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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사야

이사야 11장 1-10절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 옥한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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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이사야 11:1-10
설교제목 :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절망은 꿈을 낳는다

우리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서 7-8년동안 땀과 눈물을 쏟으며 수고한 이찬수 목사님이 최근에 청소년 사역을 정리한『YY성장 보고서』란 책을 내었습니다. YY는"Youth Yahoo"(유쓰 야후)인데 "청소년 만세"라는 뜻입니다. 제가 그 책을 받고서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 청소년들, 중고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씨름하는 우리 교역자들의 고민이 무엇일까? 또 청소년들이 가슴 속에 숨기고 있는 많은 갈등과 고통이 어떤 것일까? 이런 것을 좀 알고 싶었고, 사랑의 교회가 정말로 이 어린 청소년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신앙으로 바로 키우고 있는가에 대해 서 제 자신이 좀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죽 읽는데 어떤 때는 가슴이 너무 아프게 저미어 오는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감격스러워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내 자신이 은혜를 받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책 가운데 우리 교회 어린 중학생이 이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가 한 토막 인용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약간 읽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세상사는게 너무 힘들 고 복잡해서 편지를 드립니다. 요즘 유명하다 똑똑하다 훌륭하다 하는 어른들이 많지요. 이 어른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바라보는 저희들 마음은 착잡할 따름입니다. 사는게 뭔지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절 왜 이 험악한 세상에 보내셨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세상이 너무 너무 싫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터져버릴 것만 같아요. 때로 방 안에 틀어박혀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 보지만 제겐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가 싫습니다. 운이 너무 없 었나 봅니다. 많고 많은 나라들 중 한국에 태어난 게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썩어 빠진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몇 년이나 살았다고 벌써부터 이러는가? 생각 하니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 중학생의 마음 속에 있는 고통과 절망이 수십 년 인생을 산 저에게도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너만 피해자냐? 나도 피해자고, 너만 운 이 없냐? 나도 운이 없지. 누구한테 우리가 돌맹질을 해야 할까? 너는 어른들이 잘못해서 세상이 이렇다고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네 자녀들이 똑 같은 소리를 할 텐데. 이게 세상이지. 이런 게 세상이야.' 그런 독백을 저 혼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깊은 절망을 또 한 번 경험합니다.

뉴스 시간에 잠깐 나온 이야기입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번 여름에 여고생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그 봉사 활동 기록을 학교에 내나 봅니다. 그래서 그것이 성적에도 반영이 되고, 대학 입시에도 영향을 주는 보고서로 알고 있습니다. 15명의 여고생이 보고서를 학교에 냈는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10명이 전부 허위 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왜 봉사도 안한 것을 했다고 속이고 20여 시간이나 했다고 장황하게 기록하고 도장 찍어 왔니?"
그랬더니 그 학생들의 대답이 기가 막 혔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가서 다 찍어 와서 만들어 줬어요."
어린 딸에게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아니하고 가르치는 현실을 대할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정말 절망합니다.

19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 참사는 업주와 공무원, 시공회사가 결탁한 총체적 부조리라고 흔히 들 말을 합니다. 서로 몰래 주고 받은 몇십 만 원, 몇백 만 원의 불의한 돈이 19명의 어린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많은 가정에 평생 동안 아니 영원히 싸매지 못할 깊은 상처를 안 겨주었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난 필드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아이 엄마는 훈장까지 국가에 반납하고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합니다. 한국이 싫다는 것입니다. 책임 없는 지도자, 무책임한 지도자들에게 더 이상 자기 자식을 맡기고 싶지 않고 이 거짓된 세상에 자녀를 남겨 놓을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또 한 번의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 중에서 꿈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절망은 꿈을 잉태하는 요람입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저도 세상이 싫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역겹습니다.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서 절망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환상이 있습니다.

