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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1장 28절 나의 멍에와 예수님의 멍에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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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태복음 11장 28절
설교제목 : 나의 멍에와 예수님의 멍에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의 멍에와 예수님의 멍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곳에 어미소 한 마리와 새끼송아지 한 마리가 서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끼소 한 마리가 조그마한 멍에를 목에 걸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멍에에 줄이 매달린 수레를 끌고있었습니다. 그 새끼소는 심히 고생을 하고 무거운 수레를 끌려고 해도 잘 끌려지지 않아서 아주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큼직한 멍에를 목에 걸고 굉장히 큰 수레를 뒤에 끌고 있으나 유유히 끌고 가는 어미 소가 곁에 와서 새끼소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힘들지. 잘 끌지도 못할 짐을 가지고 그렇게 버둥대지 말고 너의 목에 얹어 있는 적은 멍에를 벗어서 꺾어 버리고 짐은 나에 수레에 옮겨 싣고 그리고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너라. 나와 함께 가자 내 멍에는 너에게 쉽고 가벼울 것이다." 그때 새끼소가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엄마 멍에 밑에 들어가면 나는 키가 작아서 멍에가 내 목에 닿지도 않을텐데요?" 어미 소는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더 이상 땀을 흘릴 필요가 없잖아.. 고생할 필요도 없고 짐은 내가 대신 끌어주고 너는 그저 나를 믿고 내 멍에 밑에서 나만 따라오면 되지 않나?" 새끼소는 그 말을 듣고 자기 멍에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자기 멍에를 짓밟아서 꺾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수레에 있는 모든 짐은 어미 소의 수레에 다 옮겨 실었습니다. 그리고 어미 소의 큼직한 멍에 밑에 들어가니 그 멍에는 자기 목에 오지도 않습니다. 어미 소가 "가자" 그런데 어미 소의 멍에는 무거운 짐을 잘 끌고 가는데 새끼는 멍에 밑에 들어가서 그 멍에가 목에 닿지도 않습니다. 키가 작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 밑에서 같이 걸어갑니다. 마치 밖에서 볼 때는 새끼소가 멍에를 끌고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새끼소의 목에는 멍에가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새끼소는 가면서 어미 소를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야! 이 짐이 참 쉬운데요. 이 짐이 정말 가벼운데요." 어미 소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그래, 네가 내 밑에 들어와 있으면 짐은 내가 끌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너의 짐은 쉽고 너의 멍에는 가벼워지지 않니?"

이 이야기는 이솝이 지은 이야기도 아니고 제가 만든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개인의 조그마한 멍에를 만들어서 목에 걸머지고 자기가 다 끌고 가려고 애를 씁니다. 남편 짐, 아내 짐, 자식 짐,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꼬? 으싸, 으싸, 으싸.. 아침부터 저녁까지 끄는데 목이 벗겨지고 진땀이 흐르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짐이 잘 끌려지면 모르겠는데 짐도 잘 끌고 가지 못하면서 고통만 당하고 몸부림으로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미소인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렇게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초청을 생각하고 마음속에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을 볼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로 인간을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께서 아무 짐도 없다. 나는 땀을 흘리지 않고 인생을 유유히 살고 있다. 아주 매일같이 쉽고 가볍고 편안하게 인생을 산다고 자백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다 자기 몫의 개인 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끌고 가려고 자기가 만든 멍에를 목에 걸고 모두다 애를 쓰고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참으로 편안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의 가르치심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다 내려지고 우리 마음속에 강물 같은 평화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자신과 확신이 넘치는 이러한 삶을 살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올바른 신앙의 길을 배워야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멍에를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배워야지 안 배우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서도 계속 자기의 멍에를 걸머지고 자기가 자기 짐을 끌고 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오늘 첫째로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 싶은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는 인간의 목에 멍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짐이 없는데 멍에를 왜 만들겠습니까? 끌 짐이 있어야 목에 멍에를 메고 끌지, 끌어갈 짐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멍에를 만들어서 목에 걸머지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 때는 에덴동산에서 보니까 목에 멍에를 지고 끌고 갈 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일을 다 완성을 해 놓았습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고 '야! 