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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9장 23-30절 십자가상의 칠언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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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십자가상의 칠언
설교본문 :  요 19 : 23 - 30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십자가상의 칠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금번 주간은 우리 주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 최후의 만찬에서 결정적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실 것을 실천적으로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취하사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 주는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후에 잔을 가지고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셔서 필사적인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너무나 추하고 악한 죄가 가득 담긴 잔을 예수님께 내어놓으시고 예수님께 이 잔을 다 마시고 인류를 대신해서 죄 값으로 심판을 받으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은 이 일에 심한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세 번이나 창자가 어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그 기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이마에 땀이 핏방울이 되어서 방울방울 그의 흰옷에 떨어져 곧장 그 흰옷을 붉은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여러분 상상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그 잔을 다 들이키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흉악한 죄인이 되어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가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그는 못 박혔습니다. 아침 9시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오후 3시까지 그는 피와 물과 땀을 다 흘리시고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극한 상황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고난 동안에 예수님께서 일곱 마디를 하셨습니다. 오늘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칠언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명상하면서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첫째 하신 말씀이 "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스스로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여러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을 예수 그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의 옷을 제비 뽑았습니다. 겉옷은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주위에 둘러선 군중들과 바리새 교인, 사두개 교인, 제사장,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머리를 흔들고 침을 뱉고 욕을 했습니다. 그 사실은 마태복음 27장 39절로 44절에 정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한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찬미하던 그들이 일시에 폭도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모두다 악마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은 악마의 와글거리는 소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저돌적으로 그리스도에게 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이들은 너무나 불쌍한 군중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못 박은 자가 평범한 철인도 아니요 종교인도 아니요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가 하늘을 짓고 땅을 짓고 그가 자기 땅에 오시고 자기백성에게 왔으나 자기 백성들이 주인을 알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이 저지른 죄가 몸서리치게 흉악한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이최후에 받을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처절하고 가혹할 것을 미리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혀 지금 고통의 극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미래를 보고 가련히 여기사 주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들이 지금 제게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끝까지 구원하시려는 애끓는 주님의 사랑을 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방금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온갖 모욕을 가하는 그들을 향해서 용서해 달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들이 이렇게 하더라도 스스로 이런 일을 하는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자비요 긍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깊고 넓다는 사항을 십자가에서 그 원수를 향해서 주님이 용서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들은 우리의 모든 주위를 용서하고 백 번 양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타협하고 사랑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원수들을 향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기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있으리라" 그렇게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흉악한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소란을 일으키고 방화한 죄로 잡혀서 우편에 한 사람, 좌편에 한 사람 같이 못 박혔는데 이 두 사람이 다 군중과 함께 예수님을 향해서 욕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그렇게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편 강도의 마음속에 '아니다,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도대체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와 같이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을 깨닫고 그는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동일하게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고난 당하고 있는 예수님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좌편 강도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너는 나와 함께 동등한 죄를 짓고 우리는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힐 만한 짓을 했거늘 이 예수님은 좋은 일 이외에는 아무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으시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우편 강도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육체의 죽음의 의미와 영혼이 가는 곳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 우편 강도도 죽고 좌편 강도도 죽고 예수님도 돌아가시고 계십니다. 인생이란 한번은 가야 될 죽음의 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죽음의 깊은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육체는 비록 죽더라도 그러나 육체 속에 있는 진실한 인간인 참된 인간의 영혼은 이 육체를 벗어나자 말자 낙원이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낙원으로 간다. 나를 구주로 인정한 너도 오늘 이 시간부터 나와 함께 하여 낙원에 간다." 그러나 좌편 강도에게는 아무런 언약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좌편 강도는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모욕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옥으로 들어갔고 지금도 지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죄를 지은 흉악한 강도이지만 최후의 순간에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자말자 그는 그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그가 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와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순식간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함에도 마땅하고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라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그대로 구원을 받는 것을 주님께서 이 자리에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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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앉아서 발을 뻗고 땅을 치고 우시는 어머니와 그 이모와 여인들을 향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면서 측은한 마음으로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왔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마리아가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볼 때는 여자로 보았고 인간으로 볼 때는 어머니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여"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 편에서 보셨고 "당

신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말할 때는 인간 편으로서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극한 슬픔 중에도 그가 낳은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대속 제물이 되었다는 이 자랑스러움을 이 어머니의 마음속에 심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가시기 전에 그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겼습니다. 요한을 보시고 "요한아, 이는 네 어머니시다" 그래서 요한이 친어머니로 마리아를 봉양하고 모실 수 있도록 그 혈육의 남은 마지막 어머니를 팽개치지 않고 그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을 하시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일만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자기의 연관된 모든 삶의 최후의 생활까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돌보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몰인정한 그런 사람이 아니십니다. 마지막 죽음의 그 순간까지라도 당신에게 속한 백성과 당신에게 속한 혈육을 돌보시는 그러한 분이라는 것을 여기에 분명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우리 주님께서 외치신 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벌써 열두 시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충분히 많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셨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사람들도 자기를 버렸고 하나님도 버렸습니다. 그의 고통의 극한 상황에서 해도 빛을 비추지 아니하고 하늘을 구름이 덮고 거센 바람이 불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극한 상황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창세 이후로 그는 하나님과 그 사이에 분리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인류를 위해서 무서운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버지라 아닙니다.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정하게 아버지라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여러분, 하나의 아들조차 인류를 위해서 죄로 말미암아 극한 심판을 받았을 때 버림받은 심정을 견딜 수 없었는데 하물며 오늘날 이 땅에서 육신의 인간이 마지막 심판을 받고 하나님께로 버림당할 때 그때의 절한 상황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처절한 고통을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장차 당할 것입니다. 지금은 쉽게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현실적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정치, 경제, 권세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순식간에 그 날은 가다옵니다. 모든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인생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죽음의 길인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인간은 처절한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낙원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포도즙 틀에 짓밟힐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가 외친 그 말을 다 외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 앞에 심판 당할 때 하나님께 버림당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죄를 대신 짊어지셨으므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청산하고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자비와 긍휼을 거부한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걸머지고 영원히 영원히 불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불도 꺼지지 아니하고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세세무궁토록 소금침을 받음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보시고 "유다야, 네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짐승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은 그 영혼이 영원히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걸머지고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19장 28절에 보면 "아 내가 목마르다" 외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여섯 시간 동안 매달려 계시고 피를 많이 흘리셨으니 육체적으로 목마를 에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목마름보다 예수님 속에 더 간절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버림받은 마름인 것입니다. 군중이 그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병을 고쳐 주고 배고플 때 먹여 주고 위로해 준 그 군중이 순식간에 악마화 되어서 예수님은 배반하고 버렸습니다. 당신이 친히 택하셔서 3년 반 동안 돌보던 그 제자들이 하나 없이 다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거기에다가 보태어서 하나님 아버지조차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천지간에

