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눅10장1-6,17-20
설교제목 :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단기 선교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오늘은 단기 선교 출정주일이면서 단기 선교 기금을 준비하기 위한 바자회 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셀 교회로 전환하고 여름철 단기 선교를 지구별, 목장 별로 준비하면서 해마다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 교우들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작년의 경우에도 여름 사회봉사까지 합해서 국내외 선교에 참여한 교우들이 3천명을 넘어선바 있습니다. 이제는 적지 않은 우리 지구촌 성도들이 여름휴가 기간을 단기 선교로 헌신하는 아름답고 고무적인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기선교는 본래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통해 보여 주신 모범적 습관이요 실천이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을 통해 장기 선교의 과제를 제자들에게 명하기에 앞서서 먼저 당신의 제자 12명을 단기적으로 보내시고(누가 9장) 이어서 다시 오늘 본문(10장)의 경우와 같이 이번에는 전보다 스케일이 커진 70명의 제자들을 단기 선교의 장에 파송하고 계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70명을 둘씩 팀을 나누어 보내셨으니까 적어도 이번에는 35개 단기 선교 팀이 출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한 선교 통계에 의하면 오늘 날 전 세계적으로 장기 선교의 장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들의 약 80%이상이 또한 단기 선교의 경험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장기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기 선교 갔다 온 사람 10명중 1명(십일 조)이 장기 선교사역에 헌신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선교 잡지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가 선교지에 가서 우리와 더불어 동역하는 선교사님들의 절반 이상이 비록 단기간의 선교 사역이지만 선교지에 오는 성도들이 좀 더 훈련된 모습으로 와서 사역을 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기 선교의 놀라운 공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따르는 만만치 않은 역기능적 부작용의 존재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단기 선교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선교의 거룩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1.지혜롭게 선교해야 합니다.선교의 장은 다른 어떤 인생의 상항보다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우리가 진지하게 선교에 임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사단의 시기와 방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정상적인 선교 상황에는 소위 적대적이고 위기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선교의 장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본문 3절에서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선교 출정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마태10:16의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여기 제자들을 단기 선교의 장으로 파송하시면서 제일차적으로 강조하신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오히려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선교지에서 선교사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이 문제에 대하여 일찍 야고보가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까? 약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렇습니다. 필요한 처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필요한 말을 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다시 마태10:19-20의 약속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를 넘겨 줄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말을 주시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기도하면 성령께서 지혜로운 처신도, 지혜로운 말도 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단기 선교에 장에 임하는 모든 지구촌 성도들이 무엇보다 기도로 지혜를 준비하시기를 기대합니다.
2.평안으로 선교해야 합니다.평안으로 선교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선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평안을 나누는 일임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은 평안을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주고자 합니다. 복음 성가에서도 우리가 노래하지 않습니까?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누가 이 평안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외에 누구도 인생이 필요로 하는 평안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홀로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간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로 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화목의 제물’(peace offering)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평안이시고 우리의 이웃들의 평안이십니다. 예수님은 선교의 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먼저 이 평안이 그에게 임하도록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본문 5절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이것은 결코 의례적인 인사치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다음 6절을 보십시오.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그런데 이 구절을 보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개역 개정판 관주참조) “평안의 아들(예수님)이 거기 있게 되면 그에게 참 평안이 머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고 참 평안이 거기에 머무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복음의 확신입니다. 이 복음만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 평안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안으로 선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단기 선교 떠나기 전에 새 생명 반에서 배운 복음을 숙지하십시오. 생명의 다리 전도 법을 다시 익히십시오. 복음의 확신으로 우리는 평안을 모르는 세상에 평안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기 선교의 사역입니다.
