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 27 : 15 - 26
설교제목 : 바라바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바라바"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라바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키가 장대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어깨가 벌어지고 근육질 적인 사람, 머리는 숱이 많고, 온 턱은 구레나룻 수염으로 덮였고 눈은 총명이 빛나고, 그리고 입은 일자로 굳게 다문 사람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서운 반란자 였었습니다.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식민지로서 수탈을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로마에 주구노릇을 하는 유대사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무서운 적개심과 반발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그는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완전히 희망을 저버린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래서 범죄를 행하고 부정을 하고 흉악한 삶을 자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장날 사람들을 군중을 모아서 그들을 설득을 시키고 그들을 충동하고 자극해서 거대한 민란을 일으켰습니다. 로마와 정부에 반발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바라바의 지도를 따라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기물을 파손하고 공동건물에 불을 지르고 그리고 바라바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탈취했습니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시가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로마의 주둔군이 동원을 하고 순식간에 반란은 진압되고 바라바는 잡혔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고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그리고 철창에 갇혔습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이제 내일이면 그는 끌려나가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극형인 골고다 산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날인 것입니다. 그는 짐승과 같이 웅얼거리면서 감옥 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 저주받아라 로마여, 저주받아라 로마의 주구여, 그는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그리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감옥 밑바닥에 드러누워 뒹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죽음은 그에게 시시각각 다가왔습니다. 잠을 들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악몽을 꾸고 고함을 치고 그는 진땀을 흘리고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느 순간에 무거운 간수의 발걸음소리가 들릴 것이고 로마군인의 걸어오는 발걸음소리가 들릴 것 같았습니다. 언제고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그는 포박 당하고 끌려나가서 무거운 십자가 걸머지고 골고다 산에 올라가 무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입니다. 모든 시간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죽는다는 그 생각에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몸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손발은 차디찬 진땀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로마 총독 빌라도의 집뜰 앞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군중들을 동원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인산인해로 사람들은 빌라도의 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흰옷을 입은 초라한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옷은 찢어지고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눈을 뜨지 못합니다. 수염은 뜯기고 그리고 그는 군중들 앞에 빌라도 앞에 서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이유 없이 잡혀서 밤새도록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당하고 린치를 당하고 헤롯 왕국에 끌려가서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최후로 빌라도의 뜰에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와서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아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못박으소서, 사형시키소서. 그렇게 고함을 쳤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심문해 보았습니다. 사형을 당할 아무런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사형을 내릴만할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중 앞에 나왔습니다. 내가 심문해보니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할 아무 죄를 지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명절날엔 유월절에 내가 죄수 한사람을 원래 놓아주는데 내 이 사람 채찍으로 때리고 예수를 놓아주면 어떠냐 그러니까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아니로소이다. 우리에게 바라바를 내주소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그때 빨리 사환 한사람이 쪽지를 들고 왔습니다. 빌라도가 쪽지를 펼쳐보니 자기아내에게 온 쪽지입니다. 그 쪽지에 여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심판은 깊이 사려를 가지고 하세요. 그 의인을 구출하려고 내가 밤에 꿈에 밤새도록 애를 썼습니다. 아 그 쪽지를 받고 빌라도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만일 이분이 진짜 하나님 아들이고 의인이면 자기는 어떻게 될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놓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말합니다. 당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놓으면 시저의 백성이 아니다 그가 자기스스로 왕이라고 했었으니 시저 외엔 우린 왕이 없다, 그러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당신은 시저가 임명한 총독이 될 수 없다. 잘못하다간 자기의 정치적 생명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했습니다. 그 물에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의 죄에 대해서 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무죄하다 이 피는 너희들이 책임져라. 그러니까 군중들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다 돌리소서.
