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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19장 1-8절 하나님께 경배하라 - 옥한흠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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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요한계시록 19:1-8
설교제목 : 하나님께 경배하라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드디어 새해가 시작되었습 니다. 새해 첫 주를 맞아 우 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게 된 것을 진심으 로 축하하고 또 하나님께 감 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담임 목사로서 사랑하는 형제 자 매 여러분들께 한 가지 축원 을 하고 싶습니다. 신년 한 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정상적 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공식 적으로 교회에 모여서 드리 는 예배 횟수가 100번을 넘 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100번이 안 되시는 분은 비정상입니다. 그리고 여기 에다 다락방에 참석해서 드 리는 예배까지 계산하면 1년 에 150번 이상 하나님께 예 배를 드리는 셈입니다. 여러 분 가운데서는 1년에 150번 이상 예배 드린다고 하니까 마치 1년 내내 예배만 드리 다가 끝나는 것처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인생을 70 년으로 놓고 재미있는 계산 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인 생을 70년으로 볼 때 20년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20년은 잠자면서 보내고, 6 년은 먹고 마시면서 보내고, 7년은 쉬면서 즐기면서 보내 고, 3년은 남 기다리다가 보 내고, 또 1년은 전화통 붙들 고 보낸다는 것입니다. 참 그럴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데 보내는 시간 을 1년 반 정도로 잡았습니 다. 70년 중에서 1년 반이라 고 하니까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년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1년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적어도 5분 이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 고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해 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적어도 5분 이상 하루를 잘 보내게 지켜주신 하나님 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 고 매주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에 나와 적어도 3시간 정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70년 중에 1년 반이나마 예배하는 시간 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어떻습 니까? 조금만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도 하나님께 나아 가는 시간을 하루에 10분조 차 못 갖는 것이 우리의 현 실 아닙니까? 그리고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1 주일 에 3 시간조차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 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우리는 70 평생 동안 1년 반 조차 제대로 예배 드리지 못 한 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이 되기 쉽습니다. 아니 천 국에 잘 들어갈 수나 있을 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1년 반을 채우려고 해도 예배를 위해 지극 정성을 쏟아야 하 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 배는 귀찮은 의무라기 보다 구원받은 성도만이 할 수 있 는 가장 영광스럽고 보람되 고 감격스러운 특권입니다. 성도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어떤 일보다도 앞세 우고 또 소중히 여겨야 합니 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 록 19장 말씀은 우리의 예배 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 가를 잘 보여 줍니다. 아울 러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예 배의 제 요소들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 은 예배를 받는 대상이 누구 시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 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는 것 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구 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 나님께 있도다."

우리가 예 배하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 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 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예 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 절을 보십시오.

"그의 심판 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하 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 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 다. 악인들과 이 세상의 모 든 거역하는 자들을 심판하 시는 만유의 하나님 앞에 우 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 다. 마지막으로 6절을 보십 시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 다."

하나님은 영원히 통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 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 하사 자기의 신부를 삼으신 하나님, 자기 백성을 삼으신 하나님, 또 이 세상을 심판 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통치 하시는 그 높으시고 크신 하 나님 앞에 경배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예배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본문을 통 해 예배자가 누구냐에 대해 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 다. 1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허다한 무리'가 예배한다고 말씀합니다. 5절에서는 '하나 님의 종들'이라고 말을 바꾸 기도 합니다. 이들은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 님의 자녀가 된 백성들을 가 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 배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의 자녀된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를 특권이라 하는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예 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분 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 다. 본문에 나오는 예배자들 은 한결같이 '할렐루야'로 예 배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 오. '할렐루야'라는 말이 얼 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할렐루야로 예배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찬양과 경배로 하 나님께 예배한다는 말입니 다. 우리 역시 찬양과 경배 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 두 큰 소리로 예배했습니다 (1,6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엎드려 경배했고 크게 기뻐 하면서 예배했습니다(4,7절). 오늘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이와 같아 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 에 가면 영원히 해야 할 일 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가 지상에서 예배 드리는 것 은 그 일을 이 세상에서 미 리 연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가 누리 고 사는 천국 생활의 일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서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주 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 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 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 진노하 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 씀합니까? 하나님을 알면서 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 사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 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하 나님은 그 무수한 사람들 가 운데 우리를 특별히 뽑아 내 어 자기 자녀로 삼아주셨습 니다. 우리로 예배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 배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예배를 탈피하라

