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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히브리서

히브리서 12장 1-3절 예수의 인내를 배우자 - 옥한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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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히브리서 12: 1-3
설교제목 : 예수의 인내를 배우자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마귀가 와서 여러분 마음을 엉뚱한 데로 끌고 가지 않도록 단단히 자물통을 채우세요.

하나님을 향하는 문만 활짝 열어놓으시고요 다른 문은 다 닫으세요. 아마 걱정거리도 있을 거예요. 남이 모르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러나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두 손을 들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권능의 손을 들어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믿습니까? 이 하나님 바라보고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은혜를 달라고 사모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하나 님의 음성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사람은 삽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사람 앞에는 고난도 고난이 될 수가 없고 고통도 고통이 될 수 없습니다. 저 별관에서 예배드리시는 모든 분들, 조금 여러분 늦게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 시간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빅터 프랭클(Victor E.Frankl)이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쓴 '죽음의 수용소'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독일 나치에 그 무시무시한 감옥에 끌려가서 수년 동안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경험을 쓴 책 이 이 '죽음의 수용소'라 고 하는 책입니다.

그 내용 가운데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 소중한 진리를 담고 있는 간단한 이야기가 하나 들어있습니다.

1944년 성탄 전후, 그리고 1945년 신년 연휴 전후를 통해서, 그러니까 불과 한2주 사이 아닙니까? 1944년에서 1945년, 성탄절에서 신년 정초 한 2주 사이에 자기가 있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대요. 그 기간에 죽었대요. 무슨 질병이 만연해서 죽었느냐? 그것도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그 악명 높은 가스실에 끌려가서 집단 죽음을 당했느냐? 그것도 아니래요. 그러면 왜 죽었느냐? 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마음으로 어린애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쯤 되면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겠지. 이번 성 탄은 집으로 돌아가서 크리스마스 추리를 켜 놓고 그 아래서 옛날처럼 행복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겠지.' 이렇게 막연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성탄이 지나가는 대도 전혀 석방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너무 절망해 가지고 마음의 병이 들어버렸어요.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는 육신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결국 한 2주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버린 거예요. 그들이 조금 만 더 참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불과 한4개월만 지나면 히틀러가 손을 들게 되어 있었거든요. 한 4개 월 만 지나면 전쟁도 끝나고 그들은 수용소에서 고 향을 향해서 찬양을 하면 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날이 돌아왔을 텐데 그걸 못참아 가지고 절망을 하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인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하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또 사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 인내가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것은 상식으로도 알고 경험을 통해서 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압 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만 구원을 주는 믿음은 인내 없이는 살아 남지 못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깁니다마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도 인내 없이는 아무 효력을 발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초와 절망과 고통을 믿음으로 다 극복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마 는 그러나 이와 같은 고 난을 극복하는 믿음도 인내 없이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 만큼 인내는 중요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서 도 우리는 이 사실을 많이 봅니다. Calvin Coolidge라고 하는 분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마 는 이런 말을 했어요. ' 이세상에서 재능이 있으 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많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많다. 특별한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왜 그런가? 이유는 단 하나,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그 렇다.' 하고 말을 했습니다. 백번 들어도 옳은 말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 나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 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마 6-25사변의 총성 이 멈춘 이후에 이 나라가 이처럼 벼랑 끝까지 몰린 일이 또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영국의 경제 잡지인 이코노 미스트지에서 약간 비꼬 는 투로 이런 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처럼 빨리 부자가 된 나라도 드물고 그처럼 급작스럽게 모욕을 당한 나라도 없다.' 바로 우리나라를 두고 하 는 말이죠. 굶주리는 북한, 부도 위기에 몰린 남한, 이래저래 이 나라는 온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 모 두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인내입니다. 인내요. 한번 건강을 잃으면 누구든지 그 건강을 회복하기 까지는 무지무지한 인내를 해야 합니다. 성급하 게 건강을 회복시키려고 덤비다가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립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병이 들었다는 낌새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타나 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증세를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고 허풍만 떨었어요. 설마 하는 요행을 하나님처럼 믿고 정신 나간 짓들만 했어요.

