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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1-4절 짐승과 사람 - 조원건 목사

by 재영구리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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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4절
설교제목 : 짐승과 사람
설교자 : 조원건 목사 
 
 
많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기릅니다. 저의 큰 아이가 어떤 분이 한국에 잠시 가면서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를 맡겨서 잠깐 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주 동안 기르게 되었는데 기르면서 하는 말이 강아지가 마치 자기가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마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분들은 다 공감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람들 중에서 개나 고야이같은 짐승을 오히려 사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심지어 개나 고양이 염소 등과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이 귀여워도 짐승은 짐승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던지는 욕 가운데 “짐승같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만약 짐승이 이 말을 알아 듣는다면 오히려 짐승이 더 화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짐승같다”라는 말을 듣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짐승같다”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욕으로 들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서도 짐승을 표현할 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7:6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개나 돼지같은 짐승들은 진주처럼 가치 있는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받으면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하기는 커녕 가치 있는 것을 준 사람에게 오히려 모욕을 주거나 큰 해를 끼치는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소중한 것을 주어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후서 2:22에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도 다시 진탕에 뒹군다.'는 속담이 그들에게 맞는 말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나 돼지같은 짐승들은 더럽고 깨끗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죄악을 자꾸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개나 돼지가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짐승이기는 하지만 개나 돼지의 습성중에는 인간이 닮아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몇 달전에 교육부의 고위 공무원이 “민중은 개, 돼지이다”라고 한 발언이 알려져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부서도 아닌 학교교육을 담당한 공무원의 발언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개 돼지처럼 잘 먹여만 주면 된다는 의미로 국민들이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발언이었습니다. 아무리 애완동물 애호가라도 자신들에게 개나 돼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유다서를 보면 비록 인간일지라도 영적으로 짐승과 같은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10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다가 편지를 보낸 교회 안에 영적으로 짐승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짐승과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짐승들은 네 발로 기어다니지만 사람들은 두 발로 서서 걸어다닙니다. 이것도 중요한 차이점이겠죠.

 
그러나 짐승과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방금 읽은 말씀처럼 짐승은 본능을 따라 살지만 사람은 이성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짐승은 생각없이 육체의 본능과 욕망에 이끌려 살지만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라고 해서 본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짐승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피곤하면 잠을 자고 싶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싶고, 위험을 느낄 때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람은 짐승보다 더 많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짐승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지만 사람은 돈을 얼마나 갖고 싶어합니까? 또 짐승은 명예욕구가 없지만 사람은 돈이 생기면 그 다음에 명예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깁니다. 또 명예가 생기면 권력에 대한 욕망이 생깁니다.

 
즉 짐승은 육체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인간의 본능과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능적인 행동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배우게 됩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잠자는 법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먹는 법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본능은 누가 따로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오직 본능을 따라서만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마디로 동물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힘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물에게는 본능만을 주셨지만 사람에게는 본능 이외에 이성 즉 생각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본능을 따라서 살지 말고 본능을 잘 통제하고 다스리고 절제하면서 살아야 이 세상이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 즉 이성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믿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광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광신자란 큰 소리로 기도하고 날마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믿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나타나는 변화중의 하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이성 즉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생각하는 능력으로 육체의 본능을 절제하고 다스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본능을 부추기고 채우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머리가 똑똑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죄를 짓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최순실 사건으로 계속해서 큰 혼란 가운데 있는데, 검찰에 잡혀 간 사람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죄를 짓고 감옥에 끌려간 것입니까? 검찰에 불려간 사람들 대부분이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아이큐도 높고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오직 자신들의 육체의 본능과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날마다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체의 본능만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입니까? 그들이 비록 생각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육체의 본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본능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잘 설명한 성경구절이 로마서 8:5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바울은 두 종류의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육신을 따르는 사람, 두번째는 영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육신을 따르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겠습니까? 비록 생각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 능력이 육체의 본능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직 육신의 일 즉 육신의 본능을 채우는 일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즉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을 따르는 사람이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런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전에는 육체의 본능을 만족시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육체의 본능을 다스리고 절제하면서 영의 일 즉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광신자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육체의 본능을 다스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편지를 보낸 교회안에는 이름은 크리스챤이었지만 여전히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오직 육체의 본능과 욕심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그들의 특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유다서 1:4을 읽겠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1)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2)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그들의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제일 먼저 주시는 은혜는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 죄를 지으면 또 용서해 줄테니 마음껏 아무런 부담없이 죄를 자유롭게 지으라는 것이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이 희생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경건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유다가 편지를 보낸 교회안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니까 앞으로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죄에 대해서 아주 관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의 본능을 억제하며 살지말고 오히려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마치 지혜로운 것처럼 생각하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가르켜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나서 혹시라도 죄를 짓고나면 가슴 아파하며 회개하려는 마음이 먼저 생깁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니까 적당히 눈감아주시고 다 알아서 용서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죄를 가볍게 생각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신 목적은 이제는 죄를 미워하고 육체의 본능과 욕심에 붙잡히지 말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특징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도 하는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이 말씀은 그들이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인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했을뿐 실제 삶으로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육체의 본능과 욕심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않고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우선이며, 육체의 본능과 욕심을 만족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느냐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삶속에서도 예수님을 정말 주님으로 대접하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지켜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할 때 짐승과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짐승은 생각없이 육체의 본능과 욕망에 이끌려 살지만,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지 육체의 본능과 욕망에 따라서 살게되면 짐승과 별 차이가 없을뿐만 아니라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갈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다는 이런 사람들의 구체적인 특징을 유다서 전체에 상세하게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성경구절을 읽지는 않고 중요한 단어만 열거해 드리겠습니다. “꿈꾸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꿈이나 감정이나 느낌이나 기분 같은 것을 더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권위를 업신여김” “비방” “조롱” “자랑”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비웃고 자랑과 교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원망, 불만” 육체의 본능과 욕망이 다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분열”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포용하고 인내하기 보다는 편을 가르고 분열시키게 됩니다.

 
“성령이 없는 자”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사람들만 받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이 없는 자라는 말씀은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뿐 마음으로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저희가 정말 예수님의 은혜로 죄용서함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도 기뻐하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우리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유다서를 통해서 생각없이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짐승과 같은 삶을 살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할지라도 나의 생각이 육체의 본능과 욕심의 지배를 받으면 여전히 짐승과 같은 삶을 살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을 부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영의 사람이 되었으니 육의 일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영의 일 즉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사는 경건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죄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물을 드립니다. 또한 저희에게 맡겨주신 물질과 시간과 은사를 나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와 이웃의 유익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귀하게 사용하며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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