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 17장 8-16절 여호와 닛시(하나님의 이름)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1.
반응형

설교본문 : 출17장8-16 
설교제목 : 여호와 닛시(하나님의 이름)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 시대에 이르러 그 중요성과 본질을 광범하게 깨닫게 된 진리 하나가 있다면 ‘영적 전쟁’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과거 청교도 시대에도 이미 요한 번연의 ‘천로 역정’같은 작품이 등장하여 그리스도인의 여정에서 경험되는 여러 유형의 여려움을 영적싸움으로 묘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시대만큼 설교, 성경공부, 세미나등을 통하여 신앙의 삶을 영적 전쟁의 측면에서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 보여집니다. 최근의 이런 흐름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는데 일조한 기독교 소설 한권이 1980년대에 출판됩니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즉각적으로 200만권이상이 팔리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당시 현직 목사였던 프랭크 패레티(Frank E. Peretti)가 쓴 ‘This Present Darkness'(어둠의 권세들)이라는 책입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미국의 작은 도시 애쉬톤이라는 곳에서 뉴 에이지를 신봉하고 악령숭배를 하는 이들이 옴니 재단을 중심으로 이 도시와 대학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일로 시작됩니다. 이런 음모의 배후에는 루시어스 라파라는 악한 천사(귀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이 도시 전체의 기상도와 자기 딸 샌디(뉴 에이지에 빠짐)가 다니고 있던 대학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한 도시의 신문사 편집장 마샬 호건이 이를 파헤치려 하자 그는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도시의 신실한 목사 행크 부쉬가 그를 도우려 하지만 그도 역시 성 폭행죄라는 누명을 쓰고 감금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몇 몇 중보 기도자들의 기도와 함께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 기도단의 배후에는 이 도시의 수호 천사장인 탤이라는 선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부쉬 목사를 만난 편집장 호건은 그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두 사람은 힘을 모아 반격에 나서게 됩니다. 그 배후에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중보 기도자들 그리고 천사 탤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한 작은 도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배후에서의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전쟁, 곧 악한 천사와 선한 천사의 싸움을 매우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무서운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뉴 에이지를 경고하고 성도들의 영적 무장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쓰여 진 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충분히 그런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고 그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영적전쟁의 준비와 중보기도를 활성화하는 일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평가되는 소설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광야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던 이스라엘이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일전을 치르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싸움은 그냥 싸움이 아니라 일종의 영적 전쟁이었으며 이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비로소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는 이 승리를 경험한 후 제단 하나를 쌓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게 됩니다. ‘닛시’는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banner)이라는 뜻으로서 “깃발이 되시는 여호와”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이름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인생의 광야를 지나야 하는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면서 본문에서 배워야 할 승리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영적 전쟁의 승리의 비밀-무엇입니까? 

 

