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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야고보서

야고보서 1장 14-16절 설교 마귀의 첨단 무기, 욕시

by 재영구리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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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마귀의 첨단 무기, 욕심
설교본문 :  약 1:14-16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귀의 첨단 무기, 욕심"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작년 한해 동안에도 수많은 명사들이 크고 작은 욕심 때문에 수치와 곤욕을 치렀습니다. 욕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첨단 무기입니다. 일단 욕심의 낚시 바늘에 걸리면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가 결국에는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을 통하여 달성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법을 어기고 죄를 범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죄는 사망의 앞잡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꿈과 욕심이 다른 것은 꿈은 내일에 대한 희망입니다. 거기에는 범법이나 죄를 사용치 않습니다. 그러나 욕심은 탐내는 마음으로 꼭 법을 어기고 죄를 범해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100미터 최고 기록을 내고 싶어하는 것은 단거리 선수들의 꿈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땀을 흘리고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이 꿈을 욕심으로 이루려고 할 때 약물 복용이라는 범법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지라도 그 기록은 인정되지 않으며 명예가 실추되고 벌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생 생활 중에 크고 작은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인류 비극인 아담의 타락도 단순히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분수와 삶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삶의 분수와 한계를 주신 것처럼 아담에게도 분명한 삶의 분수와 한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리를 주어서 아담이 나가면 모든 생물들이 아담에게 복종했습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고 했으므로 아담은 과학적인 두뇌를 가지고 모든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충만케 함으로 자손을 많이 양육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에덴을 가꾸고 지키라고 함으로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에덴을 잘 돌보고 보존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계점이 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산 중간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과실, 형형색색의 실과들이 많이 났습니다. 그들은 아침 점심 저녁 원하는 대로 그 맛있고 좋은 실

과들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동산 중앙에 있는 좋다 나쁘다를 알게 하는 지혜를 얻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 2장 15절로 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마귀가 와서 유혹을 합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와서 그 마음속에 불만과 욕심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동산에 실과가 많고 아름다운 환경에 살면서 마귀가 와서 하와를 꾀려고 할 때는 마음에 불만을 넣어 주고 불평을 넣어 주고 욕심이 생기게 하려고 합니다.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 어찌 하나님이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벌써 마귀가 불평을 주려고 하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이 되면 언제나 불평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3절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것도 하와가 거짓말했습니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나님은 그런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을까 하노라'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 죽을까 하노라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하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동산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 만지지 말라는 말 안 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라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마귀가 하와에게 꾄 것은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분수와 한계를 무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수와 한계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뛰어 넘어 무시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4절에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자 여기 하와에게 욕심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절대로 안 죽는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너도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자가 된다. 하나님만 주권자로 있으라는 법이 어디에 있냐! 너도 이것이 좋다 이것이 나쁘다고 결정하는 주권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주권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만 주권자가 되고 너희들은 주권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셨고 그 말을 하와가 듣자 그 마음속에 불평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나님만

