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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장 18-25절 마리아와 요셉 - 기동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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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1장 18-25절
설교제목 : 마리아와 요셉
설교자 : 기동연 목사님

  성도여러분, 이제 10일 정도만 더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누구나 즐겁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기뻐고 즐겁고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즐거워합니다.  

성탄절 날에 눈이 오면 우리의 마음이 기뻐지고 편해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성경을 읽을때마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이나, 귀족, 레위, 제사장들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권세를 잡은 사람들의 집안에 태어나게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지극히 작은 동네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수도 아주 능력이 뛰어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였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가정도 생각해보면 입장이 동일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에게 기쁨이었겠습니까? 충격과 공포였겠습니까? 아마도 후자이었을 것입니다. 이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굉장히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 없는 소식이었고, 누구에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소식이었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나실 그때에 요셉에게 이사야7장을 인용해서 마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립니까? 기쁨의 소리로 들리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처음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이사야 6장에 서 그는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름심을 받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내용이 이사야 7장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유다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 배경은 강대국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유다의 예루살렘을 쳤는데 함락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다시 아람이 에부라임과 동맹하여 다시 유다를 치려고 하였고 이때 아하스와 유다는 무섭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굉장한 절망과 공포에 빠졌을때 였습니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무릅을 꿇고 도움을 청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은것이 아니라 아람보다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북쪽 아람을 칠 것을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에게 말했으나 그는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믿지 못하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징조를 구해 볼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게 신앙의 모습일까요? 불신앙의 모습입니까? 아하스의 신앙이 아주 깊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판단해 보십시오. 요즘 청년들은 스마트 폰에 푹빠져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프로그램 중에 상대방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여자 친구가 남자친구의 핸드폰에 깔아놓습니다. 그러면 그 남자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도서관에 있는지, 놀고 있는지, 술을 마시고 있는지 그런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다른 어플리케이션이 있다고합니다. “오빠믿지”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이것은 자신의 위치를 조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신의 실제 위치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 믿고 있는 것일까요? 이 커플은 서로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분이 작은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다가 중대형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들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얼마있지 않다가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교회는 망해야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바른 신학을 갖고 있는 분일까요? 저는 생각하기에 그 분은 신학도 신앙도 잘못되었고 불순한 생각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큰 교회의 문제점을 바르게 지적하면 되는데 큰 교회를 두고 망해야 된다고 한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과 불신앙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아하스가 한 말은 굉장히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해 봤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심각한 말씀을 합니다. 아하스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하면 자기 자식을 몰렉이라는 우상에게  불로 태워 바치는 짓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아하스에게 이사야가 한 말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아하스는 그래도 불신앙하고 더 큰 나라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하였을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청난 대홍수가 일어나 산까지 도망한 유대인의 목에 물이 차듯이 앗수르가 오히려 유대를 공격하여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게 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이라는 노래를 합니다. 이렇듯이 처음 임마누엘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과 징벌의 소식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저주이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신앙하고 고백한다고 말하지만 진실 되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설사 자신의 자식을 불태워 신에게 바친다하더라도 임마누엘은 심판의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마누엘은 참된 신앙의 소지자에게만 기쁜 소식이 됩니다. 그 참된 신앙의 모습을 요셉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약혼하고 곧 마리아와 결혼을 하게 될 요셉은 행복하였을 것 입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 입장을 할때 구름을 밟고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설레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요셉에게 마리아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아마,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것 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자신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요셉에게 알려 주었던 소식은 성령으로 자신이 잉태된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성령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반응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고대에는 약혼한 여자가 임신하면 여자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요셉은 당장 마리아를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신성모독죄에 걸려서 처참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소년들을 위해서 예화를 하나들어 보겠습니다. GOD의 손호영씨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고백을 했는데요. 자기의 여자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바람둥이였다고 합니다. 오전에는 다른 남자와 사귀고 오후에는 자기와 사귀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GOD의 4집에 그 노래가 들어가 있습니다. 노래 제목이 ‘바보’입니다. 바람둥이 여자 친구를 감싸주는 내용인데요.

  요셉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가만히 끊고자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내용을 두고 요셉이 파혼을 결심하였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살던 그 동네는 매우 작은 동네입니다. 다른 집의 얘기가 쉽게 파악 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곳에서 만약 요셉이 약혼녀와 파혼하였다면 마리아의 얘기는 당장에 소문이 나고 결국은 마리아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잘 알 수 있는 요셉이 파혼하겠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습니다. 파혼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라는 것과 모순이 됩니다. 이 가만히 끊고자하는 말은 헬라어로 ‘내어 보낸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장39절을 보면 마리아가 요셉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보낸다는 의미가 이것이라고 받아 들여 집니다. 가만히 끊고자 하는 것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어머니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고민했습니다. 마리아를 데려 왔을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민하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요셉에게 보냈습니다. 요셉의 선조였던 아하스는 이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자기 아내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이것은 천사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마리아를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요셉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게도 기쁨의 소식이 되려면 참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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