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2장 1-12절
설교제목 : 왕이 나셨다.
설교자 : 조향록 목사님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 2:1-12)
오늘 1972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 교우들의 가정과 사업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의 왕으로 나셨음을 선포하려합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왕이란 골동품 가치밖에 안 되는 존재요, 왕을 가진 나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해도 유명무실한 상징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왕이란 왕권을 말한 것이오, 동시에 그것은 참된 주권의 소재가 우리 주님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주권이 오직 우리 주님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오, 이것이 오늘 1972년 성탄절의 메시지 주제입니다. 왕정시대에는 절대 권력을 제왕이 가지고 있어서 모든 주권은 왕에게 있었고 군주시대에는 군주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란서 혁명 이후 근대의 모든 국가들은 모든 주권이 국민들의 손에 있고 대통령이나 정부 국가 관리들은 국민의 심부름을 돕는 공복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국가는 국민의 자유스러운 투표에 의하여 그 정부를 내어 보내기도 하고 다시 세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 쟈크 루소 이후 근대 민주 정치 사상가들은 국민의 자유스러운 투표권 행사로 하는 주권의 소재만 명백히 보장하면 다시는 폭군의 손에 국민들이 예속되지 않을 것으로 단순히 믿어왔는데 결국 지나고 보니 또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불란서의 루이 14세의 "짐은 곧 국가"라고 했던, 그래서 그의 손자 루이 16세가 교수대의 이슬이 된 그 망상이 오늘날은 세계 도처에서 국민들의 투표를 이용하여 더 무서운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것이 공산주의 독재권력 구조들이요, 그들의 매스컴과 비밀경찰의 조작으로 만들어 내는 소위 인민의 투표요, 거수기에 불과한 의회 조직들인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그들은 뻔뻔스럽게 민주국가라고 우겨대는 것입니다. 과연 그곳에서는 국민이 주권을 가진 것이며, 가졌다면 그 주권을 바로 행사할 능력을 어느만큼 가졌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다시 제기되게 된 것입니다.
국민의 의사라 하지만 그 국민의 의사란 그 국민이 받은 교육 수준과, 국민 각자가 가진 이해관계와, 그리고 그 국민의 위치와 그들에게 전달되는 각종 정보, 소식 등이 합하여 국민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게 되고, 그 중에 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중 정보인데 대부분의 독재국가들은 대중 정보 수단 즉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을 마음대로 조작하여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다면 그러한 사회 안에서의 국민의 판단과 의사란 국민 각자의 의사가 될 수 없고, 오직 앵무새의 역할밖에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오늘의 모든 과학문명은 더욱 촉진시켜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자유 민주 국가들에서도 차츰 국민의 의사라는데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그래서 세상의 주권은 흔들리고 있으며, 그 흔들리는 주권을 잡으려고 그것을 정치권력에 급급한 자들은 재빨리 이용하려는 경향이 세계 도처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시점에서 현재 전 세계의 국가와 인류가 금과옥조처럼 말해오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며, 우리는 오히려 그 단계를 좀 더 깊이 밀고 들어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그 국민이 그의 주권을 오늘 탄생하신 우리 주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고백하는 때 그것이 바른 주권이 되고 바르게 주권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천명하려는 바입니다. 이 말의 요약이 곧 그리스도가 왕으로 나셨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안정하려면 주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권이 왕이나 국민이나 그 누구나 간에 인간의 손에만 잡혀 있으면 그 주권은 언제나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권은 그래서 흔들대고, 서고 넘어지고 하는 것이 역사였습니다. 이 성패의 역사 한 복판에 우리 주님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이 나심으로 영원불변할 주권이 확립되었습니다.
인간이나 모든 사물은 근거가 확실하여야 하고, 그 근거가 진리에 서야만 튼튼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랑과 정의의 근본이며 진리와 자유의 본체이심으로 이 근거, 이 주권 위에 개인을 세우면 천하라도 그를 꺾지 못하고, 그 근거 위에 가정을 세우면 어떠한 풍파라도 그 가정을 넘어지게 못하며, 그 근거 위에 나라를 세워야만 나라가 바로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성탄절을 기하여 이 나라를 그리스도 신앙 근거 위에 세워, 자손 만대토록 축복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애국충정을 밝히는 바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가 미국이나 소련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막강한 군비나 몇 만 불이 넘는 국민 소득에만, 그리고 그 어떠한 힘의 근거에 서서만 열강의 틈바귀에서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다고 믿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신앙, 임마누엘 하나님 근거 위에 세워져야만 영구불변 할 것을 믿는 바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왕으로 오셨기 때문이오, 그분만이 절대 진리의 주체이시기 때문이오, 그분만이 모든 창조질서의 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이 성탄절을 맞으면서 여러분과 하나의 인간의 근거를 철저히 그리스도 신앙 위에 세울 것을 다짐하고 내 가정과 내 사업체까지도 그것이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 근거 위에 확립할 것을 새롭게 약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 내가 결정하는 것, 내가 경영하는 것, 내 학문, 내 지식, 내 기술, 모든 것이 그리스도 신앙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을 때, 그것들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영원한 가치와 창조적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나설 것을 바랍니다. 이 신앙고백이 바로 우리 주님이 왕으로 나셨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왕 중의 왕으로 오신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사시고 돌아가신 그 일생을 통하여 참된 주권자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의 주권자는 그 지닌 권력으로 백성을 위에서 통치하려 하지만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은 그가 책임진 인간들,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그의 삶의 대상이 된 백성들을 마치 종이 상전을, 여종이 그 주모를 섬김같이 섬기는 것으로 그의 주권 행사의 근본을 삼으셨습니다. 