주권자가 되고 우리는 주권자가 못되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이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나도 주권자가 되어야 되겠다. 우리 남편도 주권자가 되게 해야겠다. 마음에 탐욕과 욕심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주제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분수와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고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치를 뛰어 넘었습니다. 분수를 뛰어 넘고 범법 행위를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과 하와가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고 사망에 이름으로 그 사망이 후손들에게 다 전달되어 온 인류가 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게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낙원인 에덴 동산을 주고 그 많은 실과들을 주었지만 마귀가 와서 꾈 때에 부정적인 태도를 집어넣어 주니까 있는 것은 보지 아니하고 없는 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도저히 손 내밀 수 없는 하나님이 금한 그것을 소유하겠다는 욕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범죄를 하게 되고 범죄를 하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인류 조상이 타락한 유일한 이유가 마음에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욕심으로 파멸 당한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을 생각해봐야 됩니다.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이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해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나 왕을 택했더라도 그의 분수와 한계를 분명하게 하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존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분수를 주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하여 전쟁에 나가면 나라를 지키는 능력도 주셨습니다.사무엘상 14장 47절에서 48절에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그러므로 그는 대단한 능력가요, 전쟁에 능한 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그 모든 적군의 손에서 건져내는 이러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잘 살게 하도록 정치적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계점이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엄한 명령입니다. 이것은 한계점입니다. 왕으로서 다른 것은 다 누릴 수 있으되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안됩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한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인생에서 그만 유혹에 넘어지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사무엘을 통해서 말하기를 아말렉을 진멸하되 왕과 백성들을 다 죽이고 그 짐승들을 다 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절에서 3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아말렉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라도 다 멸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나가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저 끝까지 진멸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마귀의 탐욕이 그에게 들어 왔습니다. 내가 전쟁에 위대하게 이겼으니 이제는 내 명예를 나타나야 되겠다. 다 죽이면 내 명예를 어떻게 나타내겠느냐! 아멜렉의 왕 아각을 살려 데려가고 갈멜에 와서 자기를 위해서 영화로운 비석을 세우고 공적을 스스로 찬양하고 그 다음에는 살찐 소와 양들이 탐이 나서 이거 죽일 필요 있느냐 다 살려서 끌고 가자! 그 마음속에 일어난 조그마한 욕심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반드시 순종하라는 한계를 주었는데 그것을 뛰어 넘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아각왕도 살리고 자기를 위해서 명예의 비도 세우고 그 다음에는 짐승들 다 죽이라고 했는데 살찐 소와 양들이 탐이 나서 전부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이것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파탄에 이른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에서 19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그럴 때에 사울왕은 사무엘 앞에서 변명을 했습니다.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돌이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행위를 타당화 했습니다. 나는 아말렉 왕을 끌고 오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했으나 백성이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하려고 짐승들을 취하여 왔음으로 백성들 말 때문에 내가 짐승들을 끌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23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상 15장 11절에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여러분 조그마한 탐심이 그만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짓밟아 버리고 자기의 한계를 뛰어 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다 분수를 주셨는데 자기 분수를 지키고 살아야지 자기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가지면 반드시 범법하게 되고 그 결과로 사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보면 한 농부가 자기 땅을 갖기를 너무 소원하기에 한 성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네가 걸어서 출발지점에 도달해 오면 그 땅을 전부 너에게 주겠다. 이 농부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만 그 마음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찌 하든지 많은 땅을 소유해야 되겠다. 해뜰 때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뛰고 뛰고 뛰어서 정오가 되어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지점까지 멀리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빨리 돌아가서 출발점에 돌아와야 내가 땅을 소유한다고 기를 쓰고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서 출발점에 도착하자 마다 엎드려졌습니다. 일으켜보니 죽고 만 것입니다. 그가 차지한 땅은 반 평으로 넉넉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니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탐욕을 가지면 그로서 파멸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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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욕심으로 파멸당한 신약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을 보십시다. 예수님의 12제자중 가룟 유다인 것입니다. 그는 분명한 분수와 한계를 알아야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온 천하에 나가 복음을 증거할 사명자라는 것을 마음속에 분명히 알아야 되었고 장차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곳에 들어갈 것을 알아야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예수님께 절대로 복종하고 섬겨야만 되는 것이 그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마귀의 유혹이 다가온 것입니다. 에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하자 그는 그의 마음속에 굉장한 반발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장 왕이 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씀에 자기의 꿈과 소망이 깨어졌다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꿈과 소망이란 개인적인 탐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장에 임금님이 되시면 그는 높은 고관대작이 되어서 잘

살아 보겠다는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장 임금이 되지 않고 죽어서 장사지냈다고 부활해서 승천하여 장차 오신다고 말하니까 그 마음속에 굉장한 실망을 느끼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마음속에 자기의 욕심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자기의 욕심을 짓밟은 예수님에 대한 복수심이 생기고 예수님을 팔아서 돈이나 벌자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3절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욕심이 들어오니까 마귀가 들어와서 생각을 집어 넣어 주었습니다. 욕심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마귀가 절대로 못 들어옵니다. 욕심을 받아 드리니까 마귀가 들어와서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복합적인 욕심을 받아들이자 마귀의 종이 되어 그는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먹고 나중에는 양심에 가책으로 목메어서 스스로 죽고 창자가 터지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는 스승을 배신하고 돈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 목메어 자살했으나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서 창자가 흘러 나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룟 유다는 사랑한 12제자 중에 똑똑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 개인적인 욕심이 예수 그리스도 스승을 팔고 스스로 자기의 파멸로 이끌어 가는 길로 가고 말은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를 보십시다. 예수님이 광야에 가서 40주 40야 금식한 지라 주렸었습니다. 그때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로 4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 나와서 구복을 먼저 채워라 금강산도 식후경, 이 세상에 정의도 좋고 정직도 좋다 그러나 먼저 구복부터 채워라. 네 욕심부터 채우고 무엇을 해라. 그런 유혹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귀가 그에게 유혹하나 그는 욕심을 갖고 있지 아니함으로 마귀가 예수님 속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탐욕이 없는데 마귀가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어요?

