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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7장 9-12절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새해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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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태복음 7장 9-12절
설교제목 :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새해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새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나고자 합니다.

1993년 희망찬 새해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로운 천지개벽이 아닙니다. 단지 영원한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 한 점을 찍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를 하는 것이 바로 새해인 것입니다. 새해에 새로운 마음의 각오와 출발이 없으면 새해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단지 영원의 시간 속에 인간이 만든 한 시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새해의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은 심각한 마음으로 이 해를 살아갈 마음의 방향을 확실히 잡아야만 됩니다.

옛 시인이 한 노래 가운데 보면 '돛단 배 두 척 한 바다에 섰네 한 배 동으로 가고 다른 배 서로 가네' 그런 노래가 있습니다. 두 배가 똑같은 바다에 서서 똑같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습니다만 한 배는 동으로 가고 다른 배는 서로 갑니다. 그것은 바람이나 바다물의 영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돛의 방향에 따라서 그런 것입니다. 돛의 방향에 따라 똑같은 바다 위에서 똑같은 바람을 타면서도 한 배는 동으로 가고, 다른 배 서로 갑니다. 똑같은 한해를 맞이한 우리들이 똑같이 한해라는 바람을 맞아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한사람 성공으로 가고 다른 사람 실패로 갑니다. 한 사람 행복으로 가고 다른 사람 불행으로 갑니다. 한 사람 천국으로 가고 다른 사람 지옥으로 갑니다. 그것은 오늘 1993년 새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 새해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마음의 자세, 마음의 돛을 어떻게 달았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운명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오늘 이 새해를 참으로 성공하고 축복을 받고 영원한 행복으로 넘치는 한 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의 돛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럼, 첫째로 우리는 새해를 어떻게 살까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새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섬기면서 이 한해를 살 때 우리는 참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하나님 섬김의 첫째 요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하려고 하셔도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지도 아니하고 사랑하지도 아니하고 말씀을 읽지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고 실행하지도 아니하고 말씀을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말씀을 가르치지도 아니한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경계한 교훈을 우리 마음속에 경계로 받아들여야만 됩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 즉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 즉 말씀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입으로 시인하며 그 말씀을 지켜서 행하여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이 다가오고 우리의 삶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시편1편 2-3절로 보면, "오직 야웨의 율법, 즉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형통과 평탄한 삶은 같이 갑니다. 말씀이 있으면 형통도 있고 평탄도 우리 인생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지고 야웨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이 한 해를 형통과 평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한해를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고 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이 자라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전혀 기도에 힘을 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혹은 금식하며 혹은 기도해야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로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했던 것입니다. 주를 섬기는 것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명하시는 금식도 해야되겠지만 그러나 일방적으로 우리가 주를 섬기는 것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드림으로 주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써 그 날 아침을 시작하고 하루를 그칠 때도 기도로써 그치는 이와 같은 것이 참으로 주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기도해야 성령이 충만해 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 충만해지지 않습니다. 성령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성령 없는 사람은 열매 없는 나무입니다. 성령 없는 삶은 비 없는 구름이요, 물 없는 우물이요, 불 없는 화로와 같습니다. 형식은 있어도 내용이 없이 죽은 것입니다. 성령 없는 신앙생활 보다 저주받은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일심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오순절 날이 왜 왔습니까? 제자들이 일심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2-14절에 보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전혀 기도에 힘을 쓴 결과에 오순절 날에 성령에 폭포와 같이 쏟아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마음을 합쳐서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충만하고 참으로 주를 섬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를 섬기는 것은 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계명을 지키며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한나라의 올바른 국민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되고 법을 어기면 범법한 자가 됩니다. 한 가정에도 부모의 말씀을 잘 듣는 자녀가 착하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지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요한1서 5장 3절에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도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계명이 어렵지 예수 믿고 중생하고 성령을 모신 사람은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계명은 쉬운 것입니다. 계명은 우리의 삶에 참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21-2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행함이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지키고 기뻐하는 것을 행하면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모든 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려고 한다면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만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는데 내가 아무리 주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물질을 드리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주님께 없습니다.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주를 섬깁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크게 사랑 받은 것은 아브라함은 자기의 물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반드시 드렸습니다. 