오직 하나 고독하게 매달렸습니다. 그 영혼의 목마름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아, 내가 목마르다" 군인들이 해융을 신포도주에 적셔서 그 입에 대었지만 주님은 육신적인 목마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영적인 목마름에 몸부림을 쳤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이 고독입니다. 사람이 고독하다는 것, 아무하고도 대화할 수 없다는 것, 누구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도 받지 못할 때 인간은 스

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것입니다. 고독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 고독의 가장 극한 상황을 체험하신 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과 나 때문에 주님이 겪은 대속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있는 말씀대로 "내가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Τετελεστα. 모든 부채를 다 갚았다." 이 말인 것입니다.창세 이후로 시작해서 마지막 때까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해서 지은 그 추하고 더러운 모든 반역과 거역의 죄악을 주님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난을 받으셔서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어 오셔서 영원자가 유한한 인간의 몸을 쓰고 오셔서 그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다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Τετελεστα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부채가 청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죄인이 지옥 가는 것은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갈 것입니다. 죄는 이미 그리스도가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죄 때문에 지옥가지 않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지옥 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이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때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 죄를 다 사하시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왜 이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이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지 않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를 버린 사람은 자기 운명을 버리는 사람이요, 자기 미래를 버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할 때 유대인의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놓은 곳, 언제나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그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피를 속죄의 제사를 드렸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 이제는 인류의 죄가 다 청산되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휘장으로 막아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아버지 앞에 직접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직접 성령으

로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앉은 이 자리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장막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찢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 품안에 와서 계십니다.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아 놓을 아무런 담도 없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영원한 화해와 사랑을 선포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어 놓아서 성령을 비와 같이 부어 주십니다. 그는 십자

가에 올라을 때 우리의 질병과 우리의 연약을 짊어지고 올라가셨는데 내가 다 이루었다고 했을 때 우리의 모든 병을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의 병은 실제로 2천 년 전부터 이미 고침을 받아 놓고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아담 이후로 이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의 가시에 찔리고 엉겅퀴에 찔려서 피투성이가 되며 살던 삶은 수님께서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

다. 이제 여러분은 낭패와 실망을 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다. 그리스도가 저주와 낭패와 절망을 십자가에서 다 제쳐 버리고 청산해 버렸으므로 이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하나님의 소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고 위

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다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시므로 죽음의 휘장은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해 버리고 마셨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천당에 들어가는 하나의 조깅 코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육신의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 내가 두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자긴 것이 더 좋다"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바울이 외친 것처럼 이제 죽음의 이김과 죽음의 쏘는 것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의 영광이 다 이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사는 것보다 내일을 향해서 더 찬란합니다. 우리는 저 죽음의 지평선을 바라볼 때 거기에서 찬란한 영광의 빛이 비치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놓은 그 빛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탄신하는 것이나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강물같이 흐르고 우리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되어 낡은 몸이 새로운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죽을 몸이 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소망은 없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몸은 무덤에 들어가 구더기에 먹힘바 되고 그 영혼은 쓰레기 더미인 저 지옥으로 던짐을 받아서 하나님과 격리되고 그리스도에게 버림당하고 마귀와 같이 몸부림치며 사탄과 그 사자들을 예비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종국적으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난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그것을 생각하면 사람으로 안 태어난 것이 훨씬 낫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혼이 육신의 천막집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천막을 걷어 치었다고 해서 그 속에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렸다고 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이 사라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이처럼 귀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등지고 내려 와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주님은 마지막으로 "내 영혼을 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이란 피나는 산고를 거치고 지칠 대로 지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좋은 하나의 SIMBOL입니까?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부탁할 곳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부탁할 곳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 힘으로 이제 할 수 없습니다. 일어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우리의 기가 다 진해버렸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할렐루야! 아버지만이 하나님이시오 지존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부탁할 때 아버지는 우리 영혼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는 오직 영구한 절망적인 죽음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져 주시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요 기쁨이요 믿음이요 영광만이 충만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 그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큰 변화가 우리 영혼 속에 다가올 때 큰 감사가 우리 마음속에 넘쳐나며 우리 남은 여생 옷깃을 여미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광과 찬양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절망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소망의 문이 되고 영광의 문이 된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고난을 받지 않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 이 고난 주간에 참으로 우리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변화 받는 우리들이 다 되십시다.

-기 도-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천 번 만 번 죽어야 마땅한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셔서 우리 대신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리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말씀하신 일곱 가지 유언을 우리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 한 시간 내내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슴 깊숙이 새겨 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우리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을 입고 예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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