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7-23절
설교제목 : 자기를 건축하라
설교자 : 최덕훈 목사님
본문은 유다의 가장 핵심적인 교훈입니다. 구약의 여러 사건들과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삼가 조심하면서 믿음 생활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탁월한 성경적 안목을 가지고 명쾌하게 신앙적 교훈을 엮어내는 그 통찰력을 우리는 귀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믿음생활하면서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하는 유다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유다는 대단히 겸손한 권면을 합니다. 즉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은 사도가 아니요, 사도에게 수종드는 자 정도로 여깁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이 교훈한 말씀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자신이 교훈해도 될 일을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자신은 예수의 젖동생이기는 하지만 사도는 아니기 때문에 사도들의 권위있는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귀중한 자세가 얼마나 아름다워보입니까? 18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들의 권면은 마지막 때에 정욕대로 행하는 경건치 않은 자들 그리고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인즉 삼가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런 교훈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호시탐탐 우리의 타락과 우리의 실족함을 기다리고 있는 악한 세력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경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의 결정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없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유 1: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유익을 위하여 당을 짓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지만, 정작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성령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언제나 자기들끼리 몰려 있으면서, 자기들의 주의 주장을 위해서만 서로 모이는 당 짓는 행위를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전적으로 육에 속한 것이요, 신앙 생활할 때에 전혀 필요 없는 일입니다. 성도나 주의 종을 욕할 때에 가장 심한 욕이 무엇입니까? 성령 없이 일하라! 기쁨 없이 일하라! 사명 없이 일하라! 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일하면 기쁨도 없고, 사명이 없으면 기쁨도, 성령도 없게 됩니다. 성령 없이 일하면, 가장 힘들고 괴로운 일이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세상 일처럼 돈 받고 한다면, 이처럼 중노동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는 자들의 꼬임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하면 안됩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과연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수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다가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깊이 마음 속에 새기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 믿음의 건축물을 잘 지어야 합니다.
본문 20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했습니다. 유다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그러므로 믿음의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들입니다. 자기의 믿음의 건물을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하게 짓는가가 중요합니다.
우선, 건축물에는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 신앙건축물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0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했습니다. 믿음 ‘위에’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완전하고도 분명하게 고백하는 신앙 위에 자기의 믿음의 건축물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기초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나아가면 우리는 언제고 기초 없는 믿음을 드러내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분명한 관계성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불가항력적 은혜로 나를 구원하여 주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함이 믿음입니다. 성도라면 반드시 이런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임을 고백할 때에 우리의 신앙의 건축물은 그 기초가 완성됩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확실하게 붙들고 사느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런 관계, 이런 확신을 가지고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또한 모든 건축물에는 기둥이 필요합니다. 유다는 두 가지 기둥을 설명합니다.
첫째 기둥은 기도입니다.
본문 20절, ‘성령으로 기도하며’ 했습니다.
든든한 기초위에 성령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건축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둥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성령 없는 자들이나 성도는 성령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기도함은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기도하심에 대하여 명쾌한 설명을 했습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영과 더불어 기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시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따라서 진실한 성도들이라면 성령을 힘입지 않고는 무슨 일이든지 해 낼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나아가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성도는 우리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감동으로써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능력이요, 자기가 짓는 믿음의 건축물의 든든한 기둥이 됩니다. 믿음 있는 자는 당연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집이 점점 지어져갑니다.
둘째 기둥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우리가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본문의 유다의 교훈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만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먼저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의 교훈입니다. 요일 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교훈은 실제적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 놀랍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초월하시면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5장의 우리의 형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경건치 아니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고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잇대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에 또는 범죄하려 할 때에도 나아가서 범죄한 후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호 2:6-7,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길을 갈 때에 가시로 그 길을 막으시고, 또는 담을 쌓아 가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엄청난 죄악가운데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했습니다. 즐길찌라도 사랑한다는 선포는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고,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의 건축물에 없어서는 안될 기둥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건축물에는 지붕이 필요합니다.
유 1:21,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영생은 신앙의 건축물의 지붕과 같습니다. 지붕은 곧 소망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는 가장 중요한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영생은 효력이 없게 됩니다.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완전히 얻을 때까지 즉 완전한 영생이 회복될 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야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인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면, 예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건축물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집을 잘 지어놓고 비어놓으면 오히려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는 사람이 살아야 하고, 무엇인가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빈 집이나 주인 없는 건물은 악한 세력의 집합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 살아야 합니까?
우선, 의심하는 자들입니다.
22절,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믿음의 건축물에 의심하는 자들을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의 의심을 해소시켜 주고, 확신있는 자들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을 영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일마다 때마다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사랑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불에 있는 자들입니다.
유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불 즉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합니다. 자기는 안전한 집 속에 있다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 고통하는 자들을 이끌어 내어 구원함에 이르도록 도와주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일을 즐겨하지 않으면 거의 빈 집과 같아 형편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또한 더러운 자들입니다.
유 1:23,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범죄한 흔적도 ‘싫어하듯이’ 자신이 죄와는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범죄한 자들을 볼 때에 그들의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을 불쌍히 여김으로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건축물에 이런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면, 이는 축복의 장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를 우리보다 연약한 자들에게 베푸는 일이 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과 그 집을 잘 활용하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훌륭한 건축물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기초! 성령으로 기도함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를 지킴이 곧 기둥입니다. 그리고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의 긍휼을 기다림이 우리의 지붕이요 또한 소망입니다. 이런 건축물을 잘 건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축물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 환난 중에 있는 자, 범죄한 자들을 잘 감당해 주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귀중한 수고속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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