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2절
설교제목 : 한 사람 유다
설교자 : 김영선 목사님
유다서(Jude)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Jude, the servant of Jesus Christ, and brother of James, to them that are sanctified by God the Father, and preserved in Jesus Christ, and called) NIV
• 한 사람 유다와 같이 주어진 이름에 가치 있는 삶을 사세요
제 이름은 영선(榮善), ‘영’은 학렬따라 정해졌으며 ‘선’은 전설적이거나 과학적인 것도 아니요 그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도움을 의지하며 선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이름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러분의 이름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아마도 모두의 이름은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축복된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 배역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 가치는 대단히 다릅니다.
그러니 같은 이름에도 최선(the best)가 있고 최악(the worst)가 있습니다. 유다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친 동생으로서 육신적 형의 영예의 이름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화해로 초대교회 지도자요 전도자요 그리고 교회를 신실하게 지킨 최선(the best)의 사람이요, 또 하나는 유다와 같이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물질 탐욕으로 인해 은 30에 주님을 팔아 뉘우치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황급히 성전에서 뛰쳐나가 힌놈의 골짜기 절벽 위에 목을 매어(행 1.18)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제자로서 최악(the worst)의 사람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 위에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할 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보다 가치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유다’란 이름은 영어로 Jude, Judas and Judah로 표기하며 아마도 조상들의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이름이며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대한민국의 가장 흔한 이름, ‘민준’ ‘서연’ ‘철수’와도 같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의 넷째 아들의 이름도 ‘유다’인데 그는 일처리에 신중하여 설득력이 있어 이론이 정연한 변론가였습니다. 그는 어린 동생 요셉을 형들이 죽이기로 모의할 때에 그를 구하기 위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합니다(창 37:26-27). 그리고 이 유다 지파에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서 저자 유다는 예수님의 친 동생(야고보, 요셉, 유다, 그리고 시몬) (마 13.55, 27.56, 막 6.3)이며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신실하며 충성된 제자 였습니다(막 3:16-19,마 10:2-4,눅 6:14-16, 행 1:13). 즉 예수님의 12제자는 시몬 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들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예수님 동생], 다대오[예수님동생, 유다], 가나안 사람 시몬, 가롯 유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은 귀하고 이 세상에게 가장 존귀합니다. 그러므로 이름만큼 가치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델이 바로 유다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삶인지 함께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사는 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종’(servant)이라는 단어이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주님 자신이 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심으로써 종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분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7) 그분은 종으로 섬기는 일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종노릇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섬김’(service)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성경에서 명사 ‘섬김’과 동사 ‘섬기다’(serve)는 약 500번 나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다 끝날 때에 비로서 우리는 성경에서 이 단어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삶을 되돌아볼 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인생만이 가치 있는 인생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제 일 되는 계명입니다. 시편에서 다윗 왕은 거듭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시 27:9)라고 간청하며,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소서”(시 31:16)라고 부르짖는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겼다. 우리 자신을 종으로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이들을 섬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의 삶의 자세이다.
유다는 친형 예수님을 육신의 형이라기 보다 오히려 주의 종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즉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됨을 더욱 가치있게 여겼습니다. 육신의 형 예수님의 이름만 제시해도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울텐데 그는 전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였습니다. 종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분별하여 감당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도 마 12.48-50절에서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이와 같이 주님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잘 분별하여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주의 종으로 잘 섬길 때 환란의 때에 보호하신다. 노아는 당 시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의로운 삶(창 7.1)을 살던 그는 그의 아내, 세 아들, 그리고 세 자부들에게 예비한 방주로 들어가게 하신 후 하나님은 그들을 홍수로부터 보호하신다. 이와 같이 유다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도 이기 전 주의 종인 것을 자원하며 주님의 능력 안에 있기를 원했다.
마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 진실한 종은 하나님께서 환란 날에 보호 해 주십니다.
• 진실한 종은 겸손히 자신의 사명에 관심을 갖습니다.
