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약 1 : 5 - 8
설교제목 :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설교자 : 조용기 목사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타 동물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체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길들인 가축들이라도 사람들보다 육체적인 힘은 훨씬 강한 동물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배를 받는 --(뒷면)-- 인간에게 지혜의 정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생존 경쟁 세계 속에서 개인과 개인의 우열 및 국가와 국가의 우열, 국민과 국민의 우열은 많은 복합된 조건이 있겠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역시 지혜를 잘 사용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우열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성경에 주시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1장 5절로 8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고 난 다음에 이 위대한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는 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개인이나 민족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구해서 지혜로운 개인, 지혜로운 민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인류 문화와 문명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동양이 서양 문명보다 고대 문명은 훨씬 빨리 개명하고 발전하였으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이후 복음을 받아들인 서양이 동양을 훨씬 앞질러서 현대 문명을 발전시키고 역사를 뒤바꿔 놓고 만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지혜가 허락되어서 눈부신 발명과 발견 및 지식의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양이 동양보다 2천 년 전에 벌써 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는가, 즉 아이디어를 어떻게 우리에게 주시는가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아이디어의 경제인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맨손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놀라운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우리는 우리 주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는 승리와 영광으로 꽉 들어찬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첫째로, 오늘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과 하나님의 아이디어의 차이를 우리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밤이 맞도록 나가서 노를 저으면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몸이 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병든 장모를 던져버리지 아니하고 자기 집에 모시고 그 병든 장모를 잘 간호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그와 같은 성실성과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인간의 모든 노력과 경험을 통해서 그는 갈릴리에서 어부 생활을 했습니다. 잔뼈가 굵어서 이제는 장년에 이르도록 그는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어부로서의 갈릴리의 모든 정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 갈릴리에서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지고 또 그물을 당기고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당기고 해 봐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되자 점점 그 마음은 조바심이 납니다. 왜냐하면 병든 장모님 약값도 있지요. 또 자기를 기다리는 처자들이 그만 눈동자에 자꾸만 어립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 손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온 가족들에게 절망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하여 더 급하게 그물을 던지고 당기고 그물을 던지고 당기고 해도 한 마리도 역시 걸리지 않습니다. 힘은 지쳐 보리고 이젠 낙심되어 버렸습니다. 벌써 동이 훤하게 트고 햇빛이 비취기 시작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햇빛이 비취면 물고기를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러므로 그물을 던져서는 잡지 못합니다. 그는 배를 저어서 해변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이곳저곳 찢어진 그물을 임시로 깁고 그곳에 많은 풀들이 묻은 것을 뜯어내고 그물을 씻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를 향해서 모여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놀래서 쳐다보니 그 앞에 예수님이 걸어오시는데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대겠다고 밀고 당기고 야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밀리고 밀려서 오다가 베드로의 배에 오시더니 배에 성큼 올라타시고 배를 육지에서 좀 떠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말하지 않고 배를 저어서 육지에서 좀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배가 강단이 되고 이제는 수많은 군중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베드로도 별수 없이 밤새도록 고기잡이하던 사업을 실패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제자로서 열심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육신 적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다가 그는 순식간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끌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자기의 배가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의 강단이 되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이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설교를 하시는데 베드로는 그곳에서 억지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점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깊이깊이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꿀보다도 달고 송이 꿀보다도 더 달았습니다. 무언지 모르게 배고픈 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는 고기 잡지 못한 실망과 절망감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나라의 영광이 그 영혼 속에 가득히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그 마음에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설교는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축도를 마쳤습니다. 군중들은 이제 흩어져 가기 시작합니다. 정신이 번쩍 든 베드로가 예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바라보시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자,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를 예비했으니 이제는 또 세상 사업을 할 시간이 왔다. 이제는 노를 저어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자."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베드로가 하나님을 예비하기 전에 인간의 힘으로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져도 아무 것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과 함께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예비하고 나니까 주님께서 빈손 들고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고 이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일을 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육신의 삶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순서를 올바르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경배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 땅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지혜로서는 밤새도록 일을 했으나 실패했지만 여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아이디어를 주신 것입니다. "너는 밤새도록 얕은 데 그물을 던졌지, 이제 네게 말하는 것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인간의 상식으로는 여러분 물고기가 모두가 해가 비취면 강바닥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깊은 곳에는 그물이 미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아이디어입니다. 인간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아이디어보다 훨씬 다릅니다. 주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보다 훨씬 다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밤이 맞도록 물고기가 노는 데서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자." 그러니까 베드로가 "좋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인간적인 시각이나 경험으로는 안 되는 일인데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 보겠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혼자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얼마 전까지 천국의 복음을 증거 하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와 함께 고기 잡는 동업자가 되신 것입니다. 사업의 동업자가 되신 것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는데 예수님께서 함께 그물을 던져 주시고 그물을 당기는데 예수님께서 함께 잡고 그물을 당겼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든지 도저히 베드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기 배에 가득히 채우는데 그 비린내 나는 고기를 예수님도 열심히 잡아서 배에 실어 주셨습니다. 자기 배에 가득 차서 더 이상 실을 수 없으매 동료의 배를 불러서 동료의 배에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거기에서 비로소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와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자 베드로가 느낀 것은 자기같이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 감히 어떻게 주님과 같이 일할 수 있느냐. 그는 마음에 큰 감동을 느끼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게 될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나 주님의 말씀 즉 주님의 아이디어대로 행해 보니까 인간으로서 도저히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 주님은 천국 복음만을 증거 하신 주님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매일의 생활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일에도 함께 주님께서 동업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아이디어만 가지고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의 아이디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구약 성경에서 본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보십시오.
