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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7장 6-26 주님은 지금도 기도하신다 - 옥한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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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주님은 지금도 기도하신다
설교본문 : 요한복음 17:6-26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내 것'이라는 애착심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세 상을 떠나시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으로 하신 아주 유명한 기도입니다. 이 마지막 기도를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떠나 시면서 기도하신 예수님이라면 지금 도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지 않 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 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대제 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 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는 것이 아 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 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 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로 마서 8장 34절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 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이십니 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 이것을 조 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과 교회를 위해 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내용이 나 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다면 그 내용은 틀림없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열 한 명의 제자들을 위해 기 도하신 다음에(6-19절) 계속해서 장 차 지상에 나타날 교회를 위해 기도 하셨습니다(20-26절).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도를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 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기도의 내용 모두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너 무나 필요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기도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라 분명 히 믿습니다.

이제 본문의 기도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우리가 본문 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 내용을 살필 때 제일 먼저 감동으로 다가오는 표 현이 하나 있습니다. '내 것'이라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돌아 가셔서 17장 전체를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가 리켜 '내 것'이라고 하시면서 '내 것' 이 된 자에 대해 한 열 가지 정도의 특징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예수 님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 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서 자기 것인 자들을 예수님에게 주 셨다는 것입니다(6절). 예수님은 자 기 것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 자 그들은 예수님의 입술에서 떨어 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지켰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줄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처럼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이기 때 문에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고, 그들에 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 마 지막까지 그들 중 한 사람도 잃어버 리지 않겠다고 주님은 단언하셨습니 다. 이렇게 대충 보기만 해도 '내 것'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특징을 열 가지 정도는 족히 꼽을 수 있습니 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를 비롯하여 오늘 우리 모두는 바로 이와 같이 열 가지 놀라운 은혜로 특징지어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놓 고 주저하지 않고 '내 것'이라고 말 씀하십니다. '내 것'이라는 이 한 마 디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에게 우리 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 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유의 주 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불과한 우리를 보고 '내 것'이라고 부르시며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안 겨주시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 입니까?

우리를 '내 것'이라 부르실 정도 로 소중한 존재로 보시기 때문에 예 수님께서는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9 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애착 심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 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 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 이니이다."

여기서 '내게 주신 자' 안에는 열 한 명의 제자들은 물론이 고, 우리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내가 기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애착심 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더욱이 예 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하시지 않고, 우리만을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더 좁게 말하 면 예수님께서 나만을 위해서 기도 하셨고, 지금도 기도하신다는 말입 니다.

또 12절에서는 우리 가운데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님 께서 우리를 보전하여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그 애착심이 얼마나 대단 합니까? 아무도 우리에게 손대지 못 하도록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그와 같은 애착심을 가지고 자기 것인 우 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 님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 으십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위 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참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만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사람만큼 마음에 감동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참 대단한 분을 한 분 만났습니다. 그 분의 남편은 목사님 인데, 6.25전쟁 때 참전했다가 그만 실명을 했습니다. 더욱이 그 몸의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거 의 폐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는 데, 그가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었 습니다. 그 분은 이 맹인 목사한테 시집 간 여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분입니까? 설상가상으로 시 집을 가보니 남편은 몸에 어떤 결함 이 있었는지 자녀를 가질 수도 없었 습니다. 평생을 둘이서 살수밖에 없 는 기구한 운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 다.

"우리 목사님은 내가 어떻게 생 겼는지 몰라요. 지금까지 수십 년 살았지만 한번도 본 일이 없으니까 요. 그래서 날마다 자기 마음에 드 는 어떤 여인상을 그리면서 날 보지 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 행복해 요."

이렇게 말하는 그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분은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가 서 한 13년 동안 사역을 하다가 미 국 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10년 전에 일본에 선교사로 들어왔습니다. 맹 인 목사님과 사모님이 선교를 한다 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역 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더욱이 선교를 시작하자마자 유방암 에 걸려서 한 쪽을 잘라내고, 또 전 이가 되어 다른 쪽도 잘라내면서 치 열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은 사탄의 그러한 방해 공작에 절대 넘어지지 않았습 니다. 이제는 나이가 칠십이 가까워 져 사역을 그만 두셨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 사역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감당하셨습니다.

