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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3장 13-14절, 5장 1절 저주로부터 자유 - 옥한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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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갈라디아서 3:13-14, 5:1
설교제목 : 저주로부터 자유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 뜰에 난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난초 사 이에 두꺼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 니다. 마침 그때 주인이 나와서 난 초에 물을 주면서 난초를 애지중지 하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을 지켜 보고 있던 두꺼비는 너무 부러운 나 머지 난초를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 고 합니다. '나는 목이 말라도 누가 물 한 모금 주는 이가 없고 뱀은 날 마다 나를 먹으려고 쫓아다니고 어 디를 가나 천대만 받는 천덕꾸러기 인데 너는 무슨 팔자가 좋아서 주인 이 그렇게 곱게 길러 주고 사랑해 주느냐? 너는 참 행복하겠다.'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난 초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는 발이 없으니 목이 타도 주인이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소가 와서 나 를 뜯어 먹어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데 너는 발이 있잖니? 그래서 너는 자유스럽게 목 이 마르면 가서 물도 마시고 도망가 고 싶을 때는 도망도 갈 수 있지 않 니?' 그 말을 들은 두꺼비가 비로소 자기는 난초가 갖고 있지 아니한 자 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뭐 우화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입 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의 진리를 담 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 람들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자유 를 향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유가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들 의 경우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주 신 자유가 분명히 있는데도 마치 자 유를 얻지 못한 사람처럼 살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자주 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죄가 인간 을 노예로 만들었다구요. 죄가 사람 을 쇠사슬로 묶어서 지금까지 구속 하고 그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 도록 죄가 억압하고 있다고 하나님 이 가르치고 계십니다. 죄는 율법을 무기로 사용하여 인간을 다스립니 다. 폭정을 행사합니다. 죄는 사단과 그 악한 영들을 자기의 졸개로 사용 하여 인간을 부립니다. 죄는 죽음을 가지고 인간을 공갈치며 협박합니 다. 그래서 갈라디아 3장23절 말씀 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 니라."

좀 쉽게 풀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예수 그리 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기 전까지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율법 아래 매어서 갇혀 있었다는 말입니다. 죄 는 이 율법을 사용해서 우리를 이렇 게 억압하고 구속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운명입니다. 지금도 죄는 사 람들을 자기 수하에 거느리고 공포 의 도가니에 몰아 넣으면서 그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멍에 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그는 다 속량하시고 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 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더 이상 죄가 부리는 악령의 권세에 우리가 놀아나지 아니하며 죄가 사용하는 율법의 무기에 우리가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공 포를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는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요 한복음8장36절에 주님이 이렇게 선 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 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

아들이 누굽니까? 십자가 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분입니다. 아들이 누굽니까? 죄와 사망의 권세를 발로 짓밟고 사흘 만 에 부활하신 분입니다. 아들이 누굽 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소유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속 에 속박 당하고 노예 생활하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 계시는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분이 말씀하 시기를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 라.' 이 말씀 대로 오늘 우리는 그 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몸이 되 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주신 이 영적자유는 우 리 스스로가 독립을 하는 것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주인이었을 때에 는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예 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었 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똑똑히 알아 두어야 합니 다. 인간은 홀로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 재제도 받지 않고 지도도 받지 않고 자기 홀로 스스로 독립해서 자유인이 될 수 있 느냐? 인간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 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인 간은 죄에게 속하던지 아니면 하나 님에게 속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지 소속이 돼야지 독립된 자유인으 로서는 인간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유로워지기에는 너무나 사악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 은 마음 속에 있는 악마를 풀어 놓 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랬어요. 그렇지요. 우리가 역사를 보나 현실 을 보나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 속에 있는 악마가 기 승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 이 봅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자유할 수가 없어요. 오직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으로 모실 때만이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나 자신이 자유로 워졌다고 생각할 때 자유는 짐이 되 고 말았도다. 자유가 새로운 감옥으 로 변해 버리기에 나는 주님에게 나 를 묶어 주는 밧줄 속에서만 자유를 발견할 수 있도다."