소매 걷고 일어나라 빨리 빛을 만들어야겠다. 멍에를 걸머지고 빛을 만들러 가자' 그랬나요?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빛은 만들어졌고,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궁창도 만들어졌고,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모든 땅들도 다 열매맺는 나무와 잎도 다 만들어졌고, 아담 태어나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도 다 만들어졌고,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공중의 새들도 물고기들도 다 만들어졌고, 아담 태어나기 전에 각종 짐승들도 다 만들어졌고, 아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도 다 만들어서 먹기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실과나무 다 나게 하시고, 아담이 마지막 엿새째에 지음을 받고 보니까 그가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멍에를 질 필요가 없지요. 짐을 질 필요가 없는데 지게가 왜 필요합니까? 짐을 질 필요가 없는데 수레가 왜 필요합니까? 짐을 질 필요가 없는데 목에 멍에가 왜 필요합니까? 아담과 하와는 천지간에 보아도 할 일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혼자 일을 다 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은 원래부터 멍에를 메고 땀을 흘리면서 자기 인생의 짐을 끌고 가겠끔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짐은 하나님이 홀로 짊어지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친히 멍에를 걸머지시고 모든 짐을 다 짊어지시고 모든 일을 다 행하셨습니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도 야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을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일을 할 것이 없으므로 원래부터 멍에 없이 자유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고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를 경배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며 믿고 순종하고 살면 에덴동산에서 정말 천국의 영광을 누리고 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마귀가 와서 그것이 너무나 샘이 났기 때문에 아담보고 말했습니다. "야, 너 하나님께 왜 신세지고 사니? 너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서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신세지고 사니? 사람이 신세지고 살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지 않느냐? 그러므로 독립해라. 독립해. 신세 그만 지고 독립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거야. 선악과를 뚝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경쟁하며 살아야지 무엇을 하나님께 신세지고 시시하게 사느냐?" 마귀는 자꾸만 독립하라고 합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언제나 말을 안 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독립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처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 말은 안 하는 것입니다. 독립을 하는 것은 좋지만 독립하고 살아갈 힘이 없는데요.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역해서 나 독립해 나가겠다고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나가서 먹고 살 힘이 없는데요. 나가서 당장 전셋집이나 월세집 얻을 돈도 없고 또 나가서 매달 살아갈 능력이 없는데 독립을 하는 것은 좋지만 능력이 없는 독립은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에는 거지 신세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처절한 절망밖에 다가오는 것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꾀임을 받은 것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짐을 지어 주시고 자기는 멍에 없이 사는 그 편안한 생활을 져버리고 독립하기 위해서 그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두 번째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는 독립을 선포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나가자마자 자기는 하나님처럼 되고 독립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인본주의로 서서 이제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다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발견한 것은 너무나,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자기가 이제 처음 멍에를 만들어서 인본주의라는 멍에, 하나님께 독립했다는 멍에, 자기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멍에를 목에 걸고 한번 끌어보니까 죄 짐이 끌려지나요? 자꾸 죄만 지어 가는데 죄 짐이 끌려지나요? 그는 죄 짐을 끌고 죄를 없애버려야 의롭게 살 수 있는데 의롭게 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뒤에 쌓이는 것은 자꾸 죄가 쌓입니다. 그래서 끌려고 하니 죄의 짐이 목을 완전히 부여잡고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죄 짐의 포로가 되어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보니까 그의 짐에 미움의 짐이 실려 있습니다. 세속과 미움이 잔뜩 실려서 아무리 미워 안 하려고 해도 미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은 하와와 서로 싸우고 그리고 가인은 아벨과 시기 질투해서 가인이 아벨을 돌로써 쳐서 죽이고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종족은 종족끼리 싸우고 민족은 민족끼리 싸우고 나라는 나라끼리 싸우고 인류의 역사는 피투성이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무리 끌고 가려고 해도 끌 힘이 없습니다. 