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유1장 1-4
설교제목 : 이단을 분별하라
설교자 : 이상호 목사님
우리 입을 즐겁게 하는 것에는 국산인지 아닌지를 구별을 하는데, 우리 영혼을 살리고, 죽이는 사이비 이단에 대해서는 얼마나 구별을 할 수 있을까요?
●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유다가 기록한 성경으로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의 내용이 주된 내용인 성경입니다. 그런 거짓 교사들을 본문 4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가만히 들어온 온 사람 몇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들이 당하는 징계는 5절부터 15절에 나오는 징계를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이단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사이비 이단 사설에 우리는 안전 할까요?
● 제가 다음에 드리는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 우리는 회개를 몇 번이나 할까요? 평생 살아오시면서 몇 번이나 회개를 하셨습니까? 한 번 혹은 무수히 많이 하셨습니까? 한 번도 맞고 무수히도 맞습니다.
구원을 위한 회개는 단회적입니다. 회개라는 단어의 의미가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 그것이 구원을 위한 단회적인 회개입니다. 그래서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면서도 무수한 죄를 짓고 삽니다. 그 죄에 대한 회개도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의 회개는 구원을 위한 회개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성화의 회개입니다. 그 성화의 회개는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파라고 불리우는 이단은 성화의 회개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는데, 무슨 회개가 또 필요하냐고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회개를 하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회개파라고 불리우는 이단은 구원의 회개를 부인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단들은 기도를 무지 많이 시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대부분은 회개의 기도입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또 다른 질문 -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였을 때 무화과 잎으로 왜 치마를 해서 입었을까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치마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발생한 이단들이 있습니다. 치마를 한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성적 타락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피가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타난 이단들이 통일교의 문선명이라든가, JMS의 정명석 등이 이 논리를 펴며 미혹합니다. 치마의 원문의 의미는 “허리를 가리는 띠”의 의미입니다. 가리운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 하체의 부끄러움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치마에 목을 매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죽음의 길로 떨어뜨리는 것이 이단입니다.
▶ 또 다른 질문 - 우리는 왜 주일을 지킵니까? 안상홍증인회 지금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간판을 달고 있는 이단입니다. 그들이 기존 교회가 가짜라는 것을 말할 때 잘 사용하는 것이 주일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주일을 지키느냐? 어디 주일을 지키라고 말씀한 곳이 있느냐? 십계명에서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지 않았는가? 최대의 이단은 주일을 지키는 기존의 교회다”라고 말합니다. 맞습니까?
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킵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일요일, 즉 주일은 로마가 태양신을 섬기기 위한 날이다.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도록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지키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시며 복을 주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의미는 휴식의 개념이 아니라 완성의 개념입니다. 더 이상 창조할 것이 없도록 완벽하게 계획대로 창조하셨다는 완성의 의미가 안식입니다. 그런 안식일이 죄로 말미암아 깨어졌는데, 하나님은 그 죄를 예수님으로부터 속죄케 하시고 죽으심을 당한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시면서, 재창조의 완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고, 안식일은 주일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 사도행전16:31에 간수가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는 물음에 바울은 말씀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그런데 이 말씀을 통일교의 목사가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다면 “그 예수”가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입니까? 이 말씀을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 목사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한다면,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요즘 많은 교회가 피해를 입은 신천지의 목사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예수는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겉은 예수님의 옷을 입혔지만 그 옷을 입은 예수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통일교나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같이 이단으로 완전이 각인 된 곳을 조심을 합니다. 그러나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의 교회 이름을 걸고 우리와 같은 내, 외형적 모습을 가진 이단들에 대해서는 별 의심을 같지 못합니다. 왜요? 분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실 때의 “예수님”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온갖 사이비, 이단, 사설들이 판을 치며 영혼을 갈아먹는 오늘날에는 그 말씀은 누가 하고 있느냐를 보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말이 그 말을 선포하는 사람의 믿음을 담은 채 선포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는 것과 신천지 교회로 알려진 사람들이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어떤 예수를 믿느냐 하는 믿음이 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의 분별을 할 줄 아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을 아는 지식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없는 순종은 맹종일뿐이고, 순종없는 지식은 허무일 뿐이다.”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탄식하며 외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이과 살인과 도둑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4:1-2)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말씀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4:18) 무지함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씀합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옥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그 지식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교리입니다.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을 봅니다. 신앙생활에 교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는데 무슨 신학이 필요합니까? 성경 말씀대로 살면 되지요!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란 보석이 원석입니다. 그 원석을 잘 만들어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든 것이 교리입니다. 신학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씀이 나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경에 흩어져 있는 삼위일체의 말씀을 잘 역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학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비록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공인된 것이지만 이미 창조 때부터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아는 지식입니다. 더 나아가 교리도 배워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시간을 투자해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 가운데 전해지는 성경의 말씀만 잘 들으셔도 어느 정도 분별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의 조심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비단 초대교회 때뿐만 아니라 그 때보다 더 교묘해지고, 간교해진 사이비 이단들이 우글거리는 오늘날에 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위폐 감별기보다 더 뛰어나게 위폐를 찾아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위폐를 분별하기 위해 매일 같이 반복하는 훈련이 있답니다. 그것은 진폐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진폐를 바로 알면 위폐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위폐를 분별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진폐인 성경에 대한 연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성경을 아는 지식입니다. 더 나아가 교리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설교 시간에 말씀만 잘 들으셔도 사이비,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실 겁니다.
거짓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셔서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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