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6:25-34
설교제목 : 믿음으로 사는 길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모 일간지의 어떤 경제부 기자가 최근 우리 나라가 겪 고 있는 경제적인 위기를 놓 고 이런 글을 쓴 것을 보았 습니다.
"지난 한두 달 사이 이 나라의 곡간 사정이 얼마 나 아슬아슬했는지를 속속들 이 알았다면 심장병이나 고 혈압이 있는 분들 중 상당수 는 응급실로 실려갔을 지도 모른다."
매우 실감나는 표 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모르는 게 약이다'라며 덤덤하게 지 냈습니다만 우리 나라가 얼 마나 숨막히는 고비들을 넘 겨 왔는 지에 대해 소상히 알았더라면 아마 밤에 잠도 못 이룬 채 피가 마르는 고 통을 당했을 지 모릅니다.
한번 우리 나라가 소위 '모 라토리움', 다시 말해 국가 부도를 겪게 되었더라면 어 떻게 되었을 지 상상해 보십 시오. 어느 국제 경제 전문 지는 그런 상황을 가상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국제 자본 시장으로부터 한국은 완전히 단절되어 단 한 장의 신용장도 구할 수 없어 수출 과 수입이 전면 중단 될 것 이다. 그리고 거리에는 폭동 을 진압하는 경찰관과 노동 자 시위대가 험악하게 대치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정 말 이와 같은 상황이 되었더 라면 우리는 다시 연탄 때는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 입니다.
몇 년 전 사회주의 국가들 이 붕괴되었을 때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려고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것을 텔레비전 을 통해 보면서 우리가 먼 산의 불 구경하듯 하지 않았 습니까? 잘못하면 우리 모두 가 그런 꼴이 될 번 했습니 다. 얼마나 가슴이 서늘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은혜로 모라토리움의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이 얼마 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러한 위기들을 겪으며 수술대 위 에 누워있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힘으로 마 땅히 고쳐야 될 병을 5년,10 년,20년 끌며 방치하다가 이 제는 우리 힘으로 도무지 손 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IMF라 고 하는 집도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어려운 고비가 한 3-4개월 지나면 다 끝나고 다시 옛날처럼 안 도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에 영국이 얼마나 엄청난 진통 을 겪어서 오늘의 영국이 되 었으며, 멕시코가 얼마나 뼈 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경 제 위기를 넘겼는 지를 생각 해 보십시오. 대수술일수록 회복을 위해 더 오랜 시간의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 것입 니다.
우리 교회에 제가 존경하는 형제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대학교 교수인데 지난 7월달에 배 안에 생긴 종양 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 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제가 병 문안을 갔었는데, 그분의 사정을 잘 아는 지라 걱정이 되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8월 여름 방학 동 안 뉴질랜드에 가서 겨울 학 기(winter school) 강의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할거 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목사 님, 곧 회복될텐데요. 뭐. 8 월달에 뉴질랜드에 갈 겁니 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이 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친구 아직도 수술이 뭔지 모르고 있구나.' 수술했다고 해서, 혹을 제거했다고 해서 곧 바 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입니다. 저도 수술을 해 봤 지만 한번 수술을 하고 나서 회복이 되려면 몇 달 아니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 다. 그런데 금방 수술을 하 고 누워 있는 사람이 다음 달에 간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분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 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 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후 뉴질랜 드 아니라 제주도도 못 가고 있습니다. 수술한 지 7개월 된 지금에야 겨우 얼굴빛도 제 색깔로 돌아오는 기미가 보입니다. 사람이 한번 수술 을 해도 회복을 위해서는 이 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입니다. 하물며 이 큰 나라 경제가 수술대에 올랐는데 어떻게 그렇게 금방 쉽게 회 복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 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는 길고도 추운 겨울이 기다 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 니다. 이제부터는 한번 쓰고 버리는 우리의 잘못된 버릇 도 고쳐야 합니다. 한 번 쓴 것은 다시 쓰고, 고장난 것 은 고쳐 쓰고, 아직 멀쩡한 것들이라면 서로의 필요에 따라 바꾸어 써야 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일부러 우 리 교회 화장실에 가 봤습니 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 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변 기 위에 화장지가 두세 통씩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화장 지가 여러 통 있는 것을 보 면 아끼고자 하는 마음보다 많이 쓰려고 하는 마음을 갖 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한 통만 남겨 두고 다 치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걸어 놓은 것을 다 쓰고 나서도 금방 새 것을 갖다 놓지 말고 한 참 두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찮은 화장지 한 조 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이제 우리는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조금 산다고 거드름 부리던 교만 도 쓸어내야 됩니다. 사치, 향락의 냄새가 나는 곳은 완 전히 도려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가리지 말고 열 심히 일해서 버는 풍토를 만 들어야 합니다. 