구약 성경에 보면 이방인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아만은 굉장한 장군이었습니다. 용맹스럽고 전략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리아의 대장군이 되었으나 문둥병이 걸려서 그의 속은 썩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임금이 그를 아깝게 생각했습니다. 온 가족들이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보니까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그 엘리사가 기도를 해 주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의 모든 의원들이 다 치료해도 낫지 못한 인간의 의학으로는 고치지 못합니다. 이래서 시리아의 임금의 초청장과 권면장을 받아서 그는 수레에 많은 선물을 싣고 장엄하게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궁을 찾아가서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시리아가 나하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와 같이 조건을 만드는 것이구나.' 그래서 분노하고 탄식을 했을 때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내게 보내십시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게 하리이다." 이래서 여기 나아만 장군은 수레에 많은 선물을 싣고 군대를 거느리고 위세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 대문에 왔는데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거룩한 옷을 입고 나와서 종들과 함께 허리를 숙이고 자기를 정중하게 대할 줄 알았는데 엘리사는 나타나지도 않고 그의 종이 문 밖에 나와 하는 말이 "당신은 저 흙탕물인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 그러면 나으리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격노했습니다. 나아만의 마음은 분노에 떨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시리아의 장군이요 이 머나먼 길을 행진해서 왔고 또 선물도 많이 싣고 왔는데 직접 나와서 나를 대면도 안 해 주고 종을 보내서 나를 보고 저 흙탕물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고? 우리 나라에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은 얼마나 물이 푸르고 맑은지 물에 목욕한다고 문둥병이 나을바에야 우리 나라의 아마나나 바르발에서 목욕을 해서 내 문둥병이 낫고 말지 이스라엘에 찾아와서 요단강에 들어갈 일이 있는가!' 그는 분개해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아이디어와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은 하늘과 땅과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기도하든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해 주시면 여러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우리 인간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분개해서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종들이 붙잡고 매달립니다. "주인이시여, 이런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주인이 병 낫기 위해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요단강에 목욕하라고 하는데 못할 게 무엇입니까? 해 보세요. 하나님의 아이디어인데 해 보세요. 사람이 할 일은 다했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요단강 흙탕물에 일곱 번 목욕하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것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자기 종들의 간청에 못 이겨서 요단강에 갔습니다. 흙탕물이 도도히 흐르는데 그 흙탕물에 들어가서 한 번 풍덩 빠져 나오니까 당장 쥐새끼같이 보였습니다. 온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째 흙탕물에 풍덩하고 푸우푸우, 세 번째 풍덩하고 온 흙탕물을 씻어내고 그래서 일곱 번째 요단강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순식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의 온 몸의 문둥병은 사라지고 몸 전체가 어린아이의 살같이 아름답게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주께서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아니하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겠다고 말씀한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탁월한 지혜와 아이디어를 주시겠다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우리가 벽에 부딪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찾으십시오. 사람의 생각에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니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고집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고착되어서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할 때 성령을 저항할 때가 많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법을 제가 적극적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인본주의적인 탐욕을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탐욕은 항상 마귀가 갖다 줍니다. 자기 중심의 생각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제쳐놓고 내 기분 좋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안 되면 나는 안 따라 간다. 탐욕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기 고착 적인 인본주의적인 탐욕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가 많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로 16절에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도 지혜를 갖다 줍니다. 마귀가 갖다 주는 지혜는 탐욕입니다. 이기주의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그 결과로 다가오는 것은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분쟁입니다. 여기에 마귀의 지혜를 받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내 인본주의적인 탐욕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상숭배를 하고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의 지혜는 항상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미움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는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사랑을 통해서 옵니다. 우리 개인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둘째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의 지혜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해서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화평을 가져오고 양순하고 긍휼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의 지혜는 요란스럽고 분쟁을 가져오고 분리를 가져오고 시기와 질투와 분노를 가져오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화평을 가져오고 사랑을 가져오고 대화를 가져오고 양순하게 되고 선한 열매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지혜에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은 내게 이로우면 순종하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되면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 잘났습니까?
