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다서 1장 20~25절
설교제목 : 주께서 지키시리라
설교자 : 신기형 목사님
서론: 코스타 유머
코스타에서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말씀을 드리겠다.
한 경상도 할머니가 비행기를 탔다.
앞에 보니 비즈니스 석에 자리가 비어 있어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승무원이 와서 이곳은 비즈니스 석이라고 해도 비워둘 바에는 내가 앉아 가겠다고 막무가내였다.
이를 보던 한 다른 탑승객이 할머니에게 귓속말에 말했다.
그러니 할머니가 금방 일어나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승무원이 무엇이라고 말했냐고 물으니
그 탑승객이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 칸은 광주가는 칸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했다.
택시 기사 이야기
한 여성이 기사에게 제가 언니 집에 가자고 했어요
동생집에 가자고 했어요?
기사, 아니 언제 타셨어요?
마리아 요셉 이야기
구봉서 장로님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 친구가 자꾸 마리아가 성령으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것을 믿느냐고 집요하게 물었을 때, 요셉도 가만있는데 왜 니가 난리냐고 말했다고 한다.
1. 유다서와 유다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적은 서신이다.
특정 지역, 특정 교회에 보낸 서신이 아니라서 그 이름을 저자의 이름, 유다라고 했다.
빌립보에 보냈다면 빌립보서라고 했을 것이고
고린도에 보냈다면 고린도서라고 했을 것인데,
일반적인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이라서
베드로 전후서처럼
요한 서신처럼
저자의 이름을 따서 유다서라고 불렀다.
유다서는 자기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의 형제 유다는.
여기서 유다는 자기 형제 야고보를 소개하는 것을 본다.
어떻게 보면 유다는 그 형제 야고보로 인해 늘 가려졌던 인물이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처럼 평생 안드레보다는 베드로의 동생으로 불리우고 소개되고 알려진 자와 같다.
형제의 그늘에 늘 가려진 자.
그러나 그는 자기를 소개할 때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남도 스스로도 교회의 지도자며 야고보서의 저자인 자기보다 유명한 사람을 자랑스러워하며 그 동생으로 자기를 소개한다.
이렇게 자기 위치 자이 역할 자기 신분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종은 이름도 권리도 명예도 없는 자가 종인데,
유다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알았고 그렇게 늘 살아왔기에
누가 나보다 앞서든지
또 누가 나보다 뒤에 있든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종으로 살면 자유가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도에 대해서 말한다.
성도가 누구인지.
두 가지로 말하는데 하나는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즉 사랑받으라고 부르신 것이고 사랑하라고 부르신 것이다.
사도요한의 위대한 하나님 진술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우리를 부르신 것, 구원해 주신 것, 자녀 삼아 주신 것, 이는 사랑을 받으라고.
그리고 그 받은 사랑을 나누라고.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우리는 미쁨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은 일향 미쁘시니.
우리의 공로나 가젹이나 상태에 따르지 않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분의 간절한 소원과 희생을 위해서 우리를 지키시는데
이런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 우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다는 이런 사랑 안에서 부르심을 받고 지키심을 입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다.
3. 사랑하는 자들이 힘써야 할 것
세 가지이다.
1)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지극이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유다는 건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믿음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설명해 준다.
우리는 집은 짓는 자들인데
그 기초 그 반석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왜 건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또 그냥 믿음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 건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이라는 집
우리 자녀의 미래라는 집
우리 가정의 집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집을 욕심위에 짓는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계속 노력하고 무엇인가 더해갈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물질 위에 짓는다.
물질이 많고 물질이 든든하면 우리 자녀의 미래, 우리 가정, 우리 인생이 잘 지어질 것이라고 보고 계속 물질을 더 많이 더 안전한 곳에 쌓고 두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지식
어떤 사람은 학교
어떤 사람은 결혼
우리는 어디에 기초해서 집을 지어야 하는가?
바로 거룩한 믿음
왜 믿음을 거룩하라고 했을까?
믿음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그 믿음과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 물질이면 다 해결된다. 학교가 중요하다는 그 믿음과는 다르다.
코스타에서 한 목사님이 자기 딸은 먹는 것은 잘하는데 공부는 너무도 취미가 없다고 했다.
한번은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내외가 다 할말을 잃었다고 했다.
그때 그 목사님, 자기는 그 성적을 믿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 성적을 기초로 아이를 판단하고 미래를 판단하지 않기로.
하나님을 믿기로. 하나님의 역사와 뜻과 전능하심을 믿기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의지하고 붙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을 보라.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한 자들이다.
아브라함 비록 장막에 거했지만 고향과 친척을 떠났지만 그는 그의 인생을 거룩한 믿음에 따라 살았다.
노아, 비가 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해안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해서 그는 120년동안 방주를 지었다.
모세,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부하고,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주실 상을 더 크게 바라본 것.
이것이 다 믿음위에 약속위에 짓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위에 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의 역시에 동참하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었다.
믿음의 조상이 되고
가족을 구원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며 백성들이 거듭나게 하였다.
