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주 안에서 당하는 고난
설교제목 : 약 5: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 안에서 당하는 고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믿으면 전혀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돌봐주시는데 왜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과는 다르게 예수 믿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많은 고난을 현실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때면 고난 당하는 당사자나 그것을 보고 있는 제삼자가 동시에 크게 당황을 합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느냐?저는 오늘 주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고난에 관해서 말씀하지 않고 주 안에서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 그것은 거듭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요나의 고난은 불순종 때문에 당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40일만에 니느웨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누웨가 멸망한다는 말에 속으로 너무나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니느웨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니 니느웨에 가서 전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저버리고 자기의 생각대로 하기 위해서 그는 반대편 다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다시스로 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큰 풍랑을 일으켜서 말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사람인줄 지적되자 사공들이 그를 물 속에 던져 그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낮 사흘 밤을 무수한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물고기가 그를 육지도 토해내 주어서 제2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를 범할 때에 하나님은 고난의 채찍을 들어서 때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워하시는 자는 때리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만 때리시는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히 회개하라"이렇게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채찍을 때리지 않습니다. 그대로 내 버려 둘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서 채찍을 때려서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르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삶속에 우리들은 내가 요정도까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안 때리시겠지! 그렇게 하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나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일도 어겨보고, 십일조도 떼어먹어 보고 기도도 적게 해보고 이래도 하나님께서 안 때리겠지, 하다가 나중에 채찍을 크게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크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채찍을 안 때렸으면 회개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가 채찍을 맞고 난 다음에 비로소 마음에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 때에 사랑의 채찍으로 하나님께서 고난의 매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고난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조각가는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돌을 갖다 놓고 난 다음에 정으로 쪼아냅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그 돌 속에 있는 새로운 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 모습이 돌에서 나타날 때까지 정으로 돌을 쪼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냥 내버려 놓아서는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난의 정을 가지고서 우리를 쪼아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해서 세상 것이 떨어져 나가야 우리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절에서 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옛사람이 그냥 벗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정으로 찍어내어야 옛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원하는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먼저 진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 흙이나 가지고서 그릇 못 만들죠? 그릇을 만들만한 그런 진흙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져와서 물로 잘 씻고 난 다음, 진흙을 부서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진흙은 아직 그 속에 뭉쳐 진 것이 많고 딱딱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을 가지고는 그릇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토기장이가 자기가 원하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기계로써 찧고, 발로 밟고, 매로 내리치고 그렇게 해서 다 깨뜨려 보들보들하게 만들면 그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사야 64장 8절에는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지의 손으로 여러분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고집도 있고 인격적으로 비뚤어진 것도 있고 불순종하는 마음도 있고 온갖 세속적인 몽오리도 있고 이런 것 다 부수고 깨뜨리고 매로 때려서 보들보들 하게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드셔서 하나님 손에서 원하시는 그릇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을 만들기 전에 먼저 고난이 다가와서 우리를 깨뜨리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난이 다가올 때에 그 고난이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 들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그 뿐만 아닙니다. 알곡과 쭉정이와 검불을 골라내기 위해서도 고난이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 타작 마당에는 알곡을 떨기 위하여 곡식 단을 마당에 널어놓고 도리깨질, 원시적인 방법으로 곡식을 떨 때 도리깨질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도리깨로 때려보면 쭉정이는 다 날아가 버립니다. 알곡만 남는 것입니다. 그대로 있으면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어서 무엇이 알곡이고 무엇이 쭉정이인지 모릅니다. 고난을 통해서 보면 알곡은 알곡으로 나타나고 쭉정이와 검불은 검불로서 분리되는 것입니다.ABC 방송에서 작년 12월 17일날 보도한 것을 보면 엘리자베스 머랜이라는 18살 소녀는 집도 없이 길거리에 방황하는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심하고 공부하여 하바드 대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마약 중독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15년간 집 없이 길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딸의 외투와 옷을 다 벗겨가지고서 그걸 팔아 마약을 맞을 정도로 참탄했습니다. 10세때부터 딸은 구걸을 하고 노동을 해서 오히려 부모를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에이즈로 사망하고 소녀는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깊이 결심한 결과 공립 고등학교에 가서 지독히 공부하여 그는 남들 절반기에 졸업을 했습니다. 