백성들이 이와 같이 철 이 없어서 정신 나간 짓을 하면 지도자를 위시해서 그래도 이 땅의 요직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올바른 정신과 방향을 가지고 이 백성을 이끌어야 되는데 불행하게도 너무나 부끄럽게도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들 이 한수 더 뜨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분통 이 터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시 일어나야 되겠지요.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나 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고칠 것은 고치고 깨트릴 것은 깨트리고 버릴 것은 버리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의 과정을 우리가 걸어가려면 필요한 것 하나 있습니다. 인내입니다. 참 아야 돼요. 참아야 돼요.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히브리서 12장1절부 터 3절 까지는 인내를 가르치는 대표적인 본문 중 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본문을 잠깐 보시면 1절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 절 마지막 부분에 그렇게 나오지요. 인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내로서 우 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 주하라' 그 다음에 2절 중간에 가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시고'하고 참는다는 말씀이 나오지 요. 그리고 3절에 가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향해 공격하는 죄인들을 참으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인내, 참는다, 번역은 우리말로 각각 다르게 했습니다마는 원문은 똑같은 말이예요. 이 본 문은 11장의 소위 유명한 믿음의 장하고 연관이 되 어 있는 본문입니다. 11 장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구원 얻기 위하여 남다른 믿음을 가지 고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다가 승리한 위대한 선배들을 수십 명 나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들을 우리는 허다한 증인이라고 1절에 서 말하죠. 마치 운동을 하는 저 운동장 스탠드에 서 잔뜩 둘러싸고 앉아 있고 응원을 하는 군중처럼 구약에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우 리 주변에서 지금 응원을 하고 있는데 이 응원하는 사람이 누구냐? 믿음으로 승리한 선배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으로 승리한 선배들의 특징이 뭐냐?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에게 있어서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인내를 가르켰습니다. 인내는 믿음이고 믿음은 인내였습니다. 이 둘을 구별할 수 없을 만 큼 그들은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켰고 그 믿음 때문에 구원 얻었다는 것 입니다. 이 말을 지금 하 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혹독한 환란과 핍박을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기고 승리한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문제하고는 거리 가 멀지 않아요? 우리는 무슨 환란과 핍박을 당하 는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예수 잘 믿고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잘 순종하면서 신앙생활 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들어가게 되어 있어 요. 거기에 특별한 믿음 이 따로 필요하지 않는지 도 모르죠. 그러니까 오 늘 본문이 나하고 관계가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 경제가 불안해지고 우리 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 는 어떤 마음의 걱정거리를 안고 있지요. 이런 우리에게 이 말씀이 무엇을 주느냐? 무슨 메시지를 나에게 들려주느냐? 우리 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지킨 위대한 우리 선배들, 성 경에 기록된 수십 명의 선배들은 이 세상에서 너 무나 어려운 시대를 살았 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를 선택하고 세상에서 죽느냐, 아니면 예수를 버리고 세상에서 사느냐 이 양자를 택일해야 될 상황에 놓여 있었어요. 예수를 내가 믿으므로 세상에서 완전히 죽어버리느냐? 망하느냐? 아니면 예수를 믿지 않으므로 예수를 거부하므로 이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다가 가느냐? 이 둘 을 택해야 되는데 이럴 때 우리 선배들은 다 바보 같은 길을 택했어요. 바보 같은 길이 뭐냐? 예수 선택하고 세상에서는 죽는 거예요. 세상 사람 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신세로 다 전락을 해 버렸어요. 예수 믿는 그거 하나 때문에. 그래서 오만 가지 고통과 서러움과 핍박과 멸시를 당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어요. 그런 데 이들이요 예수 택하고 세상에서 죽기로 각오했 을 때 제일 먼저 그들이 겪어야 되는 어려움이 뭐 이었는지 압니까? 궁핍이었 어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어요. 한번 바로 앞에 있는 11장37절 한번 보세 요. 바로 앞에 있는 37절. 거기 보면 '그들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말만 들어도 소름 이 끼치는 이야기지요? 그 다음에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했습니다. 다. 이렇게 예수 믿는다. 는 이유 때문에 죽으면 그것은 간단하지요. 그러 나 또 죽지 않고 쫓겨 다니면서 고생한 사람 있지 요. 그 밑에 보세요.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요사이처럼 양과 염소의 가죽이 밍크 오버같이 생각하시면 안돼요. 정말 이거는 할 수 없이 걸치고 다니는 무서운 옷이지요. 그 뻣뻣한 가죽이 살 을 비비고 하면 얼마나 그게 고통스러운지 여러분 상상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런 염소 가죽을 몸에 걸치고 유리 하면서 다녔는데 그들이 당한 고 통 중에 첫째가 뭡니까? 궁핍이요. 궁핍. 배고프다고 애들이 울지마는 줄 것이 없어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 야 되는 경제적인 궁핍, 이것이 그들이 겪은 고통 이었어요. 이런 고통의 와중에서 그들은 인내하면서 승리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인내하면서 승리 했다. 바로 이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비해서 우리가 지금 마음에 은근히 갖고 있는 불안, 이거는 어떤 면에서는 잠꼬대와 같은 것일지 도 모르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말씀 이 해당되고 적용된다는 것을 일단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본문 에서 이렇게 많은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고 인내하는 선배들이 있지마는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 야 될 분은 예수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내의 모범이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이렇게 나오지요? 그리고 또 3절 끝에는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에게 위대한 선배도다 중요하지만 우리가 인내하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 주목해야 될 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의 짧은 생은 인내로서 점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고 그 구원자로서의 자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마구간에 서부터 출발해서 골고다의 십자가에 이르는 그 험난한 길을 인내하면서 그는 달려갔고 그리고 승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내는 완전한 인내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내를 배우게 될 때 우리는 특별히 그에게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인내는 달리면서 참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면서 참는 것. 1절 끝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 한 경주를 경주하며'하는 말이 나오지요. 