앉아서 떼돈 을 모을 수 있다는 그 사악 한 생각이 자리를 잡지 못하 는 건강한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직과 공의가 물 흐르듯이 흐르는 참으로 신 뢰받는 정치 풍토가 이 나라 에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수술을 달게 받아들이고 회복되기까 지 한 동안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한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 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이 어려운 형편을 대처 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대처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태산이 험하 고 높을수록 우리는 큰 믿음 을 가져야 합니다. 강한 믿 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 를 사랑하신다고 분명히 믿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국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믿 습니다. 이 한국 교회에 소 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좌우 할 수 있는 의인 열 사람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많 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 도 부패하고 세속주의에 물 이 들어 있지만 적어도 몇 십만 명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거룩한 백성이요, 아침저녁으로 나라를 위하 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신실한 자녀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도를 받으 시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고비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 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을 저 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바로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 서 은혜 주실 줄 저는 조금 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렇 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큰 믿 음을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 하나 대처하 고 처리해 나가야 합니다.
믿음은 실천입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이와 같은 큰 믿음을 가 지고 있다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 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두 가지만 제가 여러분 에게 함께 말씀 드리면서 은 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를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25 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수님 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눈만 뜨면 무엇 먹어야 하 나, 날이 새면 오늘 무슨 옷 을 입어야 하나, 무엇을 몸 에 걸치고 나가야 하나를 걱 정하는 생활이라고 하면 이 것은 완전히 밑바닥 생활입 니다. 우리 중에 눈만 뜨면 이런 걸 가지고 걱정할 수밖 에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사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머리 둘 곳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분이셨습니 다. 때가 되면 어디 가서 무 엇을 먹을 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계셨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런 것들로 염려하지 않으 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설사 그러한 궁핍한 상황에 처한 다 해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25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을 7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염려할 수밖 에 없는 상황이라면 염려하 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당 장 생활이 어려운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자꾸 억누 르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병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렇다면 차라리 염려하고 싶 은 대로 실컷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서 염려하지 말라고 거듭 말 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 까?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먹이고 입 히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봐라. 먹이고 입히는 분이 누구냐? 지금까지 네가 먹고 살아온 그 모든 과정을 한번 돌이켜 봐라. 누가 먹였느 냐? 네가 쌓아놓고 먹었느 냐? 누가 마시게 했느냐? 누가 입혔느냐? 네가 한 것 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느냐?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신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 고 오늘까지 돌보아 주신 것 이 아니냐? 그런데 왜 하나 님의 걱정을 네가 도맡아 하 느냐?"
하나님이 하실 걱정 을 도맡아 하다니 얼마나 바 보스럽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 믿는다 하면서 날마다 걱정하는 것 이 너무나 유치해 보여서 우 리의 유치한 수준으로 내려 오셔서 이 교훈을 들려 주셨 습니다. 유치원에 가면 선생 님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 하지 않습니까?
"얘들아, 저 기 날아 가는 게 뭐니?" "참 새요." "그래. 참새를 봐라. 참새가 농사를 짓니?" "아니 요." "참새가 곡간이 있니?" "아니요." "그럼 저금 통장 은?"
"없어요." "그런데 아침 에 참새가 먹고 나왔니? 굶 고 나왔니?" "먹고 나왔어 요."
"누가 먹였니?" "하나님 이 먹였어요."
"얘들아, 저 꽃은 무슨 꽃이니?"
"백합화 요." "야, 저 백합화가 옷 예 쁘게 입었지?" "예." "백합화 가 길쌈했니?"
"아니요." "옷 공장을 가지고 있니?" "아니 요." "그럼 누가 입혔니?" "하나님이요."
마치 이런 식 의 교훈을 들려주고 계신 것 입니다.