1.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묘사된 전쟁은 이상하게도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패배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기더니” 도대체 손을 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성경은 많은 경우에서 손을 드는 것을 기도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편28:2입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같은 시대야 말로 우리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기도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도는 노동이라”(Prayer is labor!)고 말합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 왔다는 것은 기도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모여서 함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런 기도의 동역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론과 훌이 양편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 올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 쪽에서 한 사람은 저 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저와 여러분은 이런 기도의 동역자들을 갖고 계신가요? 문제가 있을 때 알리기만 하면 달려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네트워크를 갖고 계신가요?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일일이 기도 제목들을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들이 있으신가요? 다행스런 것은 우리 교회의 경우 목장 모임에서 이런 중보기도가 일년 내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기도제목을 제출하기만 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우리 교회 중보기도실에서는 이런 기도의 제목들을 중보하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그러나 때로 우리는 온 교회가 함께 모여 중보의 손을 들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일부터 한 주간 열리는 추수감사 새벽축제는 바로 이런 기도의 축제인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남편들, 가장들이 많이 이 새벽 축제에 나오실 것을 기대합니다. 성경은 각 가정의 남자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기정과 사업처, 직장을 기도로 지키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기대합니다. 딤전2:8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지금이야 말로 기도의 손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2.하나님의 임재를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승리는 엄격하게 말하면 기도 그 자체의 능력이라기보다도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가 손만 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손에 지팡이를 붙들고 손을 올린 것으로 보아야 옳습니다. 본문 9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그렇다면 당연히 모세는 손만 올린 것이 아니라 손에 지팡이를 잡고 올렸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왜 하필이면 지팡이를 여기서 모세가 사용했을까요? 이 지팡이는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면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라고 대답하자 그 지팡이를 잡고 바로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출4:20에 보면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지팡이라고 했습니까? 예,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바로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모세가 승리의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을 때 우리는 ‘닛시’라는 단어에서 어떤 천으로 만든 깃발을 연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은 이때 이스라엘이 천으로 만든 깃발을 사용한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거 합니다. 오히려 지팡이 같은 데에다가 번쩍(반짝)이는 쇠조각을 붙인 것이 바로 한 부대나 종족을 상징하는 배너였다고 증거합니다. 사실 여기 깃발이라는 단어는 본래 ‘번쩍(반짝)인다’(glisten)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저 골짜기에서 싸우던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정에 선 모세가 든 반짝이는 지팡이를 보았을 때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부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향한 이스라엘의 시선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제에 직면할 때 단순히 기도함이 중요할 뿐 아니라 기도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21:1-2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생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를 열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인생의 골짜기에서 기도의 눈을 열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주목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3.하나님이 도우신 승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를 거두자마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 승리의 사적을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왜 이런 기록과 기념이 필요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아말렉과의 싸움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16절에서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동일한 싸움이 재연될 경우 이 날의 싸움을 교훈삼아 다시 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거를 쉽게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한때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한 우리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문제를 만날 때에는 전혀 기도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을 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기도의 승리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오늘의 역사에서나 내일의 역사에서 승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둘째 이유는, 우리의 승리의 원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존재로 살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모세는 이 승리의 자리에 한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을 이름하여 여호와 닛시라 부릅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셨다고 고백하며 감사의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고대의 제단에서 제물과 제사는 필수적이었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제단-이 제단은 바로 주의 백성들의 감사의 제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의 영성이야 말로 미래의 승리의 또 다른 도약의 마당이 된 것입니다. 감사를 망각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추수 감사는 미 신대륙을 개척하게 하신 청교도들의 감사의 마당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더 멀리 성경적인 기원을 추적하자면 초막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신실한 인도하심으로 먹을 것, 거처 할 곳을 주시고 수많은 생존의 위협에서도 그들의 생명과 발걸음을 보호하시고 추수의 은총을 베푸심을 인하여 이미 광야의 여정에서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 제사의 법과 함께 절기 예법을 받으면서 초막절 전통을 기념하게 됩니다.(레23장)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을철 초막절이 되면 집집마다 심지어 호텔에도 간이 초막(sukkot, sukkah)을 짓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감사 축제의 절기를 통해 새 힘을 얻고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교회도 공동체로서 이런 감사 축제의 새벽 시간(감사로 새벽을 깨워 비전의 미래를 열라)을 갖고, 다음 주일은 우리가 살아온 일년을 돌아보며 온 가족이 함께 주께 나아와 감사하는 추수 감사 주일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년처럼 추수 감사헌금은 뜻있는 선교 사역에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지난 날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할줄 아는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또 다시 감사드릴 승리의 미래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여호와 닛시’이십니다. 

 

지난 목요일 밤 시청률 40%이상을 기록하며 마친 “장미빛 인생”드라마 종료직후인 바로 다음 날 금요일 수 많은 시청자를 울린 주인공 최진실(맹순이)이 동아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지금 이 순간 인생은 살만 한가요?/뭐라고 말해야 하나,30대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했고, 이혼했고, 다시 연기자로 복귀했죠. 개인적으로 이렇게 굴곡이 심한 적은 없었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절망 뒤에 희망이 왔어요/무슨 희망인가요?/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런데 자꾸 기도를 하다보니 나중엔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라구요. 이 고통을 남편을 통해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주셨다면 저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한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 다시 손 잡아 주시고 최진실에게 희망을 주실거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시청률에 대해서는?/물론 시청률이 40%을 넘는다 길래 하나님한테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정말 옆에서 제 손을 잡아 주는 것 같아요. 눈물이 나도록 감사해요.--이 기사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집 근처 교회에 다닌다. 성경의 잠언과 시편을 즐겨 읽는다. 찬송가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 애송곡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녀의 기도가 그녀로 하여금 원망을 극복하고 이 찬양을 감사로 부르게 했다면 이제는 저와 여러분도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