표를 잘 해놓으세요. 지나가는 말이 아녜요. 얼마나 대단한 말씀인지 몰라요. '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이 말을 쉽게 바꾸면요 달리면서 인내하라, 인내하면서 달려라 하는 말입니다. 달리면서 인내하라, 인내 하면서 달려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주요 또 우리의 믿음을 온 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그분이야말로 달리면서 인내하신 분이요, 인내하면서 달린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본받으라. 그분을 따르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내하면은 약간 뭐라 할까요, 정적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수동적인 의미로 뉘앙스를 가지고 생각을 합니다. 참는다 하는 것은 꼼짝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는 그런 스타일로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몸에 병이 나서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면 병상에서 이 고통 지나가기까지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을 인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 이 실패했습니까? 그러면 문 딱 닫아걸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고통을 혼자서 삼키면서 참는 것, 이것이 인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마는 오늘 여기에서 인내라고 하는 '휘포모네' 이 헬라어 말은 그런 정적이고 수동적 인 인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내를 가르칩니다. 어쩔 수 없어서 참는 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실비실 하고 피하면서 할 수 없어서 참는 것, 그것 아닙니다. 그게 아녜요. 예수님을 보면요 우리는 알 수가 있어요. 2절을 주목합니다. 예수님은요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무엇을 참으셨습니까? 십자가를 참으셨어요. 그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부끄러운 죽음인가를 주님은 잘 알고 계셨지만 그것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바로 이것 이 인내입니다. '휘포모네' 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예수님은 죄인들로 부터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많은 악한 사람들 때문에 밤낮없이 시달리면서 고통당했지 만 주님은 그 모든 사람 을 참으셨어요. 참으시고 는 계속 그는 복음을 전 했습니다. 그랬지요. 이게 바로 달리면서 인내하는 휘포모네요. 배가 고파도 배가 고프다고 방에 누워 있지를 않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게 바로 달리면서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반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그 사람들을 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찾아가시어서 병자를 고쳐 주시며 그들에게 하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휘포모네요.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자기 몸을 숨기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내가 여기 있노라' 하면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휘포모네요. 달리면서 참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자기는 지금 하나님 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 입니다. 왜 십자가를 지느냐?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진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달리면 서도 참을 수 있었고 참으면서도 달릴 수 있었습 니다. 그는 주저앉을 필요가 없었고 도망갈 필요 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그는 요지부동으로 달릴 수 있었고 인내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여기서 말하는 인내, 휘포모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휘포모네는 불운을 맞을 때 가만히 있는 인내 가 아니라 타격을 받으면서 일하는 인내를 말합이다. 슬픔이 몰려올 때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인내가 아니라 눈물을 훔치면서 일터로 달려가는 인내입니다. 장애물이 가 로 막아도 물러서지 않고 시장으로 갑니다. 직장으로 갑니다. 남을 섬기는 봉사의 장으로 갑니다. 갈 곳이 없으면 어딘가 가서 자기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힘차게 일을 하는 자세, 이것이 바로 달리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누워있기를 거부 하는 인내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의 참된 비결은 참는 동안 다른 할 일을 찾는데 있습니다. 이 문 이 막혔으면 다른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그 문 도 막혔으면 뒷문을 두드리는 거요. 문이 열릴 때 까지 두드리면서 달려가 는 자세, 이것이 바로 휘포모네입니다. 이것을 놓고 참는다고 하는 거예요. 찬바람을 견딘 사람 이 봄바람을 맞을 수 있고 먹구름을 물리친 사람만이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오랫동안 귀가 좋지 않아 가지고 고생을 많이 했지요. 음 악가로서 귀가 나쁘다 하 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나중에 가 버렸어요. 청각이 가버렸어요. 청각이 가자마자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음악 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눌러 앉아버릴거 아니예요? 어쩔 수 없어서 그 모든 고통을 참느라고 애를 쓰고 앉아있을 거 아녜요?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귀가 먹어 버리자 '나는 생을 목구멍으로 살겠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생을 목구멍으로 살겠다' 그러나 그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는 말이예요. 귀가 먹었으니까 이젠 목구멍으로 생을 살겠다. 아마 그래서 유명한 '심포니9'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휘포모네 요. 예수님이 바로 이와 같은 인내를 우리에게 보 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이런 인내의 도사들이 다 되었어요. 바울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고 요한이 그랬고 그리고 바울은 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누구든지 예수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자는 다 이와 같이 휘포모네의 인내의 도사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고린도후서4장 8절 이예요. '우리가' '내가' 하지 않고 '우리가 ' 하잖아요.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게 바로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며 하는 이 자세가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다시 한 번 해볼까 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 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사실은 사방으로 지금 둘러싸이다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마는 그런 자세는 거기에 꿀리지 않는 거예요. 이 게 바로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또 6장10절에는 더 놀라운 말씀 있죠. 고린도후서6장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 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로다"

