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요한복음 8장 1-11절
설교제목 : 용서와 사랑과 치유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용서와 사랑과 치유라는 제목으
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의 폭격으로 황폐해진 산천도 세월이 지나면 자연은
인간의 범죄를 용서하고 어느덧 사랑의 손길로 상처를 어루
만져 이름 모를 들풀과 꽃들과 수풀로 덮어 치유해 놓습니
다. 산불이 스쳐간 곳, 홍수가 쓸어간 곳, 지진이 허물어
놓은 곳 그 어느 곳에나 자연은 세월을 통해 사랑의 손길로
용서하고 치료하여 새롭게 해 놓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
과 치료가 없으면 우리는 일시도 이 땅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과식으로 배탈이 났을 때, 과로로 몸이 아
파 누웠을 때, 병들어 고생할 때, 혹은 마음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릴 때 우리의 몸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사랑
으로 치료를 진행시켜 마침내 건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입
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없는 가혹한 정죄와 심판과 형
벌만이 있는 곳에는 오직 황폐한 파멸이 따를 따름인 것입
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세상에 그 아들 예수
님을 보낸 목적은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베풀기 위한 것입
니다.
오늘 첫째로 죄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예수님에
관해서 요한복음 8장 1-11절의 사건을 한번 알아보겠습니
다.
예수님께서 아침 일찍이 감람산에서 내려 오사 성전에 들
어가서 말씀을 전파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
르침에 심취하여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한 여인을 잡
아서 성전 뜰로 끌로 들어오는데 고함소리, 욕하는 소리 그
리고 여인의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군
중들이 길을 싹 비키는데 그 틈사이로 이 여자를 질질 끌고
들어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굴은 붓고, 눈은 충혈
되고, 옷은 찢어지고, 맨발이었습니다. 이 여인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동댕이 치고 난 다음 그들은 예수님께 말했습니
다. `선생인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우리에게 잡
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는 돌로써 쳐 죽이
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이 여자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합니
까?' 그 사람들은 예수를 올무에 잡아넣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다 압니다. 율법
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별도리 없
이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그
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내용
을 썼다고는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율법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
에 예수님이 그 자리에 십계명을 다 적었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
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
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
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압력을
가합니다. `주여! 선생이여! 빨리 심판하소서. 당신은 이 여
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께서 십
계명을 적어놓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면 그렇
지 율법대로 판단해야지' 예수님께서는 허리를 펴서 큰 자
로부터 작은 자까지 눈을 마주쳐 꿰뚫을 듯이 보시고 난 다
음에 장엄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당신들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이 여자를 치시오' 그러고 난 다음 주
님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또 적는데 사람들마다 그
어깨너머로 보니까 그곳에 있는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남몰래 지은 죄악을 주님께서 백일천하에 손가
락으로 적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저는 그 사실을 능히 추축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보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지었던 죄가 예수님의 손가락 끝에서 낱낱이
기록해 나옵니다. 만일 돌을 들어 이 여자를 쳤다가는 그
다음에 그 돌은 예수님의 손에 들려서 자기들이 얻어 맞아
야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양심에 가책
을 느꼈습니다. 그 곳에 설교 들으러 왔던 군중들조차도 예
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을 다 내버
리고 몽둥이를 내버리고 뒷걸음질 쳐서 도망치고 말았었습
니다. 예수님이 한참 만에 일어서서 보니까 아무도 없습니
다. 주위에는 가지가지 돌멩이가 널찍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여자는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며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고
개를 들어라' 여자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공포에 질
린 눈입니다. `한번 살펴보라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는냐?'