평화를 가져오려고 하는데 이 미움과 전쟁의 무거운 짐을 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거기에다가 질병의 짐을 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여 한가지 병을 없애면 또 한가지 병이 생기고 이거 없애면 또 더 무서운 병이 생기고 그래서 병이란 짐을 잔뜩 수레에 싣고서 우리가 끌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무병 3년이면 못 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가족간에 질병이 있어 우리는 질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끌지 못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거기에다 저주의 짐이 있습니다. 또 저주의 짐이 와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지요. 아무리 땅을 파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수확이 잘 안되지요. 가뭄이 오지요. 홍수가 나지요. 바람이 불지요. 가난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직장을 잃지요. 사업이 잘 안되지요. 사업이 잘되어도 피땀을 흘리지요. 그래서 사람이 먹고산다는 것은 이마에 땀이 흐릅니다. 그 먹고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이것을 끌고 가니 정말 힘듭니다. 자식새끼들 먹여 살려야 한다. 처자를 돌봐야 한다. 이 얼마나 무거운 짐입니까. 그 짐을 걸머지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잡아당기고 끄니까 목이 벗겨지고 피땀이 흐릅니다.

결국에는 인간은 도저히 끌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무거운 짐이 얹혀지면 그 짐을 끌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짐은 끌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 많은 인생이 끝납니다. 그의 삶은 관속에 들어가고 못은 꽝꽝 박혀지고 슬픈 상여의 소리와 함께 공중묘지에 가서 파묻히고 이름 없는 들풀이 그 위에 나부낍니다.

인간은 정말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떠나서 자력으로 살겠다고 자기 목에 멍에를 걸고 출발한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사는 삶 전체가 불안과 공포와 절망과 슬픔과 고통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삶 전체는 그 불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불안한 마음으로 태어나고 하루종일 생존경쟁 속에서 불안과 공포 가운데 피땀 흘리고 살다가 저녁에 또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잠자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철학자들도 인간을 볼 때 절망에 이르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키에르케고르 같은 사람은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사람이다' 벌써 그 병이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우리가 아무리 살려고 해도 종국적으로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벌써 태어날 때부터 이 죄 짐이 너무나 무거워서 죄책감과 절망의 무거운 짐에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허무와 무의미의 무거운 짐이 짓누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살아도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라고 해서 참으로 내 운명을 바치고 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살고 난 모든 걸음을 돌아볼 때 허무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도자는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탄식한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이 운명적으로 걸머져야하는 짐이 허무와 무의미인 것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 짐이 죽음과 무의 절망의 짐인 것입니다. 사람은 죽는다. 이번에도 여러분 배 사고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TV 뉴스를 볼 때마다 그 가족들이 그 시체를 두고, 관을 두고, 앰뷸런스를 붙잡고 통곡을 하고 몸부림치며 우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죽음이란 얼마나 비참합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죽음이 다가와서 빼앗아 가면 대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형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 그 죽은 사람을 보고 가슴을 치고 땅을 치고 울던 그 사람도 또 얼마 있지 아니하면 똑같이 죽어서 관에 실려서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러므로 너무나 허무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져버리고 자기 스스로 멍에를 만들어서 자기 운명을 끌고 가겠다고 하는 인생들,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형성하고 산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 인생은 무엇이냐? 자기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끌 제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보시고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큰 소리 하지 말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너희 스스로는 이 짐을 끌고 갈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 셋째로 여기에 우리 어미 소 되시는 예수님의 초청이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그렇게 멍에를 목에 걸머지고 발버둥을 치지 말고 너희 멍에를 벗어서 꺾어 버리고 너희 짐일랑 내 짐에 맡겨버리고 나의 십자가 멍에 밑으로 들어오너라 내가 너희 멍에를 대신 맡아서 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그가 참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는 모든 세계를 다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를 다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우주 만물을 잡고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죄 없이 잉태되어 죄 없이 태어나셔서 30세에 요단강에 가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여러분과 나의 짐을 걸머지려고 나오신 것입니다. 