나를 예수 그리 스도에게 묶어 주는 밧줄 속에서만 나는 진정 자유인이로다 하는 이야 기입니다. 이게 진짜 자유입니다. 이 가운데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계시는 형제 자매들,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이 말씀을 꼭 깨닫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 믿어요? 예수 안 믿어요? 기독 교 혹은 교회에 매이지 않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유인이 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유인이 아니예요. 여러 분은 죄에 매어 있습니다. 죄가 여 러분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 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5장1절 오늘 우리 가 읽었지요? 우리 함께 읽어 봅시 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 지 말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님 이 자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 직도 마치 죄의 종이나 된 것처럼 멍에를 매고 허덕이는 그리스도인들 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심령에 자 유함을 얻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 눌 려 사는 것 같은 모습을 우리는 읽 을 수 있습니다. 죄책감 일까요? 예 견되는 어떤 불안일까요? 아니면 이 유없이 찾아오는 공포일까요? 아니 면 누구로부터 들은 이상한 말 한 마디에 내가 끌려 다니는 것일까요? 가만히 보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 의 자유함을 누린 사람인데도 불구 하고, 가지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 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짓눌려 있어 요. 영적으로 해방이 안되고 있어요. 이런 분들을 많이 봅니다. 한국 교 회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아마 옛날에 무속 신앙에 젖어 있었던 어떤 전통적인 흐름이 있어 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예수를 믿고 도 활짝 자유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 녀 답게 살지 못하고 뭔가 늘 끌려 다니고 억눌리고 어떤 면에서는 고 문을 당하는 것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자들이 많아요.

이런 심기를 이용하여 최근에 이 상한 책들이 시중에 많이 돌고 있어 요.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주 시리즈라고 할까요? 이 저주에 관한 책이 한 10여권 나와 있는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그런 책을 잘 사서 봐요. 그 가운데 서 대표적인 제목은 이런 것입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 집안에 저주가 흐르니까 저주를 끊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뜻 모 르게 당하는 고통 풀리지 않은 저주 때문이다' 당신 이유 없는 고통 당 하나? 거기는 저주가 있다 하는 이 야기입니다. 이런 등등의 제목을 단 책들이 시중에 나와 있어요. 이런 책들이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 쓴 것이면 좋아요. 그 안에는 복음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책 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쓰여지고 팔리고 있다는데 문 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가정일지라도 조상의 죄로 인해서 저주가 대물림 하고 있다는 거지요. 왜 예수를 잘 믿는 어느 집안에 할버지가 심장병 으로 세상 떠났는데 그 아들이 또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그 다음에 는 손자까지 심장이 약해서 애를 먹 냐? 그것은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 오는 저주의 대물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어떤 가정은 그 가정에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우환이 끊어지지 않고 덮치느 냐? 그 가정에는 분명히 무슨 저주 가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는 거지 요. 집안에 악한 영들이 자리를 잡 고 있어 저주를 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불행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심 지어 밭에 이상한 잡초들이 무성하 여 농사를 망치는 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땅에서 한때 몰살당한 원혼 들이 서려 있어서 저주를 받기 때문 에 그렇다는 거요.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이 냐? 금식 기도를 해라. 특별히 하나 님 앞에 금식 기도하고 매달려서 그 저주를 끊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 니면 능력 있는 목사를 찾아가서 기 도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 이런 소리 들으면 어떻게 느껴 지세요? 마치 굿을 해야 액운을 물 리칠 수 있다고 하는 점쟁이 소리 듣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이상 하게 사람들이 이런 말에 약해요.

우리 서점에 한때 이런 책이 들 어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전부다 반 송시켰어요. 여러분, 이것은 성경이 아니예요. 아무리 무슨 소리를 갖다 붙여도 근본이 잘못 돼 있는 거예 요. 여러분이 만약에 제목을 보고 ' 뭔가 진리가 있구나.' 생각하고 사 서 보셨다면 여러분 수준을 내가 평 가를 해야 될 판이예요.

미국에 이민 간 어떤 형제가 어 느 목사님을 만나서 자기 아버지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했 다고 합니다. 어떤 사건으로 아버지 가 사건을 떠났는지 모르지만 그 이 야기를 했더니 그 목사가 대뜸 하는 말이 '당신 아버지는 저주를 받은 것이요.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신 거 요. 그러니까 내 앞에 엎드리시오. 같이 기도합시다.' 이러더래요. 그래 서 이 젊은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대신에 벌떡 일어나 나가지고 눈을 부릎 뜨고 나가서면서 하는 말이 ' 그 따위 하나님이면 나는 믿지 않겠 소.' 이 청년 똑똑한 청년이요. 아주 똑똑한 사람이요. 아마 웬만한 사람 같으면 '주여, 옳소이다.' 이러고 머 리 디밀고 기도 받았을지 몰라요. 여러분, 정신부터 차려야 돼요.