지난 연말에 사모님 되시는 분이 사역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대뜸 저를 보고 이 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옥 목사님을 한번도 본 일 이 없어요. 사진은 어디서 한번 본 일이 있지만요. 그러나 한 7,8년 전 에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 때 '설교 테이프 를 듣고 이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려야겠다.'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 어 지금까지 7,8년 동안 하루도 빼 먹지 않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니 참 좋네요."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감 격스러워 숨이 끊어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가끔 이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만큼 감격스러운 것이 어 디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제가 설교하는 모습을 비디 오로 보면서 기도해 주는 중보기도 팀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만 들어도 해도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리스도께서 '내 것이다. 아무도 손대 지 마. 내가 기도한다.' 하는 애착심 을 가지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는 데 우리가 어찌 감동을 받지 않 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 면, 우리가 비록 예수님이 기도하시 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지만, '나 같은 것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다.'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 다.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가슴은 감동으로 가득 차게 되어 있 습니다. 세상에서 겁나는 것이 없어 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 신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 하는 사실만 확실하게 믿고 이 세상을 산 다면, 어떤 고통 앞에서는 우리는 이깁니다. 그만큼 놀라운 은혜란 말 입니다. 왜 우리 모습이 초라해집니 까? 왜 우리가 고독을 느낍니까? 왜 우리가 어떤 조그마한 일 앞에도 사시나무 떨 듯 떱니까?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나 같은 것을 위해 서 어떻게 기도하고 계신지를 잘 모 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설혹 안다 고 해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만큼 확실하게 믿지 않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 고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까?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믿 음을 가지고 받으면 여러분은 삽니 다. 믿음을 가지고 않고 그저 적당 히 들으면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아 무런 은혜도 안되고 힘도 안 될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우 리를 위해서 기도하셨던 주님, 세상 을 떠나시면서 기도하셨던 그 주님 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계속 기 도하고 계십니다. 더욱이 그 기도 대상에는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사 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나와 함께 하는 주님의 이 기도 앞에 세 상의 그 무엇이 감히 맞설 수 있습 니까?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면 다 시금 힘차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 되게 하옵소서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어 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요?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요한 내용은 무엇일까 요?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제자들 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신 기도 내용을 보면 우리가 이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서 주님께서 네 가지 중요한 제목을 놓고 기도하신 것을 봅니다.

첫째는,

"하나되게 하옵소서."

하 는 기도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 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 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 나가 되게 하옵소서."

여기서 '우리' 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 킵니다. 삼위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 요, 한 분이십니다.

"완전한 하나가 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우리와 같이 저희들도 이 세상에 있을 동안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는 이 기 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21-22절 에 보면 주님은 이 기도를 또 한번 반복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가 되 나 둘, 셋이 되나 그게 그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 기에는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너무 나 중요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 악한 세 상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없 습니다. 적 앞에서 분열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 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필연입니 다. 주님께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신 것 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은 무 슨 획일적인 조직으로 교회를 하나 로 묶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 세계 교회를 한 조직 밑에서 움 직이는 그런 단체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는 교회의 하나됨은 진리와 사 랑으로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진리 로 하나 되는 것에 대해 에베소서 4 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 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을 이루어..."

진리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 곧 지식 과 믿음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 서는 똑같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 는 지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는 공통 분모 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사랑으로 하 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를 묶는 끈입니다. 에베소서 4 장 16절을 보십시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 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 라."

