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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1장 38-44절 지금은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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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요11:38-44    
설교제목 : 지금은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오래 전에 영국에 살던 여자 성도에 의해 쓰여진 편지 한 부분을 읽고자 합니다. '우리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상상외의 노도광풍과 침몰의 위기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 항해의 출발이 결격사유로 인해서 지연된 탓에 항해 중 비축했던 양식의 거의 전부를 소모했습니다. 더 우리가 항해를 시작했을 때는 여름이 아닌 9월이었으며 따라서 초가을의 성난 파도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모두 102명이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살인적인 괴혈병에 시달려야 했고 또 여러 사람들이 이미 벌써 죽어 바다에 장사를 지내야만 하는 그런 사고가 뒤따랐습니다.'

이 편지는 저 유명한 아메리카 신대륙의 꿈을 안고 떠나던 메이 플라워 배에 탑승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엘리자베스 합킨스라는 한 자매가 영국에 있는 자기 어머니에게 써 보낸 편지의 한 토막입니다. 이들은 항해 출범 2달후 이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의 거의 전부를 다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더 항해를 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던 한 지도자는 한 하루분의, 하루분의 비상식량이라도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식의 날을 선포하자고 제의합니다. 하루라도 금식하면 하루분 비상식량을 우리가 위급할 때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다른 한 지도자가 금식은 동의하지만 금식의 날이라는 그 표현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감사의 날로 선포하면 어떻겠습니까. 감사의 날이라니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신대륙에 거의 가까이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대부분은 아직도 건강하고 생존하고 있다는 것, 우리 마음 속에 아직도 신대륙에 대한 꿈이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은 이 지도자의 제안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감사의 기도를 들어가고 이어서 금식에, 하루 동안의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닷새 후 1620년12월21일 그들은 미국 프리머스 항구에 도착합니다. 이 청교도 필그림들, 미국땅에 왔던 이들은 도시 지식인들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노동이나 농사를 몰랐습니다. 추운 겨울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배고픔과 전염병과 싸우면서 도착한 사람들의 약 절반 가량이 그 해 겨울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봄철에 뜻밖에 한 사람의 인디언이 찾아 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지도를 따라 열심히 농사를 지었던 이 청교도 필그림들은 그 해 가을 의외의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들은 인디언 추장 매스소이트라는 사람과 90명의 인디언 식구들을 전부다 초청해서 이 필그림들은 함께 어울려 한바탕의 떠들썩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잔치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지구상에서 첫번째 감사의 예배요 감사의 잔치였습니다.

1863년 미국의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이런 청교도 정신, 특별히 이런 감사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매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소위 Thanksgiving Day로 국가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드릴 수 있었던 최선의 감사, 이런 정신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말할 것 없이 이 정신의 근원은, 이런 감사 정신의 근원은 예수님에게서 배웠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가장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던 한 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이렇게 오빠와 두 자매가 살고 있었던 이 가정은 예수님이 가장 복음서에 보면 지상에 계실 때 즐겨 찾았던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second home 두 번째 집과도 같았고 예수님의 식구들과도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집에 방문할 때마다 예수님은 마음에 쉼과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가장격이었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 33절에 보시면 그 분은 예수님의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또 민망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38절에 봐도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주님의 가슴은 길길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무겁고 답답한 가슴이었습니다. 우리가 본문에 들어가기 직전에 35절에 보시면 이 초상집에 찾아 왔던 우리 예수님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 35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짤막한 구절이라고 일컬어 집니다. 주어와 동사 두 단어로 형성된 그런 짤막한 구절이죠. 영어 성경에 보시면 "Jesus wept."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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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드디어 이 집에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이 집에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41절에 보시면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며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뜻밖에 그의 입술에서 감사라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 분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 지경에서, 이런 상황에서, 이 형편 속에서 감사가 가능할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감사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감사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예수님의 기도 어떻게 시작돼요? 아버지여 아버지. 바로 이런 가슴이 미어지는 때, 답답하고 그리고 가슴이 아팠던 이 순간에 예수님에게는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이 계셨습니다.

사람이 한계상황에 도달하면 극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호소하게 마련입니다. 어머니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더러 있더라구요. 아버지보다는 죽을 때 어머니 훨씬 더 많이 찾죠. 뭐 어머니가 별 도움이 안 될테데 아버지라도 불러야 힘이라도 좀 보태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어머니를 찾더라구요. 그러나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이런 절망의 극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행복을 아세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을 붙들어 섭리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향해서 감히 '아버지' 이 부를 수 있는 행복.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복음서의 기도를 보면 아주 직설적이고 그리고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꾸며진 수식어가 없어요. 처음에 기도할 때 어떤 사람처럼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늘 높은 곳에서 인생을 내려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 그런 기도 안 했어요. 아버지. 아주 단순한 기도예요. 아버지. 답답한 가슴, 미어지는 가슴,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망하지 않아요.

