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1장 18-23절
설교제목 : 탄생과 관련한 명칭
설교자 : 차용철 목사님
<本文>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18-23)
<序言>
본문은 예수님은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1절). 예수님의 태어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역사적으로 예수님 탄생 때에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왕이 B.C.4년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었다는 점과 유대 사학자 요세프스(Josephus)가 헤롯이 죽기 전에 월식(月蝕)이 있었다고 한 점을 감안한다면 B.C.4년 3월 12~13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전승에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B.C.4년 4월 11일 경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 탄생은 B.C.4년 3~4월 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시력은 예수님 탄생 년도 보다 4년 뒤를 기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현재 연도 보다 4년 뒤 연도로 잘못 계산하여 시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대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시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聖誕節,Christmas)을 12월 25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주교가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동지절(冬至節; 12월 24일~다음해 1월 6일)로 지키던 명절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하여 이교에 대한 정복의 의미를 부여했고, 로마교회에서 4세기 후반 (335년설과 354년설이 있음)부터 그 날을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했고, 그 후 성탄절은 동방 교회로 퍼져 나가 '콘스탄티노롤리스' (379년), '카파도기아' (382년) 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현재에는 세계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성탄절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과 12월 25일이 로마 이교도들의 동지절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것을 부정합니다. 심지어 사단의 계략으로 여기기 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채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성탄절 날짜를 정확히 모르는 마당에 날짜를 정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당시 일반인들이 이교적 명절로 지키고 있었던 날을 성탄절로 대치시킨 것은 문화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잘한 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지키는 설(구정)이나 추석(한가위)를 기독교 절기로 대치한다면 교리적으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선교적 차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本論>
1.'예수' (Ιησουs)
'예수'(Ιησουs)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알려 준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21절). 이 이름은 예수님의 목적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알게 해주는 칭호입니다.
'자기 백성'은 유대인에 국한된 것이거나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모든 택한 백성을 말합니다. 에베소서1:4-5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죄'(罪, Sin)는 인간이 가진 모든 죄를 말합니다. 죄의 종류는 원죄와 본죄가 있습니다. 원죄(原罪.Original Sin)는 인류의 시조 아담이 지은 죄로서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는 죄입니다. 원죄에는 정죄와 유전죄가 있습니다. 정죄(죄책)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를 범한 이후 그에게 법률적으로 정죄된 죄책입니다 (창3:17, 2:27, 롬5:12). 그 죄책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위법의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롬5:12-19, 엡2:3). 유전죄(오염)는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간성의 모든 부분이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고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하게 되었습니다 (시51:5, 롬7:20, 막7:21-23). 그 죄성은 부패성 혹은 죄악성이라고도 합니다. 그 죄성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어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요5:42, 롬7:17). 본죄(本罪.Actual Sin)은 본인이 직접 지은 죄를 말합니다. 물론 본죄도 원죄의 영향력 아래서 행해지는 죄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범죄입니다. 본죄에는 자범죄와 요구죄가 있습니다. 자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입니다. 자범죄에는 교만과 질투와 증오와 욕심 등 내적 생활의 죄가 있고 살인과 간음과 폭행과 도둑질과 거짓말 등 외적 생활의 죄가 있습니다. 요구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도달하지 못한 죄입니다 (삼상12:23). 여기에는 인격적 성장에 대한 부분도 있고 사명에 대한 부분도 있습니다 (눅19:12-27, 마25:14-30).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각종 본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결국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고 각종 고난을 당하게 되고 죽은 후에 심판받아 지옥 형벌을 영원히 받게 되었습니다 (히9:27). 예수님은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값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류의 택한 모든 백성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죄와 죄값으로 오는 형벌들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사53:5-6).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벧전2:24). 우리는 그를 믿으므로 그 모든 죄가 없어졌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 눈같이, 진홍같이 북은 죄가 양털같이 희어졌습니다 (사1:18).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죄과가 도말되었습니다 (시103:12).
2.'그리스도' (Χριστοs)
'그리스도'(Χριστοs)는 직임과 관련된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직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직분에 속한 명칭입니다. 그가 어떻게 사역을 하실지를 알게 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Χριστοs, Christ)는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ointed One)라는 뜻입니다 (단9:25, 행4:27). 구약시대 때부터 '기름부음'(Anointing)은 성령의 임재에 대한 표호였습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예수님이 맡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임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예언된 이사야61:1말씀을 인용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한 말씀에 잘 나타납니다 (눅4:18-19). 아울러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은 직책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예수님께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갖고 있는 직임의 특성이 주어졌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마28:18, 히9:14, 요14:9).
예수님은 사역적 특성에서 왕(王)적 특성을 가지셨습니다. 왕은 한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유대인의 왕에 국한되지 않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계17:14). 만유를 다스리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왕입니다 (고전15:24).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 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마28:18). 예수님은 사역적 특성에서 제사장(祭司長)적 특성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제사장입니다 (히5:6, 7:17). 예수님은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짐승을 잡지 않고 자기 몸을 드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므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9:11-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죄값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권세를 가지시고 사역에서 죄인들에게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마9:2). 예수님은 사역적 특성에서 선지자(先知者)적 특성도 가지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전하는 직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와 성품과 사역에 대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진리를 나타내셨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요14:9).
3.'임마누엘' (Εμμανουηλ)
'임마누엘'은 (Εμμανουηλ)은 요셉에게 알려 준 이름이지만 B.C.800년 경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알려 준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사야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출처 곧 본질적 존재와 관련된 명칭입니다. 그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창세 전부터 하나님으로 계신 분입니다. 미가서5:2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으로 계셨던 분입니다. 요한복음1:2-3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1:2에도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1:15-17에도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8:22-31에도 창조자가 날마다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1:26, 3:22에는 하나님이 창조 사역에서 의논하는 듯한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을 보면 성자 예수님이 성령 하나님과 창조사역에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먼저 있었던 자라고 했습니다 (요8:58). 또한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고 했습니다 (요14:9).
<結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20:28). 어떻게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까? 요한복음14:16-18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시려고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제자들에게 한 약속대로 성령으로 내주하십니다. 그는 인격성을 가진 '위로자'입니다. 그의 별명이 '보혜사'(保惠師)입니다. 헬라어 'παρακλητοs'(파라클래토스)는 'παρακ'(곁에)와 'κλητοs'(부름받음)의 합성어로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영어 성경들에서는 'Helper'(NASB-돕는자) 'Comferter'(KJV-위로자) 'Counselor'(NIV,RSV-상담자)로 번역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사단과 마귀와 귀신으로 인하여, 육체의 죄성과 연약성으로 인하여, 환경의 열악함을 인하여 고통 당하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 인생이 겪는 깊은 내면의 고통을 아시고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며 섭리하십니다. 로마서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롬8:28, 5:3-5). 내년에는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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