성경 창세기 14장 20절에 보면, "너희 대적을 내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창세기 15장 1절에 "이후에 야웨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높은 상급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리자마자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여서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지켜주마. 내가 너의 상급이 되어서 너를 형통케 해주마" 그렇게 축복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크게 사랑받은 것은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일뿐만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서 물질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이지요.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더라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여기에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서 나의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원래 우리가 누리는 이 세계의 삶 속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하나님의 것이요, 따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얻는 모든 수입 중에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으로 이것에 손을 대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해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백성을 품에 품어주시고 섬기는 백성과 같이 하여 주셔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상급이 되어 주시고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모든 은혜를 남김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새해에는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새해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을 섬기는 새해를 만들어야 됩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가라사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거기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질문한 즉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율법을 총합계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또 우리 이웃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웃을 섬기지 아니하면 그것은 진실한 섬김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해에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산다면 우리는 우리 이웃을 참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웃을 섬길까요?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용서에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털같이 많은 죄를 짓고 죄의 노예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당한 수욕을 보십시오. 몸이 찢고 피를 흘리고 온갖 모욕을 다 당하시면서 주님은 참고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나와서 우리는 값없이 은혜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죄 사함을 받았었습니다. 이러므로 이제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들이 되고 용서받은 빚 진자가 됐습니다. 주님께 우리가 용서를 받았은즉 우리도 남에게 용서를 해야 될 것입니다. 용서해 주지 않을 때, 우리 스스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매일 우리 기도할 때 주기도문 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젊은이가 자기에게 죄 지은 사람의 죄를 절대로 용서해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요한 웨슬레가 하는 말이 '청년이여, 그렇다면 청년은 평생에 한번도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된다. 왜냐하면 청년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없다면 청년은 이제 하나님께 용서받을 자격을 잃었기 때문에 한번도 죄 짓지 않고 끝까지 의롭게만 살아야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용서가 필요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같이 주의 십자가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매일 보혈로 씻음 받고 매일 새사람이 되어서 나가야 됩니다. 그러자면 우리에게 죄 지은 자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 앞에서 죄가 용서함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우리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용서해 주지 않을 때 그것이 미움과 원한이 되어 마음에 스트레스가 되어서 온갖 병이 생깁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많은 병이 용서해 주지 않고 마음에 미움과 원한을 가지므로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병이 됩니다. 위장병이라든지 간병이라든지 혹은 심장병이라든지 당뇨병이라든지 정신적인 장애라든지 수많은 병들이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미움을 품으로 들어온 것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하여 이 병들도 다 놓아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용서의 바탕 위에서 적극적으로 이웃에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나는 용서는 할 수 있어도 사랑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용서를 하면 그 다음에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용서도 안 하는데 사랑이 생길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용서는 적극적이 아니지만 사랑은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해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고 또 좋은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적극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이웃을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온유와 겸손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온유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길들여 대인관계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갖고 친절을 갖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웃 사람에 대해서 사납고 퉁명스럽고 권위주의로 나가면 정신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관리들이 대단히 사납고 퉁명스럽고 권위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관공서에 무슨 일을 하러 가게 되면 대개 우리들은 정신적인 폭행을 당하고 나오는 그런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우리 한국의 사회가 권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관리들이 무시하고 멸시하는 그런 자세가 있습니다. 이래서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대해 주지 아니하고 사납고 퉁명스럽고 권위주의로 대함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받고 국민들이 자연적으로 정부와 관리들에 대해서 반항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의논할 때라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대해주면 마음이 풀어지고 기뻐집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서 사나운, 퉁명스러운 그런 태도를 취하면 정신적인 폭행을 당합니다. 부부간에도 한가지입니다. 남편이 사납고 퉁명스러운 사람이나 부인이 사납고 퉁명스러운 사람이나 이런 사람은 매일같이 서로 정신적인 폭행을 가합니다. 정신적으로 때리고 치고 받고 할퀴고 삽니다. 정신적으로 피를 흘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이웃을 섬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다 행인과 나그네로 걸어가며 불쌍한 인생들인데 서로서로 불쌍히 여기고 친절하게 살아야 됩니다.