여러분, 기독교가 이 정도의 저질 종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 케 하셨다는 것이 고작해야 대물림 을 하는 집안의 저주도 하나 쫓아내 지 못하는 그런 정도의 자유입니까? 조상이 무슨 죄를 범했든 간에 심지 어 과거에 내가 어떤 죄를 범하고 살았던 사람이든 간에 일단 예수 믿 고 십자가를 붙들면 그 모든 과거로 부터 자유케 하시는 능력을 가진 복 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 런데 도대체 뭡니까? 대물림을 한다 느니 뭐니 이게 무슨 소리예요. 우 리가 잘 외우고 사랑하는 성경 구절 있죠? 고린도후서 5장17절 말씀이라 고 생각하는데

"그런즉 누구든지 그 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 다 지나갔 어요. 조상 때의 모든 것도 다 지나 갔어요. 내가 과거 예수 모르고 있 었을 때 행하던 모든 일 다 지나갔 어요. 그 모든 것 다 십자가에 못 박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어요. 이제는 나 를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 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 새 것 안에 무슨 저 주가 있어요? 만약에 새 것이 되었 다고 하는 그 말씀 안에 아직도 저 주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그 예수를 왜 믿어야 합니까? 그렇 잖아요.

우리가 또 사랑하는 성경 말씀 있어요. 갈라디아 2장20절 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과거에 예수 모르고 살았 던 옛 자아 완전히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실 때 나도 함께 죽었어요. 장사 지낸 바 되었어요. 그러므로 내가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 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 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여러분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가 아직도 저주 때문에 벌벌 떠는 분이신가요?

우리가 좀 똑바로 알고 예수 믿 고 살아야 돼요. 갈라디아 3장13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보면 우리가 받을 저주는 예수님이 이미 다 받으 셨어요. 예수님이 다 감당하셨어요. 뭐 예수님이 죄 없이 십자가에서 우 리가 받을 저주 다 감당하셨는데 또 뭐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저 주하시고 마귀가 우리를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고 조상의 죄가 우리를 저 주하도록 내버려 두겠어요?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그래서 갈 라디아 3장13절 뭐라고 그래요?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 를 속량하셨으니' 우리가 완전히 자 유함을 얻었어요. 저주는 우리를 떠 났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무에 달 리자마자, 나무에 달리는 것은 저주 를 받기 위해 달린 것입니다. 십자 가가 이렇게 우리를 완전히 저주로 부터 자유케 하셨는데 왜 우리가 저 주 받는 사람처럼 이 말 저 말에 끌 려 다니면서 가슴에 짐을 지고 허덕 여야 되느냐 그 말입니다. 오늘 이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이 자유, 그리고 저주로부터의 해방, 이 복음을 잘 깨닫지 못해서 지금까지 남 모르게 슬슬 점쟁이한테도 가보 고,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데 가 서 귀를 기울이고 했던 전과자 경력 이 있는 사람, 나중에 여러분 예배 마치고 나가기 전에 무릎 꿇고 회개 하고 나가세요. 그거 예수님을 모독 하는 행위입니다. 나를 위해서 저주 를 대신 짊어지신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예요.

그러면, 목사님,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그렇게 잘 믿는 집안 에 이해할 수 없는 불행들이 닥치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어떻게 해석 하 는 겁니까? 아마 이렇게 물을지 몰 라요. 제가 대답해 드릴께요.

우리가 먼저 전제해야 될 사실은 우리가 지금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 다. 세상에 살고 있어도 주님께서 아주 높은 성벽을 우리 주변에 쌓아 놓고 세상의 어떤 악한 영향이 들어 오지 않는 피난처에다가 우리를 두 고 살게 한 것이 아니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안 믿는 사람들과 섞여 살 게 하시고 많은 악한 영들이 활동하 는 그 무대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셨어요.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세상은 죄악의 소굴입 니다. 악령이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자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장 입니다. 부패한 육신을 가진 인간들 의 거처입니다. 이게 세상이요.