•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로 사는 유다
어느 날 프랜시스가 섬기는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 중 누군가 죽을 훔쳐 먹자 그의 제자들은 열을 올리며 분개한다. 그 모습을 보는 프랜시스는 강력하게 금식 중 먹는 음식 문제에 제기하는 제자들을 타일러 함께 먹고 다 하나가 되자고 한다. 왜냐하면 남을 정죄하는 자리로 발전하기 보다 차라리 의가 부족한 줄을 아는 것이 낫고, 은혜를 적게 받아 남을 판단하기 보다 큰 은혜를 받아 말과 행동이 놀랍게 변화 되어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혜 입은 자’란 뜻은 영어로 ‘called’ ‘Christian’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성도’라고 부른다. 성도는 자신에 의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가능하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의 존귀한 이름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되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치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없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무엇이 우리에게 옳은 것인지 모를 때 큰 도움이시요 능력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를 입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은혜를 입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신앙 고백할 때 은혜를 입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룩한 성도가 되는 은혜를 입습니다.
벧후 1.4,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 주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로 부름 받았음을 감사합시다.
• 주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 매 순간, 매시간, 매일 매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의 가치있는 삶이었습니다.
시 138.8,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찌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셋째, 하나님과 화해하는 유다
2절에서 유다는 긍휼, 평강 그리고 사랑을 축복한다. 이와 같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짐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의 성도는 하나님과의 화해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긍휼, mercy)는 샘솟는 선의 근원입니다. 샘솟는 평강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샘솟는 사랑의 근원입니다.
막 10.46-52,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때에 디메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불쌍히’여김을 받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화해된 것이다.
• 이와 같이 유다는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에 삶에 가치를 두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하란에 있는 삼촌 라반으로 집으로 가서 20년의 세월을 보내며 아내를 얻고 종들을 얻으며 게다가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 올 때 마하나임이라는 땅에서 하나님의 사자(군대)를 통해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고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그 소유도 건너게 한 후 야곱은 홀로 남아 날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고 먼저 하나님과 화해을 하므로서 형 에서의 칼날 대신 형제애로 상황이 바뀌어지는 전화 위복의 복을 누리게 된다.
• 이처럼 하나님과의 화해는 원수가 형제가 되게 한다.
•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풍성한 은혜로 준비하고 계신다.
말씀을 맺습니다
신약 성경 가운데 유다서는 한 장으로 된 가장 짧은 책입니다. 유다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초대교회의 지도자였고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동명이인 가운데 가롯 유다는 은화 30개를 받고 예수를 판 사람입니다.
• 이와 같이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느냐를 따라 그 가치와 존재 의미가 달라집니다.
유다는 초기에는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훗날 예수 믿고 변화되어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까지 되었으나 물질의 탐욕으로 인해 예수님의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인 중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예수님을 위해 땀흘리고 충성을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교인이지만 교회를 헐뜯고 비난하고 훼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유다도 있고, 가롯유다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이름을 어디에 가치를 더 두어야 하겠습니까?
• 세상과 하나님 앞에 섬기는 자가 되어 가장 아름다운 이름 종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환란날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의 손길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자비(긍휼)을 입음이 선, 평강, 그리고 사랑이 샘솟는 원천입니다. 이에 가장 가치를 두며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드라마에서 줄곧 악역만을 맡았던 탈랜트가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역은 깡패, 도둑, 주먹질, 마약밀매, 사기, 횡령, 음모 꾸미기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의 삶은 건전하고 성실한 생활을 하며 사랑과 존중을 받는 남편이요, 아버지요, 그리고 가장입니다. 그런데 식당에, 백화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휴 저 나쁜 놈, 생긴 꼴이.. 못된 짓만 골라하게 생겼군”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맡은 역할 때문입니다. 좋은 역할 악한 역할 중 여러분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이름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며 어떤 역할을 하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은혜를 입고 그분과의 화해하는 사도 유다와 같은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신약 > 유다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다서 1장 24-25절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 김태환 목사 (0) | 2023.02.21 |
---|---|
유다서 1장 1-4절 힘써 싸우라 - 최덕훈 목사 (0) | 2023.02.20 |
유다서 1장 1-2절 성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 최덕훈 목사 (0) | 2023.02.20 |
유다서 1장 17-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 김영선 목사 (1) | 2023.02.20 |
유다서 1장 3-4절 진리를 위해 힘써 싸우라 - 이삼규 목사 (0) | 2023.02.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