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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5-16절 당신은 어떤 형입니까 - 이상호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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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유다서 1장 5-16절
설교제목 : 당신은 어떤 형입니까
설교자 : 이상호 목사님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기록한 편지 성경입니다. 유다는 자기가 순회 전도한 교회 하나에, 또는 여러 교회에 구원이란 무엇인지, 기독교의 기초적인 진리는 어떤 것인지를 써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3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정하던 차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인들을 유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거짓 교사들, 악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싸워 이기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다서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이와 같이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위기의 산물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목격하고 직접 배워서 교인들에게 전해 주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지도력에 위기가 생겼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바로 복음서들입니다. 말 대신 글로써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지도층의 교체가 복음서의 기록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뤄 냈습니다.

1부. 거짓교사들에게 (:5-10)

본문에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노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설교는 육신이 살기위해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듣고 또 들어서 영적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1.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멸망당합니다.(5절)

○ 5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으나 저들이 믿지 않고 광야에서도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많이 있었음에도 저들이 주를 거역하고 불신임하여 지도자 모세의 맘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저들에게 만나를 내려 먹게 하였어도 저들은 먹을 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주께서 저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였는데도 저들은 가는 길로 인해서 원망하였었습니다. 결국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다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함으로 이런 말씀이 거울이 되어 그와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듣는 말을 반복함으로 믿고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2. 자기 위치를 떠난 자들은 흑암에 가두신다고 하셨습나다. (6절)

○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범죄한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내용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특권을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사명을 망각하고 오히려 반역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 날까지 결박하여 두신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기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영지주의자들 같은 이단들, 저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육의 일을 도모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위치를 벗어 날 때가 있지나 않는지요? 유다가 이런 설교를 하는 이유는 알지 많은 생각하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으므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거울이 무엇입니까? 얼굴을 보고 잘못된 것을 보면 고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고 보면서 우리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주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믿는 사람들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설교를 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줄로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애굽에서부터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임하고 거역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천사들처럼 그렇게 위대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망각하고 그 지위를 떠난다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방탕하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2부. 가인과 발람과 고라 (:11-16)

목사님들이 많이 참고하는 「월간목회」에 보니까 "한국교회 빅뱅이 오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5년 내지 10년 이내에 한국교회 100대 교회 목회자가 거의 은퇴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빅뱅이라는 것입니다. 대교회를 무명의 소장 목회자들이 담임하게 되어 개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기고 교회들은 재통합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고 교회내에 새로운 유목민들이 발생해서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이뤄지고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다기능 역할 분담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이같은 빅뱅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대폭발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권두언의 내용이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한국교회의 지도층 교체라는 위기도 잘 극복되고 오리혀 교회 발전과 성숙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경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성적인 문란이 여러 군데에서 지적되고 있습니다.

유다는 거짓 교사들을 세가지 타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11절에 있는대로 가인 형, 발람 형, 고라 형입니다. 여기 "가인의 길에 행했다,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 고라의 패역을 좇았다" 하는 것은 가인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 발람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 고라와 같은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 이런 뜻입니다. 이 세 가지 형태는 오늘날 우리 교회 속에서도 흔하게 찿아볼 수 있습니다. 아니 내 안에서도 찿아볼 수 있습니다.

1. 가인 형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사람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지금 '이 세가지 형태는 오늘 날 우리 교회 속에서도 흔하게 찿아볼 수 있다, 내 안에서도 찿아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내게 형제 살인자의 요소가 있단 말씀입니까?"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인의 가장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입니까? 잘못된 예배를 드렸다는데 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했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양을 제물로 삼으려면 그 양을 죽여야합니다.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이 따르는 제사를 원하십니다. 가인의 제사에는 희생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가인에게는 무엇인가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가 열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나?' 살펴 보아야합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동생의 제물은 어떻게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잘못을 고쳐서 다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심히 분해서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혈기(血氣)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왜 내 제사는 안 받으시는 것입니까!' 했습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야하는데 자기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아벨을 죽였습니다. 끔찍한 범죄입니다. 예배 후의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됩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은 물론 나쁜 것입니다. 예배 후의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더 나쁩니다.

오늘날 우리 예배에는 이런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없습니까? 예배 후에 오히려 더 나쁜 일을 하는 일들은 없습니까? 없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통방송을 들으면 "어디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끼리 시비를 가리느라고 그 부근이 지체가 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때로는 물고기 표지 붙인 차의 운전자끼리 심하게 시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예화) 신호등 앞에서 담임목사와 싸운 집사님 이야기

여러분, 예배가 잘못되면 다른 것도 모두 잘못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는 정성을 다하는 것인데 그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것은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가인은 바로 이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2. 다음은 발람 형입니다.