그러므로 주님이 뭐라고 하셨어 요?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 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 라.' 여러분 보세요. 주님이 우리보 고 세상에 살면 환란을 당할 수 있 대요. 환란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 하시는 법이 없어요. 너희들 세상에 살면 환란 당한다. 그러므로 담대하 라고 그럽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담대하라고 합니까? 예수 믿으면 무조건 복 받고 예수 아무 어려운 재난이 우리 가정에 오지 않는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담대할 필요가 있 어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 나 예수님은 '세상에 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담 대하라. 믿음 좋다고 해서 안 당하 는 것 아니다. 당할 수 있다.' 그렇 게 말씀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말씀은 주목해 듣지 않고 무조건 예 수 믿으면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 이 그저 우리를 완전히 지켜 주셔서 남이 다 병이 들어 죽어도 우리 가 족은 안 죽고, 그 다음에 남이 다 실패해도 나만은 절대 실패하지 않 고, 남은 구한 것 얻지 못해도 나만 큼은 하나님께서 100배로 주신다고 하는 이런 약간 미신적인 생각을 갖 고 있어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약 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진한 생 각을 갖고 있으니까 자꾸 사람이 약 해지고 겁이 많아지지요. 그래 가지 고 조금만 이상한 일이 생기면 벌벌 벌벌 떨고 어찌할 줄을 몰라요. 여 러분 이게 신앙 생활인 줄 아세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신앙 생활은 그 런 것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 고 있어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 에 항상 어떤 사실들을 예측하고 있 어야 됩니다.

내가 예측하고 있어야 되는 몇 가지를 말씀 드리죠.

우선 첫째로는 선인과 악인을 가 리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 정해야 합니다. 신명기 20장에 보면 참 재미있는 내용이 나와요. 이스라 엘 백성이 나라를 세우고, 떳떳하게 독립국가로서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 가끔은 적군이 너희 나라를 침범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군인들을 데리 고 나가서 싸워야 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적군과 싸우러 갈 때에 절대 두려워 하지 말라. 설혹 너희들의 군사가 좀 약해 보여도 절대로 두려 워 하지 말라. 왜냐하면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나 하나님 여호 와가 싸우는 너희들과 함께 하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절대 두려워 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우리 생각에는 그 정도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했으면 부장자가 생겨야 됩니까? 안 생겨야 됩니까? 절대 안 생겨야지요. 또 전 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한 사람도 안 죽어야지요. 우 리는 생각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 이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부상자가 생기며 전사자가 생길 수 있냐? 그 전쟁은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전 쟁이다. 우리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굉 장히 현실론자예요. 그렇게 말씀을 해 놓고 그 다음에 따라 나오는 말 씀이 재밌어요. 뭐라고 하시는지 알 아요? '자, 그런데 너희들 들어라. 지금 전선에 나갈 군인들 중에서 새 집을 지어 놓고 이사가 가지 못한 자가 있는지 찾아 보라. 찾아 보고 만약 이사를 가지 못한 자가 있으면 돌려 보내라. 웬지 아냐? 전쟁에 나 가서 싸우다 죽으면 그 집 다른 사 람이 차지한다. 그러니까 돌려 보내 라. 또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한번 도 농사를 지어 보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 돌려 보내라. 싸우 다가 전사하면 다른 사람이 그 포도 원 차지하느니라. 병사들 중에서 약 혼을 하고 결혼을 못하고 나온 사람 있나? 그 사람 빨리 돌려 보내라. 만약에 전쟁에 나가 죽으면 그 여자 다른 남자가 데리고 간다.' 여러분 이렇게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몰 라요. 이게 뭔지 알아요? 칼을 가지 고 서로 싸우고 화살이 비오듯 날라 오는 전쟁마당에서 부상을 당할 수 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거요. 하나 님이 그걸 다 인정하고 계시지 않아 요? 이게 세상입니다. 믿음이 좋다 고 해서 부상 안 당하는 것도 아니 고. '하나님 우리 아들 꼭 지켜 주 십시오.' 이를 악 물고 꼭꼭 한다고 해서 총알이 옆으로 날라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설명하지 아니한 깊은 섭리에 의해서 믿음 좋은 사람 도 전사하고 어떤 사람은 다치기도 하는 거예요. 이게 세상입니다. 우리 가 이 현실을 인정해야 돼요.