이 여자가 좌우를 살펴보니 그 곳엔 자기를 죽이려고 들고
온 돌멩이들만 흩어져 있고 아무 사람도 없습니다. 이 여자
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휘둥그레 뜬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쳐다보며 `주여 나를 정죄하는 자가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한참 여자를 보시고 난 다음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나도 너
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이 여자는 감격했습니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었는
데 이 말로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예수님께 백배 사례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는
성전 밖으로 나갈 때 서 계신 예수님을 돌아보며 돌아보았
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용서와 사랑이 이 여인을 치료해 버
리고 만 것입니다. 이 여인은 걸어나가면서 수없이 수없이
자기에게 다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용
서와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나는 다시는 거룩하게 살리라` 다짐하며 나갔습
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람들 변화 시키는 것은 정죄와
심판과 폭력이 아니고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이 세상 사람
들을 살립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두 번째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수
님의 십자가 고난인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
려 고난 당하신 걸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님이 오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권세와 위엄과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폭로하고 심판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
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복음 3장 16-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
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
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마귀의 자식이 되어 있는 사
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끌어내어 구원을 시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세상 사람을 위해서 그는
희생을 당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
이요 죄를 지은 영혼들은 죽어야만 합니다. 이 죄를 용서하
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유해서
놓아준 것은 그 여자에 대한 모든 죄를 당신이 다 갚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죄를 다 책임
지고 그 여자를 찍으려던 그 돌멩이와 그 몽둥이에 주님께
서 맞을 각오를 하지 않았으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줄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여러분 남의 빚을 용서해 주는
사람은 그 빚을 자기가 갚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일천만원 빚을 지고 왔는데 제가 여러분보
고 `그 빚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빚에서 놓여 남을 받고
편안히 가십시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의 빚을 내가 끌어안
고 내가 갚아야지 갚지 않고 빚을 청산할 수는 없는 것입니
다. 이처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우리의 죄과를
갚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
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죄과를 갚기 위해서 주
님은 죄 없는 자로써 죄 있는 우리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을 누리
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불의, 나의 불의
를 걸머 쥐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
나님은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간 예수
그리스도를 무자비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심
판이 얼마나 가혹하고 처절했던지 예수님은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
나이까'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을 찢고 피
를 다 흘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중에 외쳤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그 생명을 통하여 우리의 죄과를 다
청산해 버리셨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는 회
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마다 값없이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고
주님께서 치료해 줄 수 있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자마다
용서와 사랑과 치료를 값없이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을 여러
분 값싸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용서는 값
지고 비싸기 때문에 우리가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태양의 빛을 여러분 돈 주고서 비출 수 있는 것입니까? 태
양의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 살아납니다. 너무나 값비싸
기 때문에 우리는 값을 지불할 수가 없어서 은혜로 공짜로
받습니다. 우리가 숨을 4분 동안만 쉬지 않으면 다 죽는데
여러분 이 공기를 돈 주고 사서 쉴 사람 있습니까? 너무
값이 비싸기 때문에 할 수없이 우리는 값없이 은혜로 그냥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돈 주고 살 수 있나요? 부모의 사
랑이 하도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대로 은혜로 받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하
나님의 사랑을 값으로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공짜로 얻어
입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에서 보십시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서 먼 나라에 가서 허랑 방탕하여 마음도 몸도 병들고 옷은
누더기가 되고 퇴비냄새가 나는 그 몸으로 아버지를 찾아왔
을 때 아버지가 뛰어와서 그 아들을 품에 품으시고 그 종들
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옷을 갔다 입혀
라. 이 썩은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제일 좋은 옷을 갔다 입
혀라' 우리가 하나님께 앞에 나오면 우리의 몸은 누더기 같
습니다. 모든 사람은 쇠퇴한 나무잎사귀 같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습니다. 걸레 같은 누더기 옷을 입고 우리
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
도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산 제일 좋은 옷을 갔다 입혀
라 여러분 하늘나라에서 제일 좋은 옷이면 그 이상 더 비싼
것은 없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사기 위해서는 제일 고가를 지불해야 되
는데 하나님께서 제일 고가를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샀습니
다. 그 가격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그 몸을 찢
어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최고의 옷을 샀습니다. 그 옷이
바로 구원의 옷이요 그 옷이 바로 의의 옷입니다. 이 구원
의 옷과 의의 옷을 오늘날 우리에게 입혀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 옷을 입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가 있는데 오늘날 어떠한 사람도 이와 같은 옷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어떠한 의식도, 어떠한 사람의
행위도 여러분 이 크나큰 대가를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
러므로 세상 사람이 만든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산 제일 좋은 옷, 구원의 옷, 의의 옷을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주셨는데 이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우리는 돈의 환산
할 수 없으므로 은혜로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
다.