3.권능 있게 선교해야 합니다.주님은 우리가 단기 선교의 장에 나아갈 때 우리 앞에 기다리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담대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권능 있게 사역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본문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미 권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 할 수 있는 권세도 없이 제자들을 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권세를 주어 보내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고 나아가면 그 권세가 역사할 것입니다. 병 고침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가 워싱톤에서 사역할 때 단기 선교 팀이 멕시코로 갔습니다. 그때 그 팀에는 저희 둘째 아들 범 이를 포함한 여러 틴 에지저들이 함께 갔습니다. 저희 아들은 전갈에 물렸습니다. 그러나 살아났습니다. 여러 고난이 있었지만 그때 그해 그 여정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갔다 온 청년들이 변한 것은 물론이고 선교지에서 눈먼 자가 눈을 뜨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 팀의 리더들은 지금 대부분 그때의 영향으로 전임 장기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한 때문이었습니다.오늘의 본문 17-18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70명의 단기 선교 팀이 돌아왔습니다. 어떤 보고를 했습니까?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7절)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바로 이 승리를 지휘하시는 이시오, 승리의 목격자, 승리의 증인이셨습니다. 할렐루야! 나는 여러분이 금년 여름 이런 승리를 체험하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 무엇보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미 권능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미 승리를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으시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4.기쁨으로 선교해야 합니다.설교의 왕자로 일컬음을 받았던 스펄존 목사님은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강단에 오르기 전에 얼굴부터 잘 보라. 천국을 설교하는 자들에게 먼저 천국이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얼굴에 천국의 기쁨이 나타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혹시 우리의 얼굴이 천국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증거 하는 얼굴은 아닙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돌아왔다고 했습니까?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기뻐하게 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입니다. 저는 단기 선교의 최대의 유익이 있다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체험이라고 믿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선교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구원보다 더 위대하고 더 감격적이고 더 놀라운 사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치유보다도 귀신 추방보다도 더 위대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구원의 사건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 선교의 본질은 이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로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선교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 2004년 6월에 있었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본래 우리 교회와 협력하는 GMP개척 선교회 선교 정보 자료에 올려진 이야기였습니다. 제목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민재 이야기”입니다.‘이 민재’ 라는 청년이 2004년 5월 자신의 취업을 앞둔 채로 두 달 동안 캄보디아 MK선교일을 돕고자 단기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왔었다고 합니다. 형제는 선교사 자녀들과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고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던 중 6월 27일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놀다가 파도속에 떠밀려 익사하는 사고를 만났습니다. 함께 큰 튜브를 잡고 있던 두 아이들은 놀랍게도 파도를 타고 다시 해변으로 밀려와 구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고 당일 선교사님이 민재의 아버님께 전화를 해서 “민재 아버님, 민재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바다에서 실종이 되었습니다”고 하자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수화기를 놓았다고 합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한 민재 부모님에게 선교사님들이 죄인의 심정으로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 말 없이 민재의 아버님은 한숨만 쉬고 있으셨다고 합니다.영안실에 도착한 아버님은 아들의 시신 앞에 오열하며 “내가 그 동안 너에게 잘해 주지 못했다. 네가 돌아오면 잘 해 주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내게 기회를 주시지 않는구나”고 통곡하셨다고 합니다. 장례식이 계속되면서 말씀을 나누시던 한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평소에 이 선교지에 온 민재 형제가 기도시간이면 늘 두 가지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어머니의 건강을 위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버님께서 예수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님만 예수를 믿는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이 말씀 앞에 아버님은 무너졌고 전에 교회를 나가다 믿음의 삶을 중단하고 있었던 민재 아버님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시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을 하셨다고 합니다. 가족들과의 의논을 거쳐 민재라는 청년의 육신은 장례식후 화장의식을 거쳐 그가 잠시 동안이지만 사랑을 남겼던 캄보디아 푸른 하늘에 연기가 되어 떠나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쓴 것으로 보이는 선교사님은 이런 말로 그의 글을 맺고 있었습니다. “민재의 부모님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습니다. 한 명은 이미 순교자가 되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고 한 명은 이제 다시 영혼을 심는 선교사로 남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어서 그의 글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와 우리 가족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민재를 통해 큰일을 이루시고 아픔 속에서 귀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깊고 오묘하여 감히 측량할 수도 없고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아름답고 완전하시다는 것을 고백하며, 이제 6월에 있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는 물론 이런 일이 우리의 선교 여정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슬픔 속에서도 아픔을 당한 우리들 믿음의 가족들이 이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희생으로 우리의 헌신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보람이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여름철 기쁨으로 선교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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