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16-20절 보혜사 성령님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3.
반응형

설교본문 : 요 14 : 16 -20
설교제목 : 보혜사 성령님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넘치는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 고독이나 소외감 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곧 남은 자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고독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갈 기력을 상실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실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자기의 처자나 점포나 고향을 떠나서 열심히 주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너무나 충격을 받고 아예 망연자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또 거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저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셨으면 훨씬 좋았을 것인데, 왜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제자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슬픔에 꽉 들어찼습니다. 급기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장사 지낸바 되시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셨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제자들은 마음에 안도감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뿔뿔이 헤어지기도 하고 또 유대인이나 관원들을 두려워해서 숨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 날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한 열흘 동안 주님께서 주시겠다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였더니 그들 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아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쫓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분도 아니오, 여기 나타났다 저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도 아니오, 그리스도께서 자기들 속에 24시간 내주하시는 예수님 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그들의 중심을 꽉 잡았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자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긴 동면과 같은 삶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그들 속에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하신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느냐? 왜 장사하셨다 부활하셔서 승천해야하는가? 그 이유를 절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자말자 성령께서 그들의 눈을 밝히시고 마음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를 깊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바로 저들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함이요. 저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부어주시기 위함이요. 성령을 받아서 그들이 세속을 피해 나오고 마귀와 싸워서 이길 힘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흘린 것은 저들의 연약함과 질병을 대신 짊어지기 위함인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저주를 다 대속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서 장사지내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방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영원한 천국과 영광을 그들에게 허락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고난 당하셨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거대한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온 천하 만국에 나가서 증거 할 복음의 메시지의 내용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고 새 것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그들 자신이 고아와 같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 자신과 함께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임재하여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가져오는 엄청난 역사적인 우주적인 구속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지혜와 총명을 얻어서 담대하게 일어나 외칠 수 있는 처지에 이른 것입니다. 오순절 그날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조그마한 비자 앞에서 부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대하게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 되심을 선포할 때에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물가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5천 명의 남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서 순식간에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득히 채우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온 로마 제국으로 나가서 삼백 년 이내 로마 제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무릎 앞에 꿇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강림의 위대한 결과인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의미를 우리가 알아봅시다

첫째로, 다른 보혜사란 의미가 무엇일까요?

다르다는 의미는 헬라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알로스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헤테로스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그 헬라어는 알론 파라클레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로스라는 말은 똑같은 것이 두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 다른 것을 말할 때 알로스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헤테로스라는 말은 전혀 다른 두 개가 있을 땐 첫째고, 그 다음 다른 것을 말할 땐 헤테로스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헤테론 파라클레툰이라고 말하지 아니하시고 알론 파라클레툰을 보낸다고 말씀하시므로 내가 첫 보혜사인데, 나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이 망연자실하고 절망에 처해 있을 때도 조금도 동요하지 아니하시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으신 것은 예수님이 가시는 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다시 옴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강림이요, 성령 임재하심은 예수님의 임재하심이요. 성령의 사역은 바로 예수께서 사역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록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고,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지만, 두 하나님이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이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시면 성령도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이 권능이시면 성령도 권능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원하신 것처럼 성령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하시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처럼 성령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처럼 성령도 예수 이름으로 병을 고치시고, 예수님이 가르친 것처럼 성령님도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위로한 것처럼 성령님도 예수님 이름으로 위로하시되, 오히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행한 일을 제자들이 할 것이며, 오히려 더 큰 일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하실 것이요, 내가 가면 저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데, 이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로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2천년의 세월을 지났지만 조금도 변치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초대 교회 주의 백성들과 같이 있은 것처럼 지금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이 자리에 임재해 계십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이 불란서 파리에도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성령이 지금도 임재해 계신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와 같이 계신 성령 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로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신하실 성령님을 여러분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것처럼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제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느꼈던 그 엄청난 느낌을 여러분이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므로 돌아가신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변화에 변화를 가져오고, 엄청난 소용돌이를 치고 있습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 속에 바로 5분 후에 무엇이 일어날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할린에 일어난 대지진을 보십시오. 밤 한 시에 사람들이 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천지를 모르고 휴식할 순간에 천지가 진동하고 아파트가 무너져 내려앉고 땅이 가라앉고 삼천 명의 사람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사람들은 모두다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을 예측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 변화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속에 평안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속에 와서 계시고, 성령 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가져오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성령이 오지 않을 것이요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겠다" 고 말씀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계실 수 있지만, 성령은 파라클레토스, 보혜사는 즉 바람이라. 바람처럼 우리 모든 사람과 같이 계십니다. 오늘 바람을 독점한 사람을 보셨나요? 모든 사람은 다 바람 속에 있고, 바람을 마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바람처럼 성령을 통해서 임재하시고, 그리고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제는 소수의 사람만 예수님과 교재하고 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육으로 가시고, 성령으로 오시는 것이 훨씬 더 유익된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께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 지 그 사실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 이하에 보면 거기에 대한 말씀을 상세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성령 시대는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성령 싫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만 원해. 유대 민족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싫어. 우리는 야훼 하나님만 섬기겠어. 그러나 야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 초기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 성령 싫어 나는 예수님만 직접 믿겠어" 그렇게 말하는데 그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 이제는 성령을 보내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시므로 성령을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바로 지혜의 영인 것입니다.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인데 우리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고 고통당할 때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계셔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주십니다. 성령은 또한 총명의 영이십니다. 우리에게 총명을 주셔서 사물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전에는 캄캄하여 모르던 것이 성령이 오시자 마음에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진리가 밝히 깨달아 지게 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모략의 영이신 것입니다. 모략이라는 것은 나쁜 의미로써 모략이 아니라 카운셀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조언해 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카운셀링입니다. 성령은 카운셀링의 영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을 가르칩니다. 가정사, 자녀를 기르고 결혼하고 사업을 하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성령은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기다리면 성령이 마음속에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명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재능의 영이십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바로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얻고 능력이라는 것은 이런 힘만 능력이 아닙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기도할 수 있는 능력도 되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도 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되고 , 그리고 구제하는 능력도 되고, 행정 처리하는 능력도 되고 여러 가지 능력을 하나님의 성령은 주십니다. 특별히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믿음의 은사, 기적의 은사, 병고침의 은사 등 같은 이런 능력도 성령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은 바로 지식의 영인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저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시리라 내가 네게 한 말을 기억나게 해 주시리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므로 우리가 깨달아서 많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성령 오시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었다고 부활하신 의미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을 하나의 참패로 알았습니다. 패배로 알았습니다. 오늘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하시면 이것은 일대 우주적인, 구속의 대역사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아 의인이 됐다는 지식, 우리는 성령으로 순결하게 됐다는 지식을 주시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병 고침을 받았다는 지식을 주시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지식을 주시며,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되어 천국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새로운 지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오셔서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참으로 공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 맘대로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래서 오셔서 우리를 세속에서 분리해 내어서 생각이 거룩하고 말이 거룩하고 행동이 거룩하게 만드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이요. 성령은 또 위로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질 때도 있고, 고난에 부딪칠 때도 있고, 큰 슬픔에 부딪치고 상처 입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은 오셔서 우리 마음을 붙잡아서 위로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큰 충격과 고통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인도하는 영으로써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목자가 양을 이끌 듯이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연약함이 있지 않습니까. 그 연약함을 도우셔서 약한데서 강하게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한 책망하는 영으로써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의 잘못된 일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의 죄책, 책망을 듣고 우리는 통회하고 자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놀라운 많은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반응형