다이옥신 비상이 걸려 가지고 온 세상이 아우성이죠. 우리는 다이옥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막 먹 어댔잖아요. 그런데 외국에서 있다 고 하니까 비로소 자다가 날벼락 맞 듯이 일어나가지고 아우성을 치죠. 청산가리의 일만배 독성이라고 하니 까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남성 홀 몬을 감소시키고, 면역계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암을 일으키고, 그런데 98%의 다이옥신이 전부 음식물을 통해서 신체에 섭취가 된다고 그래 요.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먹어 댔 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알아 요? 모르죠. 그렇다고 안 먹고 금식 을 할 수도 없잖아요. 고기를 안 먹 고 어떻게 삽니까? 그러니까 먹기는 먹어야 되는데 누가 책임지고 다이 옥신을 다 검출 해서 전부 해 줍니 까? 해주는 사람, 우리 나라 아무도 없어요. 그저 다른 나라가 호들갑을 떨면 같이 한번 호들갑을 떨고 조용 해 지는 거지요. 그러면 도대체 얼 마나 먹어댔는지 우리 도무지 알 수 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 잘 믿는 사 람도 다이옥신 든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고, 다 먹어요. 먹는데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 이옥신을 든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성령께서 그 다이옥신을 싹 녹여 주 신다. 여러분 그런 생각 할 수 있어 요? 몸 안에 축적되지 않도록 특별 한 능력을 주셔서 온 장안을 깨끗이 청소해 주신다. 여러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아무도 못해요. 그저 먹 는 거예요. 먹다가 보면 그것 때문 에 병이 생길 수도 있어요. 어쩌다 가 하나님은 또 불쌍히 여겨서 병을 피하게도 하시겠지요. 그러나 한 가 지 분명한 것은 세상을 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할 수 있다는 거요. 너무 미신적으로 여러분 생각하고 신앙 생활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자꾸 사람 약해지지.

또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기 때 문에 자연법칙을 역행하면 믿는 사 람이라도 다칩니다. 비가 와 가지고 고속도로가 미끄러운데 160마일로 막 운전하면서 '하나님 정말 잘 달 리네요. 아멘' 해 보세요. 그러다가 부상 당하면 할 수 없는 거요. 하나 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예수 잘 믿는다고 해서 그런 모든 피해를 다 우리가 비낄 수가 있습니까? 또 자기가 범한 죄로 인해서 뿌려진 어 떤 불행은 평생 짊어지고 살 수가 있어요.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안돼 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깡패노릇 을 하다가 칼을 맞아 가지고 다리를 절게 됐다. 그런데 예수 믿고 중생 받은 순간 하나님이 그 다리를 싹 고쳐 주더라. 그런 일이 있어요? 그 사람 안돼요. 평생 절고 다녀야 돼 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속도 위반해 가지고 사고 를 내도 그것은 사고지 저주가 아닙 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저주가 아니예요. 또 깡패 짓을 하다가 다 리가 전다. 예수 믿고 나서도 다리 는 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저주가 아니예요. 오히려 절고 있는 다리를 볼 때마다 누구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까? 나 같은 것을 구원해 주 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감사 의 간증거리는 되어도 저주는 아니 예요. 믿습니까? 우리는 사단의 공 격을 세상에서는 받을 수가 있어요.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수 믿는다는 그 조건 하나 때문에 끌려 들어가서 목격자의 말을 들으면 말을 안 듣는 다고 해서 몇 명을 끌어내 가지고 용광로에 있는 쇠물을 갖다 부어 죽 이는 그 비참한 고통을 당하면서 지 금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 있어요. 이건 완전히 사단의 공격이 거든요. 그러면 사단에게 공격을 당 해서 그렇게 저주 받은 사람처럼 사 는 것도 하나님은 뭐라 그래요? '기 뻐하고 감사하라. 하늘에서 상이 큼 이니라.' 저주가 아니예요. 핍박이 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시험을 받아 어려움을 겪는 수가 있습니다. 세상 에 살다가 보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시험을 당할 수가 있어 요. 집안이 갑자기 잘 살게 된다든 지 남편 지위가 올라간다든지, 모든 것이 너무 형통해 가지고 어찌 할 줄 모를 만큼 흥분한다든지 하면 나 도 모르게 기도도 덜 하게 되고 신 앙 생활 좀 등한히 하게 되고 그러 다가 나도 모르게 시험에 빠진다 말 이요. 그래서 엄청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나 시험이지 저주가 아닙니다. 믿습 니까 여러분?

고급 옷 로비 사건에 여러 명의 권사님, 집사님들이 연류 된 것 우 리가 알잖아요. 그분들 믿음 참 좋 은 분들입니다. 그들의 믿음 의심하 면 안돼요. 저도 그들을 알거든요. 같이 옷 가게는 안 다녔지만. 믿음 참 좋은 분들이요. 그런데 왜 그분 들이 그렇게 모든 사람으로부터 손 가락질 받는 처지에 놓였느냐? 시험 받은 거지요.