공부할 자리가 없어서 회사의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서 공부하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맞아 가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비록 가난하고 형편없는 집에 태어나서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방황을 했지만 나도 하바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사회에 유능한 인물이 되겠다고 깊이 결심하고 결국 하바드 대학에 입학을 하고 그리고 뉴욕 타임즈가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어 이 사실이 신문에 나자 독자들이 감동하여 20만 달러라는 헌금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부모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억세고 고통스러운 그런 환경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고난의 과거는 오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고난 당하지 아니하였으면 다른 소녀들과 같이 세상에 취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너무 억센 고생 때문에 나도 이 고난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들어서 오늘날 하바드 대학생이 되었다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다가오면 쭉정이 된 인생은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검불도 날아갑니다. 알곡은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고난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쭉정이와 검불을 제하고 알곡을 만들어서 그 알곡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로, 향기로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고난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포도는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 터뜨려야 그 안에서 단물이 나옵니다. 포도가 아무리 싱그럽게 열려 있어도 그대로 두면 단물이 나오지 않아요.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와서 씻어서 그것을 큰 통에 넣고 옛날에는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옷을 걷어올리고 밟습니다. 그러면 포도가 터져서 포도 국물이 가득하게 됩니다. 발로 밟아서 터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향기롭고 달콤한 포도액이 나오는 것입니다. 감람유는 감람열매를 가지고 막 찧어서 깨뜨려야 그곳에서 향기로운 기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시련을 통해야 성도는 성숙하게 되고 깨어지고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고난이 다가오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깊이가 없어요. 깨어져서 헌신하고 성숙한 이해심 많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요. 오직 고난의 시련을 통해서만 옛 허물을 벗어버리고 변화되고 깊이 있고 이해력이 많고 성숙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과 71절을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 말씀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도 배우지 아니하였는데 고난을 당하자 깨어지고 회개하고 순종하여 하나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17세때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우쭐대고, 아집이 세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다 미움을 당하고 사람들이 요셉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을 변화시켜 사용하기 위해서 편안하고 좋은 길로 걸어가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 들어가 보디발의 집 종이 되어 10년 동안 혹독한 종살이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종들은 짐승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사랑 받고 편애 받고 채색 옷을 해 입고 건방지게 굴던 그가 종으로 가서 매를 맞고 짓밟히고 짐승처럼 취급을 받고 가혹한 노동을 통해서 안 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나이 30이 다 되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의 오해를 받아서 시위대 감옥에서 썩었습니다. 그는 기약이 없이 감옥에서 그 인생이 썩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옛날의 요셉은 다 벗어 던졌습니다. 옛날의 요셉의 허물은 다 벗겨져 나갔습니다. 그는 찧어지고 깨뜨려지고 그리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가 나이 30이 되었을 때 그는 바로의 부름을 받아서 나갔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었을 때 그냥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억센 시련을 통해서 그 인격이 변화되고 난 다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만한 자질을 얻게하고 난 다음에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15절에서 21절에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의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굉장한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 넘치는 성숙된 인격자인 것입니다. 옛날 요셉 같으면 그래 옛날 나를 팔았지? 어디 두고보자 너도 고생 좀 해봐라. 내가 13년 동안 종살이 하면서 무지무지 매도 많이 맞고 배도 많이 곯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제 내가 국무총리가 되고 너희들은 내 밑에 살려고 왔지 않느냐? 어디 고생 좀 해 봐라 그렇게 말해도 요셉이 나쁘다고 아무도 말할 사람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형들이 두려워해서 그들에게 엎드려서 고백을 할 때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변화시켜 오늘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으니 두려워 말라고 간곡히 위로하는 성숙된 인격을 가지게 된 것은 요셉이 고난의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넷째로,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고난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만사가 다 형통하고 평안할 때는 사람들이 기도나 믿음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배 타고 건너갈 때 하늘이 푸르고 순풍이 불고 바다는 잠잠하고 조용할 때는 그들이 예수님과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냥 혼자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신 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일어나서 배에 물이 가득하고 배가 침몰하게 될 때 비로소 그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니까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나이까? 그리고 부르짖고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서 일으키고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케 했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할 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다가 고난이 다가오고 풍랑이 다가오니까 비로소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험한 광야를 지나게 하신 것은 기도와 믿음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편안하게 일주일 이내에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 버렸으면 그들은 기도도 믿음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그 역사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홍해수 앞에 왔을 때에 앞은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의 대군대가 도로 그들을 포로로 잡으러 달려 왔을 때에 그 어렵고 막막한 가운데 모세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셔서 홍해수를 갈라놓았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위기에 처하고 절망에 처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믿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타난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고난이 없었으면 그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요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나타나