우리가 예배자로 하나님께 예배 할 때 주의해야 할 것 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주관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예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 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중심이 된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잘 못하면 내가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내 기분에 따라서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아 버 리기도 하고 예배에 적극적 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방관 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 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 자 기 마음에 있는 소원을 이루 는 기회인 것처럼 여기고 하 나님이 그 소원을 반드시 들 어 주셔야 된다는 고집을 가 지고 예배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예 배를 받으시는 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 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지 우리의 주관적인 이해관 계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에 대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 '받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은혜 가 예배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별로 못 받는다 해도 예배해야 합니 다. 우리는 이미 예배할 충 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 문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은혜 를 받느냐, 못 받느냐와 상 관없이 우리는 예배해야 합 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영광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 가운 데 은혜를 조건부로 내세우 며 예배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께서 반드시 고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서 좋지 않은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예배를 본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이 이 '본다'는 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제 가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 게 우리가 예배를 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배자가 어떻 게 구경꾼이 될 수 있습니 까?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무심코 쓰는 이 말처럼 예배 를 구경하는 사람이 너무 많 습니다. '오늘 성가대 성가 잘 하나 보자.' '오늘 담임 목사 넥타이가 달라졌네.' '오늘 예배 순서가 좀 이상 한 것 같다.'... '예배를 본다' 고 하니까 예배 시간에 이런 저런 구경을 하며 앉아 있으 면 되는 줄로 알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느냐만 생각하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예배해서는 안됩니 다. 병든 예배가 되게 해서 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 예배가 병든 예배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는 것입니다. 저는 담임 목 사로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 병든 예배는 아닐까 늘 걱정입니다. 성경에 병든 예 배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어마어마한 성전에서 화려한 의식과 의상을 입고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그 얼굴 을 돌려버린 예배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 교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마 찬가지입니다. 우리라고 그 런 병든 예배를 드리지 않으 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래서 저는 그렇게 될까 염려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 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예배를 통하여 은혜 의 강이 넘쳐 흘려야 합니 다. 예배는 교회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 나님의 역사가 힘있게 일어 나야만 교회의 각 부분에 새 로운 피가 전달되어 생명력 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 고 더 나아가 성도 개개인의 가정과 삶 속에까지 그 생명 력이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 다. 그렇게 할 때 모든 프로 그램이 열매를 가져올 수 있 고 모든 봉사가 하나님이 받 으시는 것이 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예배가 병들면 아무 리 좋은 프로그램을 요란하 게 늘어놓는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합니다. 은혜를 못 받는 것 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습니 다. 예배가 살아서 끊임없이 맥박 치며 교회의 각 부분에 새로운 피를 공급함으로 움 직이게 해야 교회가 삽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그래도 주 일이라고 정성을 다해서 나 오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2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오신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우리 가 그 먼길을 달려왔음에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그냥 앉았다 가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예배가 그런 병든 예배가 되 지 않게끔 늘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우리의 마음이 따라가는 예 배입니다. 마음이 따라가는 예배입니다. 쉽게 말해 마음 을 담은 예배라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입니 다. 잠언서에서 하나님은 이 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 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

(잠23:26). 하나님이 원하시 는 것은 어떤 순서가 아닙니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입니 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성품을 다 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 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무 엇이든지 요구하실 때 거기 에 우리의 마음, 우리의 전 인격이 담겨 있기를 원하십 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 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 다. 세상에서 자기 속을 들 여다보는 사람만큼 부담스러 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깊은 곳을 모두 통찰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 서 우리가 예배할 때 마음을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얼 굴을 돌려버리시는 것입니 다. 마음을 들여다보니 마음 이 온통 엉뚱한 곳에 가 있 는데 그 예배를 어떻게 받으 실 수 있겠습니까?

주일학교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어느 날 교회를 다녀 오더니 체중계에 올라가서 자기 몸무게를 달아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이상하게 여기고 이렇게 물 었다고 합니다.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도 다 니?"

