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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6장 6-10절 심고 거두고

by 재영구리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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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심고 거두고
설교제목 :  갈 6;6-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심고 거두고'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게 어느 성도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인즉 오늘날 이제 매일 TV나 신문을 보는 것이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를 보면 그만 간이 덜컹 내려앉고 가슴이 조여지는 느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대형사고에다, 끊일 줄 모르는 폭력 시위, 부정, 인신매매, 부동산 투기, 인플레 등 가슴이 조여지고 눈앞이 깜깜해 진다고 그게 그 편지에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이와 같은 모양이 되고 말았을까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처럼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거기에 대한 저의 대답은 대단히 간단합니다. 그것은 즉 과거에 와 같은 것으로 심었은 즉 이후에 그와 같은 것으로 거두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정치나 사회가 억압과 강제와 비리와 부도덕, 특권의식, 부조리 등으로 심었기 때문에 이제 그 반작용으로 피할 수 없이 현실적인 비극으로 거둘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이제 이와 같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당 좋은 씨앗으로 심어야 장차 좋은 나라,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으로 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장차 다가올 날에 평안과 행복으로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하고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우리 심고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세우신 칙인 것을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장 20절로 22절에 이와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가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심음과 거둠의 법칙은 언제나 계속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심음과 거둠이란 하나의 농사짓는 자연적인 환경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치나 우리 사회, 우리 개인 생활에도 하나도 남김없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법칙이란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가르침도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주신 간단한 예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밤낮으로 주지육림 속에 연락하며 살았었습다. 그러나 그 대문가에 거지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나사로였습니다. 그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배불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온몸이 헌데가 나있었습니다. 개들도 와서 그 헌데를 핥아주고 개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런 정황에서도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늘나라를 사모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부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굉장한 영화로운 상여를 만들고 호화로운 장례식을 했지만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그는 음부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들은 거적에 그를 둘둘 말아서 묘지에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성경에는 그가 그 묘지에 남아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사들이 받들어서 낙원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이렇게 된 것은 왜 그랬을까요? 나

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로를 받는 것을 보고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이 부자가 쳐다보고 아브라함에게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이 불꽃 가운데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사오니 저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으로 냉수 한방울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사람아, 너는 세상에 살 동안에 지은 그 모든 보응을 지금 받고 있고, 그리고 나사로도 세상에서 살동안에 그 행한 것을 지금 받는데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그곳에서 우리에게 올 수도 없고 우리가 그 곳에 갈 수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우가 무엇을 심든지 우리는 내세에서 그것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하나님이 세운 것으로서 아무도 그것을 버릴 수가 없고 그것을 눈감아 넘길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것을 살짝 지나쳐 버릴 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심고 거두는 법칙은 이 땅이 계속하는 이상 영원히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는 심고 거두는 법칙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친 것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써 망한다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는데 온 세계를 칼로써 정복한 대로마 제국을 보십시오. 인류의 역사상 로마만큼 거대한 제국을 칼로써 정복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2000년 후에 로마는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는 역사의 한 페이지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마의 땅은 어디에 가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시대에 살았던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결국에는 로마의 법에 심판을 받아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몸 찢겨 피를 흘려 죽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는 칼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을 사용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위로해 주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로마는 지금 온데 간데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 천하를 뒤덮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고 죽을 사람은 이 세상에 수억이나 있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써 망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심은 사람은 그 사랑의 결과로서 역사가 계속하는 한도까지 계속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는 일시적으로 권력이 있다고 총칼이나 폭력으로 일은 저질러 놓으면 그 결과로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줄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교훈도 우리는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대동아 공영권이라 허울 좋은 간판으로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아시아를 피바다로 만든 일본이 그 무력으로써 성공했습니까? 결국에는 원자탄을 맞고 처참하게 패망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독일의 아리안 민족이 세계를 지배해야 된다는 히틀러의 어리석은 논리로 온 구라파를 황폐화했던 독일은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은 처참하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무력으로서 그 나라의 힘을 이용해서 이웃을 침략하거나 이웃을 짓밟는 나라는 오래 계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짧은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역대 정권이 사용한 독재, 강권, 공권력의 폭력, 부정, 비리, 부정축재 등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오늘 사회의 이와 같은 부조리, 혼란, 고통, 괴로움이 그 결과가 아닙니까? 이것을 우리가 없는 체하고 넘어갈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과거에 잘못 심어놓은 것 이제 어찌 할 수 없이 우리 국민들이 눈물을 머금고 이걸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거두고 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서 우리 정부가, 우리 지도자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 가는가, 무엇을 심는가 이것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바르게 심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 국민들이 거두어야 되는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동정하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 중에서, 혹은 오늘날 노동자, 농민이나 무산 대중 중에서 김일성을 숭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얼마나 그 어리석은 일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은 40년 독재를 혼자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40년을 독재를 하면서 부정과 부패를 안 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총칼을 넣어서 탄압하지 않고 40년을 혼자서 독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한 북한은 40년의 독재, 노예정치, 우상화, 우민화 그리고 무력 남침, 파괴 공작 등은 반드시 그 반작용으로서 반독재, 자유, 민주, 개방화의 거센 운동이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지금은 총칼로서 눌러놓고 있지만 이북에 일단 자유화의 바람이 들어가면 그 반작용은 거세게 일어납니다. 왜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바람으로 심으면 폭풍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고 난 다음에 눈 감고 '나는 모른다.'고 한다고 그것이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인간의 소치인 것입니다.