우리 모두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입니다. 몸을 하나로 세 우기 위해서는 각 지체가 사랑 안에 서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사랑 의 띠로 서로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 다. 진리로 하나 되고, 사랑으로 하 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 것 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난폭해 지기 쉽습니다. 반면 진리가 없는 사랑은 위선이 되기 쉽습니다. 진리 로 자라는 심령은 사랑으로 넓어져 야 합니다. 지식만 있으면 교만하게 되기 쉽고, 사랑만 있으면 어리석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사 랑이 똑 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는 지식으로 하나가 되는 동시에 사 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 지 다 읽어보십시오. 특별히 신약 성경이 지상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 는 부분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고립 된 한 사람의 교회를 발견할 수 있 습니까? 절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고립된 한 사람의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개인의 신앙이 절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 에서 혼자 노는 사람 치고 건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셨습니까? 교 회 안에서 나 홀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 치고 예수님의 마음에 들만큼 그 인격이 성숙하고, 그 삶이 거룩 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절대 불가능 한 일입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저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우리 신앙이 건 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격도 성 숙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 다. 그러므로 저는 교회 안에서 혼 자 노는 분들에게 분명히 경고합니 다. 여러분 개인은 구원받을 지 모 르지만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제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가책 받고 돌이키는 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다락방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 은 소 모임들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봉사 단체들이 있습니까?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하나 되 는 것을 싫어해서 예배만 겨우 참석 하고는 일 주일 동안 나 홀로 세상 을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우리가 하나 되 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의 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다락방에 들어가십시오. 교회가 크 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아 무리 커도, 우리 교회처럼 2만 명, 3 만 명이 모여도 하나 될 수 있는 터 전은 얼마든지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교인이 백 명 모이는 작은 교 회인데도 하나 될 수 없는 풍토를 가진 그런 교회도 있습니다. 사이즈 를 가지고 핑계 대지 말라는 말씀입 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한 분도 빠 짐이 없이 봉사 모임이나 성경 공부 모임, 서로가 교제하고 기도하기 위 해 모이는 모임 중에 적어도 한 곳 은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렇게 서로가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 다 보면 여러분의 삶이 되살아납니 다. 여러분의 얼굴 표정이 달라집니 다. 여러분의 생각에 혁명이 일어납 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새로운 평화 가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어렵고 고 되다고 생각하던 많은 문제들을 쉽 게 건너 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인생을 힘겨워 합니까? 왜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맥이 없습 니까? 하나 되게 하려는 주님의 노 력과 그 기도에 여러분이 동참을 하 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와가 혼자 있다가 뱀의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 다. 그 당시는 인구라고 해 봐야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전부였습니 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헤어지 면 안 됩니다. 어디를 가도 꼭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날 어떻 게 서로가 기분이 안 좋았는지, 아 니면 서로가 잠시 혼자 있기로 합의 하고 나누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 와가 혼자 있다가 뱀한테 유혹을 받 고 죄를 범한 결과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합니까? 명심하 시기 바랍니다. 신앙 생활 혼자 하 면 당합니다. 아무리 기도 많이 한 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혼자 하면 당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은 우 리가 하나 되기를 계속 기도하고 계 시는 것입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둘째는,

"악에 빠지지 않게 하옵 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15절을 보 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 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 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 들을 세상에 두고 가셨고, 우리도 세상에 두셨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 은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은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놓고 떠나 시면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 다.

주님은 오늘날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도 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세상은 악한 곳입니다. 세상에 는 악한 세력이 여전히 건재해 있으 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 격합니다.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24시 간 쉬지 않고 공격을 합니다. 우리 를 유혹해서 죄에 빠지게 하려고 혈 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 게 신앙 생활 할 수 없도록 하려고 온갖 함정을 파 놓고 우리를 기다리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 야 합니다. 악의 유혹을 피하고, 악 을 대적해서 막아야 합니다.

단순히 죄 짓도록 유혹 받는 것 만을 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 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서 살면 서 당할 수 있는 모든 환난도 악입 니다. 북한의 폭정도 악입니다. 북한 의 굶주림도 악입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사회에 서 가장 천대받고 인권을 유린당하 는 소수 그룹입니다. 이들은 굶는 것을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 도 악입니다. 수단은 예수 믿는 사 람이 25 퍼센트나 되는, 기독교가 흥황했던 나라였습니다만 지금 10년 이 넘는 무시무시한 기근으로 그 나 라 국민의 거의 절반이 죽어가고 있 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렇게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것도 악 입니다. 폭정 밑에서 시달리는 것도 악입니다. 인도네시아에 기독교와 회교간에 종교 분쟁이 일어났지 않 습니까? 이것도 악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 님의 자녀로 살려고 하면 이와 같은 환난의 바람이 마구 불어옵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악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악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기다릴 수밖에 없 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 모든 악을 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들을 보전하사 악에서 지켜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시는 것 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서 똑같은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악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건재한 것도 다 이 기도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이 기도가 없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악한 세상에서 이만큼 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만 이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 고도 이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절대 우리가 악한 세상의 가공한 공격을 이기고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 악한 세상이 두렵습니까?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 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 앞에서 여러분 의 마음이 공허하고 염려와 근심에 쌓여 있습니까? 지금도 하나님 우편 에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위하 여 기도하시는 주님의 그 낭랑한 음 성을 듣는 영의 귀가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때로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아도, 우리가 필요할 때 찾아오지 도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가 살려 달라고 소리칠 때 아주 멀 리 계시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 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이상,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삼 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메리 앤 베이커라고 하는 믿음 좋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 살던 사람인데, 그의 집안에 이상하 게 어떤 병이 들어와서 아버지와 어 머니가 똑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 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자기 남동생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그 역시도 그 병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폐 결핵 같은 병이었는지 모르겠습니 다. 그는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아 왔는데 집안이 이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그 마음이 오죽이 괴로웠 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날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떼를 썼다 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 가정 을 돌보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 을 신뢰하고, 또 주님을 위해서 헌 신한다고 헌신했는데 이게 무슨 꼴 입니까?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 어요. 하나님."