또 불순종하여서 우리가 스스로 화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 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고 거룩한 하 나님 자녀 답게 살아야 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지 않음 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 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한가지 꼭 알아 두세요. 신명기28장, 구약에 가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 으로서 살아야 하고 이스라엘 나라 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가 되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계속 거역하고 지키지 않는 것 은 저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셨어요.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규례와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 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라.' 그래서 불순종은 곧 저주를 끌어 들 이는 무서운 행동이 되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믿고 새 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에게 하나 님께서 '너희들 내 말씀 대로 순종 아니하면 저주가 임할지어다.'하는 말씀 신약에 있어요? 없어요.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계시의 발 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 고 있는 사람이 성경을 가르쳐야 합 니다. 그래야만이 구약의 저주가 신 약에는 저주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 가 배우게 돼요. 그러면 신약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 대로 살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이 저주를 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자식을 왜 저주합 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세 요? 징계하지요. 그리스도 안에 있 는 자에게는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 할 때는 징계는 하셔도 저주는 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 회자들은 저주한다고 하는 구약 성 경을 가지고 교인들로 하여금 숨을 못 쉬게 협박하는 것을 가끔 봅니 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예 요. 그것은 안 좋게 말하면 조금 공 갈기가 있는 말씀이예요. 그러므로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이 뭐 어떻게 알아요? 구약과 신약 이 어떻게 다른지, 구약의 말씀이 신약에 의해서 어떻게 조명 되고 해 석되어야 하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일일이 다 알아요? 그러므로 교회는 지도자가 필요한 거 아닙니까? 전문 적인 지도자가 필요해요. 그래서 그 지도자가 인도하는 대로 여러분이 말씀을 이해하면 되는 것인데,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도 자가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할 때는 구약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그대로 적용을 하려고 드니까 무리가 따르 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복음이 아니 라 율법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는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 다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 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버 티면 하나님이 뭐하신다고 그랬어 요? 징계하신다 그 말이요. 저주하 지 않아요.

또 하나 우리가 세상에 살다가 보면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일어나요. 저렇 게 믿음이 좋은 집안에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구나 고 개를 갸우뚱하고 이상하게 여길 정 도의 일이 일어나요. 욥의 집안에 갑자기 재난이 닥친 것처럼 말이죠. 저렇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어 떻게 저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 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모두가 참 답답해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목사님이 계세요. 그 목사님은 참 가문이 좋 은 집안입니다. 세상적으로 양반 집 안 이라기 보다는 기독교가 우리 한 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너무나 거룩한 가정입니 다. 그래서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 할아버 지 목사가 되고, 그 다음 아버지도 목사가 되고 그리고 제가 아는 그 목사님도 손자 벌이죠? 목사가 됐어 요. 참 훌륭한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에게 자녀가 있는데 아들이 있어요. 그 아들이 서울 상대를 다 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들하고 캠핑 가가지고 물에 빠져 죽었네요. 여러분, 설명 할 수 있는 불행입니 까?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대대손 손이 믿음 좋은 집안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요? 아버지 되 는 목사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본래 갖고 있던 지병이 악화 되어 가지고 그후 3년 만에 세상 떠났어 요. 여러분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 날 수 있어요?

터어키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직장 그만 두고 처자를 끌고 터어키 까지 가서 복음 전하다가 40대 초반 에 그 선교사가 암에 걸려 죽었네 요.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병원에 가서 진찰 하니 까 또 암이 생겼네요. 얼마 전에 수 술했어요. 우리 교인도 아닌데 우리 교인들이 막 매달려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헌금을 모아 가지고 지금 수술을 깨끗이 끝냈어요. 여러 분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살겠다는 사람에게 이 런 불행이 닥칠 수 있어요? 누가 설 명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세요. 이것은 저주가 아닙 니다. 믿습니까? 저주가 아니예요.