그 유대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말을 했습니까? 그들이 그 말한 결과로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은 후 70년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로마의 장군 디도가 유대인의 반항하는 50만을 죽이고 그들의 피가 흘러 예루살렘의 불이 꺼졌다고 말했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이천 년 동안 온 땅에 흩어져 방황하게 되고 세계2차대전 때는 히틀러의 손에 육백만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친 그들의 무모함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그리스도를 채찍질하고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내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라바는 이제 자기가 끌려나갈 시간이 되었는데 철창살을 잡고 자기를 잡으러 올 사람을 오는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간수가 오는 발걸음이 들립니다. 온 몸이 이제는 얼어붙었습니다. 오금이 절였습니다. 심장이 얼어 붙어갔어요. 그는 뒤로 물러나서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최후의 발버둥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수는 와서 무거운 열쇠를 철커덕 열고 철창문을 확 열어 제키더니만 나가! 너는 무죄 석방되었다. 네가 지고가야 할 그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지고가게 되었다. 나사렛예수란 분이 너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네가 죽을 그 골고다 산정에 대신 죽게되었다. 그때 말했다. 아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넌 나를 꾀려고 한다. 마음대로 해라. 나오고 싶거든 나오고 나오기 싫거든 혼자 앉아있어라. 나는 간다. 그리고 간수는 가버렸습니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바라바는 조심스럽게 나와서 철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로마군인도 없고 간수도 없고 아무도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그는 조심스럽게 나와서 보니까 아무도 자기를 잡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도대체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되었기에 내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나 그는 뛰어나왔습니다.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돌로로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는데 그는 놀랬습니다. 자기 이름이 써 붙인 십자가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갑니다. 로마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얻어맞으면서 넘어졌다 일어나고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갑니다. 어찌하여 저 사람이 날 대신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느냐 내가 오늘 저 자리에 저 십자를 걸머지고 가야되는데 날 대신 저 사람이 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느냐 그는 골고다 산허리까지 따라갔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빨가벗김을 당하고 그 많은 사람 보는 앞에서 로마군인들은 망치를 들고 대못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또 다른 손에 못을 박을 때 예수님은 고함을 쳤습니다. 다리에 목을 박을 땐 그리스도의 온몸이 전율했습니다. 주님은 땀을 흘리고 그리고 그 십자가를 높이 세워서 이마의 가시관에서 흐르는 피는 눈에 가득하고 수염을 통해서 가슴팍에 피가 흐르고 그 손에서 흐르는 피는 순식간에 피가 엉겨서 손은 퉁퉁 부어 올라 마치 묵같이 되었습니다. 그의 팔에 흐르는 피는 방울방울 골고다 산정에 흐르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발은 퉁퉁 붓더니만 발에 흐르는 피가 엉키어서 발인지 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바라바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저분이 왜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나 그는 순식간에 그 머리 속에 환영이 떠올랐습니다. 저분이 내가 아닌가! 혹시 저 손이 내 손이 아닌가! 저 발이 내 발이 아닌가! 그는 놀래서 자기 손을 보았습니다. 자기 손엔 못자국이 없습니다. 예수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저분이 내 죽을 자리에 죽는가 그는 마치 그가 예수님의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환영으로 보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서 깜짝 놀라서 소스라 쳤습니다. 그러나 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가 매달려 있지 않고 예수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는 주먹으로 눈에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의 눈물과 콧물은 그의 억세게 난 구레나룻 수염을 통해서 흘렀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릴 때 어머니 무릎에 앉아서 늘 듣던 성경이 그 마음속에 기억이 났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저가 찔림을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린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을 시켰도다" 바라바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너무나 꿈같은 일이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다. 그러나 저분 때문에 내가 감옥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고 저분 때문에 내 십자가 내가 안 짊어진 것이 사실이고 저분 때문에 내가 죽어야할 자리에서 내가 해방된 것은 사실이다. 너무나 큰 은혜다. 너무나 놀라운 은혜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그 골고다 산정을 떠났습니다.