저는 옛날에는 하나님 앞에 많은 잘못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유명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가 요번에 사람들 앞에서 인기를 얻게 해 주시옵소서. 요번에 큰 성공을 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를 젊을 때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내 뜻에 맞지 아니하면 발길로 차 버리고 튕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 기도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많은 시험과 환난을 겪고 하는 기도는 "주여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더구나 요사이에도 그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주님의 것이니 언제든지 저를 내보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내 보내십시오. 기도원도 주님이 지으셨고 엘림복지 동산도 주님이 지으셨고 내가 목숨을 바치고 1년 동안 고생하여 지금 세우고 있는 국민일보도 다 주의 것입니다. 나는 뭡니까? 하나님의 노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살았으니 감사하고 구원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이 세간이라도 울릉도로 가라, 좋습니다. 제주도로 가라, 좋습니다. 목회 그만 두라, 좋습니다." 바랄게 뭡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태어났지 나는 나를 섬기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섬기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예수님이 하라면 그대로 하는 것이지 다른 게 뭡니까?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 감히 무엇이 내 것이란 말입니까? 사람이 조금만 잘못하면 교만해져서 자기 고착관념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지 아니하고 제게 계산해 보고 이익된 것이 있으면 "하하하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따라 하고 자기에게 계산해보고 조금만 손해가 나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럴 수 없다. 나는 안 따른다." 그러고서 포기하는 이런 오만하고 육신 적인 못된 신앙을 가지게 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의 지혜나 사탄의 지혜에 끌려가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고 묵상하고 기도를 드리며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 적어도 다섯 장 이상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섯 장 이상의 말씀을 묵상해 가면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매일같이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렇게 된다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신앙은 형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면서 기도는 잠깐 엎드려서 '하나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러고 끝마치는 그러고도 하나님의 지혜에 접할 수가 있습니까? 사람과 서로 지혜를 얻기 위해서도 앉아서 장시간 동안 서로 대화해야 서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데 이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도 하루에 다섯 장씩은 읽으시라는 것입니다. 저녁에 조금만 결심하면 다섯 장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어제 저도 다섯 장 읽고 잤다고요. 하루에 다섯 장 읽고 하루에 한 시간 기도하는데 한번에 한 시간 기도하지 못하겠거든 아침에 30분 기도하고 저녁에 30분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씩 기도하고 주님께 기도하면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울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울려오도록 마음에 공명판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여 내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문제를 당했는데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면 성경에는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낙마와 같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하나님의 아이디어 한 마디면 즉시로 다 해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창조적인 기적을 가져오고 내가 살고 남을 살리고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복음을 크게 전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의 지혜로도 살지 말고 마귀의 악한 지혜로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경에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받았을 때 빈손 든 그의 배가 가득 찼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아이디어를 받았을 때 전신이 문둥병이 걸려 죽어 가는 그가 새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주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원하오니 우리 아집을 깨뜨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자기가 잘난 것처럼 생각하는 허망한 생각을 저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낮아져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깨어지고깨어지고 낮아지고 낮아지고 그리고 겸허하게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을 품어 주시옵시고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아이디어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아니하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 가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그런 삶을 얻어 온 천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였으니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깨닫고 깨어진 백성들 위에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하게 채워 주시옵시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왔든지 그 문제가 순식간에 하나님의 지혜로 해결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지혜가 오면 얼키고설킨 실타래가 그대로 술술 풀리게 되오니 그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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