그는 그의 백성을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친부모, 형제자매로 대우하시고 그의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아끼시는 것으로 주권자와 백성의 관계의 원리를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왕이시오 최대 최고의 주권자이신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은 그의 백성을 법으로 다스리되 벌을 주기 위해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회개하고 뉘우쳐 바른 길을 가게 하시려고 책망하시고 권고하시고 가르치시며, 마침내는 그의 백성이 받을 벌을 자기 자신이 대신 받으심으로 법을 세우시고, 벌받을 우리들은 다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로써 진정한 법은 사랑의 법이오, 참된 통치자와 주권 행사는 자기희생으로만 성취 될 수 있다함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진정한 통치는 그 백성의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희생으로 그를 믿는 자들의 마음을 잡으셨고 마음의 통치가 없이는 어떠한 주권도 굳건히 설 수 없고 영구히 보전 될 수 없다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초패왕을 이기고 한나라 고조가 된 유방의 사적을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 서문에 보면, 한은 강강이비득천하(强强而非得天下)요 순민심(順民心)이 득천하(得天下)라 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자여야만 천하를 얻는다는 윤리는 제왕정치 시대에도 긍정되었던 윤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사랑과 희생과 봉사로서 참으로 다스리는 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의 사랑의 다스림, 희생의 다스림, 봉사의 다스림에 감사하고, 그의 백성이오, 그의 제자요, 그의 신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하는 바입니다. 주권자는 충성의 대상입니다. 왕이 주권자인 제왕 정치시대는 국민이나 신하가 왕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이나 그 정부는 국민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충성의 근본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자기의 것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그 생명을 그 누구에게, 그 어느 것에 바친다고 하면 그의 존재는 모조리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인간이 어떠한 인간에게든지 같은 인간에게는 충성할 수도 없고, 충성의 보상도 없고, 또 충성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을 안 자유사상가들은 일찍이 오늘날 민주국가는 상호약속에 의한 계약관계로 규정지었고, 그러므로 각자 이익의 보장을 전제한 정당조직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상업주의가 되고 그 상업주의가 격화되니 질서의 파멸을 가져오는 무서운 투쟁으로 번져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인간에게는 충성의 대상은 없고 수단의 대상밖에 없어졌습니다. 인간에게 충성의 대상이 없어지면 의미가 없고 권태와 동물적 감각밖에 남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이 약점을 노리고 우상 종교와 사이비 종교와 권력주의와 사상절대화와 물질주의가 나타나 각각 충성의 대상으로 분장하고 나서서 인간을 납치하여 가는 것입니다. 참된 충성의 대상은, 충성이란 생명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생명으로 보상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우리 주님이 왕으로 오셨음은 그가 그분에게 충성을 바쳐 목숨을 버리는 자에게 참으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계속하여 창조하시는 분이며, 그 자신이 참 생명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을 바쳐 충성할 분은 그리스도 그분밖에 없으며, 그분에게 바친 생명은 무에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를 입증하신 하나님의 행위이며, 2천 년 간 기독교의 역사는 이를 웅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회와 기독자들이 세상에서 받는 가장 결정적 박해는 우리의 충성을 오직 그리스도에게 밖에는 바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신앙으로 왔습니다. 기독자는 두 주인을 섬기는 창녀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주권, 하늘과 땅 위에 모든 권세를 잡으신 임마누엘 우리 주님께만이 우리의 충성을 다하며 우리의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나셨다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함은 진리에 충성함이오, 사랑과 정의에 충성함입니다. 자유와 평화에 충성함이오, 불의와 불법과 강권과 압박을 대항하여 생명을 바침이오, 모든 자연적, 인위적 질서가 그리스도에게 귀속되기 위해 생의 전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왕으로 나셨음은 나라의 임재와 성취를 기약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너희의 나라는 어떤 나라며, 너희의 왕은 어떤 왕이며, 너희는 어느 나라 백성이냐"를 분명히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답의 결과는 반역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했고, 요한은 "우리의 나라는 너희 세상 나라와 같지 않다"고 했으며, 베드로는 "이 시련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원불변하는 나라에 들어간다"고 했으며, "이 세상 것들은 낡은 옷처럼 퇴락하고 넘어지고 없어질 것들이라"고 했으며, 묵시록에는 하나님의 통치권과 그리스도의 주권이 완전무결하게 확립되는 나라가 임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유명한 신국을 써서 이 세상의 나라와 교회를 대비시켰고, 찰스 대제는 신성로마제국을 창건하여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거의 현실화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다 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고, 겨자씨 같이 자라고 누룩과 같이 퍼져 나가고, 하나님 나라는 앞으로 그리스도의 재림하심과 더불어 오시는 완성이시오, 심판을 동반한 역사의 종국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으로, 우주적으로 완성이오, 시간적으로는 시간의 시종이며, 현상적으로 성장하고 창조되어가는 성령의 창조적 역사며 의와 진리의 실현이오, 사랑과 정의와 자유의 확장이며 예배와 찬송의 충만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를 우리의 주권자 왕으로 모시고 그가 땅 위에 오셔서 보여주신 그 삶의 방법, 우리의 하나님 나라 성취운동의 방법으로 삼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 완성을 모토로 우리의 모든 충성을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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