물론 생활 걱정으로 날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계시는 분 들 중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 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당장 직장이 날라가고 내일 어떻게 살지 모르는 그 런 상황이 되면 염려를 안할 수 없는 것이 인간적인 심정 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주님의 교 훈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 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염려하는 사람을 유치하다고 했다. 내가 하나님의 걱정을 도맡아 하다니 이 얼마나 어 리석은 일인가?' 가정에서 어린 손자, 손녀가
"아이고 국가 부도를 당했다고 하는 데 할아버지, 내일 뭘 먹고 살지요? 우리 학교는 어떻게 가지요?"하며 날마다 염려하 며 밥도 안 먹고 앉아 있다 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몰골입니까? 아무리 지금 당 장 쓸 게 없어도 아빠나 할 아버지가 보고 가만히 있겠 어요? "뭐 이런 애가 있어? 정신 차려. 이 놈아!"하고 타 이르지 않겠어요? 당장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보시고 이렇 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신차려라. 내가 너희를 먹이는 데 네가 왜 도맡아 걱정을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 수백 만 명이 시내산 광야로 발을 들 여놓았습니다. 시내산 광야 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 입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사냥도 할 것이 없습니다. 물로 없습니다. 도저히 사람 이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 수 백 만 명을 몰아 넣고 40년 동안 먹이고 마시우고 입히 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 을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데, 그 하나님을 믿는다 는 사람이 어떻게 조금 궁색 해졌다고 해서 날마다 걱정 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는 자들을 '믿 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30절을 다 시 한번 읽어봅시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 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 들아."
그러므로 우리는 걱 정을 다 쓸어내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염려가 쓸 데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10분 염려하면 1밀리미터가 자라 고 1시간 하면 1센티미터가 자란다고 하면 저도 걱정을 하겠습니다. 저도 조금 더 컸으면 좋겠거든요. 우리 집 의 손녀애가 어릴 때 참 키 가 안 커서 집안이 모일 때 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쟤가 왜 저렇게 안 크지? 저렇게 안 크다가 나중에 난 쟁이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했던 적이 있습 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 금 생각하면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너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입 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보 시기에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쓸데없는 걱 정을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염려는 주제 파악 을 못한 데서 오기 때문입니 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 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 지 말라. 보통 염려라고 하 면 미리 앞당겨 놓고 걱정하 는 것을 말합니다. 당장 내 앞에 지금 먹을거리가 없어 서 염려할 수 있지만 일반적 으로 보면 미리 앞당겨 놓고 걱정하는 것이 대부분입니 다. 내년에 어떻게 살까? 내 일은 어떻게 돈을 쓸까? 20 년 후에 노년이 되면 어떻게 살까? 별의별 걱정을 당겨 놓고 하는 것이 염려인 것입 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내 일이라는 것이 나의 시간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 람이 과연 누가 있습니까?
내일이 내 날입니까? 아니 요.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만 내 날입니다. 하나님이 허락 지 아니하면 내일은 내 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리 당겨놓고 걱정합니까? 1년 후에 내가 살아 있을지 죽어있을 지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 실 때만 내가 1년 후에도 존 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의 생명, 나의 모든 생은 다 그의 손에 있습니다. 죽음과 삶의 열쇠를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데 괜히 내일 일을 앞 당겨 놓고 제가 잘나서 사는 것처럼 걱정하는 것이 하나 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로 운 일이겠습니까? 염려란 이 처럼 자기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 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 아주 유능한 판사 한 분이 계신데 오늘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 니다. 그는 아직 50대도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재판정에서 낭 랑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선 언하던 그가 그렇게 갑작스 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 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중에 는 내일을 내 날이라고 장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일을 주시면 그 때는 또 믿음으로 내일을 살면 되는 것이지 괜 히 오늘 앉아서 내일 문제 가지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은 근히 마음에 불안과 염려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 면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을 치료해 주시기를 바랍니 다. 치료해 주셔서 여러분의 염려를 하나님이 싹 쓸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 가진 사람이 실천 에 옮겨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 직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 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 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할까, 어떻게 하 면 이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 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이 하루라도 빨리 재림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마음에 원하 는 일을 먼저 할까 하는 것 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어 떤 때는 시간을 바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때는 젊음도 송두리째 희생합니 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떤 때 는 가난과 불편함을 감수하 며 우리가 가진 재물을 하나 님의 나라를 위해서 먼저 씁 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 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 니다. 내 형편에 따라서 주 의 나라와 그 일이 좌우되어 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19절부터 읽지는 않 았습니다만 19절부터 34절까 지 내용은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하나의 맥으로 가지 고 있습니다. 그 맥은 쉽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너희가 부할 때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희가 가난할 때에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33절 말 씀은 19절부터 24절까지에 나오는 부한 사람에 대한 교 훈과 25절 이후에 나오는 가 난한 사람을 위한 교훈에 대 한 종합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19절을 보십시오.