절망에서 꿈을 가진 사례는 여러 가지 찾을 수 있습니다. 저의 마음 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킹 목사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언한 선언문이 발표 된 지가 백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국 이곳 저곳에서는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 대부분이 정당한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았습니 다. 그래서 흑인들이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빈민굴에서 뒹굴고, 범죄에 빠지는 것을 보았을 때 킹 목사는 너무 절망하였습니다. 너무 절망을 하고 또 절망을 하다가 그는 그 절망 속에서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저격당하기 전 그가 한 유명한 감동적인 연설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 설이었습니다. 이 꿈은 절망 속에서 찾은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피에 물든 죠지아의 언덕에서 옛적 노예의 아들과 옛날 노예의 주인의 아들들이 형제와 같이 사랑을 나누 며 한 밥상에 둘러 앉아 같이 식사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어린 네 자녀들 이 그들의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 서 차별대우 받지 않고 그들의 인격으로 판단 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꿈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에 감동이 저미어 옴을 느낍니다. 절망 가운데서 꿈을 가진 사람의 외침입니다.

이사야가 본 꿈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도 마찬 가지입니다. 지금 11장을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는 아직 젊은 청년입니다. 그가 젊은 청년 시절에 그 나라 는 한 마디로 소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온통 나라가 썩을 대로 썩어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셔서 이사 야 5장8절 이하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소위

"화있을찐저 시리즈"란 것 이 나옵니다. 저주와 심판의 시리즈 입니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적나라 하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축재하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는 지도층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과 여자와 함께 인생 즐기느라 정신 못 차리는 부유층들, 거짓이 판을 치고 공의가 뒤틀려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혼탁한 사회상, 이로 인해서 힘 없는 사람들은 짓밟히고 착취당하고 고통하고 절망하는 사회였습니다.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등지고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엄청 난 고통이 사회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유대 나라를 보시 고 진노하셔서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들어서 징계하시고, 남쪽 유대는 바벨론을 사용하여 징계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젊은 청년 이사야가 보았습니다. 유대 나라의 꼴은 도끼를 가지고 가지를 자르고 그 다음에 나무 둥치를 찍어서 이제 는 앙상한 그루터기만 남은 것 같은 꼴이었습니다. 그 말이 10장34절에 나옵니다.

"철로 그 빽빽한 산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여기서의 레바논이나 빽빽한 산림은 모두가 유대 나라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철로, 도 끼로 톱으로 빽빽한 산림처럼 요란하게 서 있는 유대 나라이지만 하나님께서 한번 작벌하니 그루터기만 남은 것입니다. 나라의 형편이 그 모양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 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조국을 보고 절망하고 가슴 치고 답답해 하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역시 절망 가운데 서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앙상한 그루터기에서 싹이 납니다. 11장1절입니다. 앙상한 그루터 기에서 싹이 나더니 그것이 가지가 되고 그 가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보고

"얘야, 이것 보느냐? 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이 가지가 뭔지 아니? 다윗의 후손 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메시아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니라."라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젊은 이사야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합니다.

"그 나라,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그 나라가 임하면 네 눈 앞에 펼쳐진 이 혼탁하고 부패한 나라는 사라진다. 그리고 유대 나라만 이와 같이 신천신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신 천신지로 바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10절에 있습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면"

하는 말입니다. 다윗의 후손인, 이새의 후 손인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면 그가 기를 높이 세우리라고 합니다. 구원 의 기, 복음의 기,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높이 세웁니다.

"그 기를 높이 세우면"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말씀 하십니까?

"열방이 주에게로 돌아오리니"

대한민국을 위시하여 중국과 일본, 아니 온 세계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보고 다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가 다스리는 나라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그 환상을, 그 꿈을 주셨습니다.

완전한 통치자, 완전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통치자입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완벽한 통치자인가 를 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 다. 지도자로서 꼭 갖춰야 될 지혜 와 총명을 가진 분이요, 모략과 재 능을 가진 분이요, 지식과 여호와 경외를 가진 완벽한 지도자라는 것 입니다. 완벽한 통치자입니다. 그 통 치자가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통하고 상처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은 이제 주님의 나라에는 있을 수가 없을 것 이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사야가 얼마나 황 홀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이렇게 완전히 갖춘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 다스림 자체가 완전할 수밖에 없 다고 말씀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나라를 다스릴 때 공 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은 공의입니다. 의와 불의를 바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정확 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 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다스리는 것 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나 공의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성실이 함께 따라야 합니다. 공의롭게 나라 를 다스리려고 해도 지도자가 정직 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하면 안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통치자냐? 공의와 성실을 허리띠처 럼 매고 나라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여러분 허리띠가 얼마나 중요합니 까? 여자분 보다 우리 남자들에게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 이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라도 허리띠가 풀어져 있다든지 허 리띠를 안 매고 나오면 이상하게 쳐 다봅니다. 그 사람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봅니다. 허리띠는 항상 정확하게 매고 다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때 항상 공의와 성실로 허리띠를 매고 다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공의롭게 나라를 다스리 기 때문에 공과 사가 분명하고, 모 든 면에서 치우침이 없는 통치를 하 신다고 합니다. 3절에 재미있는 표 현이 있습니다.