그러자 마귀는 안목의 정욕으로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서 높은

탑에 올려놓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5절로 7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워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니 저가 너를 위하여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명예를 얻으려고 왔지 않으냐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인에게 추앙을 받고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성산 성전 꼭대기 위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와서 발을 받쳐서 사뿐하게 내린다면 모든 사람들이 박수 갈채를 하고 너를 받들고 섬기지 않겠는가? 오늘 너의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이용해서 너의 명예를 얻으라 다시 말하면 자기의 하나님 아들된 신분을 이용해서 명예를 얻으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욕심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는데 자기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가지고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라고 하는 이와 같은 것은 마귀가 넣어준 탐욕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명예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마귀가 시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에는 굴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9절로 10절에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에게 만국의 영광을 보였습니다. 그 부귀와 영화와 권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이런 사람들이 누리던 그 주권과 권세를 보여주면서 너도 내게 절만 하면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런 정치적인 권세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마음속에 정치적인 권력을 불법으로 얻겠다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단호하게 주 너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지 권력을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경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러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 탐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마귀가 아무리 권력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해도 예수님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당신의 분수와 한계를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마귀의 유혹이 발동하는 욕심을 받아들이지 않았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 17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했으며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파멸의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주셨는데 그 분수를 따라 우리가 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갖게 될 때에 마귀의 낚시 바늘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항상 있습니다. 늘 우리 주위에 마귀의 유혹은 가득합니다. 마귀를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마귀는 주위에 날아다니는 새처럼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유혹에 욕심으로 손을 내밀면 파멸당하지만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아무리 유혹이 돌아다니더라도 새들처럼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겨울에 꿩 사냥을 했습니다. 그때는 단백질을 얻을 길이 없어 꿩을 잡아야

꿩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콩에다 비상을 집어넣습니다. 콩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콩 안에 비상을 넣고 거기에 밥풀로 싹 덮어 가지고서 비상 넣은 콩을 가지고 눈이 오는 날 꿩이 산에서 많이 내려오는 밭에다가 그 콩을 뿌려 놓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멀찍한 곳에 외투를 덮어쓰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꿩들이 와서 그 콩을 보고 덥석 먹을 것 같은데요 꿩도 지혜가 있어서 덥석 먹지 않습니다. 보통 콩 같으면 그들이 와서 찍어 먹어 버리지요. 그러나 꿩들이 와서 그 콩을 보고 줄을 지어서 지나가고 또 유혹에 못 이겨서 또 와서 또 보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보니까 좀처럼 암꿩은 먹지 않아요 수꿩이 잘 먹습니다. 암꿩하고 수꿩하고 오면 암꿩은 자꾸 고개를 살레 살레 흔들면서 지나가는데 수꿩은 먹으려고 하면 암꿩이 먹지 말라고 자꾸 몸을 비비고 그럽니다. 결국은 수 꿩은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너무나 멋있는 콩이 있으니까 그것을 수꿩은 콱콱 집어먹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면 꺽꺽 하면서 그냥 쓰러지고 쓰러집니다. 이 유혹입니다. 암꿩은 유혹을 이겨서 안 먹는데 수꿩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마귀가 우리에게 유혹을 하더라도 유혹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이 무서운 것입니다. 욕심이 있어야 유혹과 연결이 되지 욕심이 없으면 유혹과 연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분수를 알고 내 분수대로 살면 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유혹이 우리를 붙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하려고 하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고 권력을 얻으려고 하면 언제나 유혹의 손이 다가와서 우리의 욕심과 손을 잡고 우리를 범법하게 하고 불법을 행하게 하고 결국에는 파멸을 가져오게 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

속에 가장 경계해야 되는 것은 욕심인 것입니다. 유혹은 항상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고 늘 마귀가 들고 다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내 한계를 알고 내 분수를 따라서 살고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많은 파탄에 빠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유혹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 일확천금을 한다는 유혹이 있고 명예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마음속에 자기 분수를 뛰어 넘는 욕심만 가지면 유혹이 당장 와서 우리를 끌고 가서 우리를 파멸로 이끌고 맙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담과 하와 같이 기가 막힌 낙원에 있어도 그들에게 유혹은 다가왔고 그 마음속에 욕심이 생겨나니까 에덴 동산에서도 마귀의 낚시 바늘에 끌려가서 파멸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 탄식하지 말고 내 분수를 알고 정직과 성실과 근면과 충성으로 인생을 살아 마귀의 유혹에 빠져 파멸 당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꿈은 갖되 욕심을 갖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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