하나님이 설명하지 아니하는 불 행 속에는 더 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하 나님이 감추어 놓은 특별한 축복이 있다는 것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 러나 분명히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 한 섭리가 역사합니다. 우리가 믿음 의 눈으로 볼 때 예수 잘 믿는 사람 에게 닥치는 어떤 불행도 우리는 축 복을 위한 씨앗으로 보는 것이지, 그것을 저주로 보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자유인이기 때문에. 왜 하나 님이 저주합니까? 우리가 이런 시각 을 가지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당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가 해석해야 되고 그 다음에 대처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자유 인으로서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보지 않고, 꼭 세상 사람들 날마다 벌벌 떨면서 굿이나 하고 점쟁이나 찾는 것 같은 나약한 심정을 가지고 우리 가 당하는 어려움들을 해석을 하고 대응을 하려고 하니까 사람이 유치 해지고 비굴해지고 믿음까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잘못된 짓을 범하지 않 습니까?

교회 안에 보면 아주 못된 사람 들 많아요. 왜 못됬는지 알아요? ' 아이고 어떻게 기도 많이 저 가정에 기도 많이 하는 저 가정에 저런 일 이 생겼을까? 저런 가정에 저런 애 가 나올까?' 이러면서 당자 앞에서 는 아무 말 안 하지만은 옆에 돌아 서 가지고 자기들끼리는 입을 삐쭉 삐쭉 하면서 이런 말, 저런 말 합니 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뭔가 있다 그거지. 남이 모르는 뭐가 저 가정 에 있다. 그런데 우리 가정에는 이 런 불행한 일이 없는 것 보니까 내 믿음은 좋고 나는 우리 가정을 하나 님이 사랑하신다는 거지요. 그래 가 지고 은근히 기분이 좋아하는 거지 요. 여러분 이런 못된 교인들이 교 회 안에 있어요. 삐쭉하면서 입이 돌아가지요.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다음부터 한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입이 돌아가서 다시 회복 안 될 거 예요. 완전히 입이 돌아갈 거요. 신 경이 잘못 되서 돌아간 분 말구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형제들의 어려움을 보는 눈을 우리 가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보아야 되 는데 순 점쟁이들, 굿쟁이들, 무속 신앙에 끌려 다니던 사람들의 그런 사고를 가지고 전부 본다 말이요. 그러니까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예 수 안에서 자유함을 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모두가 다 심적으로는 다 눌려 있는 사람이고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라 말이요. 그러니 까 이상한 설교도 나오고, 이상한 가르침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가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여러 가 지 어려움과 고통을 볼 때마다 믿음 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유인답 게 무장해야 합니다.

세가지 꼭 기억하세요.

첫째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십시 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 은 저주가 아닙니다. 믿습니까? 꼭 믿음을 바로 가지세요. 민수기 23장 7절 발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 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 하리오?' 하나님이 우리 를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시는데 누 가 우리를 저주한다 말입니까? 우리 가 이 믿음 꼭 가지고 현실을 보아 야 합니다.

둘째는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시험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시 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면서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 당해도 될 어려움을 더 많이 당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 야 됩니다.

셋번째로는 말씀에 꼭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순종하는 것이 저주 를 복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유는 있어도 내 뜻대로 살 자 유는 없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다음에 내가 원하 는 것을 하십시오. 이것이 예수 믿 는 사람의 생활 태도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7장24절 '누 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 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래요. 하나 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서 살면 집 을 반석 위에 세웠으니까 그 집이 무너질까 하면서 불안해 할 이유가 없고 그 집이 기울어질까 하고 날마 다 불길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어 요. 왜냐하면 반석 위에 집을 지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사람과 같아 요. 집을 모래 위에 세워 놓고 날마 다 집이 기울어지지 아니할까 벌벌 떠는 것, 얼마나 바보 짓이예요? 여 러분 그렇잖아요. 내가 순종하고 하 나님의 뜻대로 살면 불길한 생각을 안 가져도 돼요. 설혹 어떤 어려운 일,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나도 떳떳해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잘해 주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생기는 것 입니다. 순종하지 못하니까 날마다 벌벌 떨지요.

하나님은 아무리 환란이 쉴 사이 없이 찾아 오는 세상이지만 그 가운 데 사는 자기 자녀가 심적으로 짓눌 려 우울해 하고 있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설혹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해도 그 앞에서 위축되지 아 니하는 당당한 모습, 자유인의 모습,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가지고 대체 하기를 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에게는 저주가 없습 니다. 하나님도 저주하지 않습니다. 마귀도 저주하지 못합니다. 율법도 우리를 저주하지 못합니다. 오직 우 리에게는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우 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뿐 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축복이 있을 뿐입 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내가 저주 받았다는 생각은 추호도 용납하지 말하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믿음을 가지고 대처하십시 오. 그곳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따라 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 어납니다. 그곳에 기적이 일어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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