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딤후2장 1-26절
설교제목 : 신앙의 증인이 되라[부활절]
설교자 : 황권철 목사님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날은 기독교의 최고의 날일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소망을 주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은 기념하여 매주 모여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 “패션 오버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주님의 수난)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님이 고난 받으신 가혹한 장면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신앙이 없는 자들이나 미성연자들에게는 잔인한 폭력처럼 지쳐질까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구속사적인 의미로 볼 때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대신한 속죄의 죽음임을 기억할 때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빌리그래이엄 목사는 이 영화를 보고 “주님이 흘린 피는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속죄의 피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친 유대주의라던가 아니면 반 천주교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보면 안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판단할 때 편견 된 생각과 좋지 못한 선입관념을 가지고 보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를 못합니다. 성경의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수난은 잘 묘사 해 주었으나 십자가 이후에 장엄한 부활의 아침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 없는 수난만 강조하다보면 기독교는 하나의 고행주의로 절락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의 속죄는 부활을 위한 속죄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패션 오버 크라이스트는 기독교의 절반 밖에 소개하지 못한 애석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충성된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충성된 복음의 사명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 아들아
먼저 은혜의 사람이 될 것을 말합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1) 성도는 은혜의 이슬을 먹어야 믿음이 자랍니다. 성도는 은혜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야 세상과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할 마음이 생깁니다. 은혜를 받으면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스데반이 은혜를 받으니 돌 세례를 받으며 순교하면서도 천사의 얼굴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4대를 보았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2) 이 말씀은 제자훈련 사역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1세대입니다. 그를 통해 복음을 받고 사역자가 된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의 2세대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 디모데에게 세움을 받은 충성된 일군은 복음의 3세대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또 다른 사람들은 복음의 4세대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주님 앞에 부름 받기 전에 복음의 4세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제자상을 다음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좋은 군인의 상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3-4) 군인은 훈련을 통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기드온이 전투에 나가서 승리한 것은 고난을 통해 훈련된 300용사를 이끌고 나갔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전투에 나간 사울의 군대가 두려워서 벌벌 떤 군인들 중에는 다윗의 장형 엘리압도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보는 순간 “들에 있는 몇 양 뉘게 맡겼느냐”(삼상17:28)고 물었습니다. 전투에 부름을 받아 간 병사가 집 안의 양 무리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적군과 싸울 용기가 있었겠는가? 이런 군대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명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을 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부름 받은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으면 맡겨진 사명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좋은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민14:8) 둘째, 좋은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경기는 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5) 좋은 선수가 되려면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승패 이전에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싸우어야 합니다. 그때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셋째,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6) 농부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밭을 보면 그 농부의 근면성을 알 수 있습니다. 밭에 식물은 농부의 부지런함으로 자라갑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떠한 고난도 잘 참고 견딥니다. 결실기에 수확하는 열매는 고난을 통과한 후에 맺어집니다. 한 영혼을 세우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 말을 기억하라
바울은 목회자로서 금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위 해야 할 것이 말다툼입니다.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14) 지도자가 말다툼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권위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양무리는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자와도 말다툼을 해서는 안됩니다. 지던지 이기던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말에 ‘입술의 30초가 30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안고 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보고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16) 우리말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외형적 육체입니다. 다음에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말속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쓴 글을 통해서 지적인 수준을 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어떤 문제를 풀어 가는 안목을 통해서 그의 판단력을 시험해 볼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 먼저 진리 위에 나 자신을 세우는 일입니다. 진리의 말을 바르게 분별합시다. 존 웨슬레는 “주여 나로 한 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나 자신을 세우는 것은 가장 안전한 삶입니다. 다음은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삶입니다. 마음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삶은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삶 그 자체입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두 부부의 사랑스러움과 저녁놀이 지기까지 성실하게 씨뿌리는 삶과 아울러 저 멀리 울리는 종소리를 향하여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장면은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만약 100점 때려야 인생이 30점을 떼리는 인생을 보고 계속 50점만 때리고 있다면 그는 최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경군도 방관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일군이요 사명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 부귀와 명성도 귀하지만 최후에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는 자라면 가장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를 힘쓰야 합니다.
큰 집에는
본문 20절의 “큰 집에는” 라고 했는데 이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의 교회를 큰집이라고 했는가? 사실은 세상에 교회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공동체가 많습니다. 그러나 큰집이라고 할 때 물량적인 가치나 크기의 기준을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게 교회를 큰집이라고 했는가?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을 두고 하신 말입니다. 세상에도 주인의 인품에 따라 집에 가치와 규모가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작은 아들이 대궐 같은 집에 살고, 큰아들은 키가 작고 작은 사글세방에 살아도, 큰집에 사는 작은 아들 집은 작은집이고, 비록 큰아들이 작은 집에 살지라도 큰집입니다. 나라에 주권자가 키가 작고 비록 학력이 높지 않아도 주권자의 통치권을 가졌을 때 우리를 그를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거하는 집을 권위의 상징으로 청화대라고 부릅니다. 그처럼 이 세상의 최고의 주권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주님의 사랑 받는 자들의 모인 공동체이므로 큰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큰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광물성으로된 금과 은의 그릇도 있고, 썩고 잘 깨어지는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습니다. 물론 그릇의 본래의 자질도 귀하지만 그릇의 주목적은 무엇을 담기 위한 것이므로 그 속에 담겨지는 내용물이 더 중요합니다. 그릇은 내용물에 따라서 신분도 바뀌고, 가치도 바뀌고, 위치도 바뀝니다. 그러면 이러한 그릇을 사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그릇의 생명은 깨끗함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도 소재 되지 않은 그릇에 무엇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장중에서 존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다.
먼저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고 했습니다. 청년의 때 소명을 받은 디모데에게 바울은 특별히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정욕은 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범입니다. 다음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피해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23) 목회자는 어찌 보면 마치 변론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말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을 전하는 자와 같으니 마치 변론을 좋아하는 자들의 사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자들이 하는 변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절대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24) 어떠한 경우라도 성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참고 가르쳐야 합니다. 거역하는 자가 있어도 온유함으로 즉 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을 세우는데 목숨을 겁시다. 만약 당신이 1년에 한 명을 전도한다면 10년이면 312이 되고, 20년이면 319.448명이며, 30년 4억이 될 것이고, 35년이 못되어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충성된 사명자 한 사람이 이처럼 귀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19명의 형제 15번째로 태어나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두려워하고, 죄를 무서워하고, 십자가 알기만을 작정하는 자 300명만 주면 세계를 변화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모두 부활신앙 가진 충성된 사명자 됩시다.
사명자경건훈련(이름: )밀알논술학습지
(아래 문제를 풀어 헌금함에 넣어 주시면 연말에 책으로 편집해 드립니다)
Ⅰ. 성도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1절, 밀강 page.1)
Ⅱ. 바울의 복음의 4대를 쓰보라(2절, page.2)
Ⅲ. 좋은 제자상 3가지?(page. 2)
Ⅳ.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하고, 명심하게 한 것?
Ⅴ. 바울은 무엇을 큰집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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