나는 오늘 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장황하게 합니까? 왜냐하면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은 여러분이야말로 오늘날의 바라바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한사람도 없느니라.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 우리 모두는 죄를 짓고 결과로 사망의 감옥에 갇혀 죽음이란 형 집행일 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형을 당한 사람도 있고 지금도 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형집행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의 형 집행을 당한 것도 알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세상의 자랑을 따라 희희낙락하고 사는 정말 불쌍한 군중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자유롭다하나 모두다 죄와 사망의 감방에 갖혀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자기의 형집행일이 다가와서 자기는 끌려가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고 시체는 북망산천에 던져질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죄악의 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라바에게 소식이 전해진 것처럼 우리에게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은 갈보리에서 퍼져 나왔고 오순절 다락방이후에 동서남북 온 세상으로 온 인류에게로 퍼져 나왔습니다. 너희 감옥 문은 열렸다. 사망의 감옥 문은 열렸고 죄악의 감옥 문은 열렸다. 너의 사형은 철폐되었다. 너는 그 감옥에서 나오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너희에게 행한 모든 심판은 끝이 나고 말았다. 너희들은 이제 예수를 영접함으로 그 감옥에서 나오라. 수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도 죄와 사망의 감옥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육신의 향락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말을 귓등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그 소식을 듣고 죄와 사망의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무죄 백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대신 죽은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걸머져야될 그 십자가를 대신 걸머진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매달려야될 갈보리의 죽음의 형틀에 대신 매달린 분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매달린 십자가가 없어지고 우리의 죽음의 자리가 없어지고 우리는 무죄 석방되어 오늘날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감옥에서 뛰어나와서는 신속히 예수님을 따라 골고다 십자가 밑에 가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바처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나 같은 죄인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했는가? 우린 고개를 들어 그리스도의 고난을 쳐다보고 우리는 그 고난의 의미를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있는 말씀이 우리의 심금에 울려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가 그 십자가 바라볼 때 그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예수님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죽어 계신 예수님 창을 맞아서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흘려 그 피와 물이 옆구리를 따라 흐른 그 흔적이 선혈이 분명히 보이는 거였습니다. 피가 그 발에 묵같이 엉켰고 그의 온 손에 피투성이가 되고 피가 엉켜 버렸고 가슴팍은 붉은 피로 물들고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날 위하여 그 십자가를 지셨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걸머져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여러분과 나의 병을 대신 짊어졌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병을 미워하십니다.
그는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증거할 때 처음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열두 제자 에게도 70인의 제자에게도 복음 전하고는 병 고쳐라. 귀신 쫓아내고 병 고쳐라. 마지막에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믿는 자들에 대한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병을 미워하십니다. 주님은 병을 대적하십니다. 주님은 병과 원수입니다. 주님은 병을 기어코 고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병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주님께서 청산하기 위해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그처럼 처참하게 고난 당하면서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질 때부터 울면서 태어났습니다. 울면서 살다가 마지막 울면서 이 세상 떠나갑니다. 사람들마다 가슴속에 웃는 그 순간에도 울음이 있습니다. 슬픔이 가슴에 파헤쳐져 있습니다. 슬픔이 강물같이 마음에 흘러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그는 우리 슬픔을 대신 짊어졌고 슬픔을 당한 인류를 위해서 주님은 너무나 슬프게 십자가에서 슬픔을 담당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일그러진 그 얼굴을 보십시오. 우리의 슬픔이 그 얼굴에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끝없는 기쁨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슬픔을 재껴버리고 우리의 가슴에 슬픔의 안개를 재끼시고 기쁨의 태양이 비추게 만들어 줄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계속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요. 오늘 이 세상에서 허물없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우리가 남에게 손가락질하는 그 순간에도 내 스스로 허물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십 보 수백 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도망을 치면은 오십 보 도망을 친 사람이나 백보 도망친 사람이나 같은데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보 도망친 사람보고 손가락질하고 웃을 수가 있습니까? 도망은 다같이 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모든 사람이 허물 졌었습니다.
만일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워놓고 저 스크린처럼 여러분의 일생을 비춰준다면은 아마 이 자리에 남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이 다 일어나서 도망을 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허물진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발로 손으로 생각으로 허물을 지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선 그 허물을 마다치 않으시고 당신이 책임지시고 그는 십자가에 올라가서 수족이 찔리면서 우리의 모든 인생의 허물을 대신 다 짊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의 허물은 다 씻김을 받고 청산 당하고 나중 하나님 앞에 설 때도 이 허물이 우리 눈앞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 예수님의 피가 그 허물을 씻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죄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아니라 죄가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죄가 되었습니다. 그의 온 영혼은 죄의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 모습은 흉악하게 이지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도 그것을 보고 탄식했거니와 이사야는 이사야 52장 14절로 15절에 기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그의 모습이 얼마나 상하였든지 타인보다 상하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보고 놀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길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아담 하와이후로 하나님을 반역한 모든 죄악을 그가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허물은 사라지고 우리의 죄악도 예수님의 고난과 그 보혈을 통하여 사라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더 이상 이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고 마귀의 참소를 당하지 않고 일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취급되는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릴 대신하여 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아담과 하와는 죄짓고 징계 받아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쫓겨났었습니다. 징계를 받아서 쫓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었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졌을 때 하나님께 진노를 사고 징계를 받아 그런 하나님 안전에서 쫓겨나고 말은 것입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극단의 고독에 처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봐도 하나님이 그를 쫓아내어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자들은 다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군중들은 이를 갈면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그들은 이제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친구는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옥의 마귀들은 총동원되어 그를 둘러싸고 그를 조롱하고 그를 비웃고 그에게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리스도는 그 극단의 고통 속에 사무쳤습니다.