하고 소리를 지르면 서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을 친 것입 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열 어 성경을 펴게 만드셨는데, 그가 읽은 곳은 마태복음 8장이었습니다. 2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 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 시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었습니다. 파도가 높게 치더니 나중에는 물이 배 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습니 다. 제자들은 물 퍼내랴, 노 저으랴 정신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예수님은 고물에서 잠을 자고 계셨습니다. 너 무 상황이 급박해 지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주무시고 계십니까? 일어나십시오."

예수님은 일어나시자마자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 여 무서워하느냐?"하고 책망하시고 는 바다를 향하여

"잔잔하라."고 명 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비단결을 깔아 놓은 것 처럼 잔잔해졌습니다.

베이커 여사는 이 말씀을 읽으면 서 마음에 큰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 다. '아, 그렇구나! 예수님께서 주무 시고 계시는 것 같아도 주무시는 분 이 아니구나! 그분이 한번 잔잔하라 하시면 그 어떤 세상의 악한 파도도 그 명령에 복종해서 잔잔해지는구 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 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는 가 슴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 니다. 그래서 쓴 찬송시가 바로 419 장 찬송입니다. 여러분이 가사를 기 억하실 지 모르지만 참 은혜스러운 찬송입니다.

2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 다.

"구주여 떨리는 내 맘 저 풍랑 과 같아서/ 늘 불안에 싸여서 사니 날 붙들어 주소서/ 세상의 풍파가 나를 삼키려 합니다/ 지금 죽게 된 날 돌아보사 곧 구원해 줍소서/ 큰 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사납 게 뛰노는 파도나 저 흉악한 마귀나 아무 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엎어 놀 능력이 없도다/ 주 예 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해 잔잔해/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하라."

지금도 나를 위해

"악에 빠지지 않 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시는 그 음성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파도가 잔잔해 질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 랍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셋째는,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 서."

하는 기도입니다. 17절을 보십 시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 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 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진리인 하나님 의 말씀으로 우리가 거룩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아 마도 여러분 중에는 '아이고, 나는 어제도 죄 짓고, 오늘 아침에도 죄 지었는데 거룩하기는 뭐가 거룩하 냐?'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지 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아직도 믿지 못하기 때 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합 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 나님의 소유요, 예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 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 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이 거룩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 상은 악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거룩을 잃기 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 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킬 것입니 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야 됩니 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항 상 그 말씀을 지킬 때 우리는 거룩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그렇습니다.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고 고난의 풍랑이 일어날 때 나 자신을 말씀으로 지키지 아니하 면 우리는 거룩한 존재로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의의 흉배를 붙이라. 구원의 투구를 쓰라. 성령의 검을 손에 쥐 고 거룩한 싸움을 싸우라."고 단호 히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다른 세 친구와 함께 십대 때 바벨 론에 볼모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 나라의 일종의 괴뢰를 만들기 위해 서 특별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에 그들이 끌려간 것입니다. 가서 보니 왕이 제공하는 진수성찬을 매일 먹 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들은 전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고기나 우상 앞에 놓고 술을 뿌 린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신앙 양심상 하나님 의 율법을 배운 자로서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단을 했습니다.

"우리는 못 먹겠습니다."