그랬더니 그 소녀가 이 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엄마, 오늘 교회 갔는데 우 리 선생님이 예배 드릴 때는 마음을 하나님께 다 바쳐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가르 쳐 주셨어요. 그래서 그 말 씀대로 오늘 예배드릴 때 내 마음을 전부 다 하나님께 드 렸는데요 이제 몸무게가 얼 마나 줄었나 하고 달아보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 참 이 상하네요. 달아보니까 몸무 게가 하나도 안 줄었네요."

여러분 얼마나 순진하고 아 름다운 말입니까? 천국은 어 린아이와 같은 자가 들어간 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마음을 바치 라니까 그렇게 하면 자기 몸 무게가 줄 것이라 생각했습 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런 자세를 가지고 예배를 드려 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쁘 게 받으십니다.

준비된 예배를 드리자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 히 드림으로써 우리 예배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임재하 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특별히 은혜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 님이 임재하셔서 그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그 자체 가 우리에게 은혜가 되기 때 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 셔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영 광을 받으시면 그것으로 우 리 마음에 있는 모든 상처가 치유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 기 위해서는 금년 한 해 동 안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노 력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준비된 예배를 드 리도록 하자' 하는 것입니다. 준비된 예배라는 것은 예배 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을 말 합니다. 우리는 과연 예배를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사모 하며 기다립니까? 시편 130 편 5절, 6절을 보면 이런 말 씀이 있습니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 도 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 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 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 다."

우리의 귀한 아들들이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과 싸우며 최전방 휴전선에서 밤새도록 북방을 지키고 있 지 않습니까? 밤새도록 불침 번을 서는 우리 아들들이 무 엇을 가장 고대하고 있겠습 니까? 아침이 오는 것입니 다. 추운데서 발을 동동 구 르며 아침을 기다리는 그들 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 겠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우 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합니 다. 파수군의 간절함으로 하 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고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 배자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통해 하나님 을 만날 것을 기다리고 바라 는 사람은 미리 마음을 준비 합니다.

"아, 주일이 다가 오 는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해야지. 하나님 의 보좌 앞으로 달려가야지. 예배를 통해서 시온산 대로 를 향해 나는 달려가야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면서 기뻐 춤추고 싶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 게 되면 내 마음의 상처나 염려와 걱정이 씻은 듯이 사 라지겠지. 아, 주일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 어야 우리가 준비된 예배를 드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 다.

하나님을 이처럼 바라고 기 다리는 자는 예배를 위해 기 도합니다. 사전에 기도합니 다. 여러분은 이 예배에 참 석하기 전에 얼마나 기도했 습니까? 예배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장 로님들은 2부 예배 드릴 때 벌써 교회에 오셔서 당회실 에서 오늘 예배를 위해서 기 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역 자들도 자주 기도합니다만 신년도에는 주일날 1시간 먼 저 나와서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중보기 도팀에 있는 수백 명의 중보 기도자들은 목요일날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위해서 전적 으로 기도합니다. 설교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든 순서를 맡은 종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락방에 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락 방이 모일 때마다 이틀 후 우리가 함께 드릴 주일 예배 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골방에서도 예배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 다. 파수꾼이 아침을 사모하 듯이 예배를 사모하고 그 예 배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달 려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은혜 주실 줄을 믿습니다. 준비된 예배자가 됩시다.

