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1장 18~25절
설교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성탄절]
설교자 : 김광선 목사님
지난 주 예배 후 점심식사 중에 한 집사님이 다짜고짜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카카오톡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일순간에 70-80명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글과 사진이 뜨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SMS 나 이 메일, 화상채팅, 전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집에 수십 명의 반가운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이 우리 집에 계속 머물고 있는 느낌이 들어 한 두 마디 대화를 카톡을 통해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수십 명의 성도들과 그리고 여기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많은 분들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 메일이나 전화를 하려면 용건이 있어야 하고, 시간과 자리를 따로 잡아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못하게 되지만 카카오톡은 같은 방에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비록 짤막한 대화지만 기도와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제게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카톡을 설치해 준 집사님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목사님, 이것이 요즘 말하는 소통입니다”라고 해서 서로 한 바탕 웃었습니다.
오늘 주보에 나와 있는 ‘담임목사 칼럼’을 읽으시고 소통에 관해 생각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셨고, 어떤 방식으로 시도하셨는가를 잘 보여 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I.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
본문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이라는 성탄절의 기원을 말하면서 마태는 1장 1절부터 17절까지 수십 명의 이름을 먼저 열거 합니다.
마치 나의 카톡을 열면 나와 연관된 수십 명의 이름이 한꺼번에 몰려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관계된 42 명의 이름들은 예수님의 족보에 뜨고 있습니다.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빠진다면 그리스도 예수는 이 땅에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는 어느 날 우연히 탄생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시고 언약하신대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하심으로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다윗에게도 메시아 탄생의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16절에,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1장 1절에는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서는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렘23:5)고 하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는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왜 우리는 우리와 전혀 상관도 없는 남의 나라 족보와 역사를 유심히 살펴야 하는가?
어제 뉴스에 1995년 3월20일 아침 도쿄의 5개 지하철 차량에 사린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이 죽고 55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게 한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와 핵심 간부 13명에 대한 사형판결이 보도 되었습니다.
아사하라는 인도와 티베트 등지에서 도를 닦은 뒤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도장에서 공중 부양 등을 선보이자 신비적인 체험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아사하라 주변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더구나 아사하라가 옴진리교 발족 당시 달라이라마를 두 번이나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이 대대적으로 광고가 되어 불교 계통 종교단체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와세다 대학, 교토 대학 등 일류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변호사·의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 지식인이 대거 옴진리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사하라는 옴진리교의 교세를 더 확장할 목적으로 1990년 열린 중의원 총선거에 자신은 물론 신자들을 대거 공천해 선거전에 임했으나 당선자를 단 한 명도 내지 못하자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집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단에서 이탈한 가족을 보호해 준 변호사 가족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아사하라는 또 일본 열도를 지배하는 왕이 되겠다는 망상을 품기 시작하면서 신도들에게 자동소총과 화학무기 등을 생산하는 시설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간부들을 러시아에 파견해 사격 훈련도 시켰습니다.
교단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들자 아사하라는 1995년 3월20일 아침 도쿄의 5개 지하철 차량에 사린가스를 살포하는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아사하라는 갑자기 혼잣말로 떠들거나 외치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며, 가족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해 부인과 딸도 3년 전부터 면회를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1,5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옴진리교 아사하라는 출생과 역사는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의 수도의 행적은 십여 년 인도와 티벳이 전부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그렇듯이 그들에게는 검증된 역사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나심은 구약 이천년 신약 이천년의 역사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스라엘의 역사를 모든 이가 알아야 하느냐는 것을 고린도전서 10장 6절과 11절에, “저희가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알리심으로 모든 열방과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고 경외케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6절까지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의 등장 배경을 기록한 창세기부터 룻기까지 역사 요약입니다.
7절부터 11절까지의 족보는 사무엘상부터 역대하까지 다윗왕가의 흥망과 성쇠를 기록한 역사 요약입니다.
12절부터 16절까지의 족보는 에스라부터 말라기까지 바벨론 포로생활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록한 역사 요약입니다.
이 전체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기 위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살아 계심과 성품과 능력을 보여 주심으로 그것을 보고 깨닫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는 언약대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II.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 장에 나오는 42명의 족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죄로 얼룩진 족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속아서 결혼하여 네 명의 부인을 두는 복잡한 가정을 이루었고, 아들 요셉에 대한 편애 때문에 형제들끼리 살벌한 다툼을 만들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해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민족의 대적이었던 가나안 여인이며 더구나 창녀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총회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불결하게 여기는 이방 여인에다가 과부에다가 끼니를 때우기 힘든 가난한 여자였지만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의 위를 이어 왕이 된 아들은 본처 장자가 아니라 함께 죄를 범한 여인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족보에 낄 만한 인물들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바로 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다 다 담당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이라도 넉넉하게 구원 얻을 하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제물이 되어 주시고, 친히 성막이 되어 주심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속죄를 위해 더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가 매주 강해를 듣고 있는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이미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 이상 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공로만을 의지해서 살기 때문에 그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감사와 감격으로 인해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 먼저 깨닫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행동은 저절로 따라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III.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예수
본문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는 처녀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인 증거라고 선지자들이 예언했습니다.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사실 예수님의 탄생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도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16절에는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필요한 것은 그가 마리아의 법적인 남편이었고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려면 죄 된 육신의 부모의 혈통을 따라 올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야만 성결의 영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신 것입니다.