이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은총을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죄에서
용서를 받고, 의로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정죄를 받지 아니하
고 마귀의 참소를 받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격
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측량할 수
없이 높고 깊은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우리는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늘 받기 위
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없이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의
롭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
는데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받은 대로 열매 맺
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
님 앞에서 계속해서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된 마음으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회개하고 죄에 대해서 애통한 마음이
없을 때 그것은 가짜 회개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 짓다가
잡히었기 때문에 잘못했다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란
것은 진실로 그 마음 속에 죄 지은 것을 크게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애통해서 그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한번 만에 죄악을 다 버리지는 못하지요. 그가
죄를 버리고 성결하게 되는 것은 한평생동안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죄를 짓고 넘어지고 애통하고 회개하
고 또 일어났다가 곧 또 그 죄를 짓고 또 애통하고 회개하
지만은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끊임없
는 노력과 애통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애통함이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서 가슴이 아프
고 애통해서 회개하고 그 죄를 버리려는 발버둥과 노력이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내 이웃이
내게 범죄 했을 때 하루에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
니까?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겠지요?' 베드로가 생각하기에
는 하루에 일곱 번씩 용서해 주면 최고의 용서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라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라' 일곱 번
에서 일흔 번이면 490번입니다. 490번을 주님께서 진실로
애통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용서해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습관적 회개가 아닌 죄에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서 울면서 주님께 나올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계속
해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치료를 베풀어 주셔서 칠전팔기하여 우리가 기어코 일어나
서 죄를 털어버리고 의로운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
나가도록 주님께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얼마나 많은 오줌을 받아내며 똥
을 쳐내지 않습니까? 오줌을 몇 말을 받아내고 똥을 몇 섬
을 받아냅니다. 어린아이가 오줌 싸고 똥 싼다고 그대로 두
드려 때리면 그 아이는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
모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줌을 이렇게 받아내고 똥
을 이렇게 받아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얼마 있지 않아 오
줌을 가리고 똥을 가리게 되고 올바른 사람이 된다. 이 기
대가 있기 때문에 부모는 계속 그것을 참는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우리의 죄를 계속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
시고 우리를 다시 치료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장차 의롭게
되고 성결하게 되고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하나님이
기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습관적으로 하
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습관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다면 내일
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심히 채찍으로
때리던지 안 그러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내일에 의롭게 되고 진실하
게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그런 신앙생
활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입술로만 회개하고
지나가다가 하나님의 손에 잡히어서 뼈가 으스러지도록 얻
어맞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마다 채찍질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식마다 징계한다'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찍질하고 징계하지 않으신다
면 그 사람은 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은
이상은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료하다가 이 사람
이 습관적으로 그것을 하면 하나님이 들어서 치시는 것입니
다.
여러분 하나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서 때릴 때 쓰다듬어 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릴 때
아프게 때립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때립니다. 고통스
럽게 때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를 맞기 전에 우
리들은 계속 참된 회개와 참된 죄악에서 돌이키는 삶이 있
어야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 속에 거룩하게 살
려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게 살아지지가 않
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
리를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3절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하였으니'
라고 말하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에 있는 이 성경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
다. 어떠한 죄인도 이 성경말씀을 자꾸 읽고 있으면 그가
개과천선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어떠한 추한 사람도 성경을
계속 읽으면 깨끗하게 됩니다. 의로운 사람이 이 성경을 계
속 읽으면 더욱 의롭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
고 깨끗하게 될 사람이 없습니다. 말씀은 목욕하는 물과
같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사람도 계속해서 목욕을 하지 아
니하면 더러워지고 냄새나고 추하여 집니다. 아무리 거룩한
크리스챤이라도 성경말씀을 멀리하면 그는 곧장 더러워집니
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는 노력의 일환으
로써 우리는 정규적으로 매일같이 성경을 읽어야하는 것입
니다. 성경을 떠나지 말고 여행할 때도 성경을 가지고 다니
고 내가 잠 잘때도 성경을 가지고 머리맡에 두고 자야되는
것입니다. 매일 정기적으로 성경을 적어도 하루에 한 장내
지 석 장 이상은 읽고서 우리가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든 못 깨닫든 성경말씀을 읽으면 성경말
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깨끗게 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시골에서 감자를 캐든지 고구
마를 캐고 나면 바구니나 소쿠리에 흙이 잔뜩 묻었습니다.