여러분 이런 말씀 외우지 못하면 손해 많이 봐요. 보세요. 다시 한 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실제로는 근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요. 실제로는 가난합니다. 실제로는 가진 게 별 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뭐라고 소리칩니다. '기뻐한다. 나는 오히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지 고 있다.' 이러면서 꺾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굴 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생을 사는 사람을 일컬어서 인내한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 분에게 이와 같은 인내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 번 자신을 물으세요.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인내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보여 주신 뛰면서 인내하는 인내가 있느냐 그 말이요. 날마다 주저앉아 가지고 인내할지는 모르지만 뛰 면서 달리면서 인내합니까,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려움을 당한 분들 여러분 계실 거예요. 아마 처음에는 충격이 너무 커 가지고 달리고 싶어도 발이 잘 떨어지지 아니할 거예요. 그러나 그런 충격적인 순간을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일어나 달려야 돼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돼요. 달리 면서 참아야지 앉아 가지고 참으면 안돼요.

최근에 저는 어떤 글 을 보면서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많은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많은 목회자들에게 주목의 관심이 되고 있는 목사님이 두 분 계시는데 한분은 빌 하이벨이고 한 분은 릭 워렌이라고 하는 목사입니다.

두 분 다 40대 중반, 아 직도 젊은 사람들인데 아무 것도 없는 완전히 한 사람도 없는 자리에서 교회를 시작해 가지고 18년 만에 20년 만에 지금 우리 교회와 거의 비슷하고, 한 교회는 우리 보다 좀 큽니다. 아, 그렇게 큰 교회를 만들고 엄청난 영향력을 지금 미국 교회에 던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릭 워렌이라고 하는 목사님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새들백교회를 개척해서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금년도 가을 호 어느 기독교 잡지에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 인 터뷰를 한 내용을 제가 읽으면서 참 감동을 받았어요. 같은 목사로서.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상 한 병이 있었습니다. 뇌 기능부전이라고 하는 병 이예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날마다 병원에 다니다 시피 하고 어떤 때는 학교도 못가고 쉬고 그래서 계속 그런 어려움을 가지고 자랐는데 이 뇌기능부전이라는게 뭐냐 하면은 이우리. 뇌에 아드레날린 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가 됩니다.

이 아드레날린이라고 하는 호르몬은 우리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조심성을 갖고 하고 또 필요 할 때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호르몬입니다. 더욱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거요.