습관적인 예배를 피하자

둘째는, '습관성 예배를 드 리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것 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담겨 있 지 않은 습관성 예배를 드리 기 쉽습니다. 어떤 예배가 고정된 틀에 묶여 버리면 그 예배는 잘못하면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아, 예 배가 시작되니까 일어나겠구 나.' '주기도문송을 부르고 또 앉겠구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어떤 고정된 예 배 틀에 매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형식주의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어떤 고정된 예배 의 틀이 없습니다. 고정된 형식이 없는 것입니다. 찬양 이 있으면 예배이고, 기도가 있으면 예배입니다. 예물과 성만찬과 성도의 교제와 말 씀이 있으면 예배입니다. 어 떤 고정된 틀이 없는 것입니 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 조건 틀을 무시해 버리면 안 됩니다. 무질서한 예배가 되 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적 절하고 또 효율적인 형식을 갖추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 한 예배 의식만 예배라고 생 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사고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책임지 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습관성 예 배, 곧 형식적인 예배를 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늘 중요한 과제로 삼아왔습니 다. 사실 우리 교회가 3년 전부터 세 가지 유형으로 예 배를 드리게 된 것도 형식적 인 예배를 피해 보자는 한 방도였습니다. 어느 한 예배 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예배 가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습관적인 예 배가 된다면 더 마음을 열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예배를 선택해서 드릴 수 있게 하고 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3년을 돌이켜 볼 때 이 와 같은 의도에 맞게 더 마 음을 활짝 열 수 있는 예배 를 선택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 부분 시간대가 유리한 데만 찾지 예배 형식 때문에 자신 이 좀더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 해서 예배를 선택하는 사람 이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 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 르게 또 다른 형식주의에 빠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이 세 가 지 유형의 예배를 조금 변화 를 주면서 교차해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제 주보 를 보면 1,2,3,4,부 예배 각각 에 대해 이 달에는 어떤 유 형의 예배가 드려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유형을 바꾸어 가며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이렇 게 예배 스타일을 바꾸어 예 배 드리다 보면 닫혔던 우리 마음이 활짝 열려 하나님 앞 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 는 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최대한 형식주의, 습관적인 예배를 막으려고 하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예배가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않게끔 노력하 셔야 됩니다.

찬양에 힘쓰자

셋째는, '찬양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성보다 감성을 상당히 앞세우는 시 대입니다. 30대 이하에 속하 는 우리 아들, 딸들을 보면 빵이 없이는 살아도 노래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까지 말 하는 이상한 자들입니다. 당 연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류 를 좋아했습니다. 열린 음악 회가 성공하고, 노래방이 흥왕하고, 집집마다 자녀들 에게 음악을 가르치느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과외를 시키고 법석들을 떠는 이 모 든 일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 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와 같은 집착은 과거보다 지금 이 훨씬 더 한 것 같습니다. 음악의 가치나 찬양의 위력 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 한 것입니다.

신구약을 보면 위대한 예배 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예배 자를 들라면 저는 다윗을 꼽 을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 오. 그는 한마디로 예배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별명은 노래 잘 하는 사람입 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예 배할 때면 다른 사람이 볼 때 미쳤다고 할 정도로 힘을 다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악 기를 연주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예배는 곧 찬양이었습 니다.

찬양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 을 차지하기는 신약시대 역 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로 새서 3장 16절을 보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에베소 서 5장 19절에도 똑 같은 말 씀이 나옵니다.
"시와 찬미 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 답하며."

 

저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 지에 대해 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세 가지 모두 찬양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찬양 을 굳이 세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신약 시 대 예배에서 찬양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든 신약시대든 예배 에 있어 찬양의 중요성은 아 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 습니다.

저는 노래 가사에 대해서는 거룩한 가사가 있고 속된 가 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 다.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 녀가 기도하면서 지은 가사 라면 그것은 거룩한 가사입 니다. 은혜가 되는 가사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쓴 것 이라면 아무리 예수라는 말 을 많이 넣었다 해도 그것은 거룩한 가사가 될 수가 없습 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부르는 곡이 면 거룩한 가사입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곡에 대 해서는 저는 거룩한 곡과 속 된 곡이 어느 정도로 구별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 다. 우리는 초대 교회가 시 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을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 다. 저는 그들이 불렀던 찬 양의 곡들이 전문적인 음악 가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 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작곡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 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사 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른 찬양의 곡들은 대부분 어디서 왔을까요? 평 소에 세상에서 많이 불렀던 곡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들 을 선택해서 거기에 성경의 가사를 붙이거나 거룩한 기 도를 붙여 가지고 부른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의 곡 에 대해 하나님께 합당한 곡 이냐 아니면 세속적인 곡이 냐 하고 지나치게 따지는 것 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탄의 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 명히 사탄의 무리들이 부르 는 곡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문적인 음악가들이 구별할 일입니다. 대부분의 곡들은 우리가 거기에 성경 의 가사, 아니면 신앙의 고 백을 붙이기만 하면 우리 마 음에 와서 닿는 아름다운 찬 양이 될 수 있습니다.