저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가장 친절한 민족이 일본 민족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일본에 복음을 증거하러 갈 때 굉장한 미움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일본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니 할 수 없이 들어가지만 일본 사람은 내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민족적인 감정이 있어서 '주여! 일본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태풍이 오거든 일본을 때려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여러분 내가 일본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얼마나 갈등이 있겠습니까? '주여! 내가 있을 동안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말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고 가거든 지진이 일본을 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내 마음의 갈등을 가지고 일본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10년 이상 복음을 전하다가 그만 내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 민족이 너무나 친절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택시 운전기사로부터 시작해서 백화점 점원이 이르기까지 아예 간을 녹일 정도로 친절합니다. 그러니 미움이 다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폭풍우나 지진이 일본을 때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일본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이웃을 참으로 섬기는 태도인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이웃을 섬길 때 이웃도 자동적으로 나중에 감정을 가졌다가도 온유와 겸손으로 대꾸하게 되고 또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기를 낮추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다음 이웃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나를 생각하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내가 남에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남도 나에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친절하게 돌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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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이제 우리는 새해를 살아갈 때 긍정적으로 이 해를 살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신을 깊이 인식하고 자기의 삶을 주안에서 힘차게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새해가 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남철 같습니다. 내가 마음이 부정적이 되어서 내가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또 '나는 못 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그런 태도를 취하면 이것이 주위환경을 끌어당깁니다. 내 주위환경이 전부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환경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되어 있으면 이게 또 지남철이 되어서 내 주위에 전부 그런 사람들과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이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자세와 태도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 이것이 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환경을 부정적으로 만들 것이냐 부정적으로 만들 것이냐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긍정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 밑에 나가서 긍정적으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해야 됩니다. 사람은 이유 없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 나가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몸 찢고 피를 흘려서 대가를 지불한 것을 보게 될 때 긍정적으로 되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 나갈 때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나는 의인이기 때문에 이제 의롭게 살아야 되겠다. 의인이 되었다는 강한 긍정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갈 때 그 피로 말미암아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원수되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 치심을 받고 나는 성령이 같이 계시고 성령이 보혜사가 되셔서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강한 긍정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 치심을 받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나갈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 십자가 밑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치료함 받은 사람이요, 치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강한 긍정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병이 다가와도 나는 치료받은 사람이다. 치료가 내 안에 역사하신다. 나는 치료하시는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강한 긍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 밑에 나갈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를 짊어지고 못 박힌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가 율법의 저주를 받아서 나 대신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청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볼 때 나의 저주의 모든 가시채는 스르르 풀리고 저주의 넝마는 벗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축복의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밑에서 나를 긍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강한 긍정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갈 때 비로소 사망과 음부는 사라지고 영생 천국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소유합니다. 나는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산다. 영생 천국은 내 것이라는 강한 긍정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이와 같은 강한 긍정을 십자가 밑에서 가지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야 그러한 환경과 운명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고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을 끌어당기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우리는 이런 강한 긍정 가운데서 우리 인생을 살아갈 때 다가오는 고난도 유익으로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안에서 고난은 우리의 밥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서 기도하고 참고 소화하면 우리에게 밥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와야 회개하고 고난이 와야 깨어져 순종하게 되고 고난이 오면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코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우리를 파멸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고난은 다가올 축복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고난을 발길로 차지 않고 오히려 고난 중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불평이나 원망은 파괴의 깊은 골을 만듭니다. 자기의 정신적인 무덤을 파는 삽과 괭이가 바로 불평과 원망입니다. 조그마한 고난이 다가와도 원망하고 불평하면 자기의 정신적인 무덤을 파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역경에도 감사하면 그 사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하셨으니 감사할 때 주님을 크게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감사는 '왜?'라는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뻐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다가오면 왜 내게 이런 일이 다가오는가? 왜 시험이 다가오는가? 왜 환난이 다가오는가? 이런 갈등을 주님께 다 맡겨버리고 주여 감사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기근이나 가난이나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심으로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서 끝에 가서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할 때 '왜?'라는 갈등이 사라지고 주님께서 그와 같은 사람을 받아서 끝에 가서 모든 일이 합동하여 반드시 선하게 되어버리고 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강하게 자기를 긍정하면서도 역경에 감사하고 찬송하여 역경을 오히려 내 밥으로 만들면서 사는 새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해에 우리의 목표는 그러므로 '섬기고 사십시다.' 이것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섬기고 내 이웃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고 섬기며 고난을 기뻐하며 감사를 넘치게 하며 살아가는 새해를 만들어 가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행복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가는 곳마다 만들면서 또 남을 행복하게 해 주면서 이 해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해는 여러분에게 이미 다가왔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분 이 한 해를 요리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한 해가 여러분에게 복과 저주를 싣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의 마음에 자세가 이 한해를 복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고 저주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한해를 기쁨과 성공으로 만들 수도 있고 실패와 원망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에 돛을 높이 활짝 펴서 달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긍정적으로 십자가 밑에서 내 자신을 긍정하고 환난과 고난 중에 오히려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간다면 이 한해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영광스러운 한 해를 만들어서 사시게 되실 것입니다.

-기 도-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365일 새해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이 해를 맞이해서 이 해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든지 절망과 슬픔으로 구겨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달여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 이 시간 정말 심각하게 우리의 마음의 태도를 결정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자기를 긍정하며 감사하며 사는 이 해가 되도록 우리 아버지여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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