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생활점검
설교본문 : 약 1:22-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활점검"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비행기가 엔카리즈를 걸쳐 미국으로 가던지 브라브로 갈때는 반드시 엔카리즈에 도착해서 급유를 하고 다시 재점검을 합니다. 그렇게 안해도 갈수 있겠지만 그러나 많은 생명과 재산을 싣고 가는 비행기는 반드시 안전을 위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오일 우리는 살아갑니다. 유월은 그 가운데 달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 1990년부터 시작해서 5월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제 유월을 기점으로 해서 후반기를 살아가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잘 살아왔는가.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시작해서 또 후반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번 재정비해서 주워진 남은 6개월을 참으로 영원히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어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은 이러한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몇 가지 점검을 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받은 바로 우리의 영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삶의 형태가 올바르게 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일생을 위해서 모두다 예정하시고 모든 길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이 신앙적인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립으로 살지 아니하고 타력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삽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인간의 뼈 속까지 뿌리를 내린 잘못된 사상이 인본주의 사상이요.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걱정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천국에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택했을 때에는 만세 만대전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해 놓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생활 속에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자력으로 살지 아니하고 타력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우리는 기도와 강구로 하나님께 우리의 안에 있는 것을 부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서 도와 줄 것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삶을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켜 놓은 다음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마음대로 계획하고 자기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으로 살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그를 통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이 사실을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헛되이 십자가에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십자가에서 희생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고 멸망받아야 될 우리들을 대신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렸기 때문에 몸 찢고 피를 흘린 그 공로를 우리가 진실로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믿고 그 유익을 체험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더 이상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 용서받은 의인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언제나 확인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화목된 자리에 있으며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대화하는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게 하시므로 우리는 언제나 질병과 싸워서 하나님이 주신 한도의 생명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과 확신을 가진 위치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해 주셔서 우리의 삶에 가시와 엉겅퀴에서 해방을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께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형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에 믿고 그 위치를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나 예수그리
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그 확신한 소망에 자리를 굳세게 지켜야 되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잘됨과 같이 우리의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았었으니 야웨가 우리 목자시므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다는 이 사실을 마음속에 십자가를 통하여 깊이 간직하고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희미하게 되어서 마음에 불안과 공포와 절망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잘못되었으면 다시 십자가 밑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성령님의 내조하심과 충만케 하심과 성결케 하심과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겠노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으며,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눈에 안보이지만은 하나님 성령께서는 바람같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생활속에 과연 언제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성령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지를 여러분 깊이 다시 재검토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양식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니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이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양식이 되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성경은 그냥 한 주일에 한번씩 교회 올 때 손에 들고 오는 그러한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진실로 성경을 사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묻고 그 가운데서 우리가 자라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영적인 생활을 우리가 깊이 하나님 앞에 나타내는 성수 주일과 십일조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일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내 물질인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생활한다면 이 사실은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잠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우리의 생활 속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찌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장해 준다는 아무런 확신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오늘 이 시간 다시 다가오는 6개월의 생활동안 영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이 시간에 성찬을 받으면서 점검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도덕적인 양심을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고 불의와 부도덕과 대결하며 승리하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의연 중에 지금 살아오면서 그만 점점 신앙이 희미하게 되어서 마음과 육신의 욕심과 이 세사의 풍속을 좇아 살아가고 마음 속에 의를 저버린 그와 같은 삶을 사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의롭다 함을 입었은 즉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가슴에 의가 있을 때 그는 생활의 가치와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가정의 의가 있을 때 가정에 평화가 있고 사회에 의로움이 있을 때 사회가 단합되고 국가의 의의가 있을 때 나라가 왕성해 집니다. 의가 사라지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파탄이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지키고 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들은 매일 매일 생활 가운데 더럽고 탐욕이 흐르는 이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며 탐욕과 정욕과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온 세상이 다 세속적으로 흘러가는데 나 혼자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과 싸울게 뭐냐. 