그런데 이 호르몬이 뇌에 분비가 되면 이 사람은 자기 뇌가 호르몬에 이상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반응을 하는 거요. 그래 가지고 요, 자기 몸에 호르몬이 분비가 되면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시력이 갑자기 떨어져 가지고 앞의 것이 잘 안 보입니 다. 그리고 머리가 쑤시면서 아픕니다. 그리고 막 무서운 공포증이 몰려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쓰러져 가지고 가버려요. 그러니까 우리말로 말하면 좀 뭐라고 할까 요? 간질병 비슷한 증세 가 일어나는 거요.

여러분 이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런데 이와 같은 무서운 병 을 안고도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가 그런 고통의 순간이 다가오면, 공포의 순간이 다가오면 얼마나 무서운지요. 자기가 이런 말로 표현했어요. 마치 그 때는 손가락 하나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에서 손가락 하나로 딱 걸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고 그랬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설교를 하다가도 가끔 그런 증세가 일 어나면은 교인들이 그만 안보리는 거예요. 그리고 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무서운 공포가 와요. 그러면 설교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운 육체적인 질병 을 짊어지고 그 사람이 지 난 18년 동안 저렇게 놀라운 교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기적 이예요. 요즘도 주일날 4 번 설교하는데, 저와 같이 4번 설교하는데 설교 할 때 설교하러 들어올 때마다 중보기도 팀에 찾아가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답니다.

그리고는 강단에 올라 와 설교할 때 그는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한대요. '하나님 나에게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 약 한 그릇을 사용해 주옵소서. 나의 약함 속에서 당신만이 능력이 되게 하옵 소서. 내가 이 자리에 쓰러지면 안 됩니다. 주님!'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야 이거야 말로 진짜 휘포모네다. 달리면서 인내 하는 것이다. 인내하면서 달리는 자세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목사가 될 수 있습니까? 그저 자기 병만 가지고 날마다 씨름 하다가 끝나지 누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처한 지금 어려 운 상황을 놓고 여러분 인내하는 자세입니까? 여러분의 육신의 약함을 놓고 인내하는 자세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남이 잘 모르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통하면서 여러분 진짜 인내하는 자세입니까? 휘포모네는 뒤로 물러서는 자세가 아녜요. 주저앉는 자세가 아녜요. 앉아서 울고만 있는 자세가 아니예요. 자기를 비관하는 자세가 아니예요. 걱정만 하는 자세가 아니예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 바라보고 뛰는 거예요. 장벽이 있으면 뛰어 넘어요. 가로 막으면 손으로 밀어 부쳐요. 그래도 안 되면 방망이를 가지고 와서 두들겨 부시듯 라도 그 벽을 헐고 뛰어 가는 자세입니다. 이게 인내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인내가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는 인내는 어 떤 인내냐? 기뻐하면서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기뻐하면서 참으셨어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이상한 말 있지요? 2절 중간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어 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뭡니까?

예수님은 아셨어요.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키실 것을 아셨어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그가 정복하실 것을 아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승리 하고 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위임해 주실 것 알았어요. 그리고 자기를 통하여 전 인류가 하나님 앞에 구원 받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을 알았어요.

그러므로 비록 십자가가 부끄러운 것이요 잔인한 죽음이지만 그 뒤에 따라 올 영광을 바라보고 그는 기쁨으로 그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기뻐하면서 참으신 것이지요.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요한복음15장11절의 말씀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몇 시간 후면은 예수님은 져야 합니다. 제자들과 이제 헤어지는 순간이예요. 이런 헤어지는 순 간에 예수님이 많은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셨어.  하고 나서 '내가 왜 너희에게 이와 같은 말을 많이 하는지 아느냐?'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기쁨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쁨이 너희 안 에 있어서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랬습니다. 십자가를 불과 몇 시간 앞에 두 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에 기쁨이 있대요. 그 기쁨 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신대요.

그리고 그 기쁨을 제자 들이 받아서 제자들도 가슴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이거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이해될 수 없지요. 그러나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참으시되 기쁨으로 참으셨어요. 왜 기뻐하면서 참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잘해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고단하고 지금은 무섭고 지금은 끔찍끔찍한 고난 의 길이지만 결과적으론 하나님이 잘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광을 안겨주실 것이다 하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주님은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인내하는가 하는 거보다도 어떻게 인내하는가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인내해도 자세가 중요해요. 기뻐하면서 인내할 수 있습니까? 그는 승리자입니다. 여러분 2 장만 넘어가 보세요. 2장 만 넘어가면 야고보1장이 나옵니다. 야고보1장2절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 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

시험이 뭡니까? 시험은 참아야 되는 어려운 과정 이예요.