짐은 원래 하나님이 걸머지지 사람이 걸머지게끔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천지와 만물의 짐도 창조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 짊어졌지 사람이 짊어지지 않았습니다. 멍에는 하나님이 걸머지지 사람이 걸머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인간의 모든 짐을 벗겨주기 위해서 주님이 친히 십자가의 멍에를 걸머지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멍에는 사람은 걸머지지 못합니다. 걸머져도 이것을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멍에를 걸머지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인류의 그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서 자기의 수레에 주워 담았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마지막 주님이 강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죄악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 당신이 전부다 당신의 멍에 위에 얹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물고 찢고 싸우는 이 미움, 원한, 세속, 이 모든 죄악의 짐을 예수님 당신이 전부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의 고통의 짐도 예수님이 담당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 굶주림과 낭패와 실망의 짐도 예수님께서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영원한 멸망의 짐도 예수님께서 끌어안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짐을 끌어안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매를 맞고 그는 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렸습니다. 인간의 반역한 죄를 주님께서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고통이 극도에 달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짐을 짊어지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앞에 인간의 반역죄를 대속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반역죄를 대속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죄 없는 자로써 죄인이 되고 불의하지 않는 자로써 불의한 자가 되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가 미워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께 용납 받은 자가 버림받은 자가 되어서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고통을 우리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600-700년 전에 이사야는 이것을 보고 그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입었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 시켰도다"

이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원하여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당신이 걸머지고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서 이 대가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인간의 모든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모든 삶의 무거운 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멍에 위에 실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곁에 와서 어미 소가 새끼소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 멍에를 꺾어라. 너희 멍에를 벗어라 내가 이미 걸머진 짐을 또 네 목 위에 걸어서 끌지 마라. 이제는 너희 멍에는 꺾어 버려라. 이제 너희 짐은 내 수레에 내가 다 실었다. 이 이상 더 너는 짐을 질 필요가 없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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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 앞에 나온 여러분이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멍에를 꺾어야 되는 것입니다. 멍에를 걸어 매면 끌려고 달려들어요. 자기 멍에에 짐을 연결해 놓고 자꾸 끌려고 하는데 아예 멍에가 없으면 짐도 못 끌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오늘 이 시간에 나는 아버지 앞에서 내 멍에를 꺾어 버립니다. 내가 멍에가 없으면 짐을 못 지지요. 지게가 없는데 어떻게 짐을 집니까? 수레가 없는데 어떻게 주워 담습니까? 아예 멍에를 꺾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 인본주의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내 중심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내 중심으로 살겠다는 멍에를 꺾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가서 '주여! 나는 못합니다. 