나도 세상과 섞어서 그대로 살자. 이렇게 흘러가면 이것은 죽은 나무토막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 세상가운데 더러움에서 벗어나서 거룩함을 견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고 또 6개월동안 그렇게 살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은 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세상의 더러움에서 분리시켜 주셔서 언제나 우리를 깨끗하게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름으로 비유됩니다. 물과 기름은 아무리 같이 놓아도 섞어지지 않습니다. 물속에 넣고 아무리 기름을 휘어 저어도 기름은 물과 섞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아무리 세속과 섞어 놓아도 세속적인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안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고 사는지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빗나간 삶을 늘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를 밋보시고 의로우사 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깨끗케 할 것이 없다고 하면 우리가 거짓말을 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마음의 천국이 희미하게 될 때 우리는 그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인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자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 일흔번씩 죄를 짓고 회개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매일 같이 회개하고 있는지 도덕적인 점검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사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탁월하게 다른 것은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 남편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아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자식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부모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원수조차도 기도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지 우리는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확실히 다른 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인 것입니다. 사랑 할 감정이 생겨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감정이 생기지 않아도 사랑하려고 예수님 때문에 노력하며 사는 이것이 크리스찬인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여섯달동안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이러한 자세를 재정비해야 겠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정신적인 점검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은 영적인 존재요. 도덕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또한 정신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과 세계를 살아가면서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같고 신념을 가지고 사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쉽게 부정적인 것을 받아드립니다. 여러분 어두운 것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보면은 밝은 것은 다 살아지고 어두운 것만이 가득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밝은 것에 초점을 두고 보면은 어두운 것은 사라지고 밝은 것이 보입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결점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면은 그 사람은 결정 투성이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장점을 초점으로 해서 바라보면은 또 어두운 점은 많이 사라지고 장점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정신적인 상황이 부정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볼 때나 내가 세계를 볼 때나 내가 미래를 볼 때나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흑암의 세계를 멸하였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인생을 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십시오. 우리 걱정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나요. 별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년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염려 근심을 한 것이 100번이라면 그 중에 실제로 일어난 것은 10번도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90번은 우리 걱정한 것대로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좋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즉 그 뜻대로 이루어진 자들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 것입니다. 쉽게 낙심하거나 쉽게 물러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우리밖엔 안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시내에 막 교통순경이 요란하게 사이렌을 불면서 트럭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놀래서 눈이 휘둥글해지면서 보았습니다. 왜냐 하면은 조그마한 아이가 트럭의 핸들을 잡고서 그 육중한 트럭을 시내를 운전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섯 살짜리 되는 어린 아이가 트럭을 운전해 가고 있습니다. 이 언제 핸들하나 잘못 틀면 절단 납니다. 그래서 교통순경이 따라오고 사람들이 다 고함을 치는데도 트럭은 유유히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다 어린 아이가 위에 올라 잡고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중지 시켜서 보니까 어린 아이는 머리 위 목에 올라 앉히고 밑에는 아버지가 딱 잡고서 운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목에 탄 어린아이만 보였지 그 밑에 핸들을 잡고 있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핸들을 잡고 흔드니까 사람들 보기에는 우리가 흔드는 것 같지만 밑에는 아버지가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꼬부랑길을 걸어가고 높은 길, 언덕 길,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절단 강산이 난 줄 알지만 실제 지나고 보면은 절단 강산이 안 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핸들을 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부정적인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이 같이 하시므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찬양으로 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누가 하나님과 싸워서 이기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시는 이가 무엇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이러므로 여러분 쉽게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신적인 점검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둡고 깜깜할수록 하나님 능력은 더 크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줄 알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태도를 같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천국형으로 새롭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5장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는데 육체가 새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절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세우고 우리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자기의 자화상 self image를 굳세게 쥐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요. 아담의 자손이 아닌 예수의 자손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의로운 자요. 우리는 용서받고 사랑받는 자요. 우리는 치료 받은 자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으로 복을 받은 자요. 