"아리 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가사를 붙이면 세속 곡이지 만
"예수님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담는다면 그 노 래가 거룩한 곡이 될 수 있 는 것입니다.

저는 찬양의 곡이란 옷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성직자들이 입는 옷이 있습 니다. 소위 성복이라는 예복 입니다. 카톨릭 신부들이 주 로 이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그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 신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입 는 옷 그대로 입고 다닙니 다. 그리고 사람들이 입는 옷은 유행에 따라 바뀌고 시 대에 따라 바뀝니다. 그렇다 고 해서 평신도들이 입고 다 니는 옷은 거룩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올 때 는 그 옷들은 모두 벗어 놓 고 다른 거룩한 옷을 입고와 야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 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 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 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면 그것 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송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 다.

여러분은 오늘 벌써 3부 예 배가 좀 달라졌다는 것을 느 끼셨을 것입니다. 이 한 달 동안은 우리가 이런 스타일 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것입니다. 예배에서 특별히 찬송을 강조하고 있는 것 여 러분들이 충분히 아셨을 것 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찬송을 많이 부릅시 다. 찬송을 힘있게 부릅시다.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찬송을 부릅시다. 힘있게 부릅시다.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찬송 부르는 자의 마음에 하나님 의 은혜가 임하십니다. 바울 과 실라가 어두운 지하 감옥 에 갇혔을 때 밤중인데도 불 구하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손에 있는 쇠사슬 이 풀어져 내리고 옥문이 열 리고 자기를 때리던 간수가 와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놀라운 일을 보지 않았습니 까? 오늘도 찬양이 살아 있 는 예배에는 이와 같은 놀라 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 다. 우리 모두 찬송하며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 의 손발에 있는 염려의 쇠사 슬과 불안의 쇠사슬, 공포의 쇠사슬이 다 풀어져 내리고 옥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줄을 믿습니 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을 처 리하라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 드리고 싶은 것 있습니다. 마음을 담아 하나 님께 예배 드리기를 원한다 면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처리하시라는 것입 니다. 우리에게는 예배를 방 해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 니다. 예를 들면, 지각이 예 배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자주 자각하시는 분들을 잘 들으십시오. 지각은 나쁜 습 관입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 는 것은 간단합니다. 만일 10분 지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으면 10분 빨리 출발 하면 됩니다. 물론 주차 관 계 때문에 여러분들의 애로 가 많을 줄 압니다. 그런 경 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뻔히 지각할 줄 알면서도 매 일 꼭 같은 시간에 출발한다 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 예배 를 과연 어떻게 보실 까요? 예배에 지각하지 않도록 노 력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옷 매무새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청바 지를 입고 올 수도 있고 실 내화를 끌고 올 수도 있겠지 만 우리 동양 사람은 정서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옷매무새를 준비하는 것도 예배를 방해하는 것을 처리하는 한 방법입니다. 또 예배 중에 핸드폰이나 삐삐 소리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핸드폰이나 삐삐 가 예배를 방해하는 거라면 차라리 집에 두고 오든지, 꺼 놓으십시오. 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 그렇게 노예 가 되어서 살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좀 자유하자구요.

법정에서 '삐삐'하면 백 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든지 아 니면 20일 이내의 구류를 살 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 드리는 사람 이 누구한테서 전화 올 것을 기다리고 앉아 있다면 하나 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 시겠습니까?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 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과감하게 처리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 분, 마음을 담아 예배를 드 릴 때 우리 모두는 이사야처 럼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영광 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분 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마음 을 담아 예배 드리면 하나님 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 다. 우리 영혼의 귀에 은은 하게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 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 다. 우리가 예배를 바로 드 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비 로우신 품안에 안겨서 하나 님이 주시는 신비로운 행복 을 맛볼 수 있다고 믿습니 다. 우리가 예배를 하나님께 바로 드리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치유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고 확신합니다.

예배를 바로 드립시다. 하 나님 앞에 바로 나갑시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빈 마음 을 가지고 섭시다. 모든 것 을 주께 드리는 자세로 하나 님의 이름을 높입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고 와 슬픔으로 상처 입은 우리 의 마음을 씻어 주시고 싸매 어 주시고 하루하루를 힘있 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마음을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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