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요 3 : 1 - 15
설교제목 : 중생의 의미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중생의 의미"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의 관원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 나라를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스리는 산 헤더린이라는 요사이의 국회와 같은 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존귀한 관원이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런데 으레 산 헤더린 회원은 예수그리스도를 이단으로 정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축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정작한 마음으로 생각해볼 때 예수님은 비범한 분이고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마음속에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행적에 그는 깊이 영혼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언제고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지마는 대낮에 겁이 나서 만나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하루 저녁에 날이 어두운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갔었습니다. 사람들이 집안에 있고 밖에 나오지 않은 날에 예수님이 계신 곳을 수소문해서 그는 몰래 어둠을 타서 예수님 계신 곳에 찾아가서 그리스도와 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선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생과 같이 계시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 거듭난다고요?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또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거듭나겠다고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란다." 니고데모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봐라, 바깥에 바람이 임의로 부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바람은 보이지 않지 않느냐 그러나 흔들리는 나무는 바람이 지난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다 그와 같으니라 내가 세상일을 말했고 너가 모르는데 하늘나라 일을 말하면 어떻게 알겠느냐. 하늘나라 일은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자 이외에는 잘 수 없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일련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들어도 알 수가 없고 보아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주님께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의미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오늘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함을 외면적으로 연출해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때 한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요, 철학이나 윤리와 도덕, 규율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애 속에 근본적인 위대한 변화를 성령께서 가져온다는 것을 외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다음에는 물에 들어가서 목사님께 의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에 잠김 바 되고 그리고 물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내면적으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외면적으로 체험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에 잠긴다는 것은 물 무덤 속에 들어가서 죽어서 장사 지냈다는 의미가 되고 물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다시 부활해서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역사가 우리가 물 침례 받을 때 외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내면적으로 성령께서 그런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의 육의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속에 속하고 세상을 따라 살던 육의 사람이 죽고 옛 아담의 삶에서 단절되어 버리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의 참여하는 이런 위대한 변화의 역사가 우리의 속에 성령의 기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 우리는 예수를 믿으므로 세상과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백성이 되어서 천국 백성으로 살게 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물로써 거듭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는 이와 같은 체험이 우리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로 침례 받는 그것이 바로 내적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일으키시는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한 현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옛사람은 예수를 믿을 때 침례 받는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역사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옛 육신의 아담을 통해서 살아온 삶이 종결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장사지내는 것처럼 옛사람은 그리스도안에서 장사지내 버리고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부활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 속에서 올라온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은 다시 부활하여서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가운데 여러분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옛 세계에서 여러분은 단절되었습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옮겨서 하나님의 사랑의 하늘나라로 이주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은 옛날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존재 적인 바탕에서 어떻게 새롭게 변화되는지 알지 못하고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 교회 왔다, 갔다 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큰 비극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한 것은 종교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존재 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소위 말하는 중세인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우리는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새롭게 태어남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이와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정하여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와 같은 중생을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중생을 확실하게 다시 체험하고 이 중생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찬이라는 귀한 밥상을 차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찬은 바로 천국의 식탁인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그 다음 이 자리에 참석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 승리에 동참하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찬은 중생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중생한 사람이 내가 중생한 그 자격이 어떠한 것을 하나님의 식탁에서 다시 한번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왜 깨어진 몸을 먹고 피를 마실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해서 나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원죄와 자범죄를 예수님이 다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청산했다는 것을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예수의 용서를 먹고 마셔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용서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영원한 의로움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영원한 구원을 받아들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므로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 나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내가 인정하고 바로 중생을 했기 때문에 이 은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의 떡과 잔을 먹을 때 이것은 내 죄가 영원히 용서받았다. 나는 이제 영원히 의롭게 되었다. 영원히 구원을 받았으며 영원히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중생한 사람이 어떠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을 성찬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정해주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성결의 은혜에 참여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아 온 우리 생애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결하게 되고 그 죄악의 끄나풀에서 풀려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2절로 3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거쳤음이라" 예수님께서 바로 죄를 거쳐버렸습니다. 죄악의 힘을 끊어버렸습니다. 죄악의 능력을 끊어버렸습니다. 육체의 고난을 당할 때 죄를 걸머지고 죄악의 모든 권능을 빼앗아 버리고 주님께서 죄를 멸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이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나의 생애 속에 죄는 아무 힘이 없고 죄가 나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죄가 관영해도 그 더러운 죄가 이제 나를 포로로 잡을 수도 없고 나는 죄의 종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고백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우리를 얽어매는 죄악의 힘이 스스로 다 풀리고 쇠사슬이 끊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하기를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연락과 무반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난 때가 족하도다" 예수를 믿기 전에 지난 때에는 이러한 죄악의 포로가 되었지마는 이제 중생을 한 사람, 그래서 성찬을 받아들인 사람은 중생과 성찬을 통하여 이와 같은 힘들에게서 놓여남을 받은 것을 다시 한번 확정하는 것이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나를 얽맨 모든 추악한 죄악의 힘은 사라지고 더러움은 사라지고 나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참여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찬의 떡 과자는 또한 치료의 은혜에 참여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몸이 찢어지고 그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그것을 철폐하기 위해서 고난 당하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살은 치료의 살이요, 예수의 잔은 치료의 잔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 그리스도의 치료를 먹고 마시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끝없이 부요한 분이었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지으시고 나서 다 소유하시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신 분인 것입니다. 