그러 오늘 이시간 셋째로 여러분하고 알아보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풍족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는 심을 수가 있을까 하는 그 문제를 생각해 봐야 될 것인 것입니다.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그 무엇을 하든지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기가 나쁘면 그토록 아무리 번지르하게 기름을 발라서 사람들을 속일지 몰라도 나쁜 동기로 심은 씨앗은 반드시 결과에 가서 나쁜 열매를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정치인들이 선심을 쓰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 나쁜 동기가 있으면 그 결과에는 크나큰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고린도후서 9장 9절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복 받아 잘 살기를 원하면 우리 마음속에 동기가 올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가진 것 가지고서 흩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그러한 마음의 동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에 좀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허장성세하고 사치와 방종이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삶 속에 우리 한국 생활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 있는 자는 점점 더 사치하고, 없는 자는 점점 비교 가난의 뼈저린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서로 화해하고 화평한 가운데 손잡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있는 자는 자제하고, 있는 자는 자기 가진 것으로 말미암아 없는 자하고 나누면서 살겠다는 그런 마음의 올바른 동기가 있어야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기만 손에 움켜쥔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을 갖다 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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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이란 남에게 나누어 줄 때 진실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좀더 하나님 앞에서 남에게 줄줄 아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그러한 사회나 그런 개인은 가난한 자에게 자기의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부도 그 나라가 잘 되려면 그 정부 시책이 가난한 사람을 언제나 마음에 염두해 두고 정부 시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자를 중심으로 한 정부 시책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찌하든지 가한 사람 중심으로 해서 부자의 것을 세금으로 거두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서 공평하게 잘 살수 있는 이러한 정책을 해야 그 나라가 의가 충만하고, 국민들이 신뢰하고,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그

런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이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해야지 그 동기가 잘못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또한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합니까?

성경 고린도후 9장 11절에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많은 물질을 드려서 교회가 그 물질을 가지고 주의 사업을 많이 하고 선한 사업도 많이 할 수 있다는 그와 같은 자원을 공급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겠다고 간구하고 기도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엇이든지 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나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여 복을 달라고 한다면 이것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스스로 부패하고 맙니다.여러분 요단 강물을 받는 저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보십시오. 갈릴리호수는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아도 그 강물을 자꾸 내어 보내니까 그 갈릴리 호수는 맑기가 명경 같고 그 속에 여러 가지 생선들이 번식하고 그 주변에는 그 물을 사용해서 관개를 해서 오곡백과가 무르익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는 사해는 그 물을 받아서 절대로 물을 내놓지 않습니다. 물이 그대로 증발하니까 소금기가 꽉 들어차고 여러 가지 광물질이 꽉 들어차서 그 물 속에는 아무런 생물도 살지 아니하고 그 물은 아무 식물도 살리지 못합니다. 갈릴리 호수 안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생물들이 살고 있지만 사해 속에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 주

위에는 나무도 풀도 자라지 않습니다.오늘날 탐욕으로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받아들이기만 원하고 이것을 나누어 갖기를 원치 아니하면 그 속에 죽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도 부자 나라가 되면 가난한 이웃 나라와 나누어야 되는 것입니다.정치와 권력도 내가 한번 쥐면 이것을 내가 다 쥐고 내가 다사용했다 하면 부패합니다. 정치 권력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복을 받아서 이것을 나누어주겠다는 이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께 너그러이 연보를 해서 교회가 좋은 일을 수없이 많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올바른 동기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고린도후서 9장 8절의 말씀처럼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남을 헤치면서 살기를 하나님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 사회를 보십시오. 도저히 겁이 나서 우리의 자녀들을 밖에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생활 속에는 치안 부재의 생활 상태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폭행이고, 어느 곳에 가나 강간이고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사회인 것입니까? 우리 국민성이 왜 이렇게 황폐해지고 흉악해졌습니까?