홍해가 갈라진 것을 체험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 들어와서 사흘동안 걸어나와 물이 없어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발견한 연못물은 써서 마실 수 없는 연못물이었습니다. 그들이 보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니 하나님이 나무가지를 지시하신지라 그 나무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진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도 고난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기도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믿었을 때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메추라기가 내려오는 것을 그들을 보았습니다. 이 고난의 학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려움에 처할 때에 깨어지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을 베풀어서 도와주신다는 교육을 시켜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3절과 16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러므로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낮추시고 그리고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 비로소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기도하게 되며 믿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보면 수많은 위대한 용사들은 고난을 통해서 기도와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목사와 문학가였던 존 번연은 부인 몸이 허약하여 아이를 두고 먼저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큰 딸은 장님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영국 왕실에 잡혀서 감옥에 갇혔을 때 답답하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들은 엄마도 없고 아버지는 감옥에 갇히고 장녀는 장님이고 누가 돌봐줍니까? 그는 감옥에서 울부짖어 기도하고 부르짖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그가 쓴 책이 천로역정입니다. 그가 만약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명작이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혀진 천로역정이란 책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여러분 사도 바울 선생은 그의 삶을 거의 감옥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바울 선생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로 생각했지만 바울 선생이 감옥에 들어가 있으니 천상 목회는 서신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편지를 쓴 것이 로마서에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이 옥중 서신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옥같은 하나님의 진리와 계시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바울선생이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와같이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보배로운 말씀을 기록해서 전해 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난은 반드시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 안에서 큰 유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50장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귀하고 귀한 학교인 것입니다. 믿음의 연단을 받으면 받을수록 천국 소망이 우리 속에 넘쳐 나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의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통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18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연단받고 변화 받은 만큼 나중에 큰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지극히 작은 것이 크고 중대한 영광을 우리의 생애 속에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겪는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소멸시키는 불이 아니라 연단의 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큰 영광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 당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다 고난을 피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의 학교 수업을 받지 않고는 온전한 인격을 갖춘 성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인 것입니다. 높고 수려한 금강산은 깊고 험한 골짜기를 끼고야 이뤄집니다. 골이 깊지 않고야 높은 산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고난의 그늘진 깊은 골짜기를 경험한 사람만이 높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꼭대기 삶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과 복을 번갈아 주시면서 우리로 점점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매를 때리시고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고난을 통하여 성숙하고 향기로운 인격으로 만들어 주시고 고난을 통해서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의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요 자랑스러운 일이요 좋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의 학교에 입학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의미없는 고난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하여 훗날에 우리를 정금같이 되어 나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도 있고 편안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바람 부는 날도 있습니다. 따뜻한 날만 있지 않고 추운 날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도 평안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옛사람이 벗어지고 교만한 사람이 낮아지고 완고한 사람이 깨어지고 변화를 받고 향기롭고 부드럽고 순종하고 강한 믿음을 가진 인격자로 변화된 것을 생각할 때 주여 감사합니다. 이러므로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깊은 골짜기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고난 당할 때에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며 인내하고 고난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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