요즈음 보면 세월이 어려워 지면서 사업하던 사람들이 참 곤란을 느끼게 되니까 아주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구요. 요즈음 자살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전 그 분들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기댈 데가 없잖아요. 의지할 데가 없잖아요.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가 모든 것을 잃어 버려도 하나님을 잃어 버리지 않은 사람, 저는 이 사람은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그 하나님과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그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아버지' 부를 수 있는 사람. 이 행복을 아십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을 잃어 버린 사람, 그는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의 자원, 그리고 최대의 자본이 있다면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그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기도는 역경을 수용하게 합니다. 아니 기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역경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지나간 20일 동안 우리 교회는 매일 거의 2000명에 가까운, 기도시간에 참여한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했습니다. 오늘 주보 안에 보시면 1장 기도의 응답의 내용들을 거기 요약한 summary가 거기 있어요. 그것은 아주 지극히 적은 부분을 우리가 요약한 것입니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기도의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한 우리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가 있거든요.

이 가정의 가장,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어 버렸던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기도가 감사로 시작될 수 있었던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생동하는 교제, 살아있는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 이 감사의 또 하나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얻는 최대의 유익, 하나님의 도움을 입는다는 거죠.

자, 기도를 체험한 사람들 저는 이번 새벽에 여러분들이 저한테 와서 목사님 제가 기도를 새롭게 체험했어요. 얼마나 참 복된 간증인지 몰라요. 기도를 체험했습니다. 기도가 무엇인가를 체험했습니다. 기도가 무엇인가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기도를 배운 사람, 기도를 체험한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필요가 없어요. 비록 그것이 작은 응답이라 할지라도 기도의 작은 응답을 경험한 사람들, 아, 이 일을 도와 주셨구나. 큰 일도 도와 주시겠지. 과거에 나를 도우신 하나님, 이제도 우리를 도우시지 않겠습니까? 미래도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도와 주신다. 지나간 날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 오늘이 어둡고 오늘이 답답하고 오늘이 괴로워도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신다. 미래에도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여러분의 확신의 근거가 뭐예요? 하나님의 성실성입니다. 하나님의 성실성.

오늘 본문 41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나간 날 하나님 내 기도 항상 들으셨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다음에 보세요. 42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압니다. 지나간 날 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이제도 듣고 계시지요. 지나간 날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오늘도 나의 도움이시죠. 내일도 나의 도움이시죠. 어제와 오늘, 내일 그리고 한결같은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성실성, 이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게 만든 비밀이었습니다.

바울이 한때 이런 절망의 극한 상황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린도후서1장에 보시면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해요. 내가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한 나머지 살 소망이 끊어졌다. 크리스찬에게도 이런 절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살 소망이 다 끊어졌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다음에 보시면 고린도후서1장10절에 보시면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가 이같이 우리 주님이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 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그러면서 바울이 일어나요. 이게 무슨 고백입니까? 과거에 내가 사망에 직면했을 때 그 안타까운 삶의 한계 상황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 지금도 건져 주시리라 또한 이 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 한결같은 하나님의 성실성, 도움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울은 이 극한 상황 속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재기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라는 선지자의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민족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나라에 국운이 쇠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는 끝장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슬픈 애가를 부른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애가서3장22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가 아직은 완전히 망하지 않았습니다. 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한 하나님 우리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는 그 답답한 날 어두운 밤중을 지나고 일어나 그 아침에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묵상합니다. 지나간 날 내게 성실하셨던 하나님, 어제가 괴로웠고 지나간 밤이 괴로웠지만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기도할 수 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성실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에, 하나님 저는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통해서 그들은 비로소 내 미래를 열어주실 하나님, 내 미래에 보다 위대한 계획을 설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미래, 그리고 나의 미래를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모두 감사하는 자로 바뀔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어둠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어요? 주께서 앞으로 하실 일, 이미 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하실 일을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 어둠 속에서 그는 빛되신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떻게 예수님처럼 감사함으로 내일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있을까요? 기적을 낳는 감사의 조건 두 가지만 오늘 꼭 기억하세요.

첫째는 믿음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자 오늘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어둠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영광을 향해 일어서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내일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 이 본문에 보시면 슬퍼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었던 마르다에게 주께서 40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본문의 40절 다같이 한번 읽어 보세요. 본문40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하신대" 네, 여기 보면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믿으면 보리라 라는 두 가지 동사가 나와요. 믿으면 보리라. 믿으면 보리라.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보여주십시오. 좀 내 앞길이 잘 될 것 같은 것을 좀 보여주십시오. 보여주면 믿겠습니다. 잘 되는 징조를 한 번 일으켜 주십시오. 보여 주시면 믿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믿으면 보리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의 영광, 내일의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돼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어둡습니다. 캄캄한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 그러나 저 건너편에 주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눈,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뭐라 그랬어요?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보이지 않는 미래 그러나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영광의 미래, 미래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믿으면 그 영광이 보여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우리의 삶의 조건 속에서도 절망을 거부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 재기의 출발점입니다. 기적을 낳는 위대한 출발점이 될 수가 있어요. 믿어야 합니다. 믿음.