그 바구니나 소쿠리에 잔뜩 묻은 흙을 우물가에 가서 물을
퍼 가지고서 그 두레박으로 확 붓습니다. 이 바구니나 이
소쿠리에 물이 하나도 고이지 않습니다. 물이 그냥 싹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래도 물을 몇 통 부으면 바구니와 소
쿠리는 깨끗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은 고이지
않지만 씻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성경 그거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남지도 아
니하고 깨닫지도 못하는데 그걸 왜 자꾸 읽으나?' 이것은
여러분께서 바구니나 소쿠리와 같은 여러분 속에 성경말씀
을 그냥 쏟아 부으면 이해도 못하고 깨닫지 못해도 그것이
나가면서 마음 속에 있는 죄악과 더러움과 마귀를 씯어 내
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여러분의 힘으로 여러분이 거룩하게 될 수는 없어도 용서
받고 구원 받은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매일매일 정규적으로 기도할 때마다 성
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7절
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우리의 의로운 행위
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쫒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새로워지고 오늘보다 내일 새로워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
다. 구태의연하게 옛날 습관에 젖어 살면 안됩니다. 날이
갈수록 새로워져야 되는데 누가 우리를 새롭게 합니까? 성
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
이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을 인정합니
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의지합니다.' 성령께 의지하
면 성령이 매일매일 여러분을 위해서 역사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마음의 고통을 가져 다 주고,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
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성령이 불안하게 만듭니다. 죄악
가운데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성령이 마음에 고통을 주게 하
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마음
속에 꾸짖습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채찍으로
와 계셔서 우리를 구태의연하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죄악
의 수렁에 빠져 살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의 속에 살지 못
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붙잡아서 자꾸 새롭게 새롭게
변화 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성령의 죄와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가 진실로 거룩한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없습니
다. 머리 속으로만 예수 믿는 가짜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가짜 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령
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인정
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
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은 신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계셔서 주야로 여러분이 깨끗하게 되
고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게 하려고 힘쓰고
애써서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성령님을 사랑하고 존
경하고 예배드리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늘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를 손잡고 질풍처럼 이끌어 가 주시는 것입
니다.
그 다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절도 있는 삶을 살아야되
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가 예수 믿었으면 예수 믿는 사람답
게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의 결심과 각오가 있어야 되는 것
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서는 조금도
절도없이 엉터리같이 안 믿는 사람과 합쳐 가지고서 죄악의
수렁창과 진흙 창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산다면 이는
위선자요 가짜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 와서 입으로 주여!
주여! 하나 그 곳에는 알곡도 있고 쭉정이도 있습니다. 밀
도 있고 가라지도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
를 알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실로 예수를 믿
었었으면 우리의 생활 속에, 우리의 행위 속에 열매가 나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주님께서 뽑아서 던
져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로 태우겠다고 말씀한 것
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면 우
리의 생활 속에 절도 있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결
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올바르게 사귀어야 되는 것
입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여러분 우리는 올바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나쁜 친구를 사귀면
학교 가다 말고 그만 나쁜데 치우쳐서 버리고 맙니다. 자녀
들이 어떠한 친구를 사귀고 사는지 부모들은 관심을 기울여
야 됩니다. 그와 함께 부모도 한가지입니다. 다 장성한 어
른들도 친구를 잘못 사귀면 그 인생을 파탄으로 이끕니다.
술꾼과 사귀고 난 다음 술 안 먹는 것 보았습니까? 술꾼친
구와 사귀면 어찌하다가 한 두잔 먹게 되고 그 다음에는 술
꾼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사귀면 같
이 음행 안하고 견딥니까? 음란한 사람과 같이 사귀면 음
란한 사람이 그 사람을 음행하는 처소로 자꾸 끌고 가는데
같이 음행에 빠지게 되고 인생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
니다. 도박꾼과 사귀고 난 다음 도박 안 하는 사람 보았습
니까? 도박꾼과 사귀면 재미로 한판 하자는 것이 재미가
나중에는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마약사용자
와 사귀면 마약 꾼이 되기 쉽고 폐역한 자와 사귀면 같이
폐역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사귀는냐
이것이 우리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챤은 마땅히 주일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기고 또 삼
일 날 혹은 구역예배에 참석해서 성도들과 섬기고 자기의
직장에서도 주를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들과 할 수 있으면
모여서 함께 서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바른 친구와 함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
은 자기의 힘과 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쁜 환경을 피해야 됩니다. 사람은 바라봄의 법
칙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바라보던
지 그 바라보는 것으로 끌려가던지 바라보는 것이 자기에게
끌려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들은 매일같이 선악과나무 밑에서 그것을 쳐다보았었습니
다. 선악과를 매일 쳐다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안 먹을 도
리가 없습니다. 그는 선악과에 끌려가고 선악과는 그들에게
끌려와서 그들은 선악과를 먹고 만 것입니다. 롯이 저 요단
강 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매
일같이 가나안 땅에서 물이 많고 풀이 푸른 소돔과 고모라
를 바라보았었습니다. 그러자 그와 그 처자가 함께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내려갔고 나중에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심판