그렇다고 앉아 단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 기를 맡고 있는 상관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것을 못 먹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 게 채소와 물만 주어 먹게 해 보십 시오. 그래서 우리 얼굴이 다른 청 소년들과 비교해서 나쁘면 우리가 고기를 먹겠습니다. 그러나 나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먹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결국 그들이 승리했 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네 명의 황제가 바뀌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 도 유아독존으로 살아남아 바벨론의 모든 중요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다니엘 은 우리에게 자기의 거룩을 지키는 더 없이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컴퓨터나 영화를 통해서 혹은 여러 가지 문화 매체를 통해서 음란하고 폭력성이 강하고, 하나님 이 미워하는 더러운 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접하게 됩니까? 저는 여러분이 '쉬리'라는 영화를 보는 것 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물론 인기 가 있어서 다들 보니까, 또 그 작품 이 소문이 나니까 보는 것은 막을 수야 없지만 폭력적인 내용이 대부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런 것을 즐겨야 하 느냐 그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 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거룩 을 지킵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거룩을 지켜 야 되는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여 러분 마음에 세상의 어떤 유혹이 찾 아옵니까? 여러분의 거룩을 더럽히 려고 하는 개와 돼지들이 주변에 우 글거리고 있습니까? 내 힘만으로는 절대 나의 거룩을 지킬 수 없습니 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해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 을 들으면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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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광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넷째는, 주님의 영광에 우리 모두 가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 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 옵나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누리고 계시는 그 영광은 도무지 우리가 상 상 할 수도 없는 차원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 님을 따라서 산으로 올라갔다가 갑 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 습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던지 그것 을 보자마자 제자들은 요사이 말로 뿅 가버렸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예 수님을 보는 순간 얼마나 정신이 돌 아 버렸는지요.

"주여, 우리 내려가 지 말고 여기서 삽시다. 제가 나무 가지로 텐트 몇 개 칠 테니까 여기 서 삽시다."

세상에 이런 멍청한 이 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텐트 하나 달랑 가지고 어떻게 살자는 것입니 까? 침대가 있습니까? 화장실이 있 습니까? 무슨 먹을 음식이 있길 합 니까? 얼마나 그 영광이 대단했으면 살 수 없는 곳에서 살자고 했을까 요?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를 완전히 황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누리고 계신 그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 장 최상의 행복은 아직 도달하지 않 았습니다. 우리 앞에 있습니다. 뒤에 지나간 것보다도 우리 앞에 있는 것 은 굉장히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듭니 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그 영광 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자기가 누리는 그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할렐 루야!

저는 이 17장을 묵상하면서 '오늘 도 주님께서 이 네 가지 기도를 가 지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구 나.'하고 생각할 때면 새벽마다 교회 에 나와서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 는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 식을 향한 어머니의 애착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새벽에 교회에 나오면 담임 목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지 요. 또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야지 요. 그러나 그런 기도는 전부 서론 입니다. 한 5분 안에 다 끝내고 이 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본론이 누 구입니까?

"주여, 우리 집의 철이를 아시지요? 이 아들..."하고 입을 열 면 1 시간도 좋고, 2 시간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런 사람 중 하 나입니다. 새벽에 나오시면 2 시간 앉아 기도하시는데 그 기도야 뻔하 지요. 전부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 다. 60년 이상을 그렇게 기도해 왔 으니 이제 그 병을 어떻게 고치겠습 니까? 식탁에 앉을 때 식구들이 돌 아가며 기도 하다가 가끔 어머니에 게 기도를 시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음식을 놓고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 셔야 할텐데 식탁에 앉아서 눈을 감 고는 큰아들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엮어 나가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밥이랑 국이 모조리 식 어버릴 것은 뻔한 일입니다. 더군다 나 시간은 바쁠 때는 얼마나 신경질 이 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집의 막내는 할머니한테 제발 기도시키지 말라고 투덜댑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머니께 조용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식사 기도할 때는 식사 기도만 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 다.

"눈만 감으면 그 기도가 나오는 데 어떻게 하냐?"

"그래도 그것은 조심 하셔야지요."

그러나 그 다음 에 또 한번 기도를 시켰더니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 얼마나 강한 지요. 눈만 감으면 자식 기도가 나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생각 납니다. '내 것'이라 그랬지 않습니 까? 우리를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 으니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 배 후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기도가 뒤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 습니다. 이 기도가 있는 이상 세상 에 우리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 다. 여러분, 절대로 낙망하지 마십시 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 러분의 인생을 비겁하게 살지 마십 시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위해 기도 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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