끝없이 부요한 그 분이 그 부요를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시고 베들레헴의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누이시고 그의 33년의 생애는 풍찬 노숙을 하면서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살았었습니다. 오 예수께서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고 우리의 고난과 우리의 실패를 주님께서 다 제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우리가 누릴 수 있고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요를 마셔들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축복을 마셔들이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마셔들인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가 깨어지고 그 때문에 그리스도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희생을 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므로 나는 고난에서 해방된 것을 선언합니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이와 같이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세계에서 해방을 얻고 그곳에서 자유를 얻고 그리스도의 부요함에 참여하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개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날 위해서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셨으므로 나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주님이 부활로서 다시 살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찬의 살과 피를 먹을 때 나는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입니다. 나는 마지막날에 부활합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죽을 몸이 영원히 사는 몸으로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함께 살게 되었으면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한 사람이 다시 거듭 성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어떠한 확고하고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 사실을 마음속에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입니다. 물로 침례를 받고 그리고 성찬을 떼는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떠한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우리는 믿고 알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중생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결혼에 비유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로마서 7장 1절로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었나니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않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복을 결혼에 비유해서 성경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쁜 남편은 율법과 마귀의 하에서 우리는 태어나서 살았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육신으로 태어났을 때는 태어나자마자 우리들은 시집을 갔습니다. 어디에 시집을 갔느냐? 나쁜 남편인 마귀와 율법에 간 것입니다. 마귀는 율법을 가지고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켰습니다. 밤낮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우리의 약점을 파헤치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온갖 고통을 다 당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여인들도 만일 나쁘고 흉악한 남편에게 시집갔다면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짓밟히고 구박을 당하고 얻어맞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면서 죽기를 간구할 것입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이런 남편하고 같이 사는 것은 나에게는 환멸이다.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죽어지지도 아니하고 절단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내가 죽어서 이 남편에게서 더나가 환생을 했으면 다시는 이 남편에게 시집오지 아니하고 이런 남편하고 살지 않고 좋은 남편, 착한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바로 율법과 마귀의 남편에게 짓밟히고 시달리고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 당하고 비평을 당하고 늘 열등의식과 좌절의식 속에 살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남편에게 놓여날까. 그냥은 놓여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지낸바되고 부활하셨는데 이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 자동적으로 우리는 세상과 옛 남편 마귀에 대해서 죽어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사지내버리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환생을 할 수 있다는 기쁜 복음의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이러므로 옛 악한 원수 마귀 율법의 남편에게서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이건 너무나 복된 소식입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던 몸이 이제는 예수를 믿으면 자동적으로 예수 안에서 죽어서 옛 남편인 마귀와 율법에서 해방이 되고 다시 부활해서 새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에게 시집갈 수 있다니 이것보다 즐거운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마귀와 율법의 전제하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기쁘게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예수를 모시자마자 거대한 우주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사람은 옛 사람이 되어서 죽어버린 것입니다. 장사지내버린 것입니다. 마귀가 와보고 "죽었네? 여태까지 살아있더니 왜 죽었나?" 예수를 믿고 그만 마귀에게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마귀의 세계에서 장례 지내버리고 마귀의 호적에서 빨간 줄을 그어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이 없어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장사지낸바 되고 이제 다시 부활을 했습니다. 부활을 하고 보니 그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럽던 마귀 남편에게서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어서 마귀 남편과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활해서 보니까 여기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를 신부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좋은 신랑 예수님께 영접을 받아 예수님의 신부가 되니 예수님이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겨서 의의 옷을 입혀주고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은혜와 진리의 집에서 살게 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시집을 와서 이제 예수와 함께 사는 삶은 그 나날이 꿈과 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내들이여 남편을 공경하고 복종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내가 할 일은 남편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것이니 우리는 주님을 전적으로 경외하고 예수님께 복종만 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희생을 해야 됩니다. 사랑은 받은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희생을 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아내된 성도들, 교회를 주님께서 사랑하기 위해서 성도들 대신에 그들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된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 주님께서 그 아내된 교회에게 예수님은 성령을 주시고 예수님은 치료하시고 축복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돌봐 주시는 것이 우리의 좋은 남편,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그 큰사랑으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중생 했다는 것은 바로 마귀와 율법의 흉악한 남편에게서 죽고 장사지내버리고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좋은 신랑, 예수에게 시집을 온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좋은 신랑, 예수와 함께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매일같이 여러분의 신랑의 얼굴을 쳐다보고 매일같이 여러분 신랑의 손을 잡고 매일같이 여러분 신랑과 함께 살고 여러분 신랑을 감사하고 찬미하고 경외하며 신랑께 복종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여러분의 신랑 되신 예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다 책임져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고 여러분과 함께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다 혹은 중생 했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이전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이전 사람의 것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 이전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 아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와 영원히 단절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단절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찬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 사실이요 이것은 결혼에 비유해서 옛 신랑에게서 죽어버리고 그 호적에서 빨간 줄이 그어지고 연관성을 상실해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부활해서 좋은 신랑 예수님과 더불어 이제 우리는 24시간 같이 살고 영원히 같이 삽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은 내일은 오늘보다 좋고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좋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부활의 몸을 얻어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를 상속으로 받고 영원을 아버지께로 상속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성령 안에서 천군 천사를 거느리고 또 살고 또 살고 또 살고 또 살게 될 것인 것입니다. 자고 나도 새롭고 깨어나도 새롭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새로운 삶을 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오늘 성찬을 떼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므로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옛 사람을 꿈에 본 듯 잊어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은 새사람을 굳세게 부여잡고 그 새사람 가운데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종교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의식을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근본적인 새로운 창조로써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위해서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옛날에 그렇게도 짓밟히고 구박 당하고 고통을 당하던 옛 신랑 원수마귀와 율법 하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좋은 사랑의 신랑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한 소망 가운데서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얻어서 살게 된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은혜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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