"그 눈에 보이는 대 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 로 판단치 아니하며"

정에 매여서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고, 이거 해 주고 저거 해주고 하다가 보면 공의 도 없어져 버리고 나중에는 선이 악 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것을 우리 는 현실에서 많이 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악한대로 다루시고, 선한 자는 선한 대로 대 접하십니다. 그 땅에 억울함을 당하 는 자가 없도록, 고통을 당하며 해 를 입어서 한을 풀지 못해서 하늘을 향해서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를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완벽하게 통치를 하 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6절 이하는 너무 너무 아름다운 서사시가 나옵니다. 성경 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서사시가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에"

그 때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그 나라 가 임하면"

하는 뜻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완전히 동화의 세 계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이렇게 봅니다.

"이리처럼 간사한 인간, 사 자나 표범처럼 사나운 인간, 곰처럼 미련한 인간, 독사처럼 악독한 인간 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나라, 그 나 라가 어디인가? 예수님이 다스리시 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아무리 독사 같이 독한 사람도 변화를 받아 어린 아이처럼 순진한 자가 되는 것이 하 나님의 나라다."

그 뿐 아니라 독사 가 어린아이의 손을 깨물어 죽이거 나 사자가 어린 양을 덮쳐서 찢어 놓는,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주님의 나라에는 이제는 더 이상 일 어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가 화목해서 함께 손잡고 푸른 초장에 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이 서사시가 지금 설명하고 있어요. 땅이 한번 꿈틀하니까 터키에서는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것이 자연이 인간 을 공격하는 현상인데, 이런 살벌한 죄악과 저주들이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결과가 옵니 까? 9절입니다. 이 구절은 꼭 외우 십시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 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 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 이니라."

주님이 다스립니다. 악한 자들이 선하게 바뀝니다. 자연과 인 간이 화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 님이 다스리시는 이 신천신지가 임 하면 그 나라 어느 곳에서도 해를 입는 자도 없고 해를 주는 자도 없 고, 상처를 당하는 자도, 상처를 받 는 자도 없게 됩니다. 이런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 의 나라입니다. 완전한 통치자, 완전 한 통치가 가능한 그 땅이, 그 나라 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현실을 보고는 우리가 절 망을 합니다만 그 절망 중에 우리가 이런 꿈을 갖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요.

온 세상을 덮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

어떤 때는 이 나라가 빨리 왔으 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납니다. '하 나님, 빨리 이런 나라가 왔으면 좋 겠습니다. 왜 지금은 안됩니까?'하 고 우리가 조바심을 냅니다만, 그러 나 9절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면 중 요한 한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그 나라가 임한다고 합니다.

"물이 바 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 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될 때"

하나 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갈 때 다 섯 시간, 여섯 시간, 일곱 시간, 심 지어 여덟 시간 태평양을 건너가면 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만 보입니 다. 태평양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그 망망 한 대해의 물을 보면 감동이 밀려듭 니다.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 는 지식이 온 지구상에 온 세상에 가득할 때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게 뭡 니까? 막연히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신의식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은 마귀도 갖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 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2:19) 야고보가 비꼬는 말로 하 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호 와를 아는 지식이란 막연히 하나님 이 계신다라는 그런 의식이 아닙니 다. 그러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무엇입니까?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된 지식입니다. 주님이 말씀하 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요한복 음17장3절에 기록된 그 지식입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유일하신 참 하나 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를 아는 것이니라."