받을 때 그는 인생파탄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분 우리 바라봄의 법칙이 우리 생애를 좌우합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에는 이 범죄가 범람합니다. 음란한 영화, 음란한
소설, 음란한 잡지 그리고 더러운 스토리, 부정한 TV 방
영... 어느 곳에 가나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성한 곳이 없
습니다. 오늘 어른들이 만든 이 더럽고 추악한 문화권 속에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방치해 놓아서 어린이들이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어릴 때부터 음란하고, 방탕하고,
살상하고, 일확천금하는 생각으로 꽉 들어차서 젊은이들이
오늘날 흉악한 범죄를 행하는 이유도 사회의 부산물로 그렇
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스스로가 범
죄하지 않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바라봄의 법칙을 철저히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음란하고, 방탕하고, 더럽고 추악한
곳에 들어가서 그것을 듣고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에 집중해 있으면 반드시 그 곳에 탐닉하고 떨어
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의롭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올바른 것을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선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서 값없이 용서를
받고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치료를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으면서 날로 날로 향상된 삶을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고 하실 때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
나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택한 자라도 삼키
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마귀가 삼키려는 것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도 다시는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죄악 가운데 탐닉
하고 말씀을 저버리고 성령을 저버리고 나쁜 친구와 사귀고
더러운 환경 속에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다가 그리스도를 잃
어버리고 멸망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식이,
종교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없이
받았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삶
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려고 애를 쓰고 성령
으로 충만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절도 있는 삶을 살아가려
고 몸부림치는 이러한 삶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지만 구원을 유지하고 나가는 데는 우리는 몸부림
치고 애쓰며 마귀와 싸우고 육체와 싸우고 환경과 싸우는
싸움이 일생을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인생
을 죄악가운데 포기해 버린 사람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
혜를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오늘 질문합니다. 여러분 속에 죄악과
마귀와 육체의 욕망에 대해서 오늘도 싸움이 있습니까? 그
렇지 않으면 교회는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싸움은 이미 포기
해 버리고 그저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은 지식만 가지고 있
지 세상에 나가서 죄를 보면 그 속에 뛰어들어가고 방탕한
곳에 들어가면 그와 짝을 같이하고 술 취한 자와 같이 들어
가면 함께 술 취하고 저항을 포기해 버리고 그와 싸우는 것
을 포기해 버리고 세상과 타협해서 홍수처럼 같이 밀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무엇이 다릅니
까? 믿는 자는 그 영혼 속에 하루도 쉬지 않는 투쟁이 있
습니다. 끝없는 애통함과 싸움과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는다
고 하면서 이 이상 투쟁도 버리고 죄에 대한 저항을 버리고
죄에 묻혀서 그대로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삶을 살게 될 때
이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의식과 형
식은 있으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요 교회 안에 있는 쭉정
이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여러분 신속히 돌
아서십시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
십시오 언제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야 될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건강하니까 오래 산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에도
춘천에서 오는 고속버스가 떨어져서 24명이 수장되고 말았
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 우리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줄
압니까?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아무 기약이 없습니다. 언제
우리가 주를 만나야 될 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항상 우리는
예비하고 있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하나님께서 크시고 크신 인내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
하시고 계속 치유하여 주십니다. 몸부림치는 사람은 언제나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변화 받지 못하고 죄악의 길로 그대로 달려
가면 그 다음에는 마침내 버림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
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깨어지고 그 은혜에 감격하며 끊임
없이 변화 받고 향상하며 육체와 싸우고 죄악과 싸우고 마
귀와 싸우는 것을 그치지 않고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계속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
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너무나 가짜 신자가 많고 타락한
신자가 많고 이미 영적으로 죽어버린 신자가 많습니다. 교
회는 의식, 형식으로 왔다갔다하나 벌써 죄악의 홍수에 떠
내려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시여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
를 먹고 마시며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와 만나는 귀한 성찬을 떼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 시점에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값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
여 용서 받고 사랑 받고 치료를 받았으나 그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유지하지 못하고 내어 던져버리고 살지 않사옵나이
까 하나님 아버지여 벌써 죄악의 포로가 되고 벌써 영혼은
죽고 무디어져서 죄악의 홍수 속에 떠내려 가고 있지 않사
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지금 진실로 회개하게 도
와 주시옵소서 참된 회개를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
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고 치료해 주는 하나님 이십니다.
진실로 회개해서 돌이키고 말씀을 사랑하고 성령을 의지하
고 그리고 환경에서 절도 있는 생활을 하며 끝없이 끝없이
싸우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매일매일 승
리하면서 나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서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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