물질의 유혹에 약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물질의 유혹으로 신앙적 양심을 굽히는 사람입니다. 발람은 누구입니까? 돈을 사랑한 탐욕스러운 주술가(呪術家)입니다. 글쎄요, 좋게 표현하면 종교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예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주술가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이방부족들을 격파해 가며 가나안을 행해 가는데 모압 왕 발락이 두려워서 힘으로 싸우기는 어렵고 그래서 발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너는 모압 왕 발락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발람이 이런 엄중한 계시를 받았으면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텐데 우물쭈물, 발락에게 왔다갔다합니다. 모압왕 발락이 베푸는 환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민수기 22장에서 25장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발람을 "불의의 삯을 사랑한 사람" "상급을 위해 범죄할 용의가 있는 탐심 많은 자" "나귀보다도 못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교사가 학부형의 많은 촌지를 받고 학생들의 성적을 공평하게 평가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 것도 나쁘고, 법관이 돈에 좌우되어 재판을 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것도 잘못이고 공직자가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도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제일 나쁜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발람처럼 돈에 끌려 신앙양심을 굽히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의 부패 가운데서도 가장 지탄 받는 것이 성직매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도 그와 비슷한 행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교회 안의 선거에서 금품이 오간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립니다.

어느 교회의 학생 하나가 교회에 잘 나오다가 어느날부터 교회에 발을 끊어 버렸습니다. 학생회장이 찿아가서 이유를 물으니까 예배 시간에 자리가 꼭 차서 예배를 드리는데 늦게 들어오는 교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권사님이 설교중에 들어 오셨는데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거 안내하는 아무개 집사님, 여기 앞에 빈자리가 있으니 이리로 안내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돈많은 교인들을 환대하는 것이 상처가 되어서 안나간다고 했습니다. 학생회장은 그 후배를 잘 설득해서 교회에 나오게 했습니다. 그 학생회장은 지금 목사가 되어 있는데 그 일을 기억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3. 다음은 고라 형입니다.

영적인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라는 누구입니까? 광야에서 무리를 지어 모세에게 대항한 사람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대해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에게 욍이 되려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항의 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민수기 16장을 보면 됩니다.

오늘날 사회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종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종교를 사회를 구성하는데, 문화를 구성하는데 하나의 필요한 요소처럼 여깁니다.

이렇게 되다 보면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받는 대접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집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우리는 종교를 인정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우리가 개방정책을 취하는데 개방사회에서는 종교도 필요하다니 우리도 인정합시다", 중국이 그렇고 북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교회 안에서조차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어지럽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권위는 교회 안에서 지켜야합니다. 그래야 밖에서도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해줍니다.

고라는 이것을 무시했습니다. 민수기 16장 1절을 보면 고라는 제사장 부족인 레위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앞장서서 영적인 권위를 지켜야 할 사람이 오히려 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가인 형, 발람 형, 고라 형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4절.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강한 전파력을 가진 몇입니다. 누룩과 같이 퍼져 나갑니다. 이 거짓교사들은 앞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더 강하게 날뛸 것입니다. 지금 세기말(世紀末)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가인적인 요소, 발람적인 요소, 고라적인 요소는 없습니까?

내 마음 속에 잘못된 예배, 자기중심적인 예배, 나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예배 후에 선한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퍅하게 대드는 경우는 없습니까? 물질의 유혹에 우왕좌왕하는 일은 없습니까? 영적인 권위를 무시하는 일은 없습니까?

이같은 사람들은 1) 애찬의 암초요, 2)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3) 바람에 블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4)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5)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6)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입니다. (:12-13절)

또한 원망하는 자며 2) 불만을 토하는 자며 3)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로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이나 하는 자입니다.(16절)

그렇다면 가인, 발람, 고라가 어떻게 되었고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가인은 악의 표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황순원 씨는 공산주의자들의 행패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면서 제목을 「카인의 후예」라고 했지요.

발람은 저주 받을 이름으로 성경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4절에서 16절까지를 보면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발람을 나귀보다 못한 존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이 갈라져서 고라와 그에 속한 사람들이 음부에 빠졌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가인 적인 요소, 발람적인 요소, 고라적인 요소가 있으면 우리는 그런 그런 물결이 밀려들어올 때 쉽게 휩쓸립니다. 교회가 위기에 빠집니다.

지금은 그런 위험이 많은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이런 요소들을 경계해야합니다. 바른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물질에 깨끗해야 하며 물질사용의 우선순위를 잘 지켜야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이같은 일들을 잘 지켜 이 어려운 때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여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거움으로 서게 하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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