자, 믿음과 함께 무얼 강조했어요? 순종입니다. 순종. 믿음과 순종입니다. 믿음으로 꿈꾸는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현실로 체험하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 성경에 나타난 그 기적의 이벤트, 기적의 스토리, 기적의 사건들을 연구해 보면 흥미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 다 행하시지 않아요. 어떤 한 부분을 딱 남겨 놓으십니다. 그리고 이건 네가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에도 그런 사건이 나타나는 돼요. 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 자 죽은 사람 살리는 것,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여기 38절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말씀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유대인들의 무덤은 굴로 되어 있죠. 그리고 굴 앞에는 큰 돌이 막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기왕 기적을 행할 바에는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적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렇게 명령하실 수도 있습니다. 돌아 굴러라. 나사로야 나와라. 돌이 싹 굴러가면서 예수님이 싹 걸어 나오시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겠어요. 까꾸로 했나? 돌이 굴려지고 나사로가 예수님이 아니고 나사로가, 나사로가 나오면 얼마나 멋있는 장면이겠어요. 그런데 이 돌을 옮겨 놓을 수 있는 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렇죠? 너희들이 할 수 있잖아 그건. 옮겨놓으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 부분을 주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책임 그 부분을 감당할 때 그 다음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주께서 역사하십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해마다 이 때쯤이 되면 제가 겪는 개인적, 목사로서의 갈등이 있어요. 이때쯤 되면 제일 많이 들어 오는 기도제목이 뭔 줄 아세요? 입시철이니까 합격시켜 주시옵소서. 기도는 해야 돼죠. 그런데 그 기도제목 딱 놓고 먼저 무슨 생각하시는 줄 아세요? 공부는 했나.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거든요. 해야 할 몫. 이상해요 하나님이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 하지 않고 어떤 부분을 꼭 남겨두셔요. 그건 네가 하라. 돌은 네가 옮겨 놓으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 부분을 주께서 감당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순종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감당할 때 때때로 그 순종의 부분이 고통스러울 수가 있어요. 희생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할 때 나머지를 책임져 주시고 부활을 주시고 기적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청교도 여성의 편지, 제가 처음에 소개했던 그 여성의 편지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제가 또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제라도 배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지도자들은 그대신 기도회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온 종일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기도 후에 블랙 포드 목사님이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나가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항해를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목사님의 말씀과 그리고 여러분들의 합의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바다는 여전히 흉흉했습니다. 칠흙같은 어둠, 빙하의 강추위, 풍기는 악취, 굶주림은 여전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모든 사람이 포기할 무렵 11월9일 이른 아침 항해 65일이 되는 날,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육지다. 육지다. 육지.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신대륙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원들 또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함께 어울려 자녀들과 함께 갑판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감사와 감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브리우스트 목사님은 시편100편을 읽고 주 앞에 기도하고 찬양을 함께 제안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는 이제 곧 신세계에 도착할 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한 가지 우리의 미래가 있는 곳에 우리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짤막한 시간에 미국이 위대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소위 American dream 미국인의 꿈,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순종을 결단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위대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우리 민족의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시련의 기회를 주 앞에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삶의 길을 다시 성찰하는 진지한 회개의 기회로 삼을 수가 있다면.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오만했습니까! 돈 조금 가졌다고 만국 앞에, 세계 사람들 앞에 얼마나 오만한 모습이었습니까! 이런 우리의 오만을 회개하고 우리의 물질주의, 우리의 쾌락주의, 우리의 과소비, 우리의 부도덕, 우리의 음행, 우리의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제2의 도약의 기회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 민족 부활의 위대한 내일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둠 속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 왜 우리 교회를 세워 주셨을까요? 지나온 4년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입니다. 민족과 세계를 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실 우리 교회를 통한 위대한 내일의 꿈을, 비전의 꿈을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같이 꿈을 꾸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꿈은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결심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할 때 그것이 오늘은 희생이어도, 오늘은 내 자신을 주 앞에 드리는 내 나를 자르고 나를 헌신하여 바치는 희생의 결단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희생, 우리의 순종이 있는 곳에 위대한 미래는 열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비전은 펼쳐져 갈 것입니다. 지금은 감사를 주 앞에 드려야 할 때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지나간 한 해가 유달리 힘들었던 분들이 계실거예요. 너무 힘들었던 분이 계실거예요. 가정적으로, 직장에서, 사업에서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 영광의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좌절하지 마세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신뢰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 복된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한해가 너무 힘들었던 분들, 이제 그 상처를 씻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이 너무나 어두웠던 이들 그러나 하나님 눈을 들어 미래의 그 찬란한 빛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빛나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게 하시고 주와 함께 더불어 다시 일어나 새롭게 출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의 어둠, 오늘의 곤고한 삶의 장에서 주님 다가와 내게 주셨던 위로와 사랑, 그 사랑 앞에 이제는 옷깃을 여미고 감사할 시각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케하심이 내 인생의 오늘의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해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나와 함께 있을진대 오늘도 우리의 삶의 주인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붙들고 성령님의 도우심과 교통하심을 힘입어 내일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의 삶의 발걸음마다 금년 한 해 함께 하셨듯 내년은 더 영광스러운 은혜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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