"너 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 아두지 말라."
어느 집이든 지 보물이 좀 있다고 하면 그래도 살만한 집안입니다. 요즘 도둑놈이 들어가 가지 고 장롱을 뒤지니까 달러 뭉 치가 나오고 금뭉치가 나오 고 야단법석 나잖아요? 재물 이 그래도 좀 있다는 살만한 집안입니다. 그런데 이 재물 은 어떤 점에서는 참 유익하 고 좋은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 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굉장 히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 다. 물질이 많으면 그 물질 때문에 눈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3절에서 예 수님이 갑자기 눈 이야기를 하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진다. 왜 갑 자기 이 말씀을 하십니까? 재물이 사람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재물로 인해 우 리의 눈이 가려지면 하나님 은 눈에 안 들어오고 재물이 하나님으로 보이게 됩니다. 24절이 바로 이것을 말해 주 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 서운 일입니까? 그러다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해도 물 질 때문에 그 영혼이 저주받 은 자처럼 될 수 있고 나중 에는 그 물질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서운 심판을 자초하 는 불행을 겪을 수도 있습니 다.
가끔 보면 그래도 살 만한 여건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 가는 분들 중에 정말 눈이 가리워진 사람처럼 신앙 생 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돈밖에 안 보 입니다. 말은 주여, 주여 하 는데 실제로는 돈을 좇아 다 닙니다. 재물을 가졌다는 것 이 그들에게는 크나큰 불행 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 나님이 물질을 주실 때 정말 로 두려워하며 떨어야 됩니 다. 여러분 가운데 재물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재 물 때문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재물이 자기 하나님이 되어 있지 않나 심각하게 점 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이 물질을 주셨을 때에도 변 함없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 다.
그러면 부자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방법은 무 엇입니까? 20절에 있는 말씀 대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 해서 주님이 주신 재물을 기 쁨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 니다. 주님이 필요하시다면 내가 덜 써도 주님을 위해서 내 놓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내가 쓰려고 계획했던 것도 뒤로 미루고 그 일을 앞세워서 주님을 기 쁘시게 하는 일에 재물을 쓰 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분들 이 참 많습니다. 그 동안 교 회를 위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 옷은 아주 값싼 것을 사 입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귀한 성도들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일각에서는 자기를 위해서는 풍성하게 쓰지만 주님의 나 라를 위해서는 너무나 인색 한 분들도 교회 안에 꽤 있 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끝까지 그러 시면 하나님이 주셨던 물질 을 한 순간에 다 빼앗아 가 실 지도 모릅니다. 요즘 부 도 만나는 사람들 보십시오. 한 순간에 다 날라가지 않습 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빼앗으면 한순간에 다 없어 집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두려 워 떨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 을 가지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저는 엊그제 신문에서 어느 불교 신도의 이야기를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 다. 김영한씨라고 하는 부인 이 자신이 성북동에 가지고 있던 대원각이라는 큰 음식 점과 일대 부동산을 자신이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법 정 스님에게 희사해서 거기 에다 길상사라는 절을 지었 다는 것입니다. 1천억원 상 당의 어마 어마한 재산을 헌 금한 것입니다. 천주교의 누 가 거기 가서 축하를 해 줬 다고 해서 신문에도 사진이 나고 한 것을 여러분이 보았 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기사 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 니다. 사람이 만든 불상, 거 기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복을 줍니까? 그 게 인간의 운명을 좌우합니 까? 아무 것도 아닌 불상 앞 에도 천억 원이 넘는 자기 재산을 송두리째 내 놓는데 오늘날 예수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 나라가 이 세 상에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우리 중에 주님의 나 라와 영광을 위해서 그 만한 재산을 바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 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앞 으로 재물 주시면 이렇게 멋 지게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쓰는 귀한 주님의 제자 되시 기를 바랍니다. 이게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는 것입니다.