오늘 본문 앞에 단번에 주신 믿음 위해 힘써 싸우라고 이 서신을 적는다고 했다.
이 한 번에 주신 믿음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노아에게 있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말한다.
동일한 구원, 동일한 믿음.
이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해 가야 한다.
말씀에 따라 선택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의 인도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2) 성령으로 기도하고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한다.
우리는 세우는 자이면서 동시에 기도하는 자이다. 왜 기도해야 할까?
두 가지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는 늘 문제 앞에 서기 때문이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고 했는데, 언제나 문제는 나에게 오게 된다.
하나가 끝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고 또 해결하면 또 찾아오고.
그래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시라.
또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데, 그분의 마음도 알고 그분의 능력도 알고 그분의 사랑도 알고, 이는 기도 시간에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자라는 것이다.
메튜 핸리는 기도를 가리켜 믿음의 젖을 먹여 주는 유모라고 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는 방법은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에는 반드시 함께 오는 것이 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다.
우선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마땅이 빌 바를 알려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주신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해서만 아는데 기도할 때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감사함도 생겨나고 통찰력도 생기고 담대함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을 받는 길은 또한 기도에 있다. 예수님은 그냥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지 성령이 임하면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홀연히 임하였다.
베드로가 옥에서 나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빌기를 다 하매 땅이 흔들렸는데 지진이 나는 것처럼.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려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복음에 의하면 구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성령이 임하시고 도우시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이번 코스타에서 깨달은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있어야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나도 있으리라. 혼자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기도해야 한다.
또 말씀에 의해서 기도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기에 말씀을 따라 기도하면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기도하면 성령께서 기쁨으로 임하시고 도와주신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우리 가정과 나라와 직장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내가 죄를 사한 것처럼 내 죄도 사해 달라고. 당신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해 달라고.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께서 임하시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
성령께서 권능을 주실 것이며 성령을 통해 말씀위에 자신을 세우는 확신도 들게 될 것이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3)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키라
마지막으로 성도는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자라고 한다.
사랑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그냥 느끼는 것이고
사랑은 그냥 경험하는 것이고
사랑은 그냥 받는 것이라고 알았는데
사랑은 지키는 것이라니.
하나님의 사랑은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임하기 때문이다.
고난으로 오기도 하고
연단으로 오기도 하고
아픔으로 오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올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한다.
그 긍휼을 잘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을 지키는 것이다.
또 사랑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심하는 자를 긍휼이 여기라고 말씀한다.
두려움으로 긍휼이 여기라고.
상처는 사랑하려고 할 때 받는다.
반응 없음에 의해
또 기대보다 반응이 적게 오거나 열매 없음에 의해 우리는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 불이라도 조심하라고 했다. 구원하려고 갔다가 미움과 실망만 안고 올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아주 격려가 되는 말씀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이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도록
이 뜻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영생이 이미 사랑 받은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생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 입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영생에 이르시기를 원하시기에
우리의 긍휼이 여김에 도와 주시고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이다.
코스타에서 이동원 목사님이 한 목사님의 일화를 소개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과 너무도 비슷해서 많은 도전을 받은 내용인데
한 미국 목사님이 집회하러 갔다가 비행기가 연착해서 첫날 집회를 놓치고
밤 늦게 식사하러 식당으로 갔다고 한다.
한참 먹고 있는데 경건치 못하던 여성들이 들어와서 음식을 먹고 씨끄럽게 떠들었는데 그 내용은 한 여성이 내일 내 생일이라고 말하고, 다른 여성들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데 하면서 무시하였다고 한다.
이 목사님은 순간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때 음성이 들리기를 네가 생일 파티를 해 주어라.
그래서 그 여성이 간 다음 식당 주인에게 이 여성들은 자주 오냐고 하니 매일 온다고 했다.
내일 밤 이 시간 그 여성을 위해 생일 파티를 하고 싶은데 준비해 줄 수 있냐고.
그리고 집회가 끝나 늦은 밤 준비를 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먼저 오라고 하고 그 당사자가 들어왔을 때 생일 케일에 불을 켜며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고 한다.
그 여성이 하는 말, 몇 년 만에 받아 보는 케익이라서 먹지 않고 보관하면 안되겠냐고.
그리고 기도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도가 끝났을 때 다른 여성이 찬송 하나 부르면 안 되냐고. 그래서 예수 사랑하심을 거룩하신 말일세를 불렀다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늦은 밤 식당에 임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정자에 있는 아이들을 초청해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
생일자를 축하하는 시간도 있다.
이 아이들로 인해 우리가 힘들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을 지키라고 말씀한다. 어떤 의심하는 자를 긍휼이 여기며 시험 가운데서라도 건져내라고 하신다.
이를 하라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분의 생명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이 필요할 때 하나님은 사랑을 부으셔서 그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온전케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결론: 지키시리라
오늘 성도를 향해 말한다.
영원한 그 나라에 드러 갈 때까지 우리를 지키시리라.
믿음위에 건축하도록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사랑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책임져 주실 것이다.
다른 일들이 잘 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건축하고
기도에 힘쓰고
사랑에 실천하고 붙드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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