여러 가지 시험이 닥쳐올 때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에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기쁘게 여기 라. 왜 기쁘게 여겨야 되느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 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러므로 인내가 얼마나 중요하냐?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끝까지 잘 인내해라. 그 말 입니 다. 인내하기만 하면 다 같이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잘 들으세요. 여러분 우 리에게 어려운 고난이 욥 니까? 상황이 상당히 불 안해 집니까? 내가 계획 했던 대로 무엇이 잘 안 됩니까? 좋아요.

다 이것이 우리에게 오는 시험일 수 있습니다. 연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기 가 막힌 축복 하나를 얻습니다. 인내하는 훈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 고 이 인내를 바로만 배우면요 그 다음에는 부족 한 것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인내만 바로 할 줄 알면 그 사람에게는 부족 한 것이 없어요. 인내하는 사람을 못 당합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못 당합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에요. 어떤 형편에서든지 인내하기를 배운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요. 그 사람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런 귀중한 인내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 는 것이 여러 가지 어려 운 시험과 또 내 앞에 오는 여러 가지 역경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역경을 당해서 가기가 어렵지만 기뻐하면서 인내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인내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역경을 만나면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어요. 힘들지만 좋은 점이 있어요. 기막힌 기도 응답을 언제 받습니다. 역경을 거치면서 받는 것입니다. 만사가 다 잘될 때는 응답이 뭔지 잘 몰라요.

하나님께서 광활한 곳에 나를 세우시겠다고 약속 했는데 그 광활한 곳이 어떤 곳인지 언제 우리가 경험을 합니까? 고난의 터널을 통과할 때 경험을 합니다. 인내할 때 경험 을 하게 돼요. 하나님께 서는 우리를 때를 따라 은밀한 장막에 숨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가 우리를 숨기는 은밀한 장막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까? 잘 모르지요. 누가 이 은밀한 장막을 아느냐? 고난의 여정을 걸으면서 인내를 배운 사람 이 이 은밀한 장막에 들어가서 그 장막 속에 평안히 쉬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침에 찾아오는 기쁨을 약속 하셨어요. 사망의 골짜기에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는 축복 주신다고 약속하셨어요. 이와 같은 은혜를 언제 우리가 체험합니까? 사망의 골짜기를 한번 통과해 봐야지 그때 아는 것이지, 사망의 골짜기에 발을 들여 놓지도 아니한 사람이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압 니까? 그러니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다 나쁜 것 아녜요.

고난을 당할 때 인내만 하면요 오히려 엄청난 보화들을 우리가 거두어 들 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 분 믿습니까? 여러분은 굉장히 약자들이예요. 현 대인이 그래요. 너무 그 동안 잘살다가 보니까 너무 약해졌어요. 어린애 들 같애요. 몸에 병이 조 금만 나도 호들갑을 떨고 못 견뎌요. 좀 강하면 좋겠는데…….

우리 교회 어느 형제 분이 계세요. 그 형제는 가정에 아들이 다 큰 아들 이 오랫동안 고약한 병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 형제 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러니 제가 만 날 때 늘 묻지요. '아들 이 어떻습니까? 참 힘들지요?' 이러면요 이분이 왕왕히 저보고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 잘하잖아요? 간절히 기도한다는데 사실요 평안할 때 우리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까? 간절 간절히 기도 안하죠. 흔들흔들 하고 기도하죠.

그런데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 내 아들 때문에 내 아들 때문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게 뭔지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 요.' 아 참 목사보다 낫 다. 그게 바로 기뻐하면 서 인내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참 중요한, 참 소 중한 것을 우리가 얻게 되는데 이게 뭐냐 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예수님 을 아주 멋지게 닮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내가 얼만 큼 자기를 닮느냐 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여러분 얼마나 예수님을 닮고 있어요? 옥 목사 보고 물어 보세요. 너는 얼마 나 닮았냐? 나도 몰라요, 얼마나 닮았는지. 하나님이 보셔서 말씀하셔야지 내가 말해 가지고는 통하지 않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로 아주 닮은꼴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할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 욱하라. 내가 자비한 것처럼 너희도 자비하라.' 하나님이 그리고 우리 보고 아들이라고 하는, 자녀라고 하는 명칭을 주셨잖아요. 자녀, 아들이 뭡니까? 닮았다는 이야기지 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그를 닮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보세요. 흥청망청 만 가지가 잘되고 그저 너무너무 세 상 사는 재미가 좋아 가지고 날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앉았다 섰다 하는 사람이 하나님 닮겠어요? 언제 닮아요? 언제 닮아? 마귀는 가만히 있어도 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닮는 것은 연단이 없으면 닮지를 못 합니다. 이게 우리의 약 점이예요.