나는 안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시여, 나의 멍에를 꺾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나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여러분 우리가 짐이 생길 때마다 우리 주님의 수레에다가 짐을 옮겨 실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서 그것을 다 옮겨버리고 아내의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수레에다가 옮겨 싣고 자녀의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서 주님의 수레에다가 실어버리고 여러분의 질고가 오면 병의 것도 주님의 수레에 실어버리고 여러분의 생활에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사업상의 문제, 직장을 구하는 문제도 기도하고 전부다 실어버려야 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의 짐을 주님께 전달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내가 맡지 말고 이 짐을 주님께 다 실어버리고 그럴 때마다 여러분은 다 말하십시오. '나는 짐을 지고 갈 멍에를 다 꺾어 버렸다. 내가 멍에가 없는 몸이 건방지게 왜 내가 짐을 끌고 가려가 하겠는가?' 아예 처음부터 짐을 끌고 가려고 시도도 하지 말고 이 멍에가 없으니 예수님께서 나 대신 큰 멍에를 걸머지고 있으니 예수 님께 짐을 다 옮겨버리고 그 다음에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온유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옆에 들어가서 '주여! 나는 주님 밑에 섰습니다.' 멍에가 너무 커서 멍에가 주님 목에 걸려 있지 우리 목에는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멍에 밑에 들어가서 '주여! 나는 주님을 따라갑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쇄하든지 나는 주님 중심으로 살고 주님을 섬기며 살고 주님과 함께 자고 깨고 주님과 함께 행합니다. 나는 주님께 순복하고 주님만 믿고 갑니다. 주여! 믿습니다.' 그때로부터 주께서 "오냐, 너희 짐을 이제는 끌고 간다. 너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문제는 내 문제이다. 너희 남편의 문제, 부인의 문제, 자식의 문제도 내 문제이다. 너희 사업의 문제도 내 문제이다. 그것은 내 목에 걸려 있다. 이제 내게 맡겼으니, 너는 끌고 갈 멍에가 없으니 내가 끌고 가마"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걸어갈 때 이제는 우리는 짐이 쉽고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짐을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이 끌어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못 끌 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우리 주 예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모두다 그리스도의 수레에 옮겨 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예수께 다 옮겨 버리십시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수레를 끌지 않습니다. 아침에 나와가지고서 '주여! 우리 남편의 문제가 여기 있사옵나이다. 맡으시옵소서. 우리 아내의 문제 여기 있습니다. 자식의 문제 내어놓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내 사업의 문제도 여기 내어놓습니다. 나의 모든 고통의 문제도 주님 다 내어놓습니다. 믿습니다. 주여!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일어나 나갈 때에는 자기의 조그마한 멍에에다가 다 도로 담고 주여 내일 또 와서 맡기겠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갈 테니 안녕히 계십시오. 모든 짐을 자기 멍에에 도로 가지고 그리고 그날 가면서 또 가서 고생을 합니다. 그냥 울고불고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심려를 가지고 삽니다. 왜? 자기 조그마한 멍에를 그대로 끌고 내 문제는 그래도 내가 해결해야지 주님 믿었다가 안 해주면 누가 손해나게? 까짓 내 문제는 내가 끌어야지 자기 목에 멍에가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10년, 20년, 30년 믿으면서 늘 얼굴에 주름살을 지우고 늘 짜증을 내고 늘 찡그리고 마음은 늘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왜? 자기 짐을 자기가 끌고 가니까 고통스럽지요.

여러분 사람은 원래부터 멍에를 매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멍에를 만들어 준 일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자기가 멍에를 만들었지. 하나님이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멍에를 오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 꺾어 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원히 꺾어 버리십시오. 주여 나는 다시는 내 목에 멍에를 걸지 않습니다. 영원히 멍에를 꺾어 버립니다. 멍에가 없으니 짐은 나는 못 집니다. 내 짐은 못 집니다. 이제는. 내 짐은 오직 주님이 끌어 주시오니 십자가 멍에를 가지고 주님 끌어 주시옵소서. 예수께 다 맡기고 마음의 큰 기쁨과 평안으로 인생을 쉽고 가볍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인조 멍에를 가지고 피땀 흘리고 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인간 멍에를 꺾을 때가 왔습니다. 그 인간 멍에를 영원히 꺾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항상 대화하면서 항상 예수님께 의지하면서 항상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 속에 살기를 원하셨지 멍에를 메고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배반하고 난 다음 자기 멍에를 목에 걸고 자기가 인생을 꾸려 나가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우리 멍에를 다 벗어서 주님 산산조각으로 깨 버리고 맙니다. 아버지 다시는 멍에가 없으니 짐도 질 수가 없습니다. 개인, 가정, 자녀, 사업의 짐도 이제는 질 수가 없습니다. 멍에가 없는데 어떻게 짐을 집니까? 오직 예수님의 수레에 다 맡기고 우리는 활활 활개치고 주님 옆에 서서 따라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가지고 끝없는 평안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실제 생활은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피땀을 흘리며 발버둥을 치는 어리석은 인생이 없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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