평안이 없어요. 참 기쁨이 없어요. 그래서 괴로워하고, 답답해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밝으면 어디가도 밝게 살아갑니다. 행복이 마음에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내 마음을 치료할 수 있어요. 나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힘있게 능력 있게 합니다.
우리가 이 거친 세상을 걸어가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납니다. 시편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애가 어버지의 손을 붙잡고 밤길을 걸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도 아버지의 힘있는 손이 꽉 붙들고 있으면, 넘어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살이가 이와 같아요.
계속해서 "긍휼을 기다리라" 인내없이는 믿음 생활에 성공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 인내가 소망에서 나오게 되더라는 거예요.확실한 소망이 있으면 인내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망이 없으면 인내하기 어려워요. 쉽게 포기가 되고 낙심이 됩니다. 심리학자들이 이런 실험을 했어요. 쥐를 독안에 넣은 다음 완전히 밀폐를 시켜서 빛이 전혀 들어가지 않도록 해 놓으니 그 쥐가 3분 안에 죽어 버리더라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는 희망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똑같은 독에 넣고 빛을 조금 들어가게 해 주니 36시간이나 살아있더라는 거예요. 똑같은 여건이었어요. 먹을 것을 넣어 준것도 아니었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 빛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차이가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한 거예요. 우리에게는 참 소망이 있습니다. 아멘! 말씀 붙들고, 주님 주신 약속 붙들고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복을 주시고 근심은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나 환경은 나에게 근심과 걱정을 주지만 하나님은 내게서 근심을 물리치시고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세상이 줄수도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주의 평안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는 석유사업을 해서 큰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 53세 때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고, 질병으로 인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합니다. "당신은 일년밖에 살수 없습니다" 이 말을 되씹으며 고민에 싸여 살아가다가, "기왕 죽을 바에는 베풀고나 죽자" 모아놓았던 재산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기금으로 보내고 사회단체에 보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대학이 시카고 대학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 후원금이 들어와 한글학회에서 큰사전을 펴낸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나누어주다 보니 자신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기쁨과 행복이 오게 됩니다. 삶의 태도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마음도, 생각도, 의지도, 달라지는 가운데 이상하게 잠을 잘 자게 되고, 병세가 호전됩니다. 그 이후로 몇 년을 더 살았느냐? 44년을 더 살았어요. 아픔이, 갈등과 절망이, 그의 삶을 더 값지게 만든 거예요. 실패가 축복이 되고, 질병이 오히려 복이 된 것입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이 있습니까? 실패가 있습니까? 아픔이나 실패를 축복의 기회로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무슨 직업을 갖든지, 살아가는 동안 나를 건축하고 잘 지켜 나갑시다. 믿음을 지키고, 나를 지켜 나가되, 죄와 시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믿음의 가정을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칭찬받는 종으로 우뚝 서거니와 나 때문에 가정과 자녀와 후손들이 복을 받는 그런 제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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