흥청망청 하는 것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던 것 을 하나님이 조금 거두어 가시고 고난과 가난과 고 통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 을 드리고 그를 의지하고 그분 앞에 쉼 없이 드나 들 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닮는다 말이요. 하나님처럼 겸손합니다. 하나님처럼 의롭습니다. 하나님처럼 자비합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합니다. 하나님처럼 물질의 종이 되 지 않습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닮아가요. 이것은 고난을 통해서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흥청망청 주셔서 마귀를 닮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 이와 같은 어려운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않게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새벽기도 날마다 다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하고 이해가 안 되는 어려움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이유 가 있어요. 하나님의 원 하시는 것, '너 나 좀 닮 지 않겠니? 너 나 좀 닮 지 않겠니? 그러면 조금 참아라.'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마귀 닮는 것보다 낫잖아요.

진주가 왜 생기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여러분 상식입니다. 아시지 요. 굴속에 유리 조각이 라든지 모래라든지 뭐가 굴 입을 통해서 안에 들어옵니다. 이물질이죠. 이 물질이 들어 오면은 그 이 물질이 들어와서 그 굴속에 있는 부드러운 살을 갉아 먹어요. 그래서 상처가 생깁니다. 그러면 굴은 자기 몸에 있는 모 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 가지고 그 이물질을 호르몬으로 쌉니다. 자꾸 호르몬을 분비해서 싸고 싸고 싸요. 그래서 상처를 아물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이물질이 자기 몸에서 어떤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몸과 잘 조화가 되도록 계속 공격 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호르몬을 가지고 자꾸 싸 고 싸고, 그동안 이 굴은 얼마나 아픔을 참고 견딥니까? 계속 그렇게 씨름 하다 보면 그 이물질이 나중에는 진주가 되는 것 입니다. 영롱한 진주가 돼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여러 가지 시련 이 당신의 삶 속에 굴러들어 오면 그들을 침입자 로 여기지 말고 친구로 맞이하십시오. 그것은 장고의 인내를 시험하기 위 해 온 것임을 아십시오.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당 신의 속사람은 예수님처럼 성숙한 자리에 이를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많이 갖고 즐기다 마귀처럼 되는 것보다 적게 가지고 인내 하다 예수처럼 된다면 그 것이 하나님에게는 복이 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가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이럴 때는 기분 좋게 참아야 됩니다.

할렐루야! 기분 좋게 참으세요. 하나님이 나에 게 이런 고난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 덕분에 예수님하고 닮은꼴이 되겠네요. 이러면서 기분 좋게 여러분이 참으셔야 돼요. 이게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천국에는 문이 있대요. 열 두문이 있대요. 우리가 들어갈 때 열 두문 으로 들어갑니다. 계시록 21장21절에 보면 있어요. 열 두문이 있는데 그 문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요? 진주로 만들어졌대요.

진주는 인내의 상징입니다. 그렇죠? 오직 인내한 자, 세상을 살면서 주님 을 닮기 위해 인내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인내하고, 의를 행하 기 위해 인내하고, 믿음 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달리면서 인내하고, 기쁨으로 인내 하는 사람만이 그 진주문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진주와 같이 나에게 진주가 만들어질 때까지 내 자신이 진주처럼 변할 때까지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 을 원합니다. 달리면서 인내합시다. 기뻐하면서 인내합시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고난의 어두움을 헤쳐 나온 영광의 별을 우리는 보게 될 것 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인내한 자 에게 축복하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 도 축복 받습니다.

여러분! 이 과정만 잘 거치면요 정말로 여러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돼요. 우리 한국 교회도 새로워집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새로워집니다. 과거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 의 영적인 축복과 또 물질적인 축복도 주실 줄을 믿습니다. 달리면서 인내 합시다. 기쁨하면서 인내 합시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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