바로 이 지식입 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우리는 이 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시요, 나 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고백 적 지식'입니다. 두번째는 예수 그리 스도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 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셔 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것을 믿는 '교리적 지식'을 말합니다. 세번째로 는 성령을 통해서 살아계신 예수 그 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며 나는 그분 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체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또 네번 째는 이렇게 영광스러우신 예수 그 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평생을 주님께 헌신하겠다 고 하는 결의가 보이는 '실천적 지 식'입니다. 이렇게 고백적이요, 교리 적이요, 체험적이요, 실천적인 하나 님을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 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면 사람이 바뀝니다.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사 자가 어린아이가 되듯이 이리가 어 린 염소가 되듯이 근본적으로 바뀝 니다. 그리고 사람이 바뀌니까 삶도 바뀝니다. 이런 사람이 온 천지에 가득하게 되면, 이런 사람들이 온 천지에 가득해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해지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목전에 나타납니다.

몇 달 지나면 20세기가 문을 닫 게 됩니다. 우리는 20세기 백 년을 통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여 한 가지 진리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세상은 지옥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하 는 인간은 마귀가 된다는 진리를 배 웠습니다. 온 세계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서 이 진리를 배웠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가 나은 유명한 문호인 솔 제니친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가 어린아이였던 20세기 초는 러시아에 서 공산혁명이 일어났던 때였습니 다. 매일 수십 명, 수백 명 씩 끌려 가 학살당하고, 온 나라가 공포 분 위기에 빠지고, 온 땅이 아수라장으 로 변했던 때입니다. 이런 끔찍한 재난들을 두고 어른들이 앉아서 주 고받는 말들을 어린 솔제니친이 들 었습니다. 그 말은 그가 어른이 되 어도 잊어버릴 수 없는 매우 인상적 인 말이었습니다. 1983년 솔제니친 이 미국에서 템플톤 강연을 할 때, 그는 어릴 적 들었던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그가 들려준 어른들의 대화 내용 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 끔찍한 재난이 왔을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래서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난 게야."

솔제니친은 그후 대학에서 러시 아 공산 혁명사를 전공하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연구하였고 8권이나 되는 관련 서적 을 저술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러시아 공산 혁명사를 연구 한 끝에 얻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반 세기 동안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 던 이 참담한 악마와 같은 공산주의 혁명의 비극이 왜 러시아에서 일어 났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어렸을 때 들은 어른들 의 대화가 유일한 대답이라는 것입 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거야."

우리는 20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 들의 피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을 아 는 지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 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 나 소중한지를 너무나 엄청난 대가 를 지불하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멸시하는 나라는 지옥 이 됩니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의 뇌 리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의식 조차 말끔히 쓸어버리려고 갖은 악 랄한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그 들은 근본적으로 거짓된 인간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인 간의 범죄, 타락을 인정하지 않았습 니다. 인간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 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철 저하게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님의 형상인 인간을 사람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으로 바꾸어 버렸습니 다. 하나님의 자리에 레닌과 스탈린 을 대신 앉혔습니다.

1950년 프라우다지에 이런 기사 가 실렸습니다.

"당신들이 공장에서 일을 할 때 너무너무 힘들어 '나는 할 수 없어.' 라는 좌절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때마다 그 분, 스탈린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회사에서 일 을 하다가 '과연 이것을 할 수 있을 까?' 라는 마음으로 갈피를 잡지 못 하고 답답해지면 그 분을 생각하십 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새 힘이 솟구칠 것입니다."

지금 이와 같은 모습을 우리는 북한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부 정하고 거부하는 인간이 얼마나 악 마같은 존재가 될 수 있고, 하나님 을 아는 지식을 우습게 여기고 멸시 하는 사회는 지옥같은 세상이 된다 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음 속 깊이 새 겨두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 식이 온 땅에 편만하게 되는 그 자 체만으로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 면 이와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 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 들도 별 수 없더라.' 우리의 현실이 이와 같은 의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옷 청문회 사건은 교 회를 완전히 발가벗겨 놓는 사건이 었습니다. 증인 모두가 집사요 권사 였습니다. 그들이 나와서 성경 위에 손 얹어 서약하고서 하는 증언은 도 무지 진실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거짓투성이었습니다. 옷청문회가 아 니라 교회청문회일 정도로 너무나 부끄럽고 가슴아픈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도 나라가 이렇게 혼탁한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편만한다고 하 여 무엇이 달라지겠나?' 이렇게 생 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우리는 분 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 는 성도는 잘못 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 다. 교회는 세상에서 부패하고 혼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냄새를 피우고, 아무 리 예수 믿는 사람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이 사회의 소망은 하나님의 교회 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의 소 망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 소망을 위하여 이 세상에 교회를 보내신 것입니다.