셋째로, 우리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이젠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로 14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꼭 같이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감정을 가지고 계시고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육체를 안 가지고 있지만 성령은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인격자인 것입니다. 인격자는 인격자로써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인격적인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부간에 사랑하고 백년회로하자 하더라도 만일 서로가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고 인격을 무시하는 모독적인 발언을 하면 그 가정은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격을 모독하는 말은 사람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적더라도 자존심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자존심인 것입니다. 인간이 자존심마저 내어 던져버리면 그 때는 짐승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있습니다. 하물며 보혜사 성령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신격을 가지고 계신 성령님은 무한한 자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면 성령님은 손을 떼고 맙니다. 성령님은 떠나가고 맙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성경을 슬프게 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 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러한 큰 자존심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늘 같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과 교제가 있어야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 성령과의 교통이라는 헬라어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바로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친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친교는 어떻게 합니까? 서로 인정하고 다정하게 인사고 악수하고 포옹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임으로 우리가 친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성령은 육체로 안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과 친교하기 위해서 "성령 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의지합니다. 보혜사 성령이여. 감사합니다. 저를 이끌어 주옵소서"를 말해야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같이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님은 또한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추수꾼의 주인입니다. 교회의 책임자요. 영혼을 구원하는 총사령관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 받은 머슴들입니다. 일꾼인 우리가 주인 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동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의 뜻을 받들어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내 맘대로 하겠다고 내가 오늘은 동쪽 밭으로 가고, 다음은 서쪽 밭으로 가리라. 이는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시키는 일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성령 님 앞에 기다리고 성령이여 나를 이끌어 주옵소서. 종이 주인을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봄 같이 우리가 야훼 하나님을 바라고 성령 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됩니다. 성령 님은 우리와 항상 동업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그 뿐 아니라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것은 성령과의 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과 우리는 하나되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분리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싫어하는 일을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기뻐하시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성령 님과 항상 일치된 삶을 살아야 우리가 참된 코이노쉽이 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 즉 교통이라는 말은 트랜스포틴쉽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융성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KAL 비행기를 타고 불란서 파리에 왔습니다. 비행기가 없으면 이곳에 13시간만에 올 수가 없습니다. 또 제가 한국으로 귀국할 때도 KAL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교통이 바로 비행기의 교통이기 때문에 왔다 갈 수 있지 옛날 같으면 몇 달만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불란서에 가서 집회하고 오려면 1년이 거의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순식간에 왔다갔다하는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오실 때, 이런 교통을 이용해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하여 성령과 친교하고 동업하고 일치를 다지며, 성령 님의 운송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 받아서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들 곁에 있어서 감화, 감동시키고 책망하셔서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와서 거하시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시고 우리가 성령 충만한 세례를 받으면 이제 성령께서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는 권능 있고 능력 있고 힘있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천하에 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요. 그 모든 것 위에 성령 님은 인격자이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과 동행하게 될 때 여러분은 고아와 같이 살지 아니하고 물댄 동산과 같이 넘치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 중에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시자 고아와 같이 되고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던 제자들이 순식간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모시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의 죽었다 깨어나신 그 위대한 진리를 알게 되어서 그들은 기뻐 뛰며 일어나서 목숨을 바쳐서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바로 2000년 후 이 날도 바로 성령은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 님과 함께 거하면서 성령 충만한 세례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 님을 환영하고 의지하고 모셔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