시편 22편 1절로 2절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치 아니하시나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절망적인 고독과 그 몸부림은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징계를 통해서 나중에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하나님이 징계를 다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시고 그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황금 길을 열어놓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갈 때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나가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징계 받은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올 때 우리를 품에 품어주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징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가 그 나라가 되고 그 제사장이 되고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제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품에 품고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부어주시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는 예수께서 우릴 위해서 징계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특별한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지만은 우린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나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린 하나님과 같이 사는 천국의 식구들이 되고 영생의 백성들이 되고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못 박힌 그가 등을 보니 갈기갈기 찢어져서 살점이 찢어지고 밭고랑처럼 파헤쳐졌습니다. 왜 그의 등어리가 저렇게 파헤쳐졌는가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 채찍에 맞아 당한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심신의 고통을 주님이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떠한 고통이 다가와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린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 우리 무리의 모든 죄악이 저에게 담당되었습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역사이후로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죄악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다 담당되었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죄입니다. 너무나 억울한 죄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사랑은 증명되야 됩니다. 사랑은 말로만 해선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된 사랑입니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온 전신에 피를 흘리고 온 몸을 찢은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대한 사랑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 지금 십자가에 힘없이 늘어져있고 피투성이가 돼있지만은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하나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로맨틱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의 문학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증명된 사랑인 것입니다. 생명을 쏟아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그러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죄악의 누더기를 벗어 던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질병의 누더기 옷을 던져 벗어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버림받은 저주받은 누더기 옷을 벗어 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십자가에서 주님이 입혀준 새로운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의의 옷을 받아서 입어야만 됩니다. 성령님으로 인하여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흠뻑 젖은 옷 거룩한 옷을 받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료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됩니다. 건강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옷을 받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영생과 천국의 옷을 받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20세기 현재의 바라바가 된 우리들 이제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우리 가슴속에 피로 닦아놓은 천국의 영광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천국의 백성이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새사람들이 되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 나라의 백성이요 빼어난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곳은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할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현재 우리를 위해서 순식간에 나타나기 위해서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날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죽을 몸이 영생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십자가에 못 박혀 찢어진 그 손 그대로 그 옆구리 그대로 그 발에 있는 그 못 자국 그대로 가지고 우리를 영접하는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와 혼인잔치를 하고 영원한 세계를 주와 함께 상속받아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날에도 우린 매일같이 그리스도의 손에 난 그 못 자국과 발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에 창 자국을 바라보며 끝없는 경배와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드리며 감격의 눈물 속에서 영생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의 죄가 그 손에 못을 박게 하고 우리의 불의가 그 발에 못을 박게 하고 우리의 반역이 그 옆구리에 창에 찔리게 만들어서 그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할말이 있습니까? 우리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에 살면서 너무나 잘못 믿고 너무나 불충성하고 너무나 불순종하고 사는 우리들이 얼굴을 들어 바라볼 수 없는 이 고난절입니다. 하나님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변화받지 못하면 이 세상에 무슨 힘이 우릴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깨어지고 우리도 회개하고 우리도 변화 받고 우리도 새사람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도 짊어지고 주님 따라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오 만군의 야웨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닙니다. 문학적인 하나의 수식어가 아니옵니다.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에게 증명되고 확증되고 그 사랑에 대해서 우린 추호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아버지의 사랑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모셔들이고 우린 우리에게 아버지의 백성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며 평생토록 아버지를 섬기고 찬미하며 야웨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살겠사오니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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