믿음 좋다던 권사들도 한순간에 잘못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잘 속이 겠습니까? 아무리 교회가 불완전해 도 이 땅의 소망은 교회 밖에 없습 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이 사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도구로 교회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길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만 감 당할 수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복 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 주어 야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 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 님은 아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알아 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없 습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이 땅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편만하게 되는 것 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 대할 없습니다.

만일 어린 중학생처럼 이 세상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므로 하나 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 까? 그 꿈이 한낱 몽상이 아니라 현 실로 완성되기를 원한다면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여야 합니다. 안 믿는 형제와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권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나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보여도 아직도 우 리 주변에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아침에 어떤 부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되었 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 다. 제가

"교회 다니세요?"라고 물었더니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잘 됐다 싶어 "예수님을 꼭 믿으세요." 라고 했더니,
"예?"하고 놀라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마치 '아침부터 재수없게 이게 무슨 소린가?'하는 눈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예수 소리만 해도 놀 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 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그 사 람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합니 다.

저에게 참 좋은 책이 하나 있습 니다. 이 책 제목은 『마우니 마망 아 이방아』입니다. 겉 표지에는 십 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을 단 한 줄도 읽을 줄 모 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받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 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은 정제순 선교사가 메께오 부족의 언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입니 다. 그는 약 12년 전에 파푸아뉴기 니로 가족을 이끌고 선교사역을 위 하여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식구 들이 밤마다 모기떼와 싸우느라고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부지기수였고,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선을 몇 번 씩 넘나들었습니다. 건기가 되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물 한바가지 가지 고 온 식구가 살아야 했습니다. 악 취를 풍기는 돼지우리 옆에서 집을 짓고 메께오 부족들하고 같이 살면 서 그들의 말을 배웠습니다. 문자가 없는 그들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 10 년 만에 드디어 신약 성경을 메께오 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 선교사가 타민족 부족을 위해서 신 약성경을 완역한 것으로는 제1호입 니다.

『마우니 마망아 이방아』

"새롭게 태어난 말씀"이란 뜻입니다. 저 는 이 성경을 손에 들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감동과 흥분을 느낍니다. 이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메께오 부족들이 이 성경을 읽으면 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 다를 덮음과 같이 그 땅에도 충만하 게 될 것을 생각하면 억제할 수 없 는 감격과 감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대각성 전도집회는 연례 행사가 아닙니다. 온 땅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케 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이 집회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와야 합니다. 내 가족 중에 안 믿는 사람이 있습 니까? 직장이나 학교의 친구 중에 아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 람들 있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알 지 못하면 다 악마들이 됩니다. 그 들에게 예수를 증거하여 모두가 예 수 믿고 하나님을 아는 경건한 사람 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위 하여 대각성 전도집회가 존재합니 다.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혹 시 이 세상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너 무 좋아 보입니까? 이 세상은 어린 중학생의 눈에도 너무나 절망스러운 곳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체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갖 지 못한다면 영적인 맹인입니다. 아 무런 소망도 안겨다 주지 못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는 하 나님나라에 대한 불타는 꿈을 일구 어야 합니다. 젊은 청년 이사야가 바라보았던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임재의 꿈을 가wu야 합니다. 그 나 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 으리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 할 것이니라."

할렐루야! 그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도록 우리 모두는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절망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의 생명과 풍성함을 전하여야 합니 다.

고형원 형제가 지은 감동적이고 영감 넘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사 야의 환상을 사랑 숨쉬는 찬양이 있 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찬양의 심 정과 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 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 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 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치유 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보리라 그 날에 주의 영광 가득 한 세상
우리는 듣게 되리 온 세상 가득 한 승리의 함성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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