오늘날 이것은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우리 교회의 실패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더 기도하고, 우리 성도들이 좀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더라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제껴 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서 우리 한국의 이 비극적인 도덕적인 타락의 환경과 분위기를 제껴야 되겠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 다가온 억압과 나쁜 정치가 오늘날 사회환경을 이와 같이 부조리와 불신으로 꽉 들어 채운 것도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회개하고, 국가가 회개하고, 우리 국민이 회개해서 우리 나라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그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선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곳에 천당은 절대로 안옵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청산하고 올바른 길에 서는 이런 운동이 담대하게 일어나야 개인도 살고 가정도 살고 사회와 국가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운동이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이러한 삶 속에 들어가야 나도 살고 남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그런 생활을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심고 거는 법칙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7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여러분 우리 물질적인 풍요의 생활도 심고 거두는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물질을 가지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많이도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고, 내가 적게 하면 준 것도 빼앗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이란 하나님께서 우주에 세우신 법칙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법칙이요, 정치적인 법칙이요, 사회적인 법칙이요, 그리고 실제적인 생활의 법칙인 것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심지 않고  다음에 내가 무엇을 거둘 줄 안다면 이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농부가 농부의 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고서 그 들에 나와 앉아서 "하나님이여 나는 추수를 줄줄 믿습니다."하고 아무리 금식하고 기도한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심어놓고 난 다음에 기도해야지 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저는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20년 독재가 심어놓은 결과를 봤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 가족이 20년 동안 독재로서 부정부패로 심어놓은 그 결과가 오늘날 필리핀 사회의 황무지가 되고 황폐화된 것을 보았었습니다. 길거리마다 거지가 득실거리고, 도무지 차를 타고 신호등에 정지할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앙상한 거지들이 손을 내밀면서 돈을 달라고 합니다. 시내 한가운데를 맘놓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외국의 차관을 가져왔는데도 불구하고 필리핀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극장을 짓고, 회의장을 지었지만 산업시설은 하지 않았었습니다. 3백억불의 빚을 지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많은 돈을 한 개인이 스위스 은행에 빼돌려 버렸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잘못 심어놓고 난 다음에 나라와 국민이 잘 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까? 나는 필리핀에 일주일 있으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 민족을 위해서 통곡을 하고, 그리고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불안과 공포심을 가졌습니다. 만일 우리도 잘못 심으면 우리도 이렇게 될 것이 아닌가? 우리의 자손들이 이렇게 될 것이 아닌가? 어떤 정치가는 저보고 말하기를 그가 과거에 필리핀에 왔을 때는 우리나라가 필리핀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사이 필리핀을 찾아와서는 이제 우리나라가 필리핀처럼 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진실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몽롱한 생활 가운데서 지나갈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우리가 무엇으로 심는가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심고 잘 심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번째로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 무엇을 심어야 까요?

리는 내일을 위해서 신뢰를 심어야 합니다. 거짓을 심고 신뢰를 거두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꾸만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의 결과로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거대한 잘못입니다.

국가로 국민에 대해서 자꾸 거짓말하지 말아야 됩니다. 국민들도 상호간에 자꾸 거짓말하지 말아야 된 것입니다. 조삼모사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누구를 신뢰합니까?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말도 저는 신문에 무어라고 해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어제 이 말 했다가 상황이 틀리면 오늘 이 말 하고, 오늘 이 말 했다가 상황이 틀리면 내일 저 말 하고,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신뢰할 수 있습니까? 정책을 세워놓고 한가지 그 정책으로 밀고 나가서 국민들이 신뢰하게 만들어 줘야지, 이제는 전부다 정치인들이 희극배우와 같이 보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희극배우! 그러고 난 다음에 국민이 신뢰하고 따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아무리 손해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실천하는 신뢰를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뢰를 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충성이 따릅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은 현재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희망과 꿈이 없으면 사람은 좌합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한 이유는 어떤 정치인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않습니다. 현재 당리당략으로 서로 물고 뜯고 싸우지 국민들에게 시원스러운 내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나아갈 지표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향해서 우리가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절제하면서 하나가 되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어떻게 된단 말인 것입니까?

개인도 여러분 희망과 꿈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의 장쾌하고도 아름다운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아무리 고생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 앞에 정말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고통하는 것이나 죽음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을 예비해 놓으시고 그날을 향해서 우리들을 인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우리는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갖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심어서, 꿈을 심어서,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와 지도자는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결과로 안정과 생산적인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심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먹은 주먹을 부르고, 칼은 칼을 부르며,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심으면 사랑과 화합으로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말할 필요 없이 십자가 복음으로 심으면 부활과 영생으로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법칙인 심음과 거둠은 계속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린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먼저 우리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를 심고 영생으로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연히 영생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생애를 심으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과 천국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심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시간 드리고 몸 드리고 물질 드려 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심지 아니하면 황무지로 거두고, 바람으로 심으면 폭풍으로 거둡니다. 폭력으로 심으면 파멸로 거둡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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