처녀는 혼자서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창조와 생명의 신이시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 덧 입혀 질 때 창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 라고 했습니다.
여기 ‘운행’이란 말이 곧 ‘덮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공허를 덮으시자 그 결과 우주가 태어났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왔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덮이자 무덤에 장사되었던 예수님의 몸이 부활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덮이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가던 바울이 변하여 전도자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덮이자 바울의 설교를 듣던 루디아의 마음이 열려 바울의 설교를 알아듣고 세례 받고 온 식구들을 전도하고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서양세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 받은 성도들에게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믿어집니다.
가이시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똑똑해서, 네가 머리가 좋아서 깨달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를 깨닫게 해서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믿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 8절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것이니다.
처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아기를 낳았다는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더욱 확증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IV.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지키시는 예수
22~23절에,“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주전 700년경에 선지자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하는 대답 중에 한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700년 전에 당시 이스라엘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같은 민족이면서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듯이요.
북은 이스라엘이라 불렀고, 남은 유다라 이름했습니다.
북한이 자주 남한을 침략하듯이 북이스라엘은 아람이나 모압이나 암몬, 에돔등 주변 강대국을 등에 업고 남쪽을 침략해 왔습니다.
마치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남한을 쳐들어 온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더구나 북이스라엘은 10지파가 뭉쳐 한 나라를 이루었고, 남쪽 유다는 겨우 2지파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침공 소식을 들은 유대왕 아하스의 심정을 이사야 7장 2절에 보면, “아하스왕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고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아하스왕과 유대 백성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나라가 망할 판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로 나아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도 아하스 왕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막강한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입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다시 묻습니다.
"너는 안심하라는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냐.
그렇다면 너와 네 백성을 구원해 주겠다는 내 말이 사실인 것을 보여 줄 테니 너는 내게 징조를 구하라"
이사야 7장 12절에 보면 아하스 왕은 대답하기를,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아하스 왕의 대답 속에는 "하나님, 징조를 구해서 뭐합니까?
구해보나 마나 지금 다 끝난 일인데요"라는 불신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신앙적인 아하스를 책하지 아니하시고 다시 약속을 하십니다.
“그럼 내가 친히 징조를 주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700년 후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의 사건을 아하스에게 미리 말씀하십니다.
지금 쳐들어 내려오고 있는 강력한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은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시대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려면 아하스가 반드시 살아남게 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면 아하 스는 히스기야를 낳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아야 합니다.
므낫세는 아몬을 낳아야 합니다.
아몬은 요시야를 낳아야 합니다.
낳고, 낳고 계속 낳아야 그리스도 예수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살아남게 되어 있고, 반드시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언약 자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전능하심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것이 성도들의 소망이며 능력입니다.
북 이스라엘 연합군과 같은 거대한 세속의 위력, 역사가 전혀 없는 이단들의 소용돌이, 그리고 비진리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은 결코 믿음을 잃거나 구원을 잃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과 같은 숱한 인생의 시련을 겪어 왔을 것입니다.
직장과 사업, 가정, 자녀 문제, 영적 도덕적 불순종과 타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여기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언약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이를 때까지 우리들의 믿음을 보호해 주실 것을 굳게 믿으시기 축원합니다.
V. 순종케 하시는 예수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 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알려 줍니다.
“ 마리아 데려 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그 아기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구원자 메시야이시다. 그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요셉은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래전부터 언약된 일임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도 주의 사자가 찾아와 “성령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며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웠지만 이미 선자자들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며 순종했습니다.
요셉이나 마리아나 순종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결혼 전에 약혼녀를 임신시킨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당시 사회로서는 치명적인 수치이며 그런 사람은 그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은 만일 요셉이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이 둘은 이런 위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누가 이들을 순종하게 했습니까?
요셉이나 마리아 스스로가 깨달아서 순종한 것입니까?
주의 사자가 찾아와 깨닫게 했습니다.
깨닫게 되니 믿게 되었습니다.
믿게 되니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믿음의 행동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의 작정과 우리를 통치하심을 믿기 때문에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기는 하는데 믿음의 행동이 없다는 것은 안 믿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그 계획을 택한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심으로 그 믿음으로 행하게 하셔서 당신의 영원하신 작정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임마누엘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1) 언약대로 오신 예수십니다.
2)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십니다.
3)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예수입니다.
4) 무한한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예수십니다.
5) 깨닫고, 믿고, 순종하게 하시는 예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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