그러면 궁핍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궁핍할 때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궁해지면 누구나 생각이 자 기 자신에게 집중되게 되기 쉽습니다. 자꾸 생활이 어려 워지다 보면 '내 코가 석잔 데'하며 자기 걱정만 합니다. 자기 식구 걱정만 합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2선으 로 물러갑니다. 그래서 자기 나 자기 식구가 최고의 관심 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황급 한 상황이 되어도 믿음을 가 진 사람답게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 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주님 께서 우리의 걱정을 대신 책 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합니 다. 마귀는 분명 우리 귀에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야, 경제가 어려운데 너 여 러 가지 좀 잘 생각해봐. 헌 금도 좀 잘 생각해봐. 생활 을 낮춘다고 해도 어느 수준 까지는 유지해야 될 거 아니 냐? 그러기 위해서는 너 지 혜롭게 잘 생각해야 돼. 믿 음이라는 건 그렇게 맹종하 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여러분, 사렙다 과 부 이야기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3년 반 동 안 이스라엘을 강타한 무서 운 기근이 여전히 맹위를 떨 치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 서 아들과 함께 곡간에 있는 양식을 아끼면서 근근히 버 티다 결국 막바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겨우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밀가루 조금 과 기름 몇 방울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 마저 끊어지면 이제는 어디 가서 손 벌릴 데도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지금 못 먹어 가 지고 허기진 짐승이 되어 있 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 찾 겠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남은 것 마저 구워 먹고 이 젠 죽자'라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불을 피우려고 마른나 무 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 왔습니다. 엘리야는 그녀에 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의 집에 있는 통에 그 밀가 루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나 에게 먼저 가지고 오라. 만 약 나에게 먼저 가지고 와서 나로 먼저 먹게 하면 하나님 이 너를 축복하셔서 기근 동 안 너의 모자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하나님이 일용할 양 식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없어 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공급 하실 것이고, 기름통에 기름 이 없어지지 않도록 공급하 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 니 너는 가서 빵 구워 가지 고 내게로 먼저 가지고 오 라."
그녀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 민이 되었겠습니까? '야, 웃 기지 마라. 지금 이 마당에 어떻게 너부터 먼저 주냐? 죽어도 내가 먼저 먹고 죽겠 다.' '아니야, 하나님의 선지 자가 저런 말씀을 하는데 믿 어 보자. 믿고 내가 못 먹어 도 이것을 주의 종을 위해서 바치자.' 엘리야의 말을 믿지 않든지 믿고 그 말대로 하든 지 그 어느 쪽이든지 선택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 시겠습니까? 놀랍게도 그녀 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 기로 하고 엘리야에게 그 떡 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랬 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기근이 다할 때까지 가루 통 에는 먹고 나면 또 생기고 먹고 나면 또 생기고 기름통 에는 계속 기름이 남아 있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난 것입 니다. 하나님이 먹이신 것입 니다. 우리가 아무리 궁핍하 고 가난해도 하나님의 나라 를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할 때에는 내가 못 먹어도 드리고, 내 가 쓸 것을 못 쓰더라도 우 리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필요하다면 내놓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큰 믿음은 우리의 발상을 전환시킵니다. 큰 믿음은 세 상 사람처럼 우리가 살지 못 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 어 놓습니다. 작은 믿음은 세상 사람을 따라가게 만듭 니다. 작은 믿음은 이 세상 의 물 흐르는 대로 걸어가도 록 항상 우리를 던져 놓습니 다. 여러분 어느 믿음을 갖 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적 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렇 게 말할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헌금 좀 줄이 자."
아마 몇 달 지나면 헌 금이 자꾸 줄어들지도 모릅 니다.
"기름 값도 많이 올라 가는데 기름 아끼기 위해서 매주마다 교회 갈 거 뭐 있 냐?
두 주에 한번씩 세 주에 한 두 번씩 교회 가자."
"선교 는 무슨 선교냐? 때가 어려 우니 만큼 선교사를 전부 불 러들이도록 해라."
그리고 주일 학교 어린 자녀들을 위 해서 꼭 필요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이 어려운 때 뭐 그런 걸 하느냐? 다음에 사정이 좋아지면 하자"
라며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또 감사 헌금이 어디 있어요?
"이 어려운 때 감사는 무슨 감사냐? 불평을 해도 한이 없는데"라면서 감사 헌금도 안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작 기 때문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 그렇게 행 동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 분,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주의 마음에 드는 큰 믿음을 가져봅시다.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저울에 달아보고 정 말 흡족해 하시도록 해 봅 시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 지면 염려를 몰아낼 수 있습 니다. 큰 믿음 가지면 아무 리 어려워도 주님의 나라를 먼저 앞세우는 하나님의 백 성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 하심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 다. 우리 이런 큰 믿음 가지 고 우리 앞에 있는 이 어려 운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하 는 아름다운 신앙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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