우리는 천국에 이미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고 그와 같은 신분을 확인하고 그와 같은 프라이를 가지고 자신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울을 들어다 보고도 돌아서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유케 하는 법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가 어떻게 변화된 것을 알았었으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화상을 가지고 그와 같은 자기를 생각하고 꿈꾸고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자신 있는 인생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을 보존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의와 평강과 희락은 이 땅에 이미 주신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의를 가지고 언제나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언제나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기쁨을 갖고 정신이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한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불같은 제사장들이요. 그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눈동자 같이 귀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너무나 큰 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쉽게 내어 던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를 내게 주신 이는 만유보다 크시매 내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사람이 내게 어찌할요. 사람이 여러분을 좌우우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니 우리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머리털 수까지 새심 받았는데 아버지 허락 없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는 망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손가락 움직임은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보면 패배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크게 성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척도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로 가지고서 삽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으로 가지고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사는 정신적인 자세가 우리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면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정서적인 감정적인 점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항상 슬퍼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울고 항상 우울하고 얼굴에 그림자 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뭐합니까. 우리 한국 속담에도 웃어보고 울어보니 웃는 것이 났더라. 하였습니다. 울어봤자 한평생 웃어봤자 한평생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웃고서 사는데 믿지 않는 사람은 웃을 이유가 없지만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웃을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니까 웃을수 있고 예수님이 내 구주이니까 웃을 수가 있고 내 속에 성령이 와 계시므로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기뻐하라는 것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하셨습니다.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사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얼굴이 환하고 방실방실하면은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얼굴이 길쭉하고 슬픔과 우울이 꽉 들어차면 저 사람 예수 안 믿는 사람이구나. 당장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가더라도 저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 예수 안 믿는 사람이다. 아는 것은 얼굴에 나타난 광체를 보고 알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감정적으로 항상 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도록 마음에 자세를 떨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기도하기를 싫어하면 영적인 세계와의 교통이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싫어하고 등하니 하면은 모 강약을 통해서 이 세속적인 것이 너무나 이 세속적인 것이 휘몰아쳐 오고 이 세상의 부정적인 것이 우리의 정신을 억압하기를 말미암아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시간 내어 삼일 기도하고 구역예배도 기도하고 또 필요하다면 철야기도에도 금식기도에도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세계 속에 들어가서 우리와 대화하고 사는 것입니다. 기도의 세계 속에 들어가면 그곳에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 성령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 가운데에서 영적인 삶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평을 좋아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성품이 있어서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두세사람 모이면 감사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로 보이지 아니하고 남의 흠잡고 남을 불평하는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지금 설교하는 조용기도 그러한 사람에 속한 것입니다. 모이기만 하면 불평을 하면 재미가 있어요. 남 잘못한 것 이야기하면 재미가 있고 남이 잘난 것 이야기하면 속이 꼬이고 그리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의 못된 관습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감정을 언제나 검토해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는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줄 것을 감사하라는 것이지 하나님이 책임을 안 져주는데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만무한 것입니다. 안 좋은 일, 어려운 , 고통스러운 일등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것을 변화시키셔서 좋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는 33년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뒤를 돌아보니까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았던 일이 그때 가장 안 좋았던 일이 지금 볼때는 좋은 일로 변화된 것입니
다. 내 인생이라고 볼 때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이제는 버렸다고 생각한 그때가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때가 가장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고 그것을 통해서 내 인생과 운명을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신 동기가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좋은 일은 별로 큰 영광이 없었는데 내게 다가온 나쁜 일들이 내 일생에 그렇게 좋게 변화되고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와 미움대신에 용서와 사랑의 감정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분노를 가지면 하나님의 의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분노하면은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이웃과도 멀어지고 자기 스스로도 치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을 그치고 노여움을 버리고 용서와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살도록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평론에는 가혹하지만 자기의 대한 평가에는 놀라 만큼 후하고 자기 타당화 하며 자기를 변화합니다. 그러나 자기 점검에 가혹하게 근엄하면 자기 스스로 삶의 앞날에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장애물을 능히 넘고 성령의 대가를 불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다가오는 우리 남은 후반기의 인생을 위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오늘 하나님의 거룩한 성찬을 대할 때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어진 나머지 일년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께서 때묻지 않는 일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벌써 반년을 살았습니다. 살아온 과거를 우리는 돌이켜 보고 이제 더 살아가야 될 나머지 반년을 우리는 정말 주님 안에서 복 받고 성령 적으로 살기 위해서 성찬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긍정적으로 자아를 변화 받는 시간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후반기의 인생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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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4-